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 전통적 가치와 언어적 공손 교육
1) “어른께 존댓말을 사용한다.”: 존댓말을 통한 언어적 공손 교육
제목으로 사용된 “어른께 존댓말을 사용한다.”32)는 2007년 개정 7차 유치원 교 육과정의 ‘언어생활영역’에 새로이 포함된 내용으로, 이전의 6차 교육과정에서는 논의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국가 수준에서 제시하는 교육과정 및 그 내용은 국가가 지향하는 교육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개발된 것으로 유아교육의 현장에 서 실행되어야 할 당위성을 전제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즉 교 육 내용에 대한 일종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연구자는 언어생활영역에 ‘존댓말’
에 대한 내용이 누락되었다가, 다시금 언급된 것에 주목하여, 현대 한국 사회의 어린이들에게 존댓말 습득과 사용이 어린이 언어 사회화에서 현실 사회적 시급성 을 반영하는 중요하고도 강조되어야 할 하나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의 양육자들이 아동의 ‘예의바름’이나 ‘공손’(politeness)의 가치를 이 32) 제7차 유치원 교육과정이 제안하는 “어른께 존댓말을 사용한다.”라는 항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른께 존댓말을 사용한다. 말하기에 있어 상대를 고려할 줄 아는 것 으로, 특히 예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기에 공통 수준으로 제시하였다. 이를 위하여 교사가 모델이 되어 존댓말을 자연스럽게 들려주고 일상생 활이나 유치원에서 어른들을 만나서 존댓말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옆반 선생님이나 원감 선생님, 원장 선생님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 어 주고 유아가 적절하게 존댓말을 잘 사용하였을 때 교사는 긍정적인 격려를 해준다 (교육과학기술부 2007: 73).”
야기할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은 ‘어른에게 예의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 한다. 말하자면, 미국의 중산층 사회에서 (실제의 쓰임은 다를지라도 이상적 교육 의 상은) 아이들은 ‘모든 타인에게’ 친절하게 말하라고 가르치는(Ahn 2007) 것과 는 달리, 한국 부모들이 강조하는 타인에 대한 존중은 성별, 연령, 사회적 직위 등의 구별이 없이 누구든지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혹은 지위가 높은 사람에 대한’ 공경의 의미(“Be polite ‘to whom’.”)(홍용희 2004:
274)로 사용된다. 따라서 어린이들이 자신들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특히 부모 의 말을 잘 듣고 인사를 잘하며 공손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타인 존중’에 해 당되는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양육자들이 지향하는 언어 사회화는, 아이들이 타 인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른 지위 관계(그리고 서로 다른 권력 관계)에 민감해지게 끔 하고, 그것을 언어로 적절하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 그 핵심적 가치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는 어린이들이 나이가 많은 어른들께 예의바르게 행 동하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무릇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라고 보며, 부모 등의 양육자는 이를 바르게 가르칠 책임이 있는 존재로 간주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국어의 ‘언어적 공손’은 여러 가지 언어적 양상 중에서도 ‘존댓말’(honorifics)을 통하여 주로 실현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존댓말의 구조 및 사용 방식에는 어른에 대한 공경이나 예의바름을 중시하는 명시적이고 묵시적인 문화적 지식(cultural knowledge)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어 존댓말의 구조에 대하여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어 존댓말의 종류와 명칭에 관하여서는 국어학자들 간에 논란 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존대의 대상에 따라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주체 존대법’, 상대방 즉 청자를 높이는 ‘청자 존대법’(혹은 상대 존대법) 그리고 목적 어나 객체를 높이는 ‘객체 존대법’으로 나누어진다(이익섭・채완 1999: 333-371 참고). 주체 존댓말은 선어말어미 ‘-으시-’, 주격조사 ‘-께서’와 ‘편찮으시다’와 같 은 특수한 동사 어휘들에 의해 실현된다. 그런데 한국어는 주어인 명사구보다 동 사(그리고 형용사)가 문장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동사 어간과 어미 사이에 선어말 어미 ‘-으시-’를 넣거나 넣지 않는 것, 문장 종결어미에 적절한 동 사 어미를 선택하는 즉 청자 존댓말의 말단계 설정이 존댓말 표현에서 핵심적 역 할을 한다. 한국어 청자 존댓말의 말단계는 이상적으로 또는 최대치로는 ‘합쇼 체’, ‘해요체’, ‘하오체’, ‘하게체’, ‘반말체’, ‘해라체’의 6등급으로 구성된다(이익 섭・임홍빈 1996: 349-365 참고). 청자 존댓말은 말 상황의 현장에 있으나 문장
