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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담론원칙 ‘D’와 실제의 합의를 통한 규범의 정당화

3. 하버마스-롤스 논쟁(2)

소통적 이성과 실제의 합의

1) 소통적 이성과 ‘무조건적인 것’

롤스는 하버마스의 이론이 사유, 이성, 행위 일반의 전제조건들의 형식 과 구조를 소통행위이론을 통해 합당하게 정식화하고, 종교적, 형이상학 적 교설 및 특정한 공동체들의 전통에 체화된 ‘실질적(substantive)’ 내용 들 혹은 ‘인륜성(Sittlichkeit)’을 이러한 형식과 구조를 통해 흡수 혹은 헤겔적인 의미에서 지양(sublimate)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추정한 바 있다(

RH

: 178-179). 롤스에 따르면 이것은 하버마스의 이론이 정치적 정 의관이 아니라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포괄적 교설로서 헤겔적인 의

미에서의 논리학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RH

: 136-137).

롤스는 하버마스와의 논쟁에서 이러한 생각을 간략하게 제시할 뿐, 상 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본 논문은 하버마스의 이론에서 만장일치의 이성적 합의가 칸트의 의미에서의 ‘무조건적인 것(das Unbedingte)’71)과 의 연관을 일종의 형이상학적 잔재의 형태로 은밀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보임으로써 롤스의 이러한 하버마스 비판이 타당하다는 점을 보이 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진단은 탈형이상학적 사유를 표방하는 하버마스의 자기 이해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하버마스는 형이상학적 사유로의 회귀라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엄중하게 경고한다.

소통적 이성의 개념에는 여전히 선험적 가상의 그림자 가 드리워져 있다. 소통적 행위의 이상화하는 가정들이 확정적인 상호이해의 상태라는 미래적인 상태의 이상으 로서 실체화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개념은 충분히 회의적으로 구상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성의 이상 (Vernunftideal)을 도달가능한 것으로 사기치는 이론은 칸트에 의해 도달된 논증 수준 이전으로 퇴보하게 될 것이다(Habermas, 1989: 184).

하버마스는 여기서 소통적 이성에 내재되어 있는 만장일치의 이성적 합의를 미래의 어느 시점에 실현가능한 상태로 실체화하는 것이 자신의 의도가 아님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만장일치의 이성적 합의의 형태로 완전히 화해된 상호주관성을 실현가능한 것으로 놓는 것이 형이상학적 사유로의 퇴보라면, 그것을 영원히 점근해가야 할 목표로 놓는 것 또한 유사한 형태의 퇴보가 아닌가 묻게 된다. 계속되는 부분에서 하버마스는

71) 칸트는 무조건적인 것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우리를 필연적으로 경 험과 모든 현상의 한계를 넘어가도록 몰고 가는 것은 무조건적인 것〔무조건 자〕인데, 이성은 이 무조건적인 것을 모든 조건적인 것을 위해서 사물들 자체에 서 필연적으로 그리고 당연히 요구하며, 그로써 조건들의 계열이 완성될 것을 요 구한다.”(『순수이성비판』, BXX)

소통적 이성에 ‘무조건적인 것’이라는 의미에서의 형이상학적 잔재가 남 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오류가능한 진리와 도덕성에 대한 담론 개념들 안에 보 존되어 있는 무조건성(Unbedingtheit)의 계기는 결코 절 대자가 아니며, 기껏해야 비판적 절차로 용해된 절대자 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형이상학의 잔재를 가지고서만 우리는 형이상학적 진리를 통한 세계의 왜곡을 막아낼 수 있다(Habermas, 1989: 184).

