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어린이 또래 세계의 ‘형아’, ‘친구’, ‘동생’이라는 범주화

I. 서론

1) 어린이 또래 세계의 ‘형아’, ‘친구’, ‘동생’이라는 범주화

한국 사회의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연령이라는 사회적 요인이 중요함을 자 녀가 어릴 때부터 알려주고 교육시킨다. 연령이 한국인에게 이토록 중요한 차원 인 것은 ‘상대적인 연령 차이’에 따라, 때로는 ‘절대적인 연령’이 사람들 간의 관 계에서 ‘언어적 높임의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연령(절대적인 연령 과 화자와 청자 간의 상대적인 연령 차이)은 한국어의 언어적 공손을 표현하는 주요한 축인 ‘호칭어’와 그에 공기하는 ‘존댓말’ 선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 문이다. 한국인들의 연령 차이와 그에 따른 언어적 질서에 대한 (특히 연령이 어 릴수록 호칭어의 차원에서) 감각과 실천은 예민한 것이어서, 심지어 아직 연령이 아닌 ‘월령’으로 나이를 말하는 매우 어린 아기의 경우에도 해당될 정도이다. 연 구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면, 연구자의 자녀는 11월생인데, 아이가 20개월 무렵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이듬해 1월에 태어난 18개월짜리 아이의 엄마는 연구자 자녀의 월령을 물어본 뒤, 불과 2개월 차이임에도 태어난 해로 나이를 계

범주 구분

어린이

형아 형・언니・누나・오빠

친구

동생 ‘좀 큰 애기들’

아기 ‘한참 어린 애들’

산하는 한국의 관습에 따라, 자신의 자녀를 향해 “○○야, 언니 있네. ‘언니야, 같 이 놀자’라고 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어머니의 연령에 따른 사회적・언어적 질서에 대한 교육은 한국인이라면 이질적이거나 낯선 것이 결코 아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이 예민한 감각을 키워오며, 또 래와의 사회적 관계가 더욱 활발해지는 유치원 시기의 만3~4세 이후에는 서로 간 의 연령 차이를 인지하고 그에 대한 연령적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어린이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문화적 주제로 떠오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A 유치원의 곳곳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된 비슷한 체격의 서로 잘 모르는 아이들은 서로에게

“몇 살이야?”라고 물어보고 서로 간의 연령 차이를 확인하고 호칭어를 ‘정리’하는 것으로 그 관계를 시작함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1) ‘형아’와 ‘친구’

어린이들의 또래 세계는 ‘어린이’라는 정체성으로 1차 범주화되는데, 이는 앞서 1절에서 논의하였던 바와 같이, 교사나 부모 등의 어른 세계와의 구분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 (2) ‘동생’과 ‘아기’에서 후술할) ‘아기’와의 구분이다. 그리고 이 ‘어 린이’라는 범주는 상대적인 연령 차이에 따라 ‘형아’, ‘친구’, ‘동생’으로 다시 범 주화된다. 이러한 범주 구분에 따르면, 어린이 또래 집단의 사회적 세계는 내부적 시각(emic point of view)에서 다음의 <표Ⅲ-1>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정리 할 수 있다.

<표Ⅲ-1> 어린이 또래 세계의 범주 구분

먼저 아래의 한 여아의 말에 빌어 구체적인 구분법을 살펴보자.

<사례Ⅲ-5>

근우(5세, 남): <연구자에게> “선생님, 양말 고장 났어요. 신어[신겨] 주세요.”

은원(6세, 여): “근우가 선생님보고 신겨 달래요. 선생님, 원래요, 언니랑 누나야 들은요 원래요, 혼자 할 수 있어요. 그런데요∼ 한참 어린 애들은요 엄마가 해주구요. 좀 큰 애기들은요 혼자서 해요.”57)

은원이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하나는 ‘한참 어린 애들’, 즉 ‘아기’, 다 른 하나는 ‘좀 큰 애기들’ 즉 ‘동생’, 마지막으로는 ‘언니랑 누나야들’, 즉 ‘형아’

(・언니・누나・오빠)로 분류하였다(<표Ⅲ-1> 참고). 더욱이 아기, 동생, 형아라는 범주에는 ‘능력’이 상정되어 있어서, ‘언니’나 ‘동생’, 즉 어린이는 (양말을 신는 등) 혼자서 할 수 있으나, ‘아기’는 엄마가 도와준다고 이야기하였다. 여섯 살 은 원이는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동생이지만, 어린이로서 혼자서 양말을 스스로 신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우가 연구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아기처럼 어리광 을 부리는 것이라 보고 이에 대하여 에둘러 비난을 하는 셈이었다.

