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I. 칸트의 자율성의 세 가지 논제의 재구성

3. 자기 입법의 방법

불편부당한 절차를 통한 이성적 합의의 산출

1) 칸트의 자율성의 세 번째 논제:

개성적인 차이와 사적 목적의 도외시를 통한 보편타당한 규범의 산출 (목적의 나라 정식)

옳음에 대한 강력한 인식 능력을 갖는 칸트의 자율적 주체는 옳음의 좋음에 대한 의무론적 우선성에 기초해 있는 그의 도덕 인식론과 연관된 다. 의무론적 관점에서 보면 옳은 것과 좋은 것 사이의 경계는 보편화가 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경계와 일치하며, 바로 이 점이 전자 가 후자에 대해 우선성을 갖는 근거가 된다.29)

칸트에 따르면 좋음에 대한 인식은 경험적으로 얻어진다. 즉 무엇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어떠한 대상이 나에게 쾌 혹은 불쾌의 감정을 유발 하는지는 경험적으로만 알 수 있다(VI: 215). 이로부터 좋음에 토대를 두

29) “실천적으로 선한 것은 이성의 표상들에 의해, 그러니까 주관적 원인에서가 아 니라, 객관적으로 다시 말해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그 자체로서 타당한 근거들 에서 의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쾌적한 것과는 다르다. 쾌적한 것은 오로지 이런저런 감관에만 타당한, 한낱 주관적인 원인들로부터 말미암은 감각에 의해서 만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이성의 원리인 것이 아 니다.”(IV: 413) 또한 IV: 425; V: 61 참조. 칸트의 도덕 이론에서 좋음에 대한 옳 음의 우선성이 옳음에 대한 특권적인 형태의 정당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 대

는 실천 원칙이 갖는 두 가지 특징이 따라 나온다. 첫째, 그러한 원칙은 특정 주체에게 유용할 수는 있어도,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타당 한 법칙은 제공할 수 없다. 좋음에 대한 인식은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만 큼 선험적 인식의 특징인 엄밀한 보편성과 필연성을 결여하게 된다.30) 둘째,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를 엄밀하게 판정하는 원리를 재구성하는 것 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것이 시시각각 변화할 수 있기 때문 이기도 하고(V: 28), 하나의 행위가 가질 수 있는 결과들의 무한한 연쇄 를 엄밀하게 예측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벗어나는 전지전능함을 요구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IV: 418-419). 그러한 예측을 위해서는 세상사에 대한 지식은 물론 영리함 또한 요구되기 때문에, 무엇이 나에게 좋은지 를 판단하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부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반면 옳음에 대한 인식은 선험적으로 얻어진다. 따라서 무엇이 보편타 당한 의무인지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식이나 능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오직 나의 의욕의 순수한 형식이 보편적 법칙 수립에 적합한지 의 여부만 따져보면 된다.31) 칸트에 따르면 준칙의 보편화가능성의 판정 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32) 이것은 좋음에 대한 경험적 인식에 기초 해 있는 실천 원리로서의 타율성과 달리 옳음에 대한 선험적 인식에 기 초해 있는 실천 원리로서의 자율성이 갖는 특징이다.33)

30) “쾌 또는 불쾌 – 이것은 언제나 단지 경험적으로 인식되며, 모든 이성적 존재 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타당할 수는 없는 것인데 – 라는 수용성의 주관적인 조건 에만 근거하는 원리는 그러한 수용성을 지닌 주관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준칙으 로 쓰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 자신만으로는 (이 원리에는 선험적으로 인식되 어야 할 객관적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법칙으로 쓰일 수 없기 때문에, 그 러한 원리는 결코 실천 법칙을 제공할 수 없다.”(V: 22)

31) “나의 의욕이 윤리적으로 선하기 위해 내가 행해야만 할 것에 대해서는 나는 전 혀 아무런 자상한 통찰력도 필요하지 않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에 대해 경험이 없고,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처할 능력이 없어도, 나는 단지 자문하기만 하 면 된다. ‘너 또한 너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의욕할 수 있는가?’”(IV:

403)

