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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윤리적 구성주의와 보편화가능성의 원리

II. 칸트의 보편화가능성의 원리의 한계에 대한

1. 메타윤리적 구성주의와 보편화가능성의 원리

칸트의 자율성에는 두 가지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38) 하나는 규범성의 본성에 대한 메타윤리적 주장으로서, 이것은 규범이 타당하다는 것은 무 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된다. 자율성의 첫 번째 논제, 즉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대해 타당한 것이 곧 옳은 것이 라는 논제는 메타윤리적 구성주의를 함축한다. 칸트는 이러한 생각을 옳 음의 개념에 대한 정의의 형태로 제시한다. “실천 원칙들은, 그 조건이 객관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타당한 것으 로 인식되면, 객관적이다. 즉 실천 법칙들이다.”(V: 19) 다른 하나는 옳고 그름의 판정에 대한 규범윤리적 주장으로서, 이것은 ‘무엇을 해야 하는 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된다. 자율성의 두 번째 논제와 세 번 째 논제는 자율적 주체가 자신의 사적 목적과 개성적 차이를 도외시함으 로써 준칙의 보편화가능성을 판정하고 그 결과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보편법칙의 정식은 이러한 생각을 표현한다. “윤리론의 최상 원칙은, ‘동 시에 보편적 법칙으로서 타당할 수 있는 하나의 준칙에 따라 행위하라’

는 것이다.”(VI: 225)

칸트는 이러한 두 가지 주장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으며, 첫 번째 주 장이 참이면 두 번째 주장 또한 참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옳음과 보편화가능성 사이에 동치관계가 성립한다면, ‘타당한 규범에 따 라 행위하라’는 명령은 ‘보편화가능한 규범에 따라 행위하라’는 명령과

38) 스트레이튼-레이크는 칸트적 구성주의를 환원적 구성주의(reductive constructivism)와 정당화 구성주의(justificatory constructivism)의 두 가지로 구 분한다. 전자의 하위 범주에 속하는 환원적-분석적 구성주의는 합당한 절차를 통 해 당위의 의미를 설명하는 반면, 정당화 구성주의는 합당한 절차를 통해 행위의 이유를 제시한다(Stratton-Lake, 2000: 113-114) 이 양자는 위의 두 가지 주장에

동치가 될 것이다. 따라서 메타윤리적 구성주의가 타당하다면 곧 보편 법칙의 정식 또한 타당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에는 문제 가 있다.

칸트는 의무 개념에 대한 의미 분석으로부터 보편 법칙의 정식을 도출 해내고 있는데, 그 과정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IV: 400-402).

1. 의무는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말미암은 행위의 필연성 이다.

2. 행위의 결과로서의 객관에 대해서 존경을 가질 수는 없다.

3. 따라서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의지의 일체 대상을 전적으로 격리해야 한다.

4. 그 경우 남는 것은 그것이 법칙이라는 것, 즉 보편화가능하 다는 것뿐이다.

5. 따라서 나는 보편화가능한 준칙에 따라 행위해야 한다.

1에서 4까지의 과정은 ‘의무란 무엇인가’ 혹은 ‘의무로부터의 행위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의무 개념의 의미 분 석에 머물고 있다. 반면 5에서 도출의 결과 제시되는 보편 법칙의 정식 은 무엇이 의무인지를 판정하는 원리이다. 칸트는 1-4의 과정에서 ‘옳음

=보편화가능성’이라는 동치관계를 확립하고, 이에 기초하여 5에서 ‘보편 화가능한(=옳은) 준칙에 따라 행위하라’는 원칙을 확립하고 있다. 그렇다 면 이러한 도출은 합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단 의무 개념의 분석을 통해 ‘옳음=보편화가능성’이라는 동치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여기서 옳음을 ‘R’, 보편화 가능성을 ‘U’로 나타낸다면, ‘R → U’는 일정 수준까지 인정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타당한 규범은 일반적인 인정가능성에의 요구를 수 반하며, 이것은 규범이 타당하다는 것의 의미의 일부분을 이룬다. 하지만

‘U → R’은 옳음 개념의 의미에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예

컨대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도덕 규범은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대해 타당하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것이 옳기 때문에 모 든 이성적 존재자의 의지에 타당해야 하는 것이다.

칸트 또한 ‘R → U’에 입각하여 ‘거짓말하지 말라’라는 실천 원칙을 분 석하고 있다.

