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 어린이말의 독특한 종결어미: 중간언어로서의 ‘-다요’
하여서는 논의가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른의 시각에서는 같은 유치원 에 다니는 네 살 ~ 일곱 살 아이들이 서로 간에 반말을 자유로이 주고받을 수 있 다고 단정할 수 있을지라도, 아이들의 실제의 삶의 맥락에서는 말단계의 선택은 어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연령 차이 혹은 지위 차이 그리고 친밀감 등의 사회 적・심리적 요인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형’과 ‘친구’, ‘동생’으로 범주화되는 어울림반이라는 사회적 세계에서는 반말 이 서로 간에 사용되었다. 그런데 어울림반 내에서 다섯 살 아이들, 여섯 살 아이 들은 동일한 말 등급, 즉 반말을 서로 주고받았지만, 어울림반 바깥의 일곱 살이 나 네 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말단계의 선택이 약간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를 테면, 일곱 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어울림반의 다섯 살 아이들, 여섯 살 아이 들은 말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못하여 우물쭈물하기도 하였고, “안녕하세요?”, “고 맙습니다.”와 같은 인사말을 쓰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운동회나 학예회 연습을 할 때 일곱 살 아이들과 여섯 살 아이들이 짝을 지워 하는 활동이 끝난 후 “어울 림반 동생들을 가르쳐 준 형아들한테 ‘고마워’ (라고) 하세요.”라는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고마워.”라고 바로 말하지 못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보다 정확하게는 어떤 말단계를 선택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없이 딴청을 피우거나 혹 은 “고맙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는 일곱 살이 유치원에서 가장 상 위 연령으로 형아라는 일곱 살 아이들 스스로도 인지하는 자부심과 하위 연령 아 이들의 그들에 대한 외경심 등에 부분적으로 기인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 다. 담임교사가 연령 차이가 있는 아이들도 동일한 말단계를 주고받는 대칭적 말 사용이 전제되는 동질적 또래 집단인 것으로 상정하는 것과는 달리, 연령 차이가 있는 아동들 간의 심리적 거리감은 서로 다른 말단계의 사용으로 표현되는 것이 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호칭어는 연령 차이에 기초하여 서로 간에 부르고 불리워야 하는 고정된 정답이 존재하는 말의 영역인 반면에, 아동 간의 존댓말의 사용은 연령 차이라는 사회적 요인 이외에도 아동 간의 친소 관계에 지대한 영향 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아이들이 심리적 거리감에 따라(혹은 친밀감의 강도에 따라) 다른 존댓말의 형태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문화 적 지식을 습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함을 드러낸다.
<표Ⅲ-3>의 반말의 가장 아래 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아이들의 존댓말 목 록에는 어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종결어미 ‘-다요’가 사용된다. 이 특수한 말의 형태는 이전 세대들의 한국어 존댓말의 목록에는 없던 새로운 ‘개신 형’(innovative form)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현대 한국 사회의 특정한 연령의 (즉 유치원 시기의) 어린이들이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다요’라는 종결어미 는 어린이말의 중요한 목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다요’에 대하여
‘존댓말’이나 ‘반말’과 같은 어린이들의 언어적 세계에서 사용되는 민간 명칭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연구자는 이 독특한 종결어미를 ‘–다 요’ 혹은 다요체라 부르고자 한다.
아이들의 ‘-다요’ 말씨의 실제 사용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서술형: “선생님, 나 어제 넘어졌다요.”
의문형: (없음)
명령형: <블록 정리를 도와주려는 연구자에게> “내가 할 건데, 가라요.”
청유형: “(점심) 다 먹고 엄마 놀이 하자요.”
다요체는 서술형 문장에서는 “넘어졌다요.”와 같이 ‘–다요’, 명령형 문장에서는
“가라요.”와 같이 ‘–라요’, 청유형 문장에서는 “하자요.”와 같이 ‘–자요’라는 형태 로 나타나며, 의문문의 형태는 없다. 그리고 이 ‘–다요’, ‘-자요’, ‘-라요’는 해라 체의 종결어미인 ‘-는다’, ‘-자’, ‘–라’에 조사 ‘–요’만을 붙인 형태로 분석할 수 있다. 이 다요체라는 종결어미의 사용 빈도는 존댓말이나 반말만큼 많지는 않았 지만, 그럼에도 다요체는 ‘일반적인’ 존댓말이나 반말과는 구분되는 또 하나의 말 씨체로 아이들의 언어적 세계에서 분명히 인지되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다시 말 하여, 다요체는 아이들만의 독특한 말씨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존댓말의 습득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 어느 지점에서 사용되는 말씨체로 아이들의 언어적 세계에서 인정되는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연구자는 ‘-다요’를 몇몇 아이들의 개인어(idiolect)라기 보다는,69) 아이 들이 한국어의 존댓말 체계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즉 ‘비유적 의미에서’ 일종 69) 개인어라는 용어는 언어학자 Bloch(1939)가 희랍어 ‘idio’(personal, private)와
‘(dia)lect’를 합성하여 만든 조어이다. 개인어란 하나의 개인어가 그 사용자 자신만의 언어 능력을 반영한다는 의미에서 개개인 각자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언어 체계를 지 칭하는 것으로 한 사람 나름대로의 고유한 개인 방언을 뜻한다(『사회언어학 사전』
p. 13-14 참고).
