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 성 역할의 사회화: 어린이의 젠더에 따른 의사소통 스타일의 차이
소통 스타일’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본빌라인 2002: 380). 여성과 남성이 성
별에 따라 말 순서 취하기, 화제 도입 및 통제, 듣는 태도 등의 말하기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는 남녀의 다른 대화 스타일은 오래된 명제이다. 그런데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의 성별에 따른 언어 사용이 (생물학적 차이에서 혹은 문화적인 차이에 서 연원하는지를 논하는) ‘왜’ 다른 양상으로 발달하는가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 지않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즉 어떠한 양상으로 다르게 혹은 같게 발달했는 가?”(Thorne 1993: 61)일 것이다. 여아들은 주로 여아들과 놀이를 하고 남아들 은 남아들과 놀이를 하는 성에 따른 분리된 또래 놀이를 하는 경향에 대하여, Maltz와 Borker(1982)는 여아와 남아가 서로 다른 문화적 세계를 경험한다는 ‘두 문화’(two cultures) 혹은 ‘분리된 세계’(separate worlds)의 ‘문화 차이’로 보았 다. 남성과 여성의 행동은 유아기에 시작되어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서로 상반된 문화에로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설명이다. 이 ‘분리된 세계 가 설’(separate world hypothesis)에 의하면, 아이들은 동성 또래 집단에서 놀이를 하고 상호작용하며 서로 다른 목적에 근거한 일상의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서로 다른 의사소통의 스타일을 익히게 된다(본빌라인 2002: 262). 말하자면, 여성이 대화 속에서 상대방과 ‘공감대’를 찾는 ‘협력적인’ 경향이라던가, 남성이 ‘논쟁거 리’를 찾는다는 대화에 있어 ‘경쟁적인’ 경향은 아동기의 동성 또래 집단과의 활 동을 통하여 더욱 공고해진다.
Ochs와 Taylor(1995)는 부모와 두 자녀의 저녁식사 시간에 이루어진 가족 간 대화에 참여관찰하여, 가족 간 의사소통을 통하여 형성되는 어린이의 젠더 차이 에 대한 인식과 언어 사용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가족의 저녁식사 시간의 대화에 서 어머니는 주로 자녀가 이야기를 꺼내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어머니의 화 제 도입에 따라 자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때 아버지는 자녀(와 어 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역할이면서 동시에 자녀(와 어머니)의 언어, 행동이나 사 고, 감정에 대하여 비평하고 평가를 내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통하여, “아버 지가 가장 잘 안다”(“Father Knows Best.”)라는 이 논문의 제목에서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시피, 아버지는 스스로 또는 자녀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끌어들여 아버지의 심판대에 올려놓는 어머니의 협조에 의하여 가족 성원들을 통제하고 군 림할 수 있는 지위와 권리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Ochs와 Taylor는 아이들이 가정에서부터 이미 불평등한 성별 관계를 관찰하고 이에 참여함으로써, 위계질서 및 성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는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고 보았다. 유사한 논의를 펼치는, 2~5세의 아동의 가정에서의 의사소통에 대한 Gleason(1987)의 연구에
따르면,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명령문을 보다 많이 사용하며, 그것을 딸보다 아들 에게 더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말의 중단과 관련하여서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비 하여 자녀의 대화에 끼어들어 대화를 중단시키는 경우가 많으며, 딸의 대화를 더 많이 중단시킨다. 이에 대하여 Gleason은 어린이는 어려서부터 이러한 행동을 관 찰하고 모방하며, 나아가 유사한 스타일의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고 보았다. 마찬 가지로 Esposito(1979)에서도 남녀 어린이들의 대화에서, 여자 아이들이 남자 아 이들의 말을 중단시키는 경우보다,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의 말을 중단시키 는 경우가 두 배나 많음을 밝혔다. 이 연구들을 통하여 어린 아이들도 이미 가정 에서부터 그리고 이미 어려서부터 남녀 간의 불평등한 대화를 경험하고, 또 그것 을 실천하도록 사회화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동일한 맥락의 논의로서, Anderson(1986)은 다섯 살짜리 어린이들에게 어머 니, 아버지, 아이 역할의 가상 놀이(pretend paly)15)를 하게 한 결과, 아빠 인형 은 직접적 명령문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엄마 인형은 요청문이나 간접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였고 밝혔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은 “~인 척하자”, “~라고 하자”와 같