누구라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만약 법칙이 도덕적으로, 다시 말해 책무의 근거로서 타당해야 한다면, 그 법칙은 절대적 필연성을 동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너는 거짓말해서는 안 된 다’는 지시명령은 가령 인간에게만 타당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성적 존재자들도 그에 구애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일 터이다 (IV: 389).

칸트가 여기서 주장하는 것은 타당한 도덕 법칙은 보편화가능성을 동 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편 법칙의 정식을 근거짓기 위해 필요한 것 은 ‘R → U’가 아니라 ‘U → R’이다. 이후 보편 법칙의 정식을 통한 규 범의 정초 과정을 검토하면서 살펴보게 되겠지만, 칸트는 ‘U → R’이 성 립한다는 점을 원리적인 차원에서든 예시를 통해서든 확실하게 근거짓는 바가 없다. 그의 논의에서는 ‘R → U’와 ‘U → R’, 의무 개념의 의미 분 석과 무엇이 의무인지를 판정하는 작업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2에서 4로 나아가는 논증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의무에 따르 는 행위가 욕구나 경향성의 대상으로서의 객관을 의지의 규정 근거로 놓 는 행위가 아님은 분명하지만, 이것은 의무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보편 화가능성뿐이라거나, 혹은 보편화가능한 것이 곧 의무임을 함축하지 않 는다. 일단 의무가 있다고 전제하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 는지 분석하는 작업과, 무엇이 의무인지를 비로소 확정하는 원리를 구성 하는 작업이 불분명하게 서로 뒤엉키고 있는 것이다.

본 논문은 칸트처럼 R과 U를 서로 동치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보다는, 규범의 타당성은 이유들에 의해 직접 근거지어지는 것으로 놓

고, 타당한 규범이 확립될 경우 그것이 일반적인 인정가능성에의 요구를 수반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이 경우 ‘R → U’는 일부분 받아들이지만, ‘U → R’은 거부되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1-4와 5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타당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도덕 규범에 대해 ‘그것은 보편적으 로 인정될 만하다’라고 사후적인 재구성의 형태로 보편화가능성을 귀속 시키는 경우, 그것은 단지 해당 규범에 대한 강한 확신을 표현하는 것에 머무른다. 반면 무엇이 의무인지를 비로소 확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합 의의 사실에 호소할 수도 없고, 이상적인 합의가능성에 호소할 수도 없 다. 바로 그러한 것들의 부재가 의무의 판정을 요구하는 상황을 구성하 는 조건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은 그에 도달하기 위한 사고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원리이다.

칸트가 이러한 두 가지 차원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는 것은 옳고 그 름의 판정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옳 음의 인식은 이미 자율적 주체 안에서 해결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무엇이 의무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은 그의 논의 에서는 주제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규범성을 근거짓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율적 주체의 규범적 자기 이해를 재구성하는 작업뿐인데, 이 작 업에서는 의무 개념의 의미 분석과 의무의 판정을 위한 원리의 구성 작 업이 하나로 결합하게 된다. 윤리성의 최상 원리로서의 자율성은 개념 분석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39) 반대로 보편 법칙의 정식이 의무를 근거 짓는데 성공하게 되면, 이것은 의무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해명에 기여하게 된다.40)

보편 법칙의 정식이 의무 개념의 의미 분석을 통해 도출된 것이라면,

39) “자율의 원리만이 도덕의 유일한 원리임은 윤리성의 개념들을 순전히 분해만 해 보아도 충분히 밝혀진다”(IV: 440)

40) “이제 의무의 모든 명령이 그것들의 원리로서의 이 유일한 명령[정언 명령]으로 부터 도출될 수 있다면, 비록 우리가 사람들이 의무라고 부르는 것이 도대체 공 허한 개념이 아닌가 하는 문제는 미결로 남겨둔다 할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그 개념으로써 무엇을 생각하고, 이 개념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는 제시할 수 있 다.”(IV: 421)

그리고 그것이 옳고 그름을 쉽게 판정할 능력을 갖는 자율적 주체의 개 념을 기초에 놓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 의무인지를 판정하는 것이 하 나의 문제가 될 경우에는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확보 된 옳음에 대한 앎을 재확인하는 절차이지, 옳음에 대한 앎 자체에 도달 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2. 보편 법칙의 정식을 통한 규범의 정당화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