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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목표액 인상과 저축계몽의 전개

보완계획을 발표한 다음해 정부는 저축 동원 목표를 상향 조정하기로 결정하였다. 1965년 3월 19일에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재무부는 1965년도 저축목표액을 50억 원에서 70억 원으로 1966년도 저축목표 액을 54억 원에서 83억 원으로 증액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수정안을 제 시하였고75) 이 안은 수정 없이 결의되어 국무회의에 부의되었다.76)

<표 1-9>에 나타나듯이, 저축조합 저축과 저축기관 저축 목표액 모두 상향 조정하였는데 특히 저축조합 저축의 경우 직장별 저축과 학생별 저 축의 목표액을 대폭 인상시킨 것에 반해 지역별 저축의 경우 소폭 증액 한 것이 인상적이다. 지역별 저축조합의 경우 주로 공무원이나 국영기업 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직장별 저축조합과 학교를 단위로 한 학생별 저 축조합에 비해 그 결성 과정에서 자발성이 더욱 필요했기 때문에 직장과 학교 저축을 더욱 인상했다는 사실에서 자발성을 기초로 한 지역별 저축 조합의 결성과 이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도가 낮았다는 것을 추정해 볼

75) 〈저축목표액 수정과 1965년 저축증진계획(안) (1965. 3)〉 《경제장관회의 안건》 (BA0138599), 1~3쪽; 1965년과 1966년의 민간저축 목표액(보완계 획)은 각각 32%(221.7억 원)와 33%(253.1억 원)이었다.

76) 〈저축목표액 수정과 1965년 저축증진계획(안) (1965. 3.11)〉 《국무회의안 건철》 (BA0084430), 1~3쪽.

수 있을 것이다.

<표 1-9> 1962~1965년 국민저축목표액

(단위: 백만 원)

출처: 〈저축목표액 수정과 1965년 저축증진계획(안) (1965. 3.11)〉 《국무 회의안건철》 (BA0084430), 6쪽.

비고: () 안은 당초 계획.

한편, 정부 당국은 1963년 이후 경제성장률과 저축률이 회복세였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축 목표액을 증액한 것으로 보인다. 제1차 5 개년계획의 1차 연도인 1962년의 경우 경제성장률과 저축률이 각각 3.5%, 2.9%였던데 반해 1963년의 경우 6.8%, 6.5%로 계상되었고, 1964년은 6.9%, 8.5%일 것으로 추산되었다.77) 이러한 판단에 따라

구분 저축 종별 저축목표액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1966년 합계

국민 저축 조합 저축

직장별저축 397 569 603 1,312 (625)

1,382 (665)

4,236 (2,859)

학생별저축 82 121 123 296 (123)

326 (123)

948 (572)

지역별저축 47 115 147 175 200

(240)

684 (724)

합계

(A) 526 805 873

1,783 (923)

1,908 (1,028)

5,895 (4,155)

저축 기관 저축

금융기관

저축예금 2,884 2,305 2,317

2,857 (2,547)

3,442 (2,692)

13,305 (12,245)

신탁회사

금전신탁 180 610 860

960 (860)

1,050 (900)

3,660 (3,410)

생보회사

보험료 160 200 260

700 (350)

950 (450)

2270 (1,420)

손보회사

보험료 170 170 170

400 (190)

550 (190)

1460 (890) 우편저금·

국민생명보험 250 110 120

300 (130)

400 (140)

1180 (750)

합계

(B) 3,144 3,395 3,727

5,217 (4,077)

6,392 (4,372)

21875 (18,715)

총계 A+B 3,670 4,200 4,600 7,000

(5,000)

8,300 (5,400)

27,770 (22,870)

축소 조정되었던 저축 목표액을 수정 증액했던 것이다. 또한 같은 보고 자료에는 여러 나라의 저축률이 제시되어 있었는데 이와 비교했을 때 한 국의 저축률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한국과 유사한 경제 규모의 필리핀과 타이완보다 저축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78) 이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은 없었으나 이를 근거로 정부 당국자들이 저축률을 더 끌어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저축 목표를 상향 조정함에 따라 정부는 민간 저축을 늘리기 위해 ‘범 국민저축증강운동’을 추진하였다. 1965년 4월 21일 박정희 대통령은 각 의에서 매달 25일을 저축의 날로 정하여 전국의 각 기관 직장 및 가정 마다 저축을 장려하고 6월 초순을 국민 저축 강조 주간으로 설정하여 저축 사상을 고취하는 각종 행사를 실시하며, 각급학교의 교과과정에 저 축 사상을 높이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하였다.79) 이에 정부 는 6월 21일~30일을 ‘저축증강기간’으로 설정하고 <표 1-10>에 나타난 바와 같이 “저축의식고양을 위한 제반 행사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하여 저축에 관한 PR활동을” 전개하였다.80)

이를 위해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를 비롯하여 경제기획원을 비롯한, 내 무, 재무, 문교, 체신부 장관과 금융기관 간부의 저축 독려를 위한 지방 순회가 계획되었다. 또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각 시도 소재지 단위로 저 축대회의 개최와 저축에 관한 학생 웅변대회의 개최가 추진되었다. 이와

77) 저축률의 추이 (1958~1964년)

출처: 〈저축목표액 수정과 1965년 저축증진계획(안) (1965. 3)〉 《경제장관회 의안건》 (BA0138599), 17쪽.

