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동호회를 통한 전통예술 향유양상
1) 반복을 통한 기량증진
되면서이다. 이는 스스로 탈춤을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실력향상이 뒤따랐던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강사는 잠재회원에 해당하는 초급강습의 수강생을 맞이하는 첫 번째 얼굴로 그의 실력과 포용력은 회원 유치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동안 적극적인 참여자이되 활동의 주도적인 기획에 있어서는 다소 소극적이었 던 그의 행보는 동호회라는 단체에서 하나의 직책을 수행하며 변화를 갖게 된다.
타인에게 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으면서 자신의 춤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보고 실 력의 안정과 향상을 위해 함께 하는 연습 외에 개인적인 노력을 더욱 들이는 것 은 물론, 조직의 활동방향도 함께 고려하며 핵심적인 헌신자로 거듭난 것이다. 이 는 동호회에서 만나게 된 사람과 조직 내에서의 역할수행이 진지한 여가를 추동 한 사례다.
동호회와 같은 풀뿌리기반 결사체에서 경험하는 동료와의 상호작용과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은 결사체에 대한 참여에 있어 중요한 동기가 된다 (Smith 2000, Stebbins 2002: 34-35 재인용).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하는 활 동은 동호회로의 출입을 지속시키는 매개가 되며, 만남이 성사된 본래의 목적인 전통예술을 연행하는 데 중점을 둠으로써 전통예술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만든다. 풍월신명판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출석률, 실력 등에 따라 헌신자로 판단할 수 있는 이들은 대개의 경우 간부역할을 거친 경향을 보인다. 이는 동호회의 살림을 위해 노력했던 경험이 조직에 대한 더욱 깊 은 소속감과 애착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월신명판이라는 전통예술동호회 를 통해 진지한 여가를 갖게 된 회원에게는 전통예술의 연행에 따른 감흥과 더불 어 동호회의 동료회원과 조직에 대한 애정이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회원들의 능동적인 전통예술의 향유와 동호회의 활동의 경험은 어떻게 벌어지는 가.
다.35) 몸이 기억한다는 것은 탈춤에 낯설어하는 수강생을 격려하기 위한 발언이 자 연행예술의 특징을 담은 표현이다.
강습에는 이전에 장구나 탈춤, 그 외 강습대상을 직접 체험한 적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등 다양한 수준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모인다. 이때 강습은 처음 배우 는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초급강습에서 수강생은 보존회의 가르침과 구술도 움을 받아 동호회 내부에서 제작한 교육자료집으로 일종의 기보(記譜)와 무보(舞 譜)를 얻지만 그것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이론적 지식을 학습하기 보다 몸과 몸을 통하여 타법과 가락, 동작 등을 익히는 실천적 지식(practical knowledge, Lindsay 1996)을 습득하는 것이다.
강습이 이루어지는 장면에서 도출할 수 있는 하나의 핵심어는 반복이다. 셰크너 (2004[1985]: 40)는 트레이닝의 핵심은 반복이며 아시아의 경우 공연지식의 습 득 과정에서 몸을 사용한 모방의 반복학습이 두드러진다고 말한다. 이는 풍월신명 판 회원이 강습과 연습을 통해 전통예술을 익히는 과정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강사회원은 수강생이 마구잡이로 움직이기보다는 자신의 시연을 보고 난 뒤 해당 동작을 따라하라고 말한다. 이는 강습 내내 되풀이되는 언사이며 거울은 강사의 모습과 수강생의 모습을 비교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탈춤 초급강습에서 강사는 경남오광대 기본무를 구성하는 동작을 단위별로 끊 어 시연하며 몸의 움직임을 가르쳐준다. 매회 강습은 이전시간까지 익힌 동작을 복습한 뒤 다음의 순서를 익히고 처음부터 당일 배운 진도까지 연달아 추는 것으 로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장구 초급강습에서는 전북마을굿의 흐름 전반을 익히는 데 중점을 둔다. 그리고 곡의 진행에 따라 변주되는 가락을 익숙하게 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여 악기를 친다.
34) 풍물굿은 악기만 연주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악기를 메고 서서 연주하는 치배들의 움직임에는 발짓의 놀림과 진의 구성 등 몸을 사용하는 춤의 요소가 존재 한다. 이용식(2006)은 한국의 전통예술이 악가무(樂歌舞)를 함께 행하는 종합예술 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풍물굿[저자는 농악으로 명명]을 무용과 음악이 분리되지 않 는 하나의 사례로서 주목하며 무용동작과 음악가락의 관계를 분석했다. 풍물굿뿐만 아니라 탈춤[가면극], 북놀이 등 본 동호회에서 다루는 전통예술은 음악, 무용, 연 극 등이 한데 얽혀있는 복합예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35) 몸의 기억을 설명하기 위해 강사회원 연유정이 제시하였던 사례는 치매환자의 만 두 빚기였다. 그는 자신이 봉사하는 복지시설에 머무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음에 도 불구하고 오래 전 몸으로 익힌 기술 덕에 그 누구보다도 만두를 잘 빚는다며, 탈춤 역시 반복학습을 통해 몸이 저절로 기억하여 추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는 제과기능공이 제과기술을 전수하면서 인지적인 층위로 학습하기보다 팔을 사 용하여 직접 만들어봄으로써 기술을 익히는 육체적 지식(physical knowledge)을 강 조하는 것(Condo 1990: 238)과 같다.
