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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합의와 규범적/비규범적 이유들

I. 원초적 입장의 계약론적 정당화 논변

2. 가상의 합의와 규범적/비규범적 이유들

약한 해석에서 원초적 입장은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구성해내고, 그것

이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가장 합당한 정의관일 것이라는 추정을 근거짓 는다. 정의관의 합당성을 최종적으로 근거짓는 것은 반성적 평형이지만, 원초적 입장 또한 정의관의 정당화에 상당 부분 기여하게 된다. 그것은 원초적 입장이 무지의 베일에 힘입어 자유롭고 평등한 도덕적 인간의 관 점을 반영하는 공정한 절차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롤스는 이러한 생 각을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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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2-273). 하지 만 본 논문은 롤스의 이러한 자기 이해와는 달리 가상의 합의 절차라는 관념은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정당화에 기여하는 바가 없음을 보이고자 한다. 이것은 무지의 베일이 롤스가 기대하는 역할을 해줄 수 없다는 점 에서 기인한다.

무지의 베일은 원초적 입장의 당사자들의 합의의 과정에서 우연성에 대한 지식을 배제하는 인지적 조건으로 기능한다. 이것은 이성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방해물은 합의 결과를 각인의 사적 목적에 따라 왜곡하려는 경향성에 있다는 것, 따라서 무지의 베일을 통해 경향 성이 작동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이성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롤스에 따르면 무지의 베일은 당사자들로부터 타율적 원칙 을 선택하게 하는 지식을 빼앗음으로써 자유롭고 평등한 이성적 존재자 로서 자율적 원칙을 선택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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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 하지만 이러한 배제의 원리는 칸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엇이 가장 합당한 정의관인지에 대 한 앎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자율적 주체가 전제될 경우에만 작동할 수 있다. 일상적인 도덕 의식의 영역에서 합당한 정의관에 대한 암묵적 지 식이 이미 확보되어 있을 경우에만, 무지의 베일은 경향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앎을 재확인하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것이 없다면, 무지의 베일은 명백하게 사적 목적을 추구하는 정의관들을 배제하는 소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우연성에 대한 인식의 배제만으로는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된 정의관의 타당성을 근거짓는데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수 이 익에 의한 왜곡은 정의관이 타당성을 결여하게 되는 여러 이유들 중 하 나에 불과하다. 그것은 사적 목적의 추구에 의해 왜곡된 것은 아니지만

정의의 본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초해 있어 이론 내적으로 문제를 가질 수도 있고, 사회 현실에 맞지 않아 모두에게 해악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의도의 순수성만으로는 정의관의 타당성을 근 거지을 수 없으며, 정의관의 정당화는 무지의 베일에 따라 우연성에 대 한 인식을 배제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Seung, 1993: 19).

결과적으로 무지의 베일은 정의관에 대한 과소 결정의 문제를 발생시 키게 된다. 무지의 베일이 요구하는 특수 이익에 의한 왜곡의 배제 및 도덕적 인격에 대한 평등한 존중이라는 조건은 대안으로 진지하게 고려 되는 정의관이라면 무엇이든 만족시킬 수 있는 것으로서, 이것을 충족하 지 못하는 것은 이기주의적 정의관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 지의 베일은 그것을 통과한 여러 대안적인 정의관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 려줄 수 없다(Seung, 1993: 94; Timmons, 2000: 400-401).

무지의 베일의 이러한 문제점은 공정으로서의 정의, 즉 정의에 있어 근본적인 관념은 공정성이라는 롤스의 생각이 갖는 한계를 반영한다. 공 정성과 불공정성은 모순 개념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불공정한 것을 배제 하는 것만으로도 공정한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불공정한 것을 배제한 다고 해서 곧 정의로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가상의 공정한 합의 절차를 통해 정의관을 정초하겠다는 기획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 준다.

