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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동호회를 통한 전통예술 향유양상

4) 진지한 여가로의 이행

풍월신명판 회원이 전통예술동호회를 찾아오는 데는 일단의 시간적 여유를 가 지고 동호회활동을 위해 애써 시간을 할애하는 것, 과거 전통예술을 경험하고 현 재 동호회에서 전통예술을 직접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복합적으 로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과 개인의 작은 관심이 결합하여 시작된 동 호회활동이 진지한 여가로 변화하는 데는 어떤 작용이 있는 걸까.

우선적으로 전통예술에 의한 감흥을 그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풍월신명판에 는 본 동호회 이전부터 다른 동호회에서 수년 간 활동해온 회원들이 있다. 이들이 활동의 근거지를 옮겨온 이유는 이사, 동호회의 소멸 등 개인적이거나 환경적인 문제 때문이다. 본래의 모임에서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살 길을 찾아” 계속 풍물을 치고 탈춤을 출 수 있는 풍월신명판으로 활동의 근거지를 옮겨 온 것이다. 새로운 동호회에 발을 들인다는 것은 기존에 익숙해진 설정을 버리고 새로운 동호회의 질서를 익히고 다른 회원과의 관계를 다시금 형성해야 하는 불 편함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새로운 동호회를 찾아 계속 전통예술 을 행하기를 택하였다.

1990년대 초반 40대 중반 직장인 남성이었던 전희성은 타악기 연주를 좋아하 던 막연한 마음을 문화센터의 장구강좌 수강으로 연결하였다. 이전까지는 별다른 여가활동을 하지 않았던 그는 관심을 갖고 있던 대상을 배우는 재미에 빠져 강좌 가 제공하는 강습의 단계를 모두 이수한 뒤 지속적으로 장구를 치기 위해 동호회 로 자리를 옮겼다. 전희성에게 동호회의 주목적은 연습과 연주이며, 정기모임의 주안점은 “한번이라도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거의 개근”해 기량연마에 정진하 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초반 풍월신명판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 직장에서 은퇴 를 하게 된 그는 이전보다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면서 장

높여” 좋은 재질의 물품을 구입한다. 이때 풍월신명판이라는 단체의 연혁이 오래되 었다는 사실은 그간 교류해온 한 국악기 판매업체로부터 추가 할인을 받는 이점으 로 작용한다.

구를 치는 데 더욱 매진하고 꽹과리, 민요 등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의 범위를 넓 혀 더욱 연습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례 III-5] 습관으로 고착시킨 진지한 여가

“뭐든지 하려면 열심히 해야지. 안 그러면 안 되고. 내가 이걸 직업으로 한 건 아니잖아. 그렇지만 이렇게 열심히, 취미생활 하지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내가 프로같이 잘 하진 못 해도 취미로 하는 사람 중에는 내 자랑 같지만 내 나이에 내 정도 기량 되는 사람이 흔친 않을 거야. 있겠지. 있는데 아마 그렇게 흔치는 않을 거야. 자랑이 아니고 그냥 아마 그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왜냐면 쉬지 않고 열심히 했으니까, 나름대로 고민하면서 […] 이 장구나 꽹과리 기량은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에 되는 게 아니잖아. 꾸준히, 좀 어떨 때는 꾀부리고 싶 어도 그걸 참고 연습하고 해서 기량이 늘어나고 내게 되는 거지. 인생살이 자체 가 그거 아니겠어?”

- 전희성(남, 60대) 면담, 2015년 1월 18일

[사례 III-5] 전희성의 자평에서 드러나듯 풍물을 진지한 여가로 삼게 되는 데 는 장구와 꽹과리를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스스로 자신할 수 있을 만큼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개인의 성향도 작용한다. 전희성은 동창모임도 마다하며

“거의 결석을 한 번도 안 하고” 연습에 몰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연습은 곧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더욱이 보는 눈과 듣는 귀가 트이면서 하면 할수록 공 부할 거리가 생기고 관심의 영역이 넓어졌기 때문에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고 회 고한다. 그에게 있어 전통예술을 익히고 직접 연행하는 데서 느끼는 희열과 그에 대한 몰두는 진지한 여가로의 제일의 동인이다.

전희성의 사례가 개인의 관심과 성향, 시간의 풍요로움의 조합이 전통예술의 능 동적 향유를 진지한 여가로 고착시킨 한 반로라면, 현실에 따른 대안으로 진지한 여가를 택하기도 한다. 2000년대 후반 풍월신명판 가입 당시 40대 기혼 여성이었 던 지혜영이 그 예에 해당한다. 지혜영 역시 풍월신명판에서 활동을 하기 전 이미 6년가량 다른 풍물동호회에서 활동을 해 온 이력이 있다. 그는 장구를 시작으로 풍물에 빠져들게 된 이유로 풍물의 소리가 만들어내는 음색과 개인적인 감흥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저 가락의 선율이 좋아서 시작했던 것인 데, 다른 장르의 음악과 비교할 때 자신의 마음을 “이것만큼 역동적으로 건드리는 게 없”어 풍물을 이용한 국악, 전통예술에 몰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지혜영은 풍물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지 3~4년이 되던 시점에는 풍물