아이들이 형아, 친구, 동생의 관계를 어떻게 구분하고 이해하는지 그리고 어린 이와는 구분되는 아기라는 범주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관하여 보다 본격적 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례Ⅲ-6>

(해우의 어머니가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인 모녀와 함께 A 유치원을 방문하였 다.)

주원(6세, 여): <연구자에게> “해우는 미국 사람 친구 있어요.”

해우(5세, 여): “친구 아니예요[아니에요].”

57) 유아기 아동의 언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문법적 오류로는 위 사례에서와 같이 (양말을 신겨 달라며) “신어 주세요.”라거나 (옷 입는 것을 도와 달라며) “입어주세 요.”(5세, 여아)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사동문 사용상의 문법 오류’를 들 수 있다. 사 동(使動)이란, 사역동사라고도 하며 ‘행동의 주체가 자발적으로 행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나 물건을 시킴을 행하는 동사’이다. 한국어의 전형적인 사동문은 형용사, 자 동사, 타동사의 어간에 사동 접미사 ‘이’, ‘히’, ‘리’, ‘기’, ‘우’, ‘구’, ‘추’ 등이 결합된 형태의 사동문(예를 들어, ‘어머니가 영희에게 새 옷을 입히었다.’와 같은 문장)과, ‘- 게 하-’의 통사적 구성으로 ‘-게’나 ‘-도록’과 같은 부사절에 ‘하다’ 혹은 ‘만들다’가 연결됨으로써 삽입 절을 가지는 복문 형태의 사동문(예를 들어, ‘어머니가 영희에게 새 옷을 입게 하였다.’와 같은 형태의 문장)이다(남원석 1994: 91-92). 위 사례에서 다섯 살 근우가 “신어 주세요.”라고 하여 미숙한 표현을 한 것과 달리, 은원이는 근 우의 발화의 수정하여 “신겨 달래요.”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여섯 살 은원이는 사동 문의 의미나 기능에 대하여 보다 잘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주원(6세, 여): “언니야?”

해우(5세, 여): “응.”

은원(6세, 여): “나도 언니 있어요.”

주원(6세, 여): <웃음으로 농담의 말 상황임을 알려주며> “한 살[1학년]이야?”

은원(6세, 여): “그럼 튼튼반(만1세 학급)이랑 친구게?”

주원(6세, 여): <웃으며> “응.”

은원(6세, 여): “우리 영민이 언니는 두 살이야. (초등학교) 2학년이니까.”

주원이는 해우에게는 ‘미국 사람 친구’58)가 있다며 연구자에게 이야기를 하는 데, 이에 대하여 해우는 ‘친구가 아니’라고 하였다. 해우의 “친구 아니예요.”라는 말은 친하지 않다는 의미로도 혹은 아동들이 생각하는 친구의 기준, 즉 같은 연 령이 아니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어린이 또래 문화에 외부인이었 던 연구자는 전자의 의미로 해석하였고, 따라서 마음 한편으로는 어른들의 세계 에서는 꽤 무례하게 들릴 수 있는 말로 오해하였다. 하지만 주원이는 그 ‘미국 사 람 친구’가 나이가 더 많은 언니인지를 물었고, 해우는 주원이가 암묵적으로 약속 하고 기대하는 연령 차원의 설명에 기꺼이 동의하는 대답을 하였다. 은원이는 주 원이의 (해우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야?”라는 발화에 집중하여, 대화에 참여하는 소재로 자신의 ‘언니’를 가지고 이들의 대화에 함께 하였다. 그리고 주원이는 은 원이를 대화에 동참시키려는 의도로, (은원이의 언니가) “한 살이야?” 즉 초등학 교 1학년인지 물었다. 주원이의 이 말은 적어도 두 가지의 의도를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데, 첫째 대화의 참여자들에게 농담을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리고, 둘 째 은원이의 언니가 초등학생임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은원이는 주원이가 말하는 연령과 관련한 농담의 말 상황을 적극적으 로 받아들이며 “2학년이니까 두 살.”이라고 웃으며 응수하였다.