소통적 이성이 무조건적인 것의 계기를 보존하는 방식으로만 무조건적 인 것을 전제하는 사유에 맞설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정의상 형이상학 적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현대에는 종교적, 형이상학적 세계관의 실체적 합 리성이 포기되는 대신 타당성 요구 주장을 근거짓는 절차적 합리성이 대 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후자가 전자를 대체하는 어떤 것을 제공해 야 한다는 요구 주장을 함축한다(Rorty, 2001: 43). 말하자면 소통적 이 성은 종교적, 형이상학적 세계관이 제공하던 근원적인 통일성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것을 절차를 통해 복구할 수 있다는 기대를 은밀하게 내포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완전히 화해된 상호주관성을 만장일치의 이성적 합의 혹은 그 에 준하는 형태로 절차를 통해 복원할 수 있다는 기대로 표출된다. 하버 마스는 담론원칙 ‘D’에 대한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규범과 가치가 모든 관련 당사자의 합리적으로 동기지 어진 동의를 얻을 수 있는가의 여부는 말하자면 상호주 관적으로 확장된 일인칭 복수의 관점, 모든 참여자의 세 계이해와 자기이해의 관점들을 강제 없이 그리고 왜곡 없이 모두 수용하는 일인칭 복수의 관점에서 출발할 때 에만 판정될 수 있다. […]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헤

통 구조로 승화된다(

FG

: 279-280).

모든 참여자들의 관점을 모두 수용하는 일인칭 복수의 관점에서 논증 이 진행됨으로써 모든 관련 당사자들의 합리적으로 동기지어진 동의가 달성되는 지점은, 다름 아니라 해당 사안과 관련하여 만장일치의 이성적 합의를 통해 완전히 화해된 상호주관성에 도달하는 지점이다. 하버마스 는 우리가 이러한 완전히 화해된 상호주관성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전 제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소통을 통해 최소한 점근적으로나마 도달할 수 있고 또 도달하도록 의무지워져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것은 우리에게 칸트의 목적의 나라가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과제로서 부과되어 있다는 하버마스의 언급과 일맥상통한다 (Habermas, 1999d: 300). 그렇다면 여기서 헤겔의 구체적 일반성의 개념 이 언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소통적 행위, 즉 정신 의 노동으로서의 ‘인륜적 행위(sittliches Handeln)’를 통해 완전히 화해된 상호주관성으로 스스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정호근은 하버마스의 소통적 이성에 남아 있는 이러한 형이상학적 잔 재를 동일성 논리의 개념으로 포착한다. 상호이해는 인간 언어에 목적으 로 내재한다는 하버마스의 주장은 화해된 상호주관성을 시초부터 이미 존재하고 이후 과정적으로 전개되기만 하면 되는 근원적인 통일성으로 전제한다(정호근, 1996: 143-144).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미 언어에 잠재 되어 있던 소통적 이성은 근대에 완전히 전개되어 자기 자신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러한 설명은 경험적 기반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동일성 논리가 사유 논리로서 작동한 결과물이다. 정호근에 따르면 하버마스의 소통 개 념은 이러한 동일성 논리에 기반하여 다름, 이질성, 차이를 경쾌하게 뛰 어넘게 된다(정호근, 1996: 135).

2) 이상적 소통공동체와 실제의 합의

하버마스의 소통적 이성이 보존하는 무조건적인 것과의 연관성은 규범

의 정당화와 관련해서는 이상적인 소통공동체 안에서 무한하게 나아가는 실제의 합의라는 관념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가능한 모든 관련 당사자 들이 이성적 논의의 참여자로서 동의할 수 있는 행위규범들만이 타당하 다”(

FG

: 138)라는 담론원칙 ‘D’에 반영되어 있다. 완전히 화해된 상호주 관성은 우리가 비록 그것을 그대로 실현할 수는 없지만, 그에 끊임없이 점근해가야 할 하나의 이상으로서 제시된다.