15) 어린이의 놀이를 주제로 하는 연구에서 ‘가장하기’란 용어는 있는 그대로가 아닌,
“~인 체 하기”, “마치 ~처럼” 형태로 나타나는 행동을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된다. 어 린이의 “~인 체 하기” 놀이는 ‘역할 놀이’(role play), ‘가상 놀이’(pretend play), ‘상 징 놀이’(symbolic play), ‘가작 놀이’(make-believe play), ‘상상 놀이’(imaginative play), ‘환상 놀이’(fantasy play), ‘사회극 놀이’(sociodramatic play) 등 여러 용어들 이 있다(성은영・박은주 2004: 328). 이 용어들은 각기 초점에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인 체 하기” 놀이를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 자신의 경험을 상징적으로 부호화할 수 있는 능력, 즉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는 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서 로 혼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본 연구에서 연구 대상 아이들의 “~인 체 하기”
놀이는 ‘역할 놀이’로 개념화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가령 아이들은 역할 놀이가 “~인 체 하는 것”임을 잘 인지하고 있었는데, 예를 들어, 병원 놀이를 연구자에게 설명하 며 “가짜로 썩어서 치과 가요.”라고 하기도 하며, 커피 마시는 시늉을 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는 놀이를 하고 있어요. 가짜 놀이에서는 (커피) 마셔도 돼요.”라고 말하며, 놀이 맥락에서의 행위들이 시늉이나 흉내를 내는 것이며, 그러한 가작화를 할 수 있 는 능력이 역할 놀이의 원동력임을 말해주었다. 더군다나 역할 놀이를 잘 하기 위해 서는 어린이들은 또래 친구와 역할을 설정하고 친구의 의견을 수용하고 협상하며 갈 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계속하여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언어적 능력이 필요하기 때 문이다. 역할 놀이는 어린이가 습득한,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적절하고 정교한 지식에 대한 언어적 표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어린이는 문장의 구조, 어휘, 화행 등의 사회언어적 목록(repertoire)을 사용하여 역할 놀이에서 각각의 역할을 적절하게 표현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어린이 또래 집단의 역할 놀이에서의 언어 사용을 관찰함으로 써, 자연 발화에서는 알아내기 힘든 사회적 역할 그리고 그 역할에 대하여 어린이가 가진 암묵적이고 명시적인 지식을 명료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Anderson 1986:
159).
은 상대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형태를 주로 사용한 반면, 남자 아이들은 자신 의 의견을 표명하거나 요구할 때 “~을 해야 한다”, “~을 해라”와 같은 보다 직접 적인 형태를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남자 아이는 아버지의 행동을, 여자 아이는 어머니의 행동을 반영하는 말하기 스타일을 사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Sachs(1987)에서도 다섯 살짜리 어린이들에게 의사와 환자의 역할 놀이를 하게끔 하여, 아이들이 쓰는 명령문, 금지 표현 등의 강요를 유발하는 문 장(obliges) 사용에 대하여 조사하였다. 이 연구에 따르면, 남녀 아동 모두 강요문 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어떤 강요의 표현을 사용하는가에 있어서는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의 선호도는 달리 나타났다고 한다. 남자 아이들은 “병원에 데려 가.”(“Bring her to the hospital.”), “만지지 마!”(“Don’t touch it!”)와 같은 명 령문, 금지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반면에, 여자 아이들은 “네가 환자 할 거 야?”(“Will you be the patient?”), “이제 너를 숨겨줄게.”(“Now we’ll cover him up.”)와 같은 의문문의 형태로 명령하거나 청유형의 표현을 쓰거나 부가 의 문문을 사용한다. 그런데 성 역할에 대한 문화적・언어적 지식은 남녀 성인 화자 간에 나타나는 변이에 대하여 어린이들이 실제로 겪은 경험이 적기 때문에 어린 이들은 성에 대한 고정관념, 즉 성 정형(gender stereotyping)에 보다 많은 영향 을 받는 경향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Schieffelin and Ochs 1986a:
178).