비고: 1964년도는 추계 치.

연도 1958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평균 경제성장률 6.1 4.6 1.8 4.8 3.5 6.8 6.9 4.9

저축률 4.1 3.1 1.4 4.8 2.9 6.5 8.5 4.5

78) 각 나라의 저축률은 1962년을 기준으로 미국 18%, 서독 28%, 일본 38%, 타이완 15%, 필리핀 13%였다. 한국의 저축률은 1964년 기준으로 8.5%이었 다. 앞의 자료.

79) 〈저축의 날 설정 등 박대통령 지시〉 《동아일보》 1965.4.21. 7면.

80) 〈저축증강기간 행사계획(안) (1965.5.25.)〉 《국무회의안건철》 (BA 0084434), 1쪽.

더불어 저축의 노래를 제정 보급하고 저축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고 기념 우표 및 기념담배도 제조하기로 하는 등 라디오, TV, 신문 등 모든 대 중매체를 동원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정부 매상 특작물 대전 및 장려금 의 예금통장 지급제를 실시하고 접객업소 종사원에게도 매월 100원 이 상의 저축을 독려하는 등 금융 저축 증대를 위한 계몽활동을 전개하였 다.81) 여기서 접객업소의 종사원에게 저축을 독려했다는 점이 눈에 띈 다. 이는 정부가 파악할 수 있는 한 오고 가는 모든 현금을 최대한 저축 으로 이끌어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표 1-10> 저축 증강 기간 주요 행사 (1965.6.21.~6.30.)

81) 위의 자료, 2쪽.

일시 실시 계획

6.21

저축증강을 위한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저축증강에 관한 재무부 장관, 문교부 장관, 채신부 장관, 한은 총 재의 TV 방송 (좌담회)

각 시도(서울 포함) 소재지 단위로 저축대회 개최 각 시도 단위 학생웅변대회 개최

모범 저축 조합 및 저축 관계 유공자 표창(저축대회 시) 저축에 관한 현상표어, 포스터, 논문, 당선자 시상 6.21

~30 각부 장관 및 저축기관 간부의 지방순회 독려 6.29 저축증강에 관한 전국학생웅변대회 개최

6.21

~30

라디오, TV 및 신문을 통한 저축 관계 P.R.

“저축의 노래” 제정 보급82) 저축 증강에 관한 영화 상영

저축에 관한 기념우표 및 기념 담배 판매

공무원, 정부 관리 기업체 직원, 저축기관 직원 및 학생, 교사 등은

“저축”이라는 리본을 패용

정부 기관, 정부 관리 기업체, 저축기관, 학교 기타 산업단체의 정 문 또는 중요 노상에 저축증강에 관한 아치 선전탑, 현수막, 입간판 설치

6.20

~30

저축에 관한 표어, 포스터 인쇄 배부83)

정부 매상 특작물 대전 및 장려금 지불의 금융기관 활용에 관한 P.R. 강화

복금부정기예금에 대한 P.R.

출처: 〈저축증강기간 행사계획(안) (1965.5.25.)〉 《국무회의안건철》 (BA 0084434), 29~33쪽.

그런데 저축증강기간에 실시한 것들은 새로운 방법은 아니었다. 앞서

82) 당시 제정 보급된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 알뜰히 살아보세 힘써 일 하고 한푼을 아껴 쓰며 늘리어 보세 허공에 뜬 행복을 잡으려 하지 말고 푼푼히 모아모아 쌓아 올리세 [2절] 모우는 즐거움은 비할 길 없네 날마다-늘어나는 살 림살이에 힘든 일 고된 일도 절로 흥겨워 소망의 가지마다 꽃이 피리라 [3절]

가난의 슬픈 굴레 왜 못벗으랴 모아서 차곡 차곡 큰 밑천되면 도우고 밀어주고 서로 붇돋워 온 겨레 잘사는 나라 이루세 [후렴] 티끌도 모이면 태산이 된다네 우리도 아껴 모아 잘 살아 보세 (작사: 朴木月, 작곡: 羅運榮) 재무부, 1968

《저축백서》, 299쪽.