이 “미친 듯이 좋아가지고 이거만 하고 싶”고 “이거를 전업으로 삼고 싶은 정도”

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주부이자 엄마로서 지어야 할 책임 을 고려하여 여가활동으로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공부하고 싶은 거를 공부하고 다니는” 것으로 전업예술가의 길을 단념하였다. 즉 전통예술 그 자체로 느끼는 즐 거움과 배움의 기쁨에 감화하여 그것을 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의 고뇌를 가졌지 만 결국 현실적 상황에 따른 타협으로 진지한 여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는 동호 회에서의 연습과 공연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자신의 기량을 끊임없이 수련한다. 그 리고 때때로 전문가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동호회 회원 외의 초심자에게 강의 를 하는 등 자신이 추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열성을 들여 다양한 방 식으로 전통예술을 행한다.

[사례 III-6] 동료와의 관계에서 유발된 몰두

“왔는데 너무너무 좋은 거야. […] 누구 모 나는 사람 없이 잘 어우르고 언니들 은 동생들한테 잘 하고. 물론 동생들도 잘 하고 분위기가 맞으니까 되게 재밌었 어. […] 단합대회도 잘 가고 연습도 빡세고 그 때 우리가 정모를 했어. […] 우 리[탈춤패]끼리 자체적으로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 번씩 발표회를 하자 해서 […] 진짜 체계적으로 하고 억수로 열심히 했다. 밤에 열두시, 한시까지 했다, 그 공연할려고. […] 그 때는 열정적으로 모든 게 다 열정이야. 이걸 하면 뿌리를 뽑아야 하고 그리고 무대도 서야 하고, 진짜로 그 땐 너무너무 열심히 했다.”

- 연유정(여, 40대) 면담, 2014년 12월 18일

한편, 동호회라는 활동조건 덕분에 진지한 여가를 갖게 되기도 한다. 2000년대 초반 풍월신명판 가입 당시 20대 후반 미혼여성이었던 연유정이 본 동호회의 활 동에 몰두하고 헌신하게 된 과정이 그러하다. 그가 풍월신명판에 처음 입성하게 된 배경은 “사람이 그리워서”였다. 당시 20~30대의 또래 회원이 많았던 탈춤패의 활동은 “뭔 말만 하면 뭐든지 다 오케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 자체가 활 력이었고, 그 중심에는 춤이 존재했다. [사례 III-6]에서 연유정이 연습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탈춤을 비롯한 한국 기반의 전통 춤 을 배우고 연행하는 것은 동료와의 놀이에서 중요한 소재였고, 그것을 뽐내기 위 해 풍월신명판의 정기공연 외에 탈춤패만의 별도의 공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 역시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동료회원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연습실을 오가는 것 을 넘어 함께 춤을 배우고 공연하는 데 빠져들 수 있도록 해주었다.

특히 연유정이 춤을 학습하는 데 몰두하게 된 계기는 강사로서의 임무를 맡게

되면서이다. 이는 스스로 탈춤을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실력향상이 뒤따랐던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강사는 잠재회원에 해당하는 초급강습의 수강생을 맞이하는 첫 번째 얼굴로 그의 실력과 포용력은 회원 유치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동안 적극적인 참여자이되 활동의 주도적인 기획에 있어서는 다소 소극적이었 던 그의 행보는 동호회라는 단체에서 하나의 직책을 수행하며 변화를 갖게 된다.

타인에게 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의 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 실 력의 안정과 향상을 위해 함께 하는 연습 외에 개인적인 노력을 더욱 들이는 것 은 물론, 조직의 활동방향도 함께 고려하며 핵심적인 헌신자로 거듭난 것이다. 이 는 동호회에서 만나게 된 사람과 조직 내에서의 역할수행이 진지한 여가를 추동 한 사례다.

동호회와 같은 풀뿌리기반 결사체에서 경험하는 동료와의 상호작용과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은 결사체에 대한 참여에 있어 중요한 동기가 된다 (Smith 2000, Stebbins 2002: 34-35 재인용).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활 동은 동호회로의 출입을 지속시키는 매개가 되며, 만남이 성사된 본래의 목적인 전통예술을 연행하는 데 중점을 둠으로써 전통예술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만든다. 풍월신명판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출석률, 실력 등에 따라 헌신자로 판단할 수 있는 이들은 대개의 경우 간부역할을 거친 경향을 보인다. 이는 동호회의 살림을 위해 노력했던 경험이 조직에 대한 더욱 깊 은 소속감과 애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월신명판이라는 전통예술동호회 를 통해 진지한 여가를 갖게 된 회원에게는 전통예술의 연행에 따른 감흥과 더불 어 동호회의 동료회원과 조직에 대한 애정이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회원들의 능동적인 전통예술의 향유와 동호회의 활동의 경험은 어떻게 벌어지는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