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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아 또래 집단의 ‘유희의’ 경쟁적 말하기

I. 서론

2) 여아 또래 집단의 ‘유희의’ 경쟁적 말하기

그간 이루어진 선행 연구들에 따르면(Coates 1994; Farris 1991; Keenan 1974; Kulick 1993; Tannen 1990 등), 여아와 남아의 행동 그리고 언어는 서로

‘달라서’, 여아들의 담화는 주로 ‘협력적’ 말하기로 이루어지고, 남아들의 담화는 주로 ‘경쟁적’으로 이루어진다고 기술되어 왔으며, 기존의 남아 또래 집단 연구는 주로 ‘공격성’, ‘경쟁’, ‘갈등’, ‘이성’이라는 키워드와 관련하여 연구되었고, 여아 또래 집단 연구는 ‘협력’, ‘애정’, ‘친절’, ‘공감’, ‘감정’과 관련하여 연구되었다.

이와 동시에 많은 사회에서 여아(여성)와 남아(남성)의 다른 말하기 방식, 행동의 양식에 대한 연구 결과는 ‘사실’로서 인정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 관점은 언뜻 보 기에 타당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여아들 또래 집단에서도 공격성, 갈등의 상황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져 왔고, 여아들의 공격적 행 위 또한 적절한 이론으로 설명되지 못하였던 한계를 지니는 것이다(Goodwin 2002: 409).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가 비대칭적 혹은 수직적인데 비하여, 아이들 간의 관계 는 보다 평등한 수평적 관계로 상정하기 쉽지만, 어린이들의 사회적 공간은 어른 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평화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아이들의 공동체는 동질성과

이질성의 양가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갈등과 공유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공동 체이며, 아이들 간의 지속적인 조정과 타협의 과정은 공동체를 이루는 필수적인 과정이 된다(아리에스 2003: 227-237). 바꾸어 말하면, 아이들의 사회적 공간은 종종 낭만적인 공간이라는 오해를 받아왔고, 특히 여아들의 또래 문화는 더욱 그 러하다고 여겨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아동들의 또래 문화도 위계적 권력과 지위 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적 관계의 장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게다가 최근의 연구들은 여성의 언어가 협력적이고 간접적인 반면, 남성의 언어가 직접적인 명 령어, 공격성 등을 특징으로 한다는 이분법이 모든 문화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 미국 중산층 백인 아동들(그리고 한국 사회를 비롯한 많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발견되는 문화 특수적인 현상임을 지적한다(안준희 2010: 178).75) 대표적으로 Goodwin(2002)은 ‘경쟁-남아’, ‘협력-여아’와 같은 성 이분법적 도식에 비판을 제기하며, 여아들 또한 남아들만큼이나 논쟁이나 배타적 행위, 배제 행위 등을 빈 번하게 하며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등의 갈등 상황을 유발함에 대하여 밝힌 바 있 다. 이와 같은 Goodwin의 주장은 젠더와 언어에 대한 남녀 대립 구도의 단순한 이분법적 분석에서 벗어나, 남녀의 의사소통 스타일이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 어 떻게 달라지는지를 그리고 인종, 사회 계층, 문화에 따라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 이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함을 상기시킨다. 여아 또래 집단에서의 타인에 대한 배제와 공격과 같은 긴장된 힘의 역학 관계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은 여아 또래

75) 미국 중산층의 여아, 남아 또래 젠더 문화에 대한 연구 내용과는 달리, 미국 흑인들 과 라틴계 노동자 계층의 소녀들은 갈등의 상황에서 간접적인 표현이나 완곡어법에만 의존하지 않는다(Goodwin 1990). 그리고 필라델피아의 흑인 노동자 계층의 여자 아 이들은 언쟁(arguing)의 상황에서 타인에 대한 비난을 완곡하게(mitigated) 하기 보다 는, 직설적이거나 부정적인 반대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Goodwin and Goodwin 1987). 언쟁이나 갈등을 대함에 있어 백인 중산층 여아들과 흑인 노동자 계층이나 라틴계 여아들은 서로 다른 전략을 사용하는데, 이와 유사한 사례는 중국 사회, 대만 사회의 여자 아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Kyratzis와 Guo(2001)는 미국과 중국의 유 아 또래 집단에 대한 비교문화 연구를 통하여 미국 여아들은 간접적이고 정중한 갈등 해결 전략을 사용하는 반면, 중국의 여아들은 직접적이고 단언적으로 말한다는 문화 에 따른 차이를 보임을 밝힌 바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Farris(1991)는 대만 유아들 간의 갈등 상황을 다룬 연구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발견하였다. 남아들의 갈등 해 결 방식은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행동, 놀리기 등을 사용하는 반면, 여아들은 간접 적・직접적인 갈등 해결의 전략 그 모두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대만의 문화적 요인 때문으로 해석해 볼 수 있는데, 대만에서의 이분화된 여성의 입장 즉 언어나 행동에 서 직접적인 단언과 주장이 요구되는 ‘좋은 어머니’의 역할과 침묵과 정중함이 필요 한 ‘정숙한 아내’라는 구분된 두 가지의 역할을 여아가 동시에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집단과 여아들의 적극적인 여성성의 수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불식시키는 작업 중 의 하나가 될 것이고, 이와 같은 ‘맥락에 따른 유동성’(contextual fluidity)에 대 한 고려는 성 역할의 언어 사회화 연구가 자칫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피해가게 해 준다.