83) 재무부가 만든 표어는 다음과 같다. 황소 같이 일하고 개미처럼 저축하자/ 내 일이면 늦으리 서둘러 저축하자/증산으로 수출하고 저축으로 건설하자/ 저축하는 국민되고 자립하는 나라되자/ 절약하는 남편되고 저축하는 주부되자/ 하루빨리 낭비말고 백년위해 저축하자/ 아껴쓰고 저축하여 민족자본 육성하자/ 거북이가 이겼단다 쉬지말고 저축하자/ 재건되는 새나라 저축으로 키워보자/ 새나라 새살 림 저축으로 부흥하자/ 원조받고 살든살림 저축으로 자립하자/ 나라위한 일편단 심 저축으로 나타내자/ 높아가는 국민저축 늘어가는 산업건설/ 낭비속에 가난오 고 저축 속에 복지온다/ 너도나도 저축하여 국민경제 바로잡자/ 늘어가는 저축으 로 안정되는 국가경제/ 마음마다 저축심 재건되는 부흥상/ 한푼두푼 저축한돈 내 살림을 돕는다/ 집집마다 느는저축 곳곳마다 서는공장/ 내집살림 나라살림 저축 으로 설계하자/ 너도나도 저축하여 웃는 국민되어보자/ 늘어가는 저축에 이룩되 는 자립경제/ 망설이며 넣는돈 찾을때 싱글벌글/ 외치는 재건보다 한푼의 저축을 / 저축하는 내한푼이 새나라를 건설한다/ 우방원조 의존말고 저축으로 자립하자/

오늘의 한푼저축 내일의 경제재건/ 저축하는 새가정 재건되는 새나라/ 늘어가는 저축에 자라나는 우리산업/ 절약없이 저축없고 저축없이 재건없다/ 아껴쓰고 저 축한돈 소가되고 논밭된다/ 저축없이 재건없고 재건없이 통일없다/ 혁명으로 닦 은터전 저축으로 재건하자/ 자기위해 저축한돈 나라위해 쓰여진다/ 늘어가는 국 민저축 뻗어가는 국가경제/ 일하며 절약하고 저축하여 가난덜자/ 절약으로 내핍 생활 저축으로 경제재건. 재무부, 1965 〈저축자료〉 《새로운생활설계》

저축기관과 각 시도가 합동으로 저축 독려반을 편성하고 매 가옥을 방문하여 저축 이행을 강력히 권장

6.21

~30

모범 저축조합을 선정하여 모범 저축 이행을 권장

장학관을 각 급 학교에 파견하여 저축의 이행을 강력히 독려

접객업소 종사원은 매월 100원 이상 저축토록 종사관계기관에서 적 극 권장하며 이 제도에 대한 P.R. 강화

6.21 각급 학교 조회 시 저축에 관한 훈화 실시 각 理洞 반상회를 통하여 저축의 계몽활동 전개 6.21

~30

농민들의 금융기관 이용 습성 권장을 위한 P.R.

각 기관에서 발행되는 간행물에 대통령담화문 등 공보자료 게재

서술한 국민저축조합 결성을 통한 저축동원 방식이 이전부터 활용되었던 방식이었듯이, 이러한 방식의 계몽활동도 1950년대부터 활용되던 것이 었다.84)

당시 정부는 대중매체를 활용하여 대중들에게 어떤 내용의 공보활동을 전개했을지 저축증강기간에 제작되어 배포된 문화영화를 통해서 살펴보 자. 국립영화제작소는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격언을 인용하여 한 개인 이 저축한 적은 돈이라도 모이면 그것이 커다란 밑천이 되어 경제부흥이 이룩된다는 주제를 담은 문화영화를85) 6월 15일까지 완성하고 이를 6 월 20일까지 배포하여 21일 저축대회 때 상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 다.86) 그러한 계획에 따라 제작된 영화가 《저축을 합시다》이다.87) 이 영화의 주제는 앞서 살펴본 제1회 저축의 날에 한 박정희의 연설과 일 맥상통하는 것으로 한 개인의 작은 저축이 국가의 자본이 되어 경제개발 의 근간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 이 저축이 각 개인의 자립 생활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국민저축조합의 필요성 및 은행 등 금융기관 이용의 유익함 등이 함께 설명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크게 새로울 것이 없었고 이전에 제작되어 상영된 공보 영화들도 선전하던 것이었다.88) 특징적인 점은 이 영화가 저축의 필요 성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 영화에는 3명의 유명 영화배우와 1명의 아 역 배우가 출연하는데 김진규라는 당대 유명 남성 배우가 저축의 필요성 을 역설하는 한편 그보다 젊은 남성 배우, 여성 배우 각각 한 명이 김진 규의 말에 물음을 제기하며 저축하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는 방식으로

84) 1950년대에는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나서지는 않았고 한국은행이 자체적으로 홍보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국은행 저축부, 앞의 책, 383쪽.

85) 〈영화제작지시서 (1965.5.15.)〉 《새로운 생활설계 저축장려》

(BA0791895)

86) 〈저축증강행사 실무자회의 보고 (1965.6.10.)〉《새로운 생활설계 저축장 려》(BA0791895)

87) 국립영화제작소, 1965 《저축을 합시다》(CEN0002545); 국가기록원에 의하 면 1962년에 제작된 것으로 정리되어 있으나 제작 관련 문서들을 고려해볼 때 1965년에 저축증강계획에 때를 맞추어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88) 국립영화제작소, 1964 《우리도 잘 살 수 있다》(CEN0002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