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부가 강구하던 근로자재산형성제도는 이듬해인 1977년 근로자재 산형성저축으로 도입되었다. 남덕우 경제기획원 장관을 비롯한 경제 부 처 장관들은 1977년 1월 19일 오전 경제기획원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그들은 이 자리에서 새해 경제시책의 기본 목표를 GNP 7.8%, 도매물가 10%, 소비자 물가 12%, 수출 65억 달러, 수입 74억 달러로 설정하였고 중산층 이하 봉급생활자들의 저축에 대해 저축 장려 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근로자재산형성저축제도(이하 재형저축)를 시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환 재무부 장관은 같은 자리에서 재형 저축은 월 급여 25만 원 이하의 소득자가 급여의 30% 이하 범위에서 매달 일정액을 저축할 경우 그 적립금에 대해 은행 금리 외에 연 12%
의 저축 장려금을 지급하는 것이며 다가 올 3월 임시국회에서 관련법을 수정하여 4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에 따라 목돈 마련 저축, 내 집 마련 저축, 증권 투자 저축 등 3종의 저축 제도 를 3년 및 5년 기간으로 신설할 방침이며 그 가입자에게 저축 장려금을 합쳐 연 23.2%(3년)~25.2%(5년)의 금리를 보장하고 이자와 장려금 에 대해서는 소득세와 증여세를 면세토록 할 것이라고 하였다.47)
46) 또한 김영삼은 물가연동제에 따른 최저임금제를 실현하고 실업자구제대책을 강 구하며 인플레를 철저히 억제하는 한편 국내자원 개발과 수입대체 산업의 육성을 위한 산업 구조의 개편을 정부에 촉구하였다. 〈김신민총재 근로자 재산형성 지 원토록〉 《매일경제》 1976.1.17. 1면.
47) 남덕우는 이외에도 물가안정을 위해 연간 통화 증가율을 작년의 25.6%에서
재무부는 1976년 중 목표액을 1천억 원으로 설정하였고 4월부터 재 형저축을 실시하기 위해 ‘저축증대에 관한 법률’의 개정안을 2월 안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3월에 임시국회에 제출하기로 방침을 결정하였 다.48) 2월 19일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는 재무부의 안을 원안대로 채택 하였고49) 24일 국무회의는 ‘근로자재산형성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 하고 재무부가 성안한 1조 원 저축목표액 달성을 위한 1976년도 저축 추진계획을 확정했다.50) 야당은 이 법안에 대해서 기본적으로는 반대하 지 않았다. 신민당은 이자율과 저축장려금 기금 조성 방법 등에 대해서 수정안을 낼 방침이었으나 “근로자의 자발적인 저축노력을 지원하여 안 정된 생활기반을 조성하고 중산층을 육성 지원한다” 법안의 취지에는 동 의하고 있었다.51) 이러한 신민당의 주장에 따라 절충을 거쳐 3월 22일 국회 재무위에서 통과되었고52) 3월 31일 ‘저축증대에 관한 법률 개정 법률’이 공포되었다.53) 이 개정 법률에 재형저축에 관한 조항이 포함되 었다.
재형저축은 그 목표를 1조 원으로 설정한 1976년도 저축추진계획의 핵심 내용이었다. 그리고 농어민을 대상으로 하는 재형저축과 유사한 목
20%로 억제하고 총 수요 관리를 강화하면서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법을 활용 독 과점 가격을 규제하겠으며 특히 주곡을 중심으로 소비자물가안정에 역점을 두어 쌀, 보리쌀, 밀가루, 육류 등 10개 생필품 가격 안정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 고 수도료, 수업료를 제외한 기타 요금과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제할 것이라 고 하였다. 〈근로자재산형성저축제를 신설〉 《동아일보》 1976.1.19. 1면.
48) 〈연내 1천억원 목표〉 《매일경제》 1976.1.20. 1면.
49) 이들은 농민에게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보완하여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하였다.
〈공화·유정, 근로자재형법안 채택〉 《경향신문》 1976.2.20. 1면.
50) 〈근로자재산지원법안을 확정〉 《동아일보》 1976.2.25. 1면.