32) “준칙에서 어떠한 형식이 보편적 법칙 수립에 적합하고, 어떠한 형식이 적합하 지 않은가를 보통의 지성〔상식을 가진 사람〕은 배우지 않고서도 구별할 줄 안 다.”(V: 27)

33) “의사의 자율 원리에 따라서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아 주 쉽게 아무 주저 없이 통찰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의 타율의 전제 아래서 무 엇이 행해져야 하는가를 통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세상사에 대한 지식을 필

옳음과 좋음에 대한 이러한 의무론적 이해는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 지에 대해 타당한 것의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각인의 좋음에 대한 인식 및 동기를 도외시함으로써 옳음 에 대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배제의 원리이다. 즉 주관적인 것, 사 적인 것, 보편화가능하지 않은 것을 배제하면 객관적인 것, 공적인 것, 보편화가능한 것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34) 이러한 생각은 목적의 나라 정식에 나타나 있다.35) 칸트에 따르면 목적의 나라는 “공동의 객관적인 법칙들에 의한 이성적 존재자들의 체계적 결합”(IV: 433)으로서, 개개의 이성적 존재자들의 특수한 차이점들을 추상하고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보편타당한 목적들을 체계적으로 상호 연관시킴으로써 구성된다.

칸트는 이러한 배제의 원리에 의해 도덕 법칙의 객관성을 규정한다.36) 칸트에 따르면 보편적 법칙 수립의 의지는 어떠한 이해 관심에도 기초해 있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타당한 실천 원칙을 산출할 수 있다(IV:

432). 이것은 인지적 측면에서 보면 각인의 좋음과 연관되는 지식은 자기 입법의 과정에서 배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Hill, 2013: 20). 배제의 원리 는 동기적 측면에서는 경향성의 배제로 구현된다. 예를 들어 칸트는 의 지(Wille)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의지란 이성이 경향성에 독 립해서 실천적으로 필연적인 것이라고, 다시 말해 선하다고 인식하는 것

요로 한다. 다시 말해, 무엇이 의무인가는 누구에게나 자명하게 드러나지만, 그러 나 무엇이 진정 지속적으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가는 […] 많은 영리함을 필요 로 한다.”(V: 36)

34) 일반 의지의 산출에 대한 루소의 설명은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전체 의지와 일반 의지 사이에는 때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후자는 공동의 이익만을 바라지 만, 전자는 사적 이익을 바라며 특수 의지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 한 특수 의지에서 상쇄하는 과부족을 제외하면, 그 차이의 총합으로서 일반 의지 가 남게 된다.”(Rousseau, 2001: 64) 루소의 일반 의지와 칸트의 정언 명령의 관 계에 대해서는 Cassirer, 1991: 33-34 참조.

35) 칸트에 따르면 목적의 나라는 “공동의 객관적인 법칙들에 의한 이성적 존재자들 의 체계적 결합”(IV: 433)으로서, 개개의 이성적 존재자들의 특수한 차이점들을 추상하고 모든 이성적 존재자에게 보편타당한 목적들을 체계적으로 상호 연관시 킴으로써 구성된다.

36) “규칙은 하나의 이성적 존재자를 다른 이성적 존재자와 구분해주는 우연적이고 주관적인 조건들 없이 타당할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타

만을 선택하는 능력이다.”(IV: 412) 보편 법칙의 정식은 이러한 배제의 원리에 의존한다. 그것은 경향성의 충족을 위해 우리 스스로 법칙의 예 외가 되려는 준칙을 보편화할 경우 모순을 감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IV: 424).