다음 사례가 보여주듯이 본 연구의 여아들이 대화를 구성하는 주요한 방식 하 나는 (주로 남성 언어의 특징으로 믿어져 온) ‘경쟁하듯’ 말하는 것이다.

<사례Ⅲ-34>

은원(6세, 여): <주판을 들고> “선생님, 이거 ‘주판’이죠?”

주원(6세, 여) <웃으며> “두 판(2판)?”

시은(5세, 여): “세 판(3판).”

주원(6세, 여): “네 판(4판).”

시호(5세, 여): “열 판(10판).”

은원(6세, 여): “백 판(100판).”

아이들: <모두 웃음>

위 말놀이의 사례에서 참여자는 모두 여아들 또래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이들은 무척 경쟁적으로 숫자의 크기를 늘려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 대화의 참여자들은 경쟁하듯 말하면서도, 다시 말하여, 숫자 100과 그로 인한 웃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경쟁하듯’ 대화를 구성해 나가면서도, 다 같이 한 발씩 다가서고 있다는 점에서 ‘협력적인’ 성격을 보이는 것은 매우 특징적이다. 은원이 가 말한 ‘주판’이라는 맥락을, 여섯 살 주원이가 발음의 유사성에 근거한 ‘두 판’

이라고 말함으로써 말놀이로 말의 장르를 변화시켰고, 이어 주변에 함께 있던 여 아들이 두 판에서 ‘세 판’으로, ‘네 판’으로 그리고 ‘열 판’으로, 마지막에는 ‘백 판’이라고 올라감으로써 그 말놀이는 최종의 목표, 즉 웃음과 서로 간의 친밀함을 획득하고 나누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 특히 여자 아이들의 문화적 세계 에서 숫자 100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본 연구의 만3~4세 어린이들은 보통은 숫자 1에서 10까지는 무리 없이 셀 수 있었지만, 두 자리의 숫자를 말하는 데에는 다소간의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가령 11(열하나) 다음에는 12(열둘)이 아닌 15(열다섯)이 말해지기도 하며, 30(삼십)이 넘어가는 ‘큰’ 숫자는 여자 아이들에게 쉽게 구체화되는 것 같지 않았다.

<사례Ⅲ-35>

지언(5세, 여): “나는 할머니랑 같이 살아요. 할머니랑, 엄마랑...”

은원(6세, 여): “근데 우리 할아버지는 아파요.”

주연(5세, 여): “우리 할아버지는 죽었는데...”

시호(5세, 여): “야, 우리 할아버지는 옛날에 죽었다.”

시은(5세, 여): “우리 할아버지는 백(100)년 전에 죽었다.”

아이들: <모두 웃음>

앞선 <사례Ⅲ-34>와 유사한 맥락에서, <사례Ⅲ-35>의 할머니랑 ‘같이 산다’는 지언이의 말에 은원이가 자신의 할아버지는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고, 주연이는 아픈 것에서 나아가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아마도 아이들의 실제의 경험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 심각한 분위기를 시호가

‘옛날에’ 죽었다고 함으로써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뒤이어 시은이가 ‘100년’ 전에 죽었다고 하자, 웃으면서 이 대화는 종결되었다. 이와 같은 아동들의 말 사례는 여아들의 대화의 패턴이 단순히 경쟁을 위한 경쟁의 구도라기보다는 ‘또 다른 무 엇’을 함의한다는 추론의 단서가 되어준다.