51) 〈저축증대법안 등에 신민서 수정안 검토〉《동아일보》 1976.3.13. 1면.
52) 수정된 내용은 살펴보면, 한국은행 저축장려기금에 대한 출연을 잉여금과 적립 금의 범위 내에서만 하도록 제한하고 경비나 비용의 명목으로 출연할 수 없게 하 였다. 그리고 市·郡의 里·洞·統 단위의 저축 조합 구성을 강제적으로 하도록 되 어 있던 것을 임의로 구성할 수 있게 수정하였다. 또한 증권 저축의 경우 본인이 원할 경우 원리금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수정하였다. 〈저축증대법안통과〉
《동아일보》 1976.3.22. 1면; 〈재무위 ‘재형저축법안’ 통과〉 《매일경제》
1976.3.22. 1면.
53) 〈법률 제2,890호 저축증대에 관한 법률 개정법률〉 《관보》1976.3.31.
돈마련저축을 준비하였고54) 농어민을 위한 저축우대제도로서 농어가목 돈마련저축이 1977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55) 이렇듯 정부는 ‘목돈 마련’을 지원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가계 저축을 유인하였다.
<표 4-7> 근로자재산형저축제도의 주요 내용
54) 〈1976년도 저축추진계획(안) (1976.2.16)〉 《국무회의안건철》
(BA0084792)
55) 이는 연간 소득 200만 원 이하의 농어가를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저축총람 1978》, 94쪽.
구분 내용
가입 대상
-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사기업체에 근무하는 일반근로자로서 월 급여액 40만 원 이하인 자
- 사업주 또는 근로단체가 확인하는 일용직 노동자로서 일 급여액이 16,000 원 이하인 자
- 해외취업자로서 월 급여액이 50만 원 이하인 자
- 외국정부, 국제기관 또는 외국기업에 고용된 근로자로서 월급여액이 40만 원 이하인 자
종류
- 목돈마련저축
근로자가 일정기간 적금형태의 저축을 한 후 현금으로 저축원리금과 저축장 려금을 지급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저축. 월급여 저축과 상여금 저축. 국 민은행과 주택은행(대행기관: 농협, 수협)에서 취급
- 증권투자저축
근로자가 일정기간 저축을 한 후 저축원금과 그 수익을 주식 또는 주식형증 권투자신탁 수익증권으로 지급받고 저축 장려금은 현금으로 지급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저축. 수익증권저축, 증권저축, 우리주식저축의 3가지. 한국 투자신탁주식회사(대행기관: 증권회사)에서 취급
저축 기간
2년 형, 3년 형, 5년 형.
2년형은 여성근로자, 해외취업자 및 ROTC 장교에 한함 증권투자저축 중 우리주식저축은 3년
한도
월 급여액의 30% 이내에서 3,000원 이상 1,000원 단위로 12만 원까지 매 월 저축 가능함. 월 저축액이 5만 원 이하일 경우 월 급여액의 30%를 초과 하여 저축할 수 있음. 해외취업자의 경우 20만 원까지 매월 저축 가능. 상여 금저축의 경우 매회 상여금 지급 시 저축자가 정하는 금액으로 하되 1만 원 이상 천 원 단위로 최고 상여금 전액까지 저축할 수 있음.
출처: 한국은행, 1978 《저축총람 1978》, 110~113쪽, 142쪽.
재형저축은 월 급여 40만 원 이하의 임금노동자(해외 취업의 경우 50 만 원)를 대상으로 시행되었고 목돈마련저축과 증권투자저축으로 크게 분류되었다. 재형저축은 금리 외에도 정부가 법정 장려금을 지급하여 노 동자들의 가입을 유인하였고 사업주에게 세제 혜택을 주어 임의장려금 지급을 독려하려고 하였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장려금 이외에도 주택 자 금 융자와 분양 시 혜택 등을 주어 가입자를 유치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목돈 마련에 대한 유리함을 넘어서 집을 살 수 있는 더 많은 기회 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여유 자금을 저축으로 유인하려고 하였다.
