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1) 어린이 말단계의 구분: 존댓말과 반말
연구 대상 아이들이 사용하는 존댓말, 특히 청자 존댓말(addressee honorifics)의 말단계는 주로 어른에게 사용하는 해요체 중심의 존댓말과 또래 간의 반말체라는 두 개의 말단계가 주축을 이룬다. 이를 먼저 지시적 의미로는 동일하지만 청자에게 전달하는 존대의 면에서는 서로 다른 예문들을 제시하면 다 음과 같다.
게다가 아이들은 엉덩이(그리고 배설 행위로서 ‘방귀’나 ‘응가’), 욕, 성(性)이나 터부 (taboo)(가령 성기에 관한 이야기, 임신과 출산 등)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만 으로도 킥킥대며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예를 들면, 다섯 살 여아 시은이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요구르트가 간식으로 나오자, “다음에는 포도 주스, 토마토 주스 ‘나왔 으면’ 좋겠다.”라고 하자, 이 말을 들은 다섯 살 남아 혜준이는 “시은아, 이원이가 너 아기 ‘낳으면’ 좋겠대.”라고 하는 ‘나왔으면’을 ‘낳으면’이라고 바꾸는 발음의 유사성 에 바탕한 말놀이를 시도하였다. 또 다른 사례로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며 발음상으로 는 ‘나쁜 말’ 즉 ‘욕’으로 들리는 “♫ 새끼[shake it, /쉐킷/이 아닌 /새끼/로 발음 됨]~ 새끼[shake it]~” 라고 노래하며 놀다가도, 엄한 눈빛의 교사와 눈이 마주치면
‘새끼’ 대신에 (발음상으로는 완전히 달라지지만 의미상으로 유사한 표현인) “♫ 애 기~ 애기~” 라고 하며 가사를 바꾸어 노래를 하기도 하는 식이었다. 이렇듯 아이들 은 어른 세계의 그것을 활용한 말놀이로서 웃음을 공유하고, 교사 등의 어른은 결코 끼어들 수 없는 서로 간의 비밀스러운 우정을 이어나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서술형
집에 갑니다.
집에 가요.
집에 간다요.
집에 가.
집에 간다.
집에 간디.
서술형의 ‘집에 갑니다’, ‘가요’, ‘간다요’는 ‘존댓말’로 주로 어른과의 관계에서 사용되고, ‘집에 가’, ‘간다’, ‘간디’의 ‘반말’은 아이들 또래 간 관계에서 사용된 다. ‘갑니다’와 같은 ‘-습니다’라는 말씨보다는 ‘가요’와 같은 해요체가 보다 일상 에서 자유롭고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인데, 다만 ‘–습니다’라는 종결어미는 인사말 과 같은 관용적 표현이나 역할 놀이에서 사용되는 경향을 보였다(가령 “고맙습 니다.”와 같은 인사, (택배 놀이에서) “택배 왔습니다.” 등68)). 그리고 이 ‘-습니 다’의 말을 할 때에는 일상의 말과는 다른 특유의 억양 등이 항상 같이 표현되었 다. 다음으로 반말을 보면, ‘집에 가’, ‘간다’, ‘간디’의 세 형태를 볼 수 있다. 이 는 엄격한 의미로는 ‘가’는 해체, ‘간다’는 해라체, ‘간디’는 해라체 중의 하나로 부산 방언의 특수한 종결어미로 세분할 수 있겠다. 그런데 본래적 의미의 반말 (즉, 해체)이란 해라체와 미묘한 등급의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상대에게 해라체 로 완전히 말을 놓을 수가 없어서 상대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할 때 주로 사용 된다. 다시 말하여, 높이기는 아깝고 낮추기는 불편한 상대에게 상대를 높이는 것 도 낮추는 것도 아닌 중의적인(ambiguous) 말하기 방법(Wang 1984: 92-93)을 일컫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반말’이란 ‘존댓말’에 대응하는 ‘반 말’의 의미로 쓰이는 만큼, 본고에서는 (해체와 해라체가 청자에게 전달하는 존대 의 수준 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연령 차이가 있는 아동 서로 간에 대칭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말단계로 보고 이러한 넓은 의미에서 ‘반말’이 68) 의사소통 발달 과정에서 대부분은 수용 능력(receptive competence)이 산출 능력 (production competence)을 앞서지만, 일상적 표현(routines) 및 관습적 공손 표현 (polite formulas)의 습득에서는 대부분 그 반대이다. 아이들이 관습적 공손 표현을 포함하는 의례 능력(ritual competence)을 습득하는 과정은 아이들이 행위자로서 갖 추어야 하는 특성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사회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빌-트로이케 2009: 356).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의문형
집에 갑니까?
집에 가세요?
집에 가요?
집에 가?
집에 가나?
명령형
집에 가세요.
집에 가요.
집에 가라요.
집에 가.
집에 가라.
집에 가리.
청유형
집에 갑시다.
집에 가요.
집에 가자요.
집에 가자.
