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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자유주의의 정당화 기획

II. 반성적 평형의 정합론적 정당화 논변

1. 정치적 자유주의의 정당화 기획

1) 정치적 정의관의 3단계 정당화 과정

롤스에 따르면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현대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구조에 적용될 수 있도록 고안된 정치적 정의관이다. 이것은 공정으로서 의 정의는 현대 입헌 민주주의의 규범적 정초라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지, 포괄적 교설로서 도덕에 대한 일반 이론을 구 성하고 그것을 민주주의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정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롤스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규범적 정초는 포괄적 교설의 일반적인 도덕 개념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Rawls, 1985: 225). 왜냐하면 철학을 비롯한 포괄적 교설에 대한 공적 합의는 시민들의 평등한 기본적 자유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 간섭 없이는 도달될 수 없기 때문이다. 롤스는 철학적 교설을 종교적, 도덕적 교설들 과 마찬가지로 해소 불가능한 불일치의 원천으로 간주하여 합당한 다원 주의의 현실을 이루는 포괄적 교설의 하나로 분류한다. 공정으로서의 정 의는 자립적인(freestanding) 정치적 정의관으로서 철학에 의존하지 않으 며, 특정한 철학적 교설을 비판하거나 거부하지도 않는다.

철학적 교설에 대한 롤스의 이러한 거부는 합당한 다원주의의 현실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입헌 민주주의 사회에 적용될 정치적 정의관은 모든 시민이 합의하는 혹은 합의할 만한 공적 확신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해 있다. 그러한 정당화는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타 인이 나와 함께 참인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전제들로부터 출발해야 한 다(Rawls, 1985: 229). 합당한 불일치에 직면하여 대립하는 모두가 합의 하는 전제들로부터 출발하여 심층적인 합의를 구성해내는 것이 정치 철 학의 주요한 목표를 이룬다. 롤스에 따르면 정치적 정의관에 대한 공적 합의의 토대는 현대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공적 정치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는 숙고된 판단 및 기본적인 직관적 신념에 의해서만 제공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규범적 정초는 시민 모두가 공유하는 이러한 신념들로부터 출발하여 심층적 합의의 내용을 하나의 정치적 정의관으로 구성하는 방 식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정당화 기획의 핵심을 이루는 공적 정당화 (public justification)의 개념이다. 롤스에 따르면 정치적 정의관은 1) 현 대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구조를 위해 고안되어야 하고, 2) 어떠한 특정한 포괄적 교설에 대해서도 자립적이어야 하며, 3) 민주주의 사회의 공적 정치 문화에 뿌리박혀 있는 근본 관념들에 의해 정식화되어야 한다 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공적 정당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JFR

: 26-27). 질서정연한 입헌 민주주의 사회, 즉 모든 시민이 동일한 정치적 정의관을 수용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정당화하는 사회는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정치적 정의관에 대한 공적 정당화가 완료된 경우에만 가능하다.52) 물론 모든 정치적 문제가 이러한 방식으로 완전히 공적으로 합의될 수는 없다. 공적 정당화는 정치적 정의관의 내용을 이 루는 헌법의 본질적 요건과 기본적 정의의 문제에 한정된 완전한 합의를 통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 간의 상호 존중의 토대 위에서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사회 협력의 조건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정의관에 대한 공적 정당화에는 어떻게 도달하게 되는가? 하 버마스와의 논쟁에서 롤스는 정치적 정의관의 정당화 과정을 3단계로 설 명한다(

RH

: 142-143). 첫 번째 단계인 적정 수준의(pro tanto) 정당화는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제시하는 공적 이성이 오직 정치적 가치에만 호소 하여 헌법의 본질적 요건과 기본적 정의의 모든 혹은 거의 모든 물음들 에 대한 합당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 성립한다. 이것은 정치적 정의관의 합당성을 입증해내는 단계로서, 원초적 입장을 거쳐 반성적 평 형에 의해 완수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반성적 평형은 ‘넓은’(wide) 반 성적 평형으로서 아직 완전한 반성적 평형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두 단계는 합당한 포괄적 교설들 사이의 중첩적 합의를 이끌어

52) ‘질서정연한 입헌 민주주의 사회(well-ordered constitutional democratic society)’에 대해서는 Rawls, 1997: 440 참조.

