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3) 학교 사회화: 리터러시 능력과 언어 자본
말하기뿐만 아니라 ‘리터러시’(literacy)16)의 기술(skill)도 언어 사회화의 중요한 연구의 주제라 할 수 있다.17) 리터러시 능력은 단지 기술적인(technical) 것만은 16) (어린이의 리터러시 능력에 대하여서는 Ⅳ장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할 것인데) 이 글
에서는 ‘읽고 쓰기의 능력’을 의미하는 'literacy'를 ‘리터러시’로 개념화하고 표기하였 다. 리터러시는 흔히 문맹(illiteracy)의 반대어로 이해되어, 문식력(文識力) 혹은 문해 (文解, decoding)라 번역되어 왔다. 이때 문식력이란 ‘글자를 안다’ 혹은 ‘글을 안다’
라는 의미를, 문해란 ‘문자를 푼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 두 개념들은 ‘의사소 통을 목적으로 하는 문자언어의 사용 능력’이라 해석된다(이차숙 1995: 135). 그런데 리터러시 능력을 읽고 쓰는 능력으로 한정한다면, 문헌을 읽고 쓰는 활동만을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되어 이해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문어적인 활동과 그에 관련된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 가치관, 기대 그 모두를 포함하는”(Schieffelin and Ochs 1986a: 180) 의미로서 ‘리터러시’라는 용어를 재개 념화화여 사용하고자 한다. 참고로 유네스코 2003년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리터 러시는 ⑴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 ⑵ 말하는 능력(oracy), ⑶ 셈하는 능력 (numeracy), ⑷ 컴퓨터를 쓸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한다(www.unesco.org의
‘Literacy for Life’참고).
아니며, 읽고 쓰기의 학습, 리터러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믿음, 가치관은 언어 사회화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Schieffelin and Ochs 1986a: 180). 리터러시 능력은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현상으로(Schieffelin and Gilmore 1986: viii),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배우고 가르치는지 와 같은 상황적 맥락(situational context)이 존재한다. 따라서 리터러시의 실천 또한 그것을 둘러싼 사회 성원들의 문화적 지식을 반영하는 사회적 행위이며, 리 터러시와 관련한 일련의 특정한 실천들은 언어 사회화와 관련한 사회 성원들의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준다(Garrett and Baquedano-Lopez 2002: 351).
이제는 (교육) 인류학 연구의 고전이 된 Shirley Brice Heath(1986)의 연구는 잠자기 전에 읽어주는 동화책과 관련한 이야기(‘bedtime story’)라는 말 사례를 중심으로, 미국 남부의 백인 중산층 공동체, 백인 노동자 계층 공동체, 흑인 노동 자 계층 공동체를 비교 연구하였다. 백인 중산층 사회에서 어린이는 읽기 자료를 통하여 중산층의 관습, 믿음 등을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그 중 하나가 잠들 기 전의 책 읽어 주기 활동이다. 어린이는 부모가 읽어주는 책의 이야기를 듣고, 책 내용을 ‘이해’하여 다시 스스로 말로 구성하는 방식 그리고 책 내용에 대한
‘감상’을 표현하는 방식을 배운다. 달리 말하여, 잠들기 전 동화책을 읽고 듣는 활동을 통하여, 아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언어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배운 다. 이와 같이 어머니와의 일상의 규칙적인(regular) 리터러시 활동을 통하여 그 능력을 기른 아이들은 학교에서의 복잡하고 어려운 언어도 무난하게 이해할 수 있고, 이는 학교 생활의 성공 여부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다.
17) 리터러시의 학습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는 본고에서 논의하는 바와 같이, 주로 가정 에서의 언어와 교실 언어의 (불)연속성을 다룬 연구가 하나의 큰 주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연구 주제는 문자가 없는 사회에 서구식 문자 교육의 도입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Duranti와 Ochs(1986)는 전 통적으로 무문자 사회(nonliterary society)인 Samoa 사회에 리터러시 교육이 끼친 영향의 결과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Samoa 사회에 문자 체계가 도입되고 읽기 자료 를 통한 학교 교육이 보급된 결과, 집단적 성취를 중시하던 Samoa의 문화적 가치 관은 개인의 성취 중심으로 변화하였으며, 이는 곧 사람들의 정체성이 변화하였음을 의미한다. 리터러시 교육으로 대표되는 학교 교육이 Samoa 사회에 미친 또 다른 영향은 전통적인 어른-아이의 관계의 변화와 관련한 것이다. 엄격한 위계질서가 사회 의 기본적 질서로, 지위와 역할에 따른 언어 사용을 중요시하는 ‘상황 중심의 사회화’
의 모습을 보이던 Samoa 사회는, ‘어린이 중심의 상호작용’이라는 서구 사회의 모 습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연구에서 볼 수 있다시피, 리터러시 교육은 단지 문자에 대한 교육의 보급이나 확대의 차원을 논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가치관 등 의 더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반면에 백인 노동자 계층의 부모들은 자녀가 밤에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주 기는 하지만, 읽어주고 난 후 아이에게 반응을 이끌어 내는 방식에 있어 중산층 의 그것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어른은 어린이에게 이야기책을 읽어주지만 어려 운 내용은 짧게 요약하여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어린이는 책의 내용을 이해했는 지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으며, 오히려 조용히 듣고 있을 것이 기대된다. 그 결과 노동자 계층의 아이는 중산층의 아동이 할 수 있는, ‘여기’와 ‘지금’(here and now)이 아닌 것에 대하여서 말할 수 있는 능력, 즉 교실 맥락에서 긴히 요구되는 리터러시 능력인 상황을 가정하는 능력과 책의 고도로 맥락화된 이야기를 탈맥락 화 시켜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흑인 노동자 계층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읽기 자료, 잠들기 전의 동화책 읽어주기라는 양육 실 천의 관행이 대체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듯 초기 학교 사회화의 경험, 즉