반말 ‘-다요’ 존댓말
서술형 집에 간다 집에 간다요 집에 가요
명령형 집에 가라 집에 가라요 집에 가(세)요
청유형 집에 가자 집에 가자요 집에 가요
의 ‘중간언어’(interlanguage)(Selinker 1972)인 것으로 재개념화하고자 한다. 중 간언어란 잘 알다시피 배우는 학습자가 표현하는 언어적 체계로서, 관련 외국어 요소와 학습자의 모어 요소가 혼합된 형태를 말한다. 달리 말하여, “제2언어 학습 자의 언어적 체계는 모어와 목표어 둘 다와 다르며, 구조적으로 이 두 언어의 중 간에 위치한 독립적 체계”로 설명된다. 이 개념에 따르면, 학습자는 실수투성이의 불완전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이 아닌, 목표어의 형태와 기능을 학습자 자신이 처 한 언어적 환경에 따라 창의적으로 행동하면서,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습득 단계 를 거쳐 계속 나아가는 지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 다시 거듭나는 것이다(브라운 2005: 250). 중간언어에 대한 이러한 시각을 받아들인다면, 더군다나 이 다요체 는 어울림반에서는 만3세 남아들만이 그리고 만2세 학급의 남녀 어린이들이 잘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이들의 ‘-다요’라는 말씨체는 아이들이 반말의 단계에서 존댓말인 해요체의 학습으로 이어갈 때 아이들이 스스로 설정한
‘비계’로서 존댓말의 원활한 학습을 위하여 만든 적극적 전략의 결과인 것으로 설 명 가능할 것이다.
다음과 같이 ‘집에 가다’라는 문장으로 존댓말(특히 ‘해요’체)과 반말(엄격히는
‘해라’체) 그리고 다요체를 구성하여보면, 다요체가 가지는 (존대의 단계와 발달 면에서의) 중간적 위치를 보다 명확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서술형의 문장, 즉 ‘-다요’를 말할 때는(가령 “집에 간다요.”) ‘–는다’
에 단순히 기계적으로 ‘-요’를 붙이는 형태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또 이 ‘–다 요’의 사용에는 특정한 의도나 목적이 없는 일상의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 분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명령형이나 청유형의 문장을 구성하는 것으로 시각을 돌려보면, 다요체의 사용에서 중간언어로서의 특징이 명백히 드러난다. 명령형 문 장이나 청유형 문장을 구성함에 있어, 이를 테면, 해라체의 ‘-라’, ‘-자’ 다음에 위치할 존댓말 등급, 즉 (명령형인) “집에 가(세)요.”, (청유형인) “집에 가요.”를
얼른 생각해내기가 어려울 때, 아이들은 “집에 가라요.”, “집에 가자요.”를 디딤 돌로 삼아 보다 적절한 존댓말을 배워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사례를 통하여 아이들의 다요체가 교사의 수정을 통하여 어떻게 그리고 어떠한 형태로 바뀌는지를 볼 수 있다.
<사례Ⅲ-23>
담임교사(26세, 여): “우리 무슨 노래 불러볼까?”
주연(5세, 여): “꿀벌. 꿀벌 노래.”
담임교사(26세, 여): <노래를 앞서 시작한다.> “♫ 윙윙, 거칠고 험한 산을 날아 가지요. 윙윙, 머나먼 나라까지 꽃을 찾아서. 윙윙, 조그만 날개 고단하여 너 무 지쳤지만은 쉬지 않고 날아가지요. 윙윙, 거칠고 험한 산을 날아가지요.
윙윙, 머나먼 나라까지 꽃을 찾아서.”
아이들: <노래를 함께 부른다.>
근우(5세, 남): “선생님, 그런데 지친 건 죽은 거예요? 우리 산책 가다가 벌 죽 은 거 있으면요, 갖고 가자요.”
담임교사(26세, 여): “데려 올까요?”
근우(5세, 남): “네. 데려 와서 벌을 많이 모으자요.”
담임교사(26세, 여): “네. 데려 와서 벌을 많이 모읍시다.”
다섯 살 남아 근우는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꿀벌 노래’를 하는 맥락에서, ‘지 친’이라는 노래 가사가 나오자, 마치 생각난 듯 지친 것은 죽은 거냐며, “산책 갔 다가 죽은 벌이 있으면 갖고 가자요.”라고 제안하였다. 이 과정에서 근우의 말은
‘갖고 가자’에 ‘-요’를 기계적으로 붙여 “갖고 가자요.”라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데, 근우의 말에 교사는 “데려 올까요?”라고 ‘가지고 가다’가 아닌 ‘데려 오다’가 맞다며 이를 수정된 말로써 넌지시 알려주었다. 근우는 다시 교사의 ‘데려 오다’
라는 수정된 표현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데려 와서’라고 한 다음에, 이번에는 다 시 ‘모으자요’라고 말하였다. 이에 교사는 ‘모으자요’에 ‘모읍시다’라는 말로 청유 형의 존대 표현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이처럼 교사는 근우의 ‘–자요’라는 말에 그 사용을 금지한다거나 직접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대신에 적절한 표현으로 수정해주는 방식을 취하였다. 즉, 교사는 이 ‘–다요’라는 존댓말 종결어미를 존댓 말의 적절한 표현으로 간주하지는 않았지만(그래서 대신 적절한 표현을 항상 알 려주었지만), ‘-다요’를 해요체에 어느 정도 도달하는 존댓말 표현으로 인정하였 고, 더불어 이 말씨체를 쓰는 ‘어린’ 아이를 귀엽고 애교스럽게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