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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동호회를 통한 전통예술 향유양상

2) 전통예술에 대한 사전경험

여가의 대상으로 무엇을 선택하는가는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관련된다. 전통예 술을 비롯한 각종 문화적 취향이 성립되는 데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 중

풍월신명판 회원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것은 동호회 가입 이전 전 통예술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의 형태는 크게 유년기를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보고 들은 것과 특정한 사 회적 배경에 따라 접하게 된 것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먼저 자연스러운 경험은 전통예술이 연행되었던 본연의 맥락에서 접한 것이다. 이는 고향 및 유년기의 거 주지가 농촌사회에 해당하여 농번기에 풍물을 연주하는 것과 지신밟기의 전통이 남아있던 경우다. 매해 풍물굿을 연주하며 마을에서 시행되는 지신밟기를 보고 자 라는 것은 지신밟기를 위해 연주하는 풍물굿에 익숙해지고 은연중에 그 소리와 가락을 학습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지신밟기와 기타 여흥을 위한 풍물굿 연주를 쉽게 보고 자랐던 장년층 이상의 회원은 전통예술을 여가대상으로 삼은 이유를 두고 쉽게 “우리가 덩더쿵 민족이잖아”라고 대답한다.

물론 연령대가 비슷하며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한 회원이더라도 풍물굿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지신밟기는 지역에 따라 여전히 매년 반복 되는 의례이자 축제로서 기능하는 한편, 도시화의 진행에 따라 그것을 치를만한 장소와 사람들을 잃어 연행될 수 없기도 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미신타파 기조는 지신밟기에도 여파를 미쳤고22) 마을에는 풍물을 연주하는 사람이 천대받 는 분위기도 팽배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그 광경을 목격하였던 곽일주는 한 때 풍물소리가 너무도 듣기 싫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풍월신명판 활동을 시작한 10년 전만 하더라도 풍물굿을 괄시하는 분위기가 남은 탓에 주변 지인으로부터

“뭐 그런 걸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풍물굿을 보고 듣 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의 몸 어딘가에 풍물가락과 그에 맞는 움직임이 배어 있어

“결국 다시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풍물소리를 접했던 경험은 나이가 들면서 어느 순간 다시금 이를 찾게 되고 그 흥을 느끼고 향수를 달래고자 직접 전통예술을 행하게 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사례 III-3] 문화적 취향을 형성하는 데 미치는 가족의 영향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어느 분 생신잔칫날 갔는데 그냥 장구를 누군가가 아 버지한테 줬어. 근데 무지하게 잘 추시는 거야. 그냥 추시는데 너무 잘 추시는 거야.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 치냐고 나도 보고 놀랐어. […] 그래서 아버지가 그렇게 해서 그렇다는 건 아닌데. 어릴 때

22) 조운찬, “1973년 2월 ‘마을풍속’ 쫓아낸 새마을운동,” 경향신문 2014년 2월 13일 20:58:46 입력.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2 132058465&code=990100, 검색일자 2015년 5월 11일)

연행하는 걸 많이 봤고, 지신밟기도 많이 봤고, 정월대보름 때 동네가 시끌시끌 하게 했던 것도, 대학 때도 뭐 그런 것들을 우리 때는 많이 볼 기회가 많았어요.

그리고 그런 공연하는 것도 많이 보면 되게 신났다는 생각이 들어.”

- 성현주(여, 40대) 면담, 2015년 1월 29일

성장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통예술을 접하는 데는 곽일주가 그러했듯 가족 의 영향이 존재한다. [사례 III-3]에서 성현주는 아버지의 장구 연주에 대한 선명 한 기억을 떠올리며 어려서 아버지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풍물을 두고 노는 모습 을 자주 보았다고 말한다. 회원들이 전통예술을 여가대상으로 선택한 배경 중에는 부모님이나 형제자매가 풍물과 지역의 전통 춤을 다루고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등 의 가정적 환경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전통예술을 문화적 취향으로 갖게 된 데 가정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인정하는 데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성현주 는 아버지의 영향을 절대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그 덕에 쉬이 전통예술에 노출 될 수 있는 환경을 가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음으로 특정 환경에 따라 전통예술을 경험한 경우는 역대 풍월신명판의 구성 원처럼 대학교 재학시절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을 한 회원들이다. 풍월신명판 회원 중 대학시절 풍물굿 및 탈춤 동아리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는 79~94학번에 해당 한다. 1970년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조류로서 탈춤을 중심으로 시작된 민속문화 에 대한 관심은 이후 학생운동의 확산과 함께 풍물굿, 민요 등 궁중이 아닌 민중 의 삶에서 연행되었던 전통예술 전반으로 확대되었다.23) 독재에 대한 저항과 학 생운동의 기운이 만연하던 당시 풍물굿과 탈춤은 경찰의 감시를 따돌리고 운동에 함께 할 동학을 모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대학생이 직접 풍 물굿과 탈춤을 행하는 것은 물론 캠퍼스 내에서 다른 학생들의 연행을 보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대학교 재학 시절 각 회원이 주목했던 전통예술의 모습은 동아리를 통한 지향 점이나 활동시기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전통이라는 요소에 주목하였던 경우 과거 그대로의 연행방식이라 간주되는 모습을 따라하고 연습하였다. 반면 학생운 동이 격화되고 그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던 때는 전통예술을 운동의 도구로 활용 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전통의 양식에 시의적인 메시지를 담은 창작공 연을 했다. 이는 서로 다른 층위의 경험이긴 하지만 재학 당시 열심히 하지 못했

23) 이 글에서 전통예술로 지칭하는 풍물굿과 탈춤은 당시 대학생들에게 엘리트와 대 비되는 민중이며 동시에 사회의 변화와 민주화를 이룰 주체인 민중의 문화로서 민 속문화라고 일컬어졌다.

