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라인 공론장의 특성
말로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행위는 대인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루어 지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의 말과 설득은 소통이 이루어지는 ‘매체 이용’
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떤 매체, 어떤 플랫폼을 이용하는가에 따라 효과적인 설득의 방법도 달라진다. 따라서 온라인 매체를 자주 사용하는 현대사회의 소통의 공간에서 설득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론장에 관한 논의를 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하버마스 부 르주아 공론장 개념이다. 하버마스는 절차적 정당성을 갖춘 토론공간에 서 상호대화와 이성적 토론을 통한 시민 민주주의 가능성을 제시하며 소 통 공론장의 구현을 통해 숙의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민주주의의 이념형 을 제시하였다(Habermas, 1991).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은 서구 시민계 급 사이에 독서공중이 출현하고, 근대의 커뮤니케이션 합리성에 바탕을 둔 토론의 공간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동시에 공 론장을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며 관념적으로 설정하고, 현실에서 실현하 기 어려운 방식이라는 점, 여전히 남성 부르주아 중심의 공간이라는 점 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Fraser, 1990).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이후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가상 공간의 확장에 따른 ‘뉴미디어 공론장’에 주목하였으며, 온라인 공간이 추구하는 이상적 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기대하기도 했다. 온라인 공론장을 긍 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는 공간, 민주적
인 토론이 가능한 공간, 젠더, 계급을 초월하여 마이너리티의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어 대안적 공간으로서 온라인 공간을 긍정 적으로 평가하였다(Bell, 1981). 쌍방향 미디어가 일깨워줄 수 있는 시민 적 잠재력과 미디어를 통한 정치참여 활성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가능성 을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도 한다(Dahlgren, 2009).
‘온라인 공론장’의 발달에 주목한 많은 미디어 연구자들은 기존의 매 스 미디어가 사회에서 끼쳤던 영향력이 어느정도 감소하고, 온라인 공간, 온라인 매체가 공중에서의 담론소통의 주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 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주재원·나보라, 2009; 최항섭, 2008; 홍원 식, 2014). 이메일과 온라인 메신저가 전화나 편지의 영역을 일부 대신해 주고, 종이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 대신,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뉴스 와 최신 정보를 접하는 것이다. 또한 오프라인 토론, 전단지, 대자보, 신 문 및 잡지 지면 등을 통해 소통하던 것이 인터넷 게시판 토론으로 나타 나기도 하였고, 블로그와 트위터같은 개인 미디어가 아젠다 세팅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온라인 공론장의 활성화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치 커뮤니 케이션 영역의 중요한 변화로 여겨졌으며, 많은 연구자들이 온라인 공론 장에서의 소통의 특성에 주목하게 되었다(이준웅, 2009).
또한 온라인 공간의 상호작용성은 뉴스 기사에 댓글 달기, 쟁점이 되는 이슈에 대한 토론방에서의 대화와 논쟁, 나아가 직접적인 정보 생 산과 교류에 참여하는 등 미디어 이용자로 하여금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소통행위를 낳는다. 온라인 공간은 메시지의 유통 방식에 혁신적인 변화 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할 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메 시지 교류가 모두 기록되고 이를 계량적으로 측정하여 연구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도 의의를 가진다. 과거 공론장에서 여 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조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온라 인 매체에서는 사람들의 의사 표현이 기록에 남고, 이 공간을 관찰함으 로써 여론의 분위기는 물론 공론장에 존재하는 의견지도자와 추종자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온라인 공론장 및 온라인 저널리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단
순히 사람들이 이용하는 매체가 변화했다는 점이 아니라, 메시지의 형식, 메시지의 주제와 내용, 설득의 스타일도 함께 변화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저널리즘이 등장하던 시기에는 신문에 인쇄될 뉴스를 그대 로 인터넷 공간에 업로드한 것이 ‘인터넷 뉴스’의 모습이었지만, 매체이 용이 숙성될수록 인터넷 매체에 맞는 기사를 발굴하고 뉴스 서비스를 제 공하며, 궁극적으로 신문과 인터넷 언론사는 해당 매체에 적합한 방식으 로 뉴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Pavlik, 2001). 저널리즘이 같 은 사건을 전달할지라도 대중의 주목을 끌고 메시지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달하는 매체에 맞는 화법과 형식을 갖춰야 하며, 나이가 매 체의 특성에 따라 가치있게 여겨지는 이슈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적인 소통에 있어 인터넷 미디어는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도 가지 고 있지만, 인터넷 기술 특유의 개방성 덕분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 간으로서 공적 참여의 확대 측면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 다. 온라인 공간의 일반적 속성은 물리적 시공간을 초월하며, 실시간 반 응이 가능하고, 타인과 즉각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미디어를 통해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 누구나 표현과 참여가 가능한 공간이 생겨남에 따라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고, 개인 저널리즘의 가능성을 기대하기도 하 였다(최윤정, 2009).