2) 정의의 두 원칙을 지지하는 논증(1): 『정의론』(1971)의 경우

무지의 베일은 원초적 입장을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들 중 규범적 내용 을 갖는 거의 유일한 조건으로서, 당사자들의 상호 무관심한 합리성을 비롯한 여타의 조건들은 약정된 것이거나 한갓 사실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정의의 원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 그러 나 무지의 베일이 과소 결정의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롤스는 원초 적 입장에서 공리주의적 정의관이 아닌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선택되어야

할 이유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일종의 약정이나 한갓 사실에 호소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정의의 두 원칙의 선택을 지지하는 논증에서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 나는 당사자들이 자유의 우선성의 원칙을 받아들임으로써 평등한 기본적 자유를 공리주의에 따른 이득의 계산에 내맡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이 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조정에 있어 당사자들 이 평균 효용의 원칙이 아니라 최소 극대화의 규칙을 선택할 이유가 있 다는 점을 보이는 것이다. 롤스는 이 두 가지 논점과 관련하여 원초적 입장의 공리주의적 정의관이 아닌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택해야 할 이유 로 다음의 세 가지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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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4-135; 181-183).

첫째, 무지의 베일은 당사자들이 어떠한 사회 안에 있게 될지 그리고 그 사회 안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게 될지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기 때문 에, 당사자들은 각각의 위치를 얻을 확률에 기댓값을 곱하여 총합을 구 하는 방식으로 평균 효용을 계산할 수 없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평균 효 용의 원칙에 따라 기본적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될 평균 효용을 예 상할 수 없으며, 불확실성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둘째, 당사자들은 공리 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얻게 될지 모르는 이익이나 손실을 감수하려고 하 지 않으며, 정의의 두 원칙에 따라 평등한 기본적 자유 및 자유의 우선 성을 보장받고 최소 극대화의 규칙에 따라 얻게 될 기본 가치에 만족하 는 것으로 상정된다. 정의의 원칙이 최종성(finality)의 조건을 만족시키 는 영구적인 헌장으로서 후손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 하면, 모험을 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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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6). 롤스는 불확실성의 상 태에서 당사자들이 고려해야 할 이러한 조건을 ‘공약의 부담(strains of commitment)’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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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셋째, 공리주의적 정의관은 상당한 정도의 자유의 침해를 포함하여 다른 이들의 보다 큰 이익을 위해 적은 몫에 만족할 것을 요구하는등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대안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당사자들은 정의의 두 원칙이라는 합당한 대안을 두고 공리주의적 정의관을 취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이유를 검토해보면, 무지의 베일이 공정으로서의 정의

를 정당화하는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리주 의적 정의관 또한 특수이익을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정의의 두 원칙과 동 일한 조건 하에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와 관련하여 무지의 베일은 당사자들이 처하게 될 사회에 대한 정보를 차단함으로써 공리의 계산을 불가능하게 하는데, 이 경우 그것은 공리주의적 정의관이 선택되어서는 안 될 규범적 이유를 제공하 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리의 계산을 가로막는 임의적인 약정으로 기능하 고 있다. 원초적 입장이 공리의 계산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재구성 되는 것을 막을 규범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Care, 1969: 91).

두 번째 이유와 관련하여 당사자들의 모험을 피하는 합리성이라는 조 건은 단지 원초적 입장이라는 가상의 장치 안에서 정의의 두 원칙을 선 택하게 하는 정황적인 이유에 불과하다(Waldron, 2015: 60). 합리적 선택 이론 안에서는 불확실성이 지배적인 경우 최소 극대화의 원칙을 선택하 여 모험을 피하는 합리성을 채택하는 것이 합당할 수 있지만, 이러한 한 갓 사실이 정의의 두 원칙을 선택하게 하는 규범적 이유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세 번째 이유와 관련하여 공리주의적 정의관보다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시민들의 평등한 기본적 자유 및 기본 가치의 합당한 몫을 더 확실하게 보장하는 안정적인 대안이기 때문에 상대적 우위를 갖는다는 롤스의 주 장은 계약론의 형식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정의의 두 원칙 을 지지하는 규범적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든 가상의 합의 절차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그것을 지지하는 근거로 제시될 수 있다. 정의의 두 원칙이 공리주의적 정의관에 비해 평등한 기본적 자유를 보다 확고하게 보장한다는 주장은 반드시 원초적 입장에 기초하여 전개될 필요가 없고, 원초적 입장에 의해 더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 여 부를 따져보려면 절차 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이러한 분석은 공리주의적 정의관에 대한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우위를 논증함에 있어 계약론 논변의 틀이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방해 가 된다는 점이다. 롤스가 제시하는 이유들은 모두 공정한 절차와 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