냄으로써 정치적 정의관이 공적 정의관으로서 수용되는 과정과 연관된 다. 먼저 두 번째 단계인 완전한(full) 정당화는 시민 각인이 정치적 정의 관을 자신들의 포괄적 교설에 끼워 넣음으로써 성립한다. 각인의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 안에서 비정치적(nonpolitical) 가치들이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정치적 가치와 어떤 방식으로 연관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개 별 시민의 자유 처분에 맡겨진다. 두 번째 단계에서 시민 각인은 타인들 이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수용하였는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포괄 적 교설 내에서 완전한 정당화에 도달하게 된다.

세 번째 단계를 이루는 것이 공적 정당화로서,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 의 모든 합당한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합당한 포괄적 교설에 정치적 정의 관을 끼워 넣어서 동일한 정치적 정의관에 대한 인정에 도달함으로써, 즉 시민들이 정치적 정의관에 대한 중첩적 합의를 이룸으로써 완성된다.

공적 정당화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동일한 정치적 정의관에 대한 넓은 반 성적 평형에 도달하기 때문에, ‘완전한(full)’ 반성적 평형, 혹은 ‘일반적이 고 넓은(general and wide)’ 반성적 평형의 상태에 도달한다. 다른 한편 으로 중첩적 합의의 결과 모두가 인정하는 정치적 정의관에 기초하여 공 적 이성이 성립하게 된다. 이처럼 공적 정당화는 중첩적 합의, 완전한 반 성적 평형, 공적 이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는 바, 공정으로서 의 정의는 이러한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 완전히 정당화된다는 것이 롤 스의 설명이다.

2) 정치적 자유주의와 이성적 합의의 원리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는 철학적 교설의 일반적 도덕 개념에 의한 정 당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원초적 입장이 아닌 반성적 평형의 중심으로 정치적 정의관을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칸트의 자율성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53) 하지만 정치적 자유주의를 자

53) 이러한 인상은 롤스가 칸트의 자율성을 포괄적 교설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세하게 살펴보면, 칸트의 자율성이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근 본적인 차원에서 규정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Freeman, 1993: 621).

이것은 롤스가 합당성을 근거짓는 원리로서의 이성적 합의에 여전히 호소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이 원리는 일단 정치적 구성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롤스에 따르면 합당하고 합리적인 인간들, 즉 실천 이성을 행 사하기 위한 능력을 평등하게 소유하고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이 어떠한 정치적 확신을 지지한다면, 그러한 정치적 확신은 객관적이다. 실 천적 판단의 객관성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롤스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칸트적이며, 구성주의에 기초해 있다(

PL

: 119).

또한 주목해보아야 할 점은 롤스의 정치적 구성주의에서 원초적 입장 이 정의의 두 원칙을 산출하는 구성 절차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 롤스에 따르면 정치적 구성주의자가 어떤 판단을 규범적으로 타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그 판단이 올바르게 형성되고 올바르게 수행되 는 합당하고 합리적인 구성 절차(원초적 입장)에 의해 산출됐다는 점에 있다(

PL

: 96). 사회 협동의 공정한 조건은 공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자 유롭고 평등한 시민의 대표들(representatives)이 동의하는 정의의 원칙 들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이해된다(

PL

: 97). 이러한 서술이 보여주듯이, 롤스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약화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가상의 이성적 합의를 이루는 공정한 절차를 통해 정의관의 합당성을 정당화할 수 있다 는 칸트적 절차주의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 점은 하버마스와의 논쟁에서 롤스가 말하는 ‘표현의 장치(device of

화된다. 그러나 롤스가 거부하는 것은 윤리적 가치로서의 자율성이라는 점을 염 두에 둘 필요가 있다. “도덕적 자율성(moral autonomy)은 우리의 가장 심층적인 목표와 이상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삶의 방식이나 반성에서 표현되는 것으로 서 밀(J. S. Mill)의 개별성(individuality)의 이상이나 칸트의 자율성 교설을 충실 하게 따르는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도덕적 가치로서의 자율성은 민주주의 사상 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으나, 그것은 합당한 정치적 원칙에 대해 요 구되는 상호성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므로 정치적 정의관의 일부를 이룰 수 없다. 신념을 가진 많은 시민들은 자율성을 자신들의 삶의 방식으로 거부할 것이 다.”(PL: xlii-xliii) 여기서 롤스는 도덕적 자율성을 포괄적 교설의 일부를 이루는 윤리적 가치로 이해하는 바, 이것은 그가 밀과 칸트의 자유주의를 포괄적 자유주 의로 분류하는 근거가 된다(PL: 78) 윤리적 가치로서 개인의 삶 전반에 적용되는 이러한 자율성과 본 논문에서 다루는 자율성은 구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