그렇다면 또래 집단에서의 관계에 대한 언어적 규범은 어떠할까? 여아들의 또 래 집단 내부에 진입하지 못한, 즉 그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 하지만 ‘특정의 이유 들로 인하여’ 소속되지 못한 한 여아의 말하기 방식을 통하여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담화의 내용과 구조에 대한 분석을 통하여 여아들이 공유하는 담화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인데, 여아들의 대화의 구조와 친구 맺기, 또래 집단에의 가입 및 거절 등이 어떠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 이들의 “주판 → 두 판 → 세 판 → 네 판 → 열 판 → 백 판” 등으로 이어가는 대화의 내용은, 더 큰 수를 말함으로서 앞선 발화자를 이기려는 것만은 아닐 것 이다. 오히려 둘, 셋, 넷, 열, 백이라는 수의 향연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일련의 발 화는 먼저 발화한 아이에 대한 관심, 동의, 지지를 보내는 특정한 표현 양식이며, 동시에 여아들이 즐겨하는 흥미로운 말놀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이해가 될 것이다. 여아들의 또래 집단에서는 다른 아동들과 관계를 맺는 능력, 이를 테면 남에 대한 배려, 타인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과 같은 특성이 중요시 된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대로 남아들이 수직적 위계질서를 성립하려는 권력 구 조를 추구하는 것과 달리, 여아들의 ‘권력 구조’는 ‘배제’(exclusion)와 ‘포 함’(inclusion)이라는 특성을 보였다. 여아들은 또래 집단 내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또래 집단 내부에서는 서로에 대하여 경청하기, 칭찬하기 등의 전략을 사용하지만, 또래 집단의 바깥 혹은 주변을 서성이는 제3의 아이에게는 소외 혹은 배제의 전략을 통하여 외부로부터의 진입을 철저히 막고 동시에 또래 집단 내부의 결속을 공고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76)

<사례Ⅲ-36>

시호(5세, 여): “나 어제 동물원 가서 사자 봤다.”

주연(5세, 여): “나도 전에 동물원 가서 사자랑 <얼마간 침묵 후> 호랑이 봤는 데.”

시은(5세, 여): <웃으며> “나는 기린!”

해우(5세, 여): <웃으며> “나는 사슴!”

은진(5세, 여): “나는 어제 고모랑 치킨 먹었는데...”

위 <사례Ⅲ-36>은 앞의 <사례Ⅲ-34>의 ‘주판’이나 <사례Ⅲ-35>의 ‘할아버지’

와 유사한 대화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 대화에서 (그리고 이후 있었던 이와 유사한 형태의 몇 번의 대화에서) 은진이는 여아들 또래 집단에 진입하는 것이 끝끝내 거부되었다. 위 사례는 아이들이 저마다 동물원에서 본 동물을 이야 기하는 맥락이다. 시호의 ‘어제 사자를 본 경험’에서 촉발되어, 다른 여아들이 (과 거에) ‘사자’, ‘호랑이, ‘기린’, ‘사슴’ 등을 보았다고 이야기하는 맥락에서, 또래 놀이 집단의 주변부에서 서성이던 은진이가 ‘닭’을 ‘본’ 것이 아니라, ‘치킨’을 ‘먹 었던’ 경험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면서 그 대화의 맥은 끊어져 버렸고, 은진이 역시 이 또래 집단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였다. 이 사례의 여아들과 같이 또 래 놀이 집단 내부의 여아들은 화자나 청자 모두 자신의 발화에 대하여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추적하고 감독하고, 아이들 스스로 대화의 흐름이 끊기지 76) 이와 유사한 맥락의 연구가 있다. 앰보손(2011)은 스웨덴 십대 소녀들이 또래 집단

을 구성하고 타인을 배제하는 사회관계를 조직하고 규제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지방 (fat)에 대한 담화’를 조사하였다. 살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누구와’, ‘어떤 방식으 로’라는 엄격한 또래 언어의 규칙을 따르며, 이 규칙을 위반하였을 경우 또래 집단에 서 철저하게 배제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예를 들어, (실제로는 날씬하지만) 자신이 뚱뚱하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아니야, 걱정하지 마. 넌 충분히 말랐어. 운동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체육관에 다녀야 할 사람은 ‘너’와 나뿐이야.”라고 자신 이외의 타인(‘너’)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것은 또래 언어의 규 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지방에 대한 소녀들의 담화는 뚱뚱한 몸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떤 친구와는 우정을 확립하고, 반면에 어떤 친구는 배척하는 관계 맺 기에 대한 또래 언어문화의 규칙을 보여준다(앰보손 2011: 182-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