칸트에 따르면 자율성은 두 가지 자유로 이루어지는 바, 하나는 법칙 의 일체의 질료 즉 욕구된 객관들로부터의 독립성(소극적 자유)이며, 다 른 하나는 순전히 보편적인 법칙 수립적 형식에 의한 의사의 규정(적극 적 자유)이다(V: 33). 바로 이러한 두 가지 자유의 결합이 이성적 존재자 의 목적 그 자체로서의 인격성(Persönlichkeit)을 이루게 된다.37) 좋음에 대한 인식 및 동기의 배제의 원리가 소극적 자유에 연관된다면, 보편적 법칙 수립의 의지로서의 개개의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라는 이념은 적극 적 자유에 연관된다. 칸트는 누구나 옳음에 대한 인식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보편적 법칙 수립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것은 그에게서 문제로 간주되지 않는다. 배제의 원리는 도덕 법칙 의 인식을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2) 롤스와 하버마스에서 공정한 절차를 통한 이성적 합의의 산출

롤스와 하버마스는 옳음에 대한 좋음의 우선성 및 그와 연관되어 있는 칸트의 의무론적 관점을 공유한다. 각인의 좋음에 관한 인식 및 동기를 배제함으로써 보편타당한 규범에 대한 인식에 이를 수 있다는 원리는 이 들의 이론에서 공정성(fairness) 혹은 불편부당성(impartiality)을 구현하 는 절차를 통한 이성적 합의로 재정식화된다.

롤스의 공정으로서의 정의는 옳음에 대한 좋음의 의무론적 우선성에 기초를 두고 있는 바, 이것은 정의관이 개인들이 갖는 합리적인 인생 계

37) “인격성이란 자유 내지 전 자연의 기계성으로부터의 독립성으로, 그러면서도 동 시에 고유한, 곧 자기 자신의 이성에 의해 주어진 순수한 실천 법칙에 복종하고 있는 존재자의 한 능력으로 보아진다.”(V: 87) 칸트에서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개념에 대해서는 O’Neill, 1989b: 52-53; 2000a: 42; Hill, 2013: 18-19 참 조.

획 혹은 선관(conception of the good)에 제한을 가하며 양자가 충돌할 경우 전자가 우선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TJR

: 26-28;

PL

: 173-174;

JFR

: 82).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좋음에 대한 옳음의 우선성은 합리적인 것(the rational)에 대한 합당한 것(the reasonable)의 우선성으 로 나타나는데, 롤스에 따르면 이러한 우선성의 근거는 후자는 공적인 데 비해 전자는 비공적이라는 점에 있다(

PL

: 53). 합당한 것은 협동의 공정한 조건으로서 모든 이들에게 수용 가능하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과 연관되는 반면, 합리적인 것은 각인이 스스로 인생의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능력과 관계된다(

TJR

: 392-396; Rawls, 1980: 530;

PL

: 49-51). 이성적 합의가능성을 기준으로 하는 이러한 우선성 구도는 공적 이성의 비공적 이성에 대한 우선성, 정치적 가치의 비정치적 가치에 대 한 우선성의 형태로 정치적 자유주의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PL

: 139-140).

의무론에 기초한 배제의 원리는 원초적 입장의 도덕적 제약조건의 핵 심을 이루는 무지의 베일에 반영되어 있다. 롤스는 무지의 베일을 칸트 의 소극적 자유에 대한 재정식화로 제시한다. 칸트에게 소극적 자유란 외적 원인의 결정으로부터 독립하여 행위하는 자유로서, 자연적 필연성 에 따르는 행위는 타율성이 된다. 이것은 정의론의 관점에서는 정의의 원칙은 우연성에 대한 지식을 배제하고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Rawls, 1999b: 265). 롤스에 따르면 현실의 합의 상황 속에서 이성적 합의를 어렵게 하는 것은 우연성에 대한 지식으로서, 이것이 불 일치의 근본 원인이 된다(

TJR

: 17). 무지의 베일은 우연성에 대한 지식 의 배제를 통해 당사자들이 타율적 원칙을 선택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 에, 원초적 입장에서 선택된 원칙은 자유롭고 평등한 이성적 존재자의 본성을 표현하는 자율적 원칙일 수밖에 없다(

TJ R

: 222). 이처럼 타율적 원칙들의 배제를 통해 자율적 원칙의 선택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무지 의 베일은 의무론적인 배제의 원리를 반영한다(Darwall, 1982: 322-323;

Sandel, 1998: 114-115).

하버마스의 이론 또한 옳음의 좋음에 대한 의무론적 우선성을 토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