안에서는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청자를 예우의 대상으로 삼는 경어법이다. 청 자 존댓말은 종결어미를 달리하여 존대의 등급을 복잡하게 조절하고, 그 종결어 미는 서술형, 의문형, 명령형, 청유형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므로 더욱 미묘하 고 복잡하다. 따라서 한국어의 존댓말 중 청자 존댓말을 적절하게 잘 쓸 수 있는 능력은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어 존댓말의 실제 사용에서, 언어적 공손의 정도를 표현하기 위한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인들(social factors) 중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연령’이고, 이외에도 권력(power), 연대감(solidarity) 및 친밀성(intimacy), 친척 항렬, 직장에서의 직위 차이, 성별 등을 꼽을 수 있으며, 또한 상황의 (비)격식성 등도 중요한 요인이 됨은 물론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 사회에서 연령, 특히 상대 적인 연령 차이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y)이다. 한국인은 처음 만났을 때 연령을 묻고 말하며, 그에 따라 서로 간의 지위의 상하 관계를 설정하여 존댓말과 호칭어와 같은 언어적 공손의 정도 를 조절한다. 이처럼 연령은 한국인의 인간관계 질서의 정립에 중요한 축으로 작 동하며, 한국 사회에서 연령적 질서를 이해하고 이에 따라 적절하게 존댓말을 사 용할 수 있는 것은 어린이들이 반드시 함양해야 할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33) 그 러나 이 적절한 존댓말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은 항상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의 사소통 능력의 학습 과제이다. 더군다나 자신과 연령이나 지위 차이가 있는 손위 사람에게 공경과 예의범절이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적으로 적절한 존댓 말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문법적으로 바른 언어 사용을 했는지 여부는 크게 고 려되지 않고, 오히려 올바른 품성과 도덕성이 결여된 것으로 판단되기 쉬우며, 이 에 따라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이 러한 한국 언어문화의 중심 특성을 고려한다면, 아동이 의사소통 능력의 습득 시 기에 확립해야 할 ‘원론적 가치와 인성’(이순형 2009: 538)34)의 중요한 축 하나는 33) 흥미로운 점은, 호칭어와 존댓말 사용에서 대화의 상대가 화자보다 한 살이라도 많
으면 존댓말을 써야 하고 같거나 적으면 반말을 쓴다는 현대 한국 사회 성인들의 사 용 규칙은, 아동 세계에서는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를 테면, 어른들의 (혹은 어른 대 아이 간의) 모델에서 존댓말의 선택이 보다 중요하였다면,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존댓말 보다는 호칭어의 선택과 사용이 더욱 중요하다. 호칭어의 사용을 둘러싼 논쟁들이 아이들의 문화적 세계에서 어떻게 흥미롭게 펼쳐지는지에 대하여서 는 Ⅲ장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34) 이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경우와 달리, 유아기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응답자에 상관없이 유사한 결과를 보인다고 한다. 그것은 부모들의 기대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유아기에는 놀이와 충분한 휴식과 영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 교육 요구를 하는
바로 이러한 영역에서의 의사소통 능력의 학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사와 아동들 간에는 성인 대 어린이라는 지위 상으로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 므로, 그들은 교사는 말을 낮추어서, 아동은 말을 높여서 해야 하는 비대칭적 말 단계(non-symmetrical speech levels) 사용이 원칙인 말 상황에 놓여있다. 해요 체는 합쇼체 다음으로 상대를 정중히 대하는 말단계로, 청자가 자기보다 상위의 사람이거나 혹은 상위의 사람은 아니지만 예우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되는 말씨 이다. 해요체는 오늘날 한국인들의 일상 대화에서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존댓말 의 등급으로, ‘-아요’/‘-어요’, ‘-지요’, ‘-네요’ 등에 의해 실현된다. 그리고 한국 인들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해요체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쓰는 존댓말 영역의 대표적 등급인 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는 비존댓말은 소위 ‘반말’이 대표 적 등급이 된다(이익섭・채완 1999: 359-361 참고).
교사가 아동들에게 사용하는 말단계는 보통 어른이 아동에게 사용하는 단 하나 의 등급, 즉 반말로만 일관되게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어린 아이들에게 어 린이를 존중하는 의미로 그리고 존댓말을 가르치기 위하여 양육자들이 아이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흔히 행하여져 온 언어 사용의 관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해요체를 비롯한 존댓말의 사용에 이미 상당히 익숙한 만3~4세 아이들에게 교사가 존댓말과 반말 모두를 사용하는 것은, ‘교실 상황’이라는 특수 한 말의 맥락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해요체를 쓰는 것 은 그 맥락이 매우 한정적일 터인데, 다만 교육의 현장에서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실 맥락에서 교사는 각기 다른 종결어미들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존댓말에서 반말로, 반말에서 존댓말로 말씨체를 교체해가며(style shift)(Kim and Suh 2007) 사용하였다. 유치원에서 교사는 아이들 전체를 대상 으로 말할 때 해요체를 쓰며, 초등학교 등 상급 학교에서도 교사가 교실에서 수 업할 때 사용하는 말은 대체로 해요체이다.
<사례Ⅱ-1>
담임교사(26세, 여): “어울림~ 오늘 4월 20일이지요? 오늘 선생님이 달력을 보 니까 ‘장애인의 날’이라고 적혀 있었어. 어울림아, 너희들 장애인이 무슨 말인 부모의 수는 적고, 유아기 자녀에게 부모들은 ‘원론적 가치와 인성’이 잘 형성되기를 바란다(이순형 2009: 538)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원론적 가치와 인성’이 무엇 일까? 이순형(2009)에서는 그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힌 바 없지만, ‘부모들이 바 라는 원론적 가치와 인성’이 무엇인지를 규명해나가는 작업이야말로, “한국 어린이의 언어 사회화 연구”의 핵심적인 주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