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변화 범주 동사의 의미 유형 구분의 실제
3. 동사 의미 유형의 등급화 원리
3.1. 의미의 추상성 정도
‘팔다’의 대상으로 쓰인 ‘명의나 명분’과 같은 추상적인 대상은 그 동작의 주체가 해 당 대상의 가치를 이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앞선 ‘사다’에서 그 대상의 가치 를 이용하는 경우와 유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즉,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사용 가 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탈되었다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여 그 대상의 가치가 감소되었거나 없어짐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끝으로 (4)의 경우 비록 특수한 용법이기는 하나, 주어가 돈을 주고 쌀을 구입하였으므로, 실제적 으로 대상으로 쓰인 ‘쌀’이 아닌 ‘돈’이 주어에서 없어짐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다의어의 의미확장은 원형의미의 용법을 다른 ‘국면’(facet)에 적용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이네(Heine, 1991: 48)는 개념영역의 일반적인 확장 방향을
‘사람>대상>활동>공간>시간>질’과 같이 나타내는데, 이는 개념이 비유적으로 확장 될 경우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대상’, ‘활동’, ‘공간’, ‘시간’, ‘질’의 차례로 나아감을 뜻한다. 이를 바탕으로 임지룡(2009: 211-4)은 의미 확장의 양상을 다음의 여섯 가지 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첫째, <사람 → 짐승 → 생물 → 무생물>의 확장이다. 여기서 확장의 기준점은
‘사람’이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생존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사람’에게 사 용된 낱말을 이용하여 ‘짐승’, ‘생물’, ‘무생물’로 확장한다. 예컨대, ‘먹다’라는 동사는
‘사람이 음식물을 먹는 행위’에서 ‘짐승이 먹이를 먹는 행위’로 확장되며, ‘물기를 머 금은 잎새’에서처럼 생물로 확장되며, ‘{기름/풀} 먹은 종이’에서처럼 무생물로 확장 된다.
둘째, <구체성 → 추상성>의 확장이다. 여기서 확장의 기준점은 ‘구체성’인데, 이 를 바탕으로 ‘추상성’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컨대, ‘밝다’의 경우를 보면
‘빛’을 중심으로 ‘색 → 표정 → 분위기 → 눈/귀 → 사리’의 밝음으로 확장된다.
셋째, <공간 → 시간 → 추상>의 확장이다. 여기서 확장의 기준점은 ‘공간’인데, 이는 우리가 가장 쉽게 지각할 수 있는 범주이며, 이를 바탕으로 시간성, 추상성으로 진행된다.72) 예컨대, ‘짧다’라는 낱말은 ‘길이’의 척도인 “연필이 짧다”에서 “시간이 짧다”, “경험이 짧다” 등으로 확장된다.
넷째, <물리적 → 사회적 → 심리적> 확장이다. 여기서 확장의 기준점은 ‘물리적’
공간인데,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심리적 공간으로 진행된다. 예컨대, 다음의 ‘-에 있 다’는 세 가지 존재방식이 이 과정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 ㄱ. 그는 서재에 있다.
ㄴ. 그는 대학 연구소에 있다.
ㄷ. 그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다.
72) 이와 관련하여 기본(Givón, 1979: 314-7)은 우주를 분류하는 데에 쓰이는 의미자질을 구체적, 시간적, 추상적으로 나누어 그 내포관계를 ‘공간>시간>추상’으로 진행됨을 보 이면서, 통시적으로 공간적 의미는 시간적 의미로 전이될 수 있고, 시간적 의미는 추상 적 의미로 전이될 수 있으나 그 각각의 역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섯째, <일반성 → 비유성 → 관용성>의 확장이다. 이 경우 확장의 기준점은 ‘일 반성’이다. 언어는 일차적으로 글자 그대로의 용법을 중심을 쓰이며, 이차적으로 비 유성을 획득하는데, 비유가 한층 굳어져서 관용성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예컨대, 위 의 ‘짧다’에서 “연필이 짧다”는 글자 그대로의 일반적인 표현이며, “경험이 짧다”는 추상적인 비유표현이며, “입이 짧다”는 관용표현이 된다.
