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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개발론의 대두와 국민복지연금법의 제정

장기전망에서 내자동원의 방안으로 제시한 국민복지연금은 1973년 박 정희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등장한 바 있었다. 박정희는 10월 유신의 기 본 목표가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고 이를 위해 1974년부터 ‘사회 보장연금제도’ 또는 ‘국민복지연금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는 등 ‘생활보장제도’를 확대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48) 당시에 이러한 정책들은 사회개발49)이라는 범주에 포괄되었는데 박정희 의 연두사를 계기로 하여 1973년 보건사회부는 제4차 경제개발계획 준 비의 일환으로 《사회개발 제3집 (구상)》을 작성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74년에 《사회개발 – 부문별 사업전망》을 발표하였다.

한국에서 사회개발에 대한 기본 구상은 ‘제2경제’가 한창 제창되던 시 기에 작성이 완료되었다. 1967년 보건사회부는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 획이 시작되는 1972년부터 사회개발계획을 실시한다는 방침 아래 사회 개발10개년계획을 세우기로 하고50) 보건사회부 내에서 이에 관한 기초 연구를 수행하였으나51) 제3차 5개년계획이 발표되었을 때까지 사회개

48)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 5 제8대편·상》, 40쪽.

49) 사회개발(Social Development)이라는 명칭은 유엔에서 제시되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유엔은 기술원조를 중점으로 하는 ‘저개발국’ 원조 정책에서 벗어나 사 회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1957년 7월 30일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사 회계획 및 경제계획, 사회정책 및 경제 정책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사회개발 과 경제개발의 궁극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에 있다고 결정하였다. 같은 해 11월 14일 유엔총회에서 사회개발과 경제개발의 밀접한 상호의존성이 승인되었다. 유 엔이 제시한 사회개발에는 “인구의 지역 간 이동, 직업별 이동, 취업구조의 변화, 가족 구성의 변화 및 기타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학교교육·

직업교육 등 인간 능력의 개발’, ‘보건·오락·도시 미관 등 인력의 유지’, ‘저임금·

저소득의 해소와 보완’, ‘완전고용과 소득의 보장’ 등이 포괄되었다. 최천송, 1977 《한국사회보장론》 산경문화사, 61~ 65쪽.

50) 〈생활안정·사회복지에 980여억원 투입〉 《매일경제》 1967.12.15. 3면.

51) 사회보장심의위위원회가 이를 담당하였다. 1968년 위원회는 사회개발 기본구

발은 공식화되지 않았다.52) 그러던 것이 중화학공업화 정책 선언과 장 기전망 발표 직후 정부 정책으로 공표되었다. 사회개발은 중화학공업화 를 추진하면서 투자재원을 확대하면서 내자동원의 필요성이 더욱 제기되 던 시점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사회개발을 추진해야할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였을까.

이를 담당한 보건사회부는 첫째로 사회개발을 “국민이 지니고 있는 잠재 적 능력을 계발하여 이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회적 제조건을 정비 향상시키고” 국민생활의 안정을 보장하여 “생활의욕과 생 산의욕을 북돋우워 경제발전을 적극적으로 추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였다.53)

다음으로 사회개발은 “급속한 경제개발에 기인하는 사회적 부조리와 사회적 제병리 현상을 방제하여 경제발전을 보완하고 이를 지원하며 경 제적 생산성을” 극대화시키는 방책이었다. 따라서 사회개발은 “경제·사회 발전의 원동력이고 추진체인 인간의 정신적 측면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바람직한 가치관의 정립, 인력의 합리적인 개발과 살기 좋은 국민생활의 개선, 국민생활수준의 향상 등을 주요 정책의 지주로 삼고 이를 적극 발 전시키도록 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54)

마지막으로 사회개발은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사회적 변동에 대처 하고” “국가 총자원의 효율적인 개발과 국민생활의 질적 충실에 의하여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여 “사회의 안정과 복지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노력”이며, “국가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서 국가목표를 조기에 달성시키는 동시에 경제사회의 지속적인 고도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상 초안을 작성하고 1968년 9월 뉴욕에서 개최된 ‘국제사회복지관계 장관회의’에 참석하여 이 초안을 회람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사회보장심위원회는 1968 년과 1969년 각각 두 편의 중장기 사회개발계획을 작성하였다. 이 두 편의 계획 서는 1971년부터 시행될 제3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반영되기 위해 작성되었으 나 포함되지 않았다.

52) 보건사회부 사회보장심의위원회, 1968 《사회개발 제1집: 기본구상》, 17쪽.

53) 보건사회부 사회보장심의위원회, 1969 《사회개발장기전망》, 5~6쪽.

54) 위의 자료, 6~7쪽.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립경제체제의 기반이 구축되고 생산성이 향상되며 나아가 소득의 편재와 그 격차를 완화시키고 사회시설의 편중 을 시정하며 사회보장제도의 단계적인 실시와 확장으로 생활의 평준화를 기하며,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동으로 사회연대의식을 제고시키고 사회정의를 실현하여 보다 맑고 밝은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되었다.55)

사회개발은 격차의 해소나 사회보장제도의 단계적 도입 등을 포괄하였 으나, 그 중점은 생산성의 증대에 있었다. 한편으로는 개발에 필요한 능 력을 개개인들이 갖추고 이를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하여 생산성을 증대 하여 개발에 기여하게 하며, 다른 한편으로 개발로 인하여 발생하는 각 종 부작용을 방지하거나 고쳐서 경제적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 었다. 사회개발은 앞 장에서 살펴본 제2경제론의 확장판의 성격을 가지 고 있었다.56)