그런데 담론원칙 ‘D’를 통해 만장일치의 이성적 합의에 점근해가고자 한다면, 하버마스가 ‘모든 관련 당사자(alle Betroffenen)’, 혹은 ‘모든 사 람(alle)’이라고 부르는 자기 입법의 상호주관적 주체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일종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담론원칙 ‘D’에 따 라 점근성을 분명하게 규정할 수 있으려면 ‘모든 관련 당사자’는 수가 한 정되어 있는 유한집단으로 규정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한정된 횟수의 소통을 통해 규범을 근거짓는 작업이 완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경우 규범에 대한 실제의 합의는 무조건적 타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반면 규범의 무조건적 타당성의 개념을 고수하기 위해 ‘모든 관련 당사 자’를 언어 및 행위 능력을 갖는 주체 일반을 포함하는 무한집합으로 상 정하면, 규범을 산출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한 소통의 횟수가 그와 함께 무한하게 증가한다. 소통의 무한한 네트워크 안에서 담론원칙 ‘D’에 의해 규정되는 실천적 논의 및 모든 관련 당사자들의 합의는 확인 불가 능한 형태로 용해되어버리기 때문에, 이 경우 담론원칙 ‘D’의 점근성에 대한 논의는 타당성 주장을 검증하려는 도덕 이론의 관점에서는 의미를 상실한다. 그것은 이제 ‘규범적인 것’의 구조변동에 대한 사회 이론의 관 점에서만 관심을 끌 뿐이다.

하버마스는 후자를 선택한다. 그의 이상적 소통공동체의 이념은 담론 원리 ‘D’에 따라 실제의 합의를 이루는 과정을 언어 및 행위 능력을 갖 는 주체 일반에게 무제한적으로 개방할 것을 요구한다. 이 경우 실제의 합의는 이상적 소통공동체와의 연관 하에서 조작 가능한 의미를 상실하 고, 시공간적으로 무한하게 나아가는 소통의 연쇄 속에서 일종의 형이상 학적 이념으로 변형되는 것으로 보인다. 벨머는 이 점에서 이상적 소통

공동체의 개념이 요구하는 무한한 이성적 합의는 규범적 타당성 주장의 판정을 위한 기준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본다. 그것은 가능한 모든 경 험의 경계 너머에 있는 이념이기 때문이다(Wellmer, 1986: 78).

이상적 소통공동체의 이념이 요구하는 무한한 실제의 합의를 현실에 대해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점근성의 논제이다. 실제의 합의 를 이러한 이념에 최대한 점근시킴으로써 그것이 타당하다는 추정을 근 거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규범 A, B, C... 에 대해 1) 공지성과 포함성, 2) 소통에 참여할 동등한 권리, 3) 기만과 환상의 배제, 4) 강제의 부재라는 네 가지 기준 에 따라 엄밀하게 차등적으로 타당성을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규범 A, B, C... 에 대한 실제의 합의의 구체적인 행위연관을 재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범 A, B, C... 에 대해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1)과 2)의 조건에 따라 관련 당사자들이 얼마나 참여 하여 동등한 발언권을 행사했는지, 혹은 3)과 4)의 조건이 만족되지 않아 소통에 기만과 환상, 혹은 강제가 개입했는지 등등의 사실관계를 확정하 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규범 A, B, C... 에 대한 합의는 규범 A, B, C... 에 대해 비록 반대 의견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이성적 합의가 이루 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혹은 이루어질 만한 것이다 등등의 일종의 추 정을 표현하는 방식으로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 그러 한 진술들의 실제 내용을 이루는 것은 규범 A, B, C... 에 대한 발언자의 확신이거나, 혹은 규범 A, B, C... 가 해당 공동체 안에서 대체로 인정받 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이며, 공정한 절차에 따른 실제의 합의의 개 념은 여기서 별다른 역할을 하는 바가 없다.

아니면 실천적 논증 절차의 제도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성숙한 민 주주의 사회의 공론장에서는 위의 네 가지 절차적 조건들이 제도를 통해 대체로 만족되고 있기 때문에 공론장에서 대체로 공정한 합의가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이는 규범 A, B, C... 는 타당한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그 경우 그러한 진술들의 실제 내용을 이루는 것은 공정한 절차에 대한 점근성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 및 공론장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