여섯째, <내용어→기능어>의 확장이다. 어휘적 의미를 갖고 있는 ‘내용어’(content word)는 ‘기능어’(function word)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의미 표백 화’(semantic bleaching)라고 한다. 예컨대, 보조용언이나 조사 ‘부터’, ‘조차’ 등은 내 용어에서 기능어로의 의미 표백화 과정을 보여 준다.
요컨대, 인간의 인지 원리는 ‘사람·구체성·공간·물리적·일반성·내용어’ 등을 중심으 로 하나의 기본의미에서 의미의 확장이 일어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다의어가 형성 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앞선 절에서 분석한 동사들 중에서, ‘가다’, ‘오다’, ‘오르다’, ‘내리다’
의 동사들은 그 의미에 지향적 은유가 적용됨을 확인하였고, ‘주다’, ‘받다’, ‘사다’,
‘팔다’의 동사의 경우에는 그 의미에 존재론적 은유가 적용됨을 확인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은유에 대한 인지적 이해에 정도성의 차이가 있다고 보고, 이들 은유적 의미 에 대해 난이도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인지적 난이도의 설정은 결국 개념적 은 유의 목표영역의 추상성 정도와 관련될 것으로 보이는데, 목표영역의 추상성을 보이 기 위해 앞서 구분한 동사의 의미 유형들을 다시 가져오기로 한다. 동사 ‘가다’의 경 우, 본고는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구분하였다.
공간변화: 한국에 가다 시간변화: 시간이 가다
상태생성: 손해가 가다, 이해가 가다, 주름이 가다, 금이 가다, 정이 가다 상태유지: 평생을 가다
상태도달: 소식이 가다 상태소멸: 전깃불이 가다
위와 같이 동사 ‘가다’는「변화는 이동」의 은유에 의해 다양한 유형의 변화 관련 의미가 생성되는데, 이들 의미는 공간변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간변화, 상태변화로
그 개념영역의 범위가 확장된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서 공간변화의 의미는 문자적 의미로 그 의미 이해에 있어 별다른 어려움이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타의 은유적 의미의 경우는 그 이해에 있어 정도성의 차이를 보일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 서 이들 은유적 의미는 그 추상성 정도에 따라 시간변화의 의미를 일차적 은유, 즉 은유성이 낮은 의미로, 상태 변화의 의미를 이차적 은유, 즉 은유성이 높은 의미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의 ‘가다’의 의미 구분에서 알 수 있듯이, 시간변화의 의미는 하나의 의미로 구분되지만, 상태변화의 경우 그 의미는 ‘상태생성’, ‘상태유 지’, ‘상태도달’, ‘상태소실’과 같이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는 ‘변화’ 개념의 전반적인 단계에 대한 구분과 일치하는 것으로,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가 유지되며, 그러다가 특정 상태에 도달하게 되고, 최종에는 그 상태의 소실로 이어지는 변화의 모든 단계를 동사 ‘가다’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태변화의 의미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은유적 의미들을 교육할 경우 이들의 난이도를 어떻게 식별하여 제시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 의 미는 모두 상태 변화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는 그 의미의 은유성 즉 추상성의 정도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의미를 배우는 외국인 학습자들의 경우, 이들 의미의 이해 난이도는 동일하다고 판단하기는 어려운데, 이는 학습자의 모국어 에서 대응되는 낱말의 의미에 상태 변화의 구체적인 양상의 의미가 존재하는 경우에 는 해당 의미의 이해가 쉬울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려울 수가 있다. 따 라서 본고는 동일한 개념영역의 의미라 할지라도 학습자 모국어에서 대응되는 낱말 의 의미와 대조를 통해 그 난이도를 구분하고자 한다. 즉, 학습자 모국어의 대응되는 낱말에 해당 의미가 존재한다면 그 의미는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판단하 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 의미의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판단하고자 한 다.
3.2. 학습자 모국어와의 대응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