뉴미디어의 확산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직업 저널리스트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전파할 수 있게 만들었다.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부르주아 공론장에서 존재했던 발언권의 독점 (혹 은 발언권의 제한)이 깨지기 시작했고, 다대 다(N:N)의 자유로운 의사소 통에 기반을 둔 온라인 공간에서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담론이 생겨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주류 신문·방송에 출연하지 않으면서도 텔레비 전 시청자만큼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지식인 유형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바로 인터넷 논객이다.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은 온라인 공간에서 담론을 주도하는 ‘대중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노명우, 2012b). 이들 은 전통적인 범주에 따르면 ‘지식인’의 지위를 차지하는 직업종사자는 아 니지만, 네트워크화된 사회 속에서는 이미 지식인이 수행하는 역할을 충
분히 하고 있으며 대중들도 이들의 레토릭에 관심을 기울인다.
2000년대 온라인 게시판에 등장한 논객은 2010년대에 소셜미디어의 인플루언서로 등장하여 활약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정치적 토론 네트워크는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이 공간에 서 적극적으로, 하지만 짧은 언어로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고 설득력있는 소통에 참여할 경우, 그의 메시지는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정보확산과 여론 형성은 네트워크를 기 반으로 한 의견지도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이상록·이지연·성경, 2012), 이런 의미에서 온라인 공간의 의견지도자는 정보의 흐름을 중개 하는 고전적 의미의 의견지도자 역할 뿐 아니라 공중의 의제를 선도해 영향력을 창출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
지난 20여 년 간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기반으로 하 여 인터넷 게시판, 댓글 공간, 소셜미디어 등의 공간을 활용하는 ‘비판적 담론공중’이 성장하였다(이준웅, 2005; 161). 이들은 인터넷에서의 정치 표현을 통하여 정치적 효능감을 경험하고 표현공간 확대를 십분 활용하 며 기존의 언론을 포함한 기존의 지배적 정치 세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정체성을 획득했다. 즉 이들은 저항, 대결, 비판, 회피를 통해서 정치적 공격 및 방어와 같은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일정한 성과를 이 룬다. 또한 비판적 담론공중이 ‘담론적’인 이유는 이들이 담론적 실천을 수행하는 공중이며 담론을 통해서 스스로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요컨대 인터넷에서 정치적인 읽기와 쓰기를 통해 스스로 교육하고 성장 한 집단으로서 신문도 읽고 방송뉴스도 보지만, 인터넷 활동을 통해 자 신의 정치적 입장을 확인하고 정교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배양한 사람들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의 읽기, 글쓰기, 인터넷 토론방의 대화를 통해서 급속하게 정보를 생산하는 능력을 축적하게 되었으며, 결 과적으로 정치적 담론적 실천의 능력과 효능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21세기 한국사회에 인터넷을 매개로 토론하는 공중의 출현은 ‘읽고 쓰는 공중’이 등장하고, 이를 통해 비판적 토론을 하는 시민문화가 등장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인터넷 토론의 참여자들은 토론공간에서 ‘읽
기’와 ‘쓰기’ 행위를 통해 정부와 언론 등 권력기관을 자유롭게 비판하고, 토론을 통해 사회참여의 효능감을 스스로 고양시킨다(김은미 & 이준웅, 2006). 비판적 공중이 광범위하게 출현하자 사람들은 정통 매체를 대하 는 태도마저 변화하기에 이르렀다. 매체의 메시지에 순응적이었던 태도 가 아닌,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정성을 요구하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론 에 관철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이준웅, 2005). ‘공적 관여의 감각’을 지 닌 ‘공적 자아’의 출현과 이들의 연결은 비판적 담론공중의 형성에 주요 한 역할을 한다(이준웅, 2009). 이는 인터넷 공간에서 활성화된 개인의 공적 자아가 서로 연결되어 상호 작용함으로써 ‘가시화된 연결성’으로서 의 담론공중이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에는 한국사회에서 온라인 공론장이 활성화됨 에 따라 인터넷 공간에서 정치사회적 의견을 교환하고 의사소통적 참여 가 나타나는 경향이 강해진 반면, 과거 전통 언론사가 가졌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대중매체가 유일한 정보제공자로서 가졌던 권위도 탈중심화되었고, 대중매체가 수행했던 공론장 역할도 상당부분 인터넷으로 옮겨가게 된다. 사회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매체 환경이 변화하고 공론장의 모습이 변화했다는 것은 사회구성원에게 통용 되는 설득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의 경쟁을 다룬 연구들에 따르면, 신문과 같은 전통 미디어들은 스스로 를 더 엘리트적이며, 사회를 선도하고, 정론을 담아내는 정통성있는 미디 어라고 스스로를 재현함으로써 미디어 장 내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모습을 보이지만(주재원·나보라, 2009),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매체 환경은 인터넷에 기반한 새로운 저널리스트와 새로운 유력자를 등장하게 만들었다.
(2) 매개된 가시성과 영향력있는 인물의 재현
20세기 중반 커뮤니케이션 연구자들이 의견지도자의 영향력에 주목 한 것은 그들이 커뮤니티 내에서 ‘대인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미디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