금리
목돈마련저축 (1978.7.1 현재) (1) 만기 시
2년 형: 연 14.2%, 3년 형: 연 15.2%, 5년 형: 연 17.2%
(2) 중대해지 시
1월 미만: 정기적금 중도해지 이율, 1년 이상: 연 12.2%, 2년 이상: 연 13.2%, 3년 이상: 연14.2%, 4년 이상: 연 15.2%
(3) 만기 후 이율: 저축원리금에 연 10.0% 적용 장려
금
(1) 법정장려금: 정부에서 만기해약 또는 중도해약 시 지급
(2) 임의장려금: 사업주가 임의로 연말 또는 저축계약 만료 시 지급
가입 혜택
(1) 주택자금의 지원 및 소액자금융자
주택자금의 융자, 사원 주택건설 자금 지원(사업주), 목돈마련저축자에 대한 소액자금융자
(2) 세제상의 지원
이자소득에 대한 비과세, 사업주의 임의장려금 지급액은 필요경비 또는 損金 에 산입.
(3) 주택(아파트) 분양 및 주택상환사채 매입 우선권 부여 (목돈 마련 저축 에 가입하고 6회 이상 80만 원 이하 불입한 자에게 국민주택분양권 및 주택 상환사채 매입 시 1순위권을 부여)
저축 기관 의 자금 운용
(1) 국민투자채권의 인수 또는 국민투자기금에 대한 예탁 (2) 서민금융 또는 영세기업자금의 융자
(3) 목돈마련저축자에 대한 주택자금의 융자 (4) 사원주택건설자금 또는 서민주택자금의 융자 (5) 주식의 매입
(6) 재무부 장관이 지정하는 자금에의 운용
그런데 재형저축은 단지 임금노동자들의 재산형성을 지원하는 목적으 로만 활용되지 않았다. 재형저축으로 모인 자금은 중화학공업화를 추진 하기 위한 내자로도 활용되었다. 재형저축을 모집한 저축기관은 이 자금 을 서민, 영세기업, 주택자금의 융자 등으로도 운용하였으나 또한 재형 저축 자금을 국민투자채권을 인수하거나 국민투자기금에 예탁하도록 규 정되었다.56)
재형저축이 시행되자마자 유치를 둘러싸고 담당 금융기관인 국민은행, 주택은행, 한국투자신탁은 치열한 유치 경쟁을 펼쳤고57) 정부도 저축 동원을 위한 홍보활동에 적극적이었다. 4월 9일 “국민의 저축의욕을 고 취”시키기 위해 열린 ‘총력저축전진대회’에서 최규하 국무총리는 정부가
“근로자재산형성저축이라는 새로운 저축제도를 만들고 저축자에게 그 이 익이 보장되도록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하면서 “모든 국민이 낭비를 없 애고 저축하는 기풍을” 기르자고 강조하였다.58) 또한 언론을 통해 재형 저축제도의 내용과 의의가 적극 홍보되었다.59)
재무부는 1978년에 작성한 보고서에서 재형저축의 실적이 대체로 만 족할만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78년 3월 31일 현재 총 구좌 수 1,284,000좌, 계약고 5,853억 원, 수입부금 1,327억 원에 이르렀다. 계약 실적도 목표치에 근접한 수준이었다.60)
56) 재형저축의 국민투자기금 예탁 비율은 증가액의 30%로 규정되었고 1979년 5 월 재형저축의 취급기관을 확대하면서 증가액의 예탁 비율을 20%로 인하하였 다. 한국은행 기금운용부, 1989 《국민투자기금총람》 14쪽.
57) 〈재형저축 유치싸고 치열한 경쟁〉 《매일경제》 1976.4.6. 2면.; 〈투신사 재형저축설명회에 85개회사서 참석〉 《매일경제》 1976.4.8. 3면.
58) 〈낭비없는 저축기풍 조성〉 《매일경제》 1976.4.9. 1면.
59) 〈알기쉬운 경제학 (1125) 근로자 재형저축제도 (완)〉 《매일경제》
1976.4.9. 4면. 총 12회의 이 연재기사는 당시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이헌재가 작성한 것이다.
60) 재형저축 계약 실적 (단위: 달성률(%))
계약고 수입금액
1976년 101.2 96.8
1977년 135.3 102.4
1978년 1/4분기 68.3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