“배우기를 배울 수 있는 능력”(사빌-트로이케 2009: 376)을 가정에서 경험하지 못한 이들 아동의 학교 생활은 가정과는 다른 ‘단절’, 즉 교실과 가정의 ‘불연속 성’(discontinuity)을 경험하는 것이므로 힘겨울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백인 중 산층 가정의 동화책 읽어주기 활동을 통한 문자 교육은 학교 교육으로 연결되지 만, 백인 노동자 계층, 흑인 공동체의 자녀들의 경우에는 가정(혹은 지역 공동체) 에서 받아온 언어 교육과는 다른 말하기 양식을 교실 상황에서, 교사와의 관계에 서 ‘새롭게’ 배울 것이 요구된다. 때문에 백인 노동자 계층이나 흑인 공동체 부모 들이 사회적 상승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학교 교육을 열렬히 지향하면서도 정작 그만큼의 성취는 일구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을 Cochran-Smith(1986)의 연구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학 교의 교육 환경과 유사한 환경을 가진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텍스 트에 대하여서 문화적으로 유형화된 말하기 방식을 학습한다. 그리고 이것은 리 터러시의 성공적 학습과 학교에서의 성취를 모두 거둘 수 있게끔 도와준다. 가정 에서 부모들은 의도적으로 리터러시 교육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어린이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일상적인 유형 중 하나로 부모와의 리터러시 활동에 참여한다. 이는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련의 활동으로 구성되는데, 이것은 일상 적이면서도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가정에서 부모는 어린이의 의사 소통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자녀의 수준에서 이해가 가능한 텍스트를 활용하 고, 그 텍스트를 둘러싼 풍부한 리터러시의 경험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이는 부모와의 언어적 의사소통에서 대화, 말 순서 취하기, 내러티브
(narrative)에 대한 문화적으로 특수한 모델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다시 말하여, 미국 중산층 사회의 부모들은 대개는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적 장난감을 제공 하고, 그들의 발달을 촉진하는 일련의 기제들(이를 테면, 책 읽어주고 질문하고 답하기)을 활용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이러한 실천들은 아이들을 가정에서 학교 생활로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이는 학교에서의 성공을 전제한다.
Snow(1983)는 어머니-자녀의 쌍이라는 양자적 모델을 통한 중산층 어린이의 리터러시 능력의 발달과 학습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어머니는 자녀와 대화를 하 며 사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대답하게 하고, 틀리게 말하는 것을 교정해 주며, 모 르는 단어의 철자를 가르쳐 준다. 또한 어머니-아동의 쌍이라는 양자적 관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어머니와 아이 간의 ‘공유하는 역사’를 형성하는 대화를 함으 로써, 아이는 과거의 사건, 공유하는 사건에 대하여 현재의 맥락에서 설명하는 방 식을 연습하고, 이는 학교 생활의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Levy(1975)의 연구에서 도 미국 중산층 아동의 언어 사회화에서 어머니-자녀의 쌍이라는 상호작용의 유 형이, 학교 맥락에서 교사-아동의 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볼 수 있다. 미국 중산층 문화에서 ‘학습’이란 교사에 의해 제시된 과제를, 학습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이는 성공 혹은 실패로 분류된다. 성공하였을 경우 보상이 주어지고, 주어진 보상은 아이에게 ‘감정적으 로’ 중요하다. 중산층의 어린이는 가정의 교육과 학교 교육에서 학습이 연결되는 형태, 즉 어머니-자녀의 쌍이 교사-학습자의 쌍이라는 유사한 형태를 경험하며 커간다. 따라서 이러한 학습의 유형에 익숙한 중산층 어린이들이 다른 계층 어린 이들보다 학교 생활에 더 잘 적응하고, 더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중산층 가정과 비 중산층 가정에서의 책과 그에 관련된 내 러티브 활동의 실천에 대한 비교 연구(Heath and Branscombe 1986)에 따르면, 어린이는 어머니가 읽어주는 책의 내용을 듣고, 책과 관련된 말하기 방식을 배운 다. 그러나 각 가정에서의 실천에 따라 2~3세 아동의 내러티브는 서로 다른 모습 을 보인다. 어른과 어린이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언어적 상호작용은 매우 중요하며, 어린이는 부모와의 책 내용에 대한 내러티브 활동을 통하여, ‘시간적 순서’에 따라 말할 수 있고 적절한 ‘추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이 연구 에서는 텍스트와 어린이 리터러시 능력의 ‘접합점’으로 어머니와 자녀가 책에 대 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꼽는다. 이때 자신의 아이가 언어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즉 학교에서 성취를 이룰 수 있도록 비계 설정을 해주는 어머니의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