<사례Ⅲ-6>의 “친구 아니예요.”라는 말에서 아이들이 또래 세계를 범주화하는 58) 많은 한국인들이 그러하듯이, 본 연구의 아이들도 백인의 외국인을 ‘미국 사람’으로 간주한다. 한국 사회가 점차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역동적인 과정에 있음에도, 몇 특수한 지역 공동체를 제외한 보통의 유치원에서는 단지 몇 명의 다른 민족의 아이들 을 볼 수 있을 뿐이다. A 유치원의 경우에는 부모가 인도인인 어린이가 1명, 아버지 가 미국인인 어린이가 1명이 있었다. 이중 언어(bilingual) 혹은 다중 언어 (multilingual) 사회에서의 어린이 연구들(Garrett 2005; Field 2001; Paugh 2005)에 서 아이들이 ‘다른 민족’이나 ‘다른 인종’ 나아가 ‘다른 언어’를 사회적 범주로 적극적 으로 활용함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본 연구의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유치원 시기 의 대개의 한국 아이들의 그에 대한 지식은 지나치게 ‘모범 답안’이거나 발달하지 못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과정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사례Ⅲ-6>의 해우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 이 학기 초에는 “(내) 친구 아니예요.”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비 록 지난해에 같은 반은 아니어서 다섯 살 그리고 여섯 살의 18명의 아이들은 서 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누구는 무슨 반’이라고 하여 서로 간의 연령 차이에 따라 누가 친구이며 즉 나이가 같으며, 동시에 누가 동생 혹은 형 혹은 언니인지에 대 하여서만큼은 잘 인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아이들 세계에 초심자였던 연구자의

“친구가 아니야?”라는 놀라움의 발화는 아이들이 공유하는 또래 세계를 범주화하 는 미묘한 문화적 규칙을 잘 몰랐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친구 관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다음의 사례들을 통하 여 볼 수 있다.

<사례Ⅲ-7>

(은원이와 지욱이가 복도를 지나 교실로 가고 있는데, 작년에는 같은 반이었던 하권이가 이 두 아동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갔다.)

은원(6세, 여): <지욱에게> “하권이가 인사를 안 한다.”

지욱(6세, 남): <연구자에게> “선생님, 하권이가 우리한테 인사를 안 해요.”

연구자(31세, 여): “하권이가 왜 그랬을까?”

은원(6세, 여): “선생님, 근데 하권이 알아요?”

지욱(6세, 남): “하권이는 다섯 살 때부터 친구.”

은원(6세, 여): “근데 네 살 때는 친구 아니었다.”

위 사례의 두 아동의 대화로부터 ‘네 살 때는 같은 반이 아니었기에 친구가 아 니었고, 다섯 살 때는 같은 반이었기에 친구’라며, 아이들이 친구를 삼는 기준이 란 ‘친밀감’에 일차적으로 바탕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연구자는 아이들의 친구 혹은 우정이란 ‘친밀감’ 즉 같은 반의 구성원임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뒤이어 이어진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아이들이 친구 관계를 맺는 ‘특 정한’ 기준이 존재하여 네 살에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였던 하권이의 속사정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지욱이와 은원이 두 아동은 모두 8월 생으로, (3월 기준으 로) 월령 31개월(‘네 살’)에 만2세 학급(24개월~35개월), 43개월(‘다섯 살’)에 만3 세 학급(36개월~47개월), 55개월(‘여섯 살’)에 만4세 학급(48~59개월)에 각기 소 속되어 왔다. 반면에 같은 해 12월생인 하권이는 (A 유치원 입학 당시) 월령 22 개월(‘네 살’)에 만1세 학급(18개월~23개월), (부적응 문제로 유치원을 잠시 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