Sheldon(1990)은 놀이 도중 갈등이 발생하였을 때 남아들은 더욱 적대적인 전 략을 사용하여 갈등을 확대시키고 놀이를 지속시키기 보다는 방해하게 되는 반 면, 여아들은 타협을 선호하고 언어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 하며 집단 내의 조화 를 유지하려고 노력함을 보여준다. 이 연구에 따르면, 동성 집단에서 여자 아이들 은 또래 집단 내의 관계를 지속하고 집단의 목표에 부합하려 상호작용을 하는 반 면에, 남자 아이들은 대화 참여자들 중에서 우두머리가 되거나 개인적 목표를 성 취하기 위하여 상호작용을 한다. 그런데 Goodwin(1990)의 연구를 보면, 남자 아 이와 여자 아이들 모두 상대에 대한 이견을 말할 때 명시적이고 분명한 거절을 표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은 관찰되었으나, 싸움을 일으키는 주제나 싸움의 방식에는 젠더에 따른 차이가 있다. 남자 아이들의 언쟁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비 난, 욕설, 명령이 주로 나타났으나, 여자 아이들은 상대방에게 직접적으로 맞서기 보다는 상대방이 없을 때 제3자에게 상대방의 행동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여아와 남아는 놀이에 참여하는 언어적인 전략에 있어
서도 차이를 보여서, 남아들은 놀이에 참여할 때 “내가 ~ 역할 할게. 나도 끼워 줘.”와 같은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접근 전략을 사용하며, 곧바로 놀이에 참 여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에 여아들은 남아들과 비교하여 더욱 복잡한 접근 전략을 활용하는데, 여아들은 놀이에 참여하기 위하여 여러 번의 시도를 해야 하 며 ‘친구’와 ‘우정’의 개념(예를 들어, “우리 친구지, 그렇지?”(“We're friends, right?”))을 언급하는 것과 같은 간접적인 진입 전략을 채택한다(Corsaro 2003:
36-37).
또 한 가지 중요한 연구 주제는 어린이의 감정 사회화에 관한 것이다.
Kyratzis(2001a)는 여아, 남아 각각의 동성 또래 집단의 감정 언어(emotion talk) 표현에 관한 연구이다. 가정에서부터 여아와 남아는 다른 감정의 사회화를 경험하는데, 미국 중산층 사회에서 여아에게 초점이 되는 감정은 ‘슬픔’으로, 슬 픔의 감정을 ‘표현하도록’ 독려되는 반면, 남아에게는 ‘화’의 감정이 중요하며, 화 를 ‘덜 표현하도록’ 독려된다. 남아는 또래 집단에서의 문화적 학습을 통하여 두 려움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런데 두려움과 여성 성은 동일시되어 남아가 여성성을 지니는 것은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한편, 여아 는 또래 집단을 통하여 여성적 특질을 가진 말 표현(예를 들어, 과장된 형용사, 특정 호칭어들, 애칭 등)을 배우며 여아들 또래 관계에서는 거친 말을 쓰는 것과 같은 남성적 자질은 낮게 평가된다. 그리고 (성인의 세계에서 남성 같은 여성보다 여성 같은 남성이 더 회피되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여자 아이들이 남성성을 지니는 것보다, 남자 아이들이 여성성의 특징을 지니는 것이 더더욱 회피되고 가 치 절하된다.
마지막으로 ‘교실’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들의 상호작용 또한 아이들이 성 역할 을 배우는 장이다. Sadker와 Sadker(1985)의 교실에서의 교사-학생 담화 연구 에 따르면,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3배 정도 말을 더 많이 하고, 교사의 질문에 대 한 대답을 ‘외치는’ 경우가 남학생이 8배나 많다. 그러나 남학생에게는 용인되는
‘외치는’ 방식이 여학생이 할 경우에는 용인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한 시각에서, Swann(1998)의 연구에서도 말 순서 취하기나 말 순서 차례의 길이에서 여학생보 다는 남학생들이 대화를 지배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교 사들이 주로 남학생들에게 시선이나 관심을 더 많이 주고, 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게끔 유도하고, 그에 따라 남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다시금 교사의 주 의를 끌게 된다는 점이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수업에 덜 참여하는 여학생들의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