던 아쉬움이나 그 당시 느꼈던 즐거움은 지인의 소개, 포스터 발견 등 하나의 계 기를 만나 풍월신명판과 같은 전통예술동호회를 찾아오게 만들었다.

한편, 앞서와 달리 의외의 장소에서 전통예술을 경험하기도 한다. 채진서와 홍 수인은 각각 절과 유원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야외공연의 울림에 이끌렸다고 회고 한다. 그 덕분에 전통예술에 강렬한 인상을 받고 전통예술을 직접 하고 싶다는 마 음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통예술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은 공식적인 교육 의 산물은 아니지만 사회문화적 환경24) 속에서 윗세대를 통하거나 또래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전통예술을 학습한 효과를 발휘한다(미드 2008[1928]). 전통예술에 대한 경험은 당장의 동호회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추후 여가의 대상을 찾 을 때 쉽게 떠올리며 참작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그 결과 풍월신명판의 초급강 습을 수강하도록 이끌었던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은 동호회활동을 통해 다시금 혹 은 새롭게 직접 전통예술을 행하는 실천으로 연결된다.

이때 2015년 상반기 풍월신명판이 고민하는 문제는 동호회의 고령화이다. 현재 풍월신명판의 회원 연령층은 20~70대로 다양하지만, 활동의 주축이 되는 인구는 40~50대이다.25) 동호회의 활동 초기 20~30대의 젊은 층이 주축이 되었던 인적 구성과 달리 오늘날 40대의 현역회원은 “10년 뒤에도 막내일” 것을 걱정한다. 풍 월신명판의 평균연령이 높은 원인에 대한 자평은 지금의 20~30대가 취직과 생계 의 문제로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특히 “IMF를 기점으로 젊은이들이 안 나왔”고

“97년 이때부터 기존 사람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신입이 들어와도 30대 이상[이 고] 20대는 거의 안 나오”는 경향을 보였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20~30대 중심의 동호회가 있으며 그 활동은 실제 대 면관계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전통예술을 중심으로 한 모임은 찾기 어렵다.26)

현 시점에서 풍월신명판과 같은 전통예술동호회에 젊은 회원이 적은 배경으로 는 지금의 풍월신명판 회원과 달리 전통예술을 경험 내지는 학습할 수 있는 환경

24) 여가활동의 대상으로 전통예술을 선택한 배경에 사회문화적 환경이 작용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재미있는 것은 일부 50대 이상의 남성회원에게 등장하는 서사이다.

이들은 모두 풍물굿패 소속회원으로 본래 여가활동으로 풍물굿이 아닌 댄스스포츠 를 고려하였다. 그러나 남녀가 한 쌍을 이루어 신체적 접촉을 해야 하는 특징과 사 교댄스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거나 뜬소문이 날 것을 염 려하여 “건전한” 풍물굿을 여가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25) 이에 운영위원진은 젊은 층을 회원으로 포섭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엄마와 함 께 하는 초등학생 대상 강습을 고려한다.

26) 국내 포털사이트 네이버(NAVER)의 카페 중 ‘20 30대 동호회’를 키워드로 검색하 여 도출된 결과는 200건이다. 카페랭킹 기준, 상위 100개에 해당하는 동호회의 활 동내용 종합모임, 여행, 스포츠댄스, 음악, 사진, 각종 스포츠로 나타난다.

이 충분하지 않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신밟기의 전통과 풍물굿과 탈춤에 대한 대학가의 호의적인 분위기는 사라진지 오래이며, 관련 동아리는 활동회원이 점점 줄거나 동아리 자체가 없어지는 추세이다.27) 더욱이 전통예술은 공교육에서도 제 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다.28) 오늘날 전통예술은 주로 노년층이 즐기는 문화로 간 주되며, 잇따르는 풍월신명판의 초급강습에는 “어르신”들의 문의가 이어진다. 40 대 초반인 홍수인은 본 동호회의 활동을 두고 주변 지인에게 “사물[놀이]이나 이 런 것들이 약간 어른들의 그런 거다라는 인식들이 많아서 그런지 젊은데 벌써 배 워 이런 얘기도 들은 적 있”다고 말한다.

노화는 진지한 여가의 단계 가운데 쇠락의 방향으로 이동하는 데 중요하게 작 동하는 요소다(Stebbins 1992: 90; 스테빈스 2012[2007]: 55). 예술의 경우 나 이가 들어 표현하는 느낌이 깊어지고 더욱 숙성될 수 있지만 신체적인 조건은 활 동의 지속에 분명 영향을 미친다. 체력적인 뒷받침이 되지 못할 경우 연습은 버거 워지고 공연의 질 역시 저하될 수 있다. 또한 활동을 이어가지 못하는 회원이 증 가하면 결국 동호회 또한 사라지게 된다. 이는 현재 풍월신명판에서 활동하고 있 는 회원들이 전통예술을 능동적으로 행할 수 있는 장의 상실을 뜻한다. 다행히 2015년 5월과 7월 장구와 탈춤 초급강습을 앞두고 연습실 인근 거리 곳곳에 포 스터를 붙이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공격적으로 홍보함으로써 평소보다 많은 수강생이 모집되었다. 그 결과 현재 새로운 20~30대의 젊은 인물이 회원으 로 안착하고 있는 중이지만 풍월신명판의 고령화는 여전히 고민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