앞서 서술했듯이 장기전망에서 내자동원의 방안으로 제시된 국민복지 연금의 시행은 제3차 5개년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국민복지연금을 도입한다는 것은 사회보험을 근간으로 한 사회보장제도를 본격적으로 시 행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막대한 규모 의 기금이 필요했고 따라서 그것을 마련할 방법에 대해서 기금을 부담할 대상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했다. 그러한 이유에서 사회 보장제도의 본격적 도입은 3차 5개년계획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또한 사 회개발도 보건사회부 내부에서만 논의되었을 뿐 공표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연금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전개되기도 전에 정부는 내자 동원의 수단으로 국민복지연금제도의 도입을 추진했다. “피용자, 사용자 및 정부 3자가 기여금을 부담하여 기금을 마련하고 이를 국민투자기금 을 통하여 생산적으로 운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복지를 향상시킴과 동시

55) 앞의 자료, 7~8쪽.

56) 1968년 보건사회부에서 사회개발계획을 논의하던 시기에 박희범은 사회개발을 제2경제의 구체적인 수단으로 규정한 바 있다. 〈제2경제 그 개념과 실천방안〉

《경향신문》1968.1.17. 3면.

에” 투자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것이었다.57) 즉, 내자동원을 위해 사회보 장제도를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정부는 국민복지연금의 도입 취지로 내자동원만을 내세우지는 않 았다. 보건사회부는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사회의 구조적 변혁에 따라

“노동자의 질병, 상해, 노령, 사망, 실업 등의 사회적 사고로 인한 빈곤 위험”이 직접적이고도 심각하게 대두되었으나, “개인의 검약을 통한 저축 이나, 친척 또는 친지로부터의 차용, 그리고 대부분이나마 도움이 되던 대가족제도는 도시화, 사회회적 조직 및 환경의 변천 그리고 인구이동의 증가로 그 기능을 잃게 되어 이들을 사회문제로 전가시키게” 되었고, 따 라서 “가장 강력한 소득보장방안으로서의 사회보험”이 “국가개발계획의 일환으로서 계획·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58)

또한 보건사회부는 연금제도를 근간으로 한 사회보장체제가 국민경제 에 미치는 효과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첫째는 생산성과 경제성장에 대한 영향으로, 사회보장으로 제공하는 예방·치료 의료혜택과 이에 따른

“보건 향상은 노동자의 작업 능력에 직접적 영향을 주며, 정신적, 신체 적인 노력 증진을 통해 효율적인 인력의 투입에 기여하며 작업시간의 손 실과 산업사고”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보장에 대한 투자는 생산성 향상의 투자라는 것이다. 또한 보사부는 사회보장사업이 경제의 균형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였다. 즉 호경기 때 징수되는 “사회보장기여 금이 급여 지급에 요구되는 액수를 초과”할 것이며 반면에 불경기 때

“급여지급액이 보험료징수액을 초과하게 되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 요증대를 통해 생산을 자극하고 경제회복을 가속화시킨다”는 것이었 다.59)

둘째는 소득배분에 대한 영향이었다. 사회보장사업은 각 인구 집단에 대한 소득의 재분배나 이전을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개인 소득의 분배가

57) 《우리경제의 장기전망 1972~1981》, 92쪽.

58) 보건사회부 사회보장심의위원회, 1973 《사회개발 (제3집 : 구상)》, 201쪽.

59) 위의 자료, 204쪽.

매우 편중되면 그 소득이 생산 투자에 동원되기보다는 사치품 소비나 수 입품의 증대를 초래하여 경제성장에 저해가 된다는 것이었다.60)

마지막으로, 저축의 동원과 투자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사회보장사업 이 자본 축적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고 국가 자본으로 동원할 국내 저축이 부족한 나라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띤다는 것이었다. 여 러 개발 도상국가들이 사회보장으로 막대한 저축을 이루었고, 이러한 저 축은 장기연금보험이나 각종 퇴직금제도에 적용된 기금 축적 원칙으로 인해 가능했다는 것이다.61) 이렇게 사회보험을 활용하여 “노령, 장해 및 사망으로 인한 생활의 불안과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노동자로 하여금 보 다 안정된 자세로 제반 사회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보장된 사회기 풍을 조성”할 수 있으며, “이 제도를 통해 축적된 연금을 생산적인 투자 에 투입함으로써” 1970년대에는 경제 성장과 고용 확대를 촉진할 수 있 으며 “1980년대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통하여 사회계층간 소득의 격차 및 국민생활수준의 불균형을 예방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62)

사회보험은 임금생활자의 소득을 바탕으로 운영될 것이었다. 그들의 소득을 근간으로 모인 기금은 국가 자본으로 동원되어 국가 건설을 위해 활용되고 그 과정은 다시 개인의 소득 증대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그 리고 이는 후술할 국민투자기금과 결합되어 중화학공업화에 투자될 것이 기도 하였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혹여 생길 지도 모를 위험들, 예컨대 노동자 개인에게 닥친 사고나 재해, 그리고 경제적인 불황 등에 대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63)

60) 앞의 자료, 204~205쪽.

61) 앞의 자료, 206쪽.

62) 한국개발연구원, 1973 《사회보장연금제도를 위한 방안》, 2쪽; 1972년 11월 30일 김만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은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몇몇 경제장관에게 연금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보고하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여건으로 보아 단기적으로는 국민의 조세저항이 점차 강해지며 또한 민간저 축을 재정으로 유도할 수 있는 수단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사회보장연금제도의 도 입은 국내저축의 제고뿐만 아니라 국가재정을 위한 투자재원의 조달에 크게 기여 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국민연금관리공단, 1988 《국민연금10년사》, 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