개별 가락과 동작, 그 순서를 반복하는 것은 전체작품의 연결을 체화하여 그 순 서를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몸이 저절로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반복학 습을 통해 형성된 몸의 기억은 행위에 대한 지식을 의식이 아닌 근육 속에 박히 도록(Dewey 1922: 177, Lindsay 1996 재인용) 만들어 습관화된 지식을 통해 춤 사위와 곡조에 대해 감각적으로 반응하게 해준다. 순서를 외우는 데 급급한 경우 연행 중간 중간 다음의 과정을 머릿속에서 떠올려야하기 때문에 반응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몸을 통한 학습은 시시각각 변화를 가할 수 있게 해준다. 음 악과 춤은 각각의 음계와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진다. 다만 강의진행의 편의상 일정 부분을 끊어서 가르치고 있을 뿐이다. 궁극적 으로 강습과 연습의 목적은 자연스러운 동작과 소리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는 풍월신명판 회원이 전통예술에 필요한 기술을 기록이 아닌 실제의 차원에서 전승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몸의 기억을 위해 초급강습에서 강조하는 반복은 동호회의 회원으로 안착한 이 후 실력 향상을 위해 이루어지는 연습과 기획강습에서도 중요하다. 반복학습은 풍 월신명판 회원이 동호회 활동을 이어나가는 데 있어 등정해야 하는 산이다. 단순 한 관심에서 시작된 초급강습이 중급강습의 수강으로 이어지고 정기모임을 통한 일상적인 동호회 활동으로 정착하는 것은 진지한 여가로서의 발전단계(Stebbins 1992: 74; 스테빈스 2012[2007]: 54)에 도달한 것과도 같다. 이때 회원 개인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진지한 여가의 행위자 중 취미활동가로 볼 수 있다. 시기에 따라 아직까지는 본 동호회와 대비되는 전문가단체인 보존회에서 전수교육을 받 지 못했을 수 있고, 동호회 활동의 대부분은 동료회원과 함께 하는 것이 주를 이 루기 때문이다.
발전단계에 위치한 회원은 자신이 보유한 기술이 기초수준을 넘어섰다고 여기 는 순간 각자의 판단에 따라 더 이상 스스로를 학습자로 규정하지 않고 성취의 단계로 나아간다. 물론 성취 이후 유지의 단계에서도 부단한 연습은 당연하며 더 나은 실력을 위해 새로운 학습이라는 노력을 더한다(Stebbins 1992: 82-90). 이 때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더라도 관련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여 전히 그에 따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학습의 과정은 새로운 것을 익히는 어려 움, 같은 것을 무수히 반복하는 지루함이라는 고통을 수반한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는, 즉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동호회를 그만두고 전통예술을 직접 실천하는 진지한 여가를 중단하게 된다.
[사례 III-7] 기술의 습득을 통한 성취욕 달성
“친구들이 내가 이렇게 [활동]하는 거 보면 나도 하고 싶다, 스트레스 풀리겠다 [그러는데] 스트레스 풀리기 보다는 잘 안 되면 더 쌓이잖아 [… 그래도] 어려 운 거를 내가 하게 되면 거기서 얻는 게 더 크잖아. 옛날에 못 했었는데 갑자기 하다보니까 어느 날 이게 됐어. 근데 남들은 못해. 그럼 좋잖아요.”
- 홍수인(여, 40대) 면담, 2015년 2월 11일
풍월신명판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회원에게 전통예술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데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실하지 못한 표현이다. [사례 III-7]
에서 홍수인은 흔히 여가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 리 되려 연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구태여 느끼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연습을 하는 것은 더 나아진 실력을 갖기 위해서다. 연습을 통해 새롭게 익히게 된 기술 과 표현은 과거의 경력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자,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즉 연습에 따른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스트레스는
“내가 굶어 죽냐 마냐 이게 나쁜 스트레스”인 것과 달리 “즐거운 스트레스”이다.
그동안 소리를 내지 못했던 장구의 ‘기닥’을 칠 수 있게 되고, 전반적으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어색하던 몸짓이 힘을 빼고 한결 자연스러운 춤사위로 바뀐 것 은 자신의 노력이 빛을 발해 실력이 나아졌다는 징표이다. 어제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발전했다는 뿌듯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부단히 연습하는 가운데 자신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그 능력을 표현하는 자아실현의 보상을 맛보게 된다. 이는 여가활동으 로 필요한 기술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단련시키며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Moore 2013: 273-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