의문형과 명령형, 청유형에서도 앞선 서술형과 같이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말단 계의 구분이 이루어짐을 똑같이 볼 수 있다. 의문형과 명령형 예문에서는 서술형 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해요체에 주체존대의 선어말어미 ‘–으시-’가 포함된 “집에 가세요?”, “집에 가세요.”와 같은 문장의 예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으시-’
는 아이들이 조사 ‘-요’를 붙이는 존댓말을 배우기 시작한 바로 그 다음에 배우는
서술형 의문형 명령형 청유형
존 댓 말
-습니다 -습니까? ・ -합시다
・ -으세요? -으세요 ・
-아요 -아요? -아요 -아요
-다요 ・ -라요 -자요
반 말
-아 -아? -아 ・
-는다 -나? -아라 -자
-디 ・ -리 ・
존대 표현으로 알려져 있으나(이귀옥 1997), 이곳의 아이들은 교사나 다른 어른들 에게 이 표현을 적절하게 사용하기보다는, ‘-습니다’와 마찬가지로 인사말이나 역 할 놀이에서(가령 “안녕히 가세요.” 등)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 기서 논의하지 않은 서술형, 명령형, 청유형의 존댓말 중 ‘–다요’, ‘-라요’, ‘-자 요’ 그리고 서술형, 명령형 반말의 ‘–디’, ‘-리’는 각기 아래의 2)항과 3)항에서 자세히 기술하기로 하겠다.)
이처럼 아이들의 청자 존댓말은 ‘-으시’의 삽입과 관련한 차원 그리고 ‘–다요’
와 같은 특수한 표현을 일단 제외한다면, 존댓말로서의 ‘해요’체와 ‘–습니다’ 그 리고 반말이라는 세 가지 말단계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청자 존댓말 의 등급에 대하여 성인들의 언어문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표현 외에, 어린이 또래 문화 특유의 민간 명칭 및 표현들(folk terms and expressions)은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언어적 공손’을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예 쁘게 말하다’와 그 반대 표현인 ‘미운 말’, ‘나쁜 말’, ‘못난이 말’ 등의 민간 표현 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여, 어울림반 만3~4세 아이들의 말단계의 구분과 각 단계 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종결어미는 다음의 <표Ⅲ-3>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표Ⅲ-3> 어린이들의 말단계 구분과 대표적 종결어미
주지하다시피 위의 존댓말은 역할 놀이 등 특정 맥락을 제외한다면 교사와의 관계에서 주로 사용된다. 그런데 연령 차이가 있는 또래 간의 말단계 선택에 대
하여서는 논의가 조금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른의 시각에서는 같은 유치원 에 다니는 네 살 ~ 일곱 살 아이들이 서로 간에 반말을 자유로이 주고받을 수 있 다고 단정할 수 있을지라도, 아이들의 실제의 삶의 맥락에서는 말단계의 선택은 어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연령 차이 혹은 지위 차이 그리고 친밀감 등의 사회 적・심리적 요인이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형’과 ‘친구’, ‘동생’으로 범주화되는 어울림반이라는 사회적 세계에서는 반말 이 서로 간에 사용되었다. 그런데 어울림반 내에서 다섯 살 아이들, 여섯 살 아이 들은 동일한 말 등급, 즉 반말을 서로 주고받았지만, 어울림반 바깥의 일곱 살이 나 네 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말단계의 선택이 약간 다른 양상을 보였다. 이 를 테면, 일곱 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어울림반의 다섯 살 아이들, 여섯 살 아이 들은 말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못하여 우물쭈물하기도 하였고, “안녕하세요?”, “고 맙습니다.”와 같은 인사말을 쓰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운동회나 학예회 연습을 할 때 일곱 살 아이들과 여섯 살 아이들이 짝을 지워 하는 활동이 끝난 후 “어울 림반 동생들을 가르쳐 준 형아들한테 ‘고마워’ (라고) 하세요.”라는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고마워.”라고 바로 말하지 못하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보다 정확하게는 어떤 말단계를 선택할지 몰라서) 아무 말도 없이 딴청을 피우거나 혹 은 “고맙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는 일곱 살이 유치원에서 가장 상 위 연령으로 형아라는 일곱 살 아이들 스스로도 인지하는 자부심과 하위 연령 아 이들의 그들에 대한 외경심 등에 부분적으로 기인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 다. 담임교사가 연령 차이가 있는 아이들도 동일한 말단계를 주고받는 대칭적 말 사용이 전제되는 동질적 또래 집단인 것으로 상정하는 것과는 달리, 연령 차이가 있는 아동들 간의 심리적 거리감은 서로 다른 말단계의 사용으로 표현되는 것이 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호칭어는 연령 차이에 기초하여 서로 간에 부르고 불리워야 하는 고정된 정답이 존재하는 말의 영역인 반면에, 아동 간의 존댓말의 사용은 연령 차이라는 사회적 요인 이외에도 아동 간의 친소 관계에 지대한 영향 을 받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아이들이 심리적 거리감에 따라(혹은 친밀감의 강도에 따라) 다른 존댓말의 형태를 사용해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문화 적 지식을 습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함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