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감에 대한 이론적 검토
2.3 공감의 형성 단계와 단계별 특성
공감의 과정은 상대방에 대한 인식을 거쳐 타자에 대한 느낌과 표현 으로 이어지는 인지적 공감, 정서적 공감, 실천적 공감 순으로 이루어지 기도 하고,79) 또는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감각적 느낌과 의도적으로 인식 하여 상대방에 대한 느낌을 표현하는 정서적 공감, 인지적 공감, 실천적 공감 순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캐나다의 정신분석학자인 데이비드 스튜 어트 David Stewart는 공감을 “상호 전이 mutual transference”로 정의 하였다. 그는 공감의 발달을 추적한 결과 동일시에서 시작해서 순환적 모방, 의식적인 모방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호 전이로 이루어진다고 하였 다.80)
카츠는 공감의 과정을 ‘동일화 identification’, ‘편입 incorporation’, ‘반 향 reverberation’, ‘분리 detachment’ 등 4단계로 구분하였다. 먼저 동일 화 단계에서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흡수하여 다른 사람의 의식에 투영되 는 과정이 나타나며, 이후 편입의 단계에서는 자신의 내면에 다른 사람 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 동일화와 편입의 단계 Leitbegriffe und Problemfelder, In: Corinna Albrecht und Alois Wierlacher(Hrsg.): Kulturthema Fremdheit: Leitbegriffe und Problemfelder kulturwissenschaftlicher Fremdheitsforschung, 1993, S.62(19-112).
79) 이수지: 「‘공감’기반 한국문화교육 방안 연구」. 박사학위논문, 부산외국어 대학교 대학원, 2017, 38쪽.
80) Vgl. Arnold Buchheimer: The Development of Ideas About Empathy. In:
J ournal of Counseling Psychology, 10(1), 1963, S.63(61-70).
를 거쳐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타인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느끼게 되면서 나와 상대방 사이의 사회적 거리는 줄어든다. 이후 세 번 째로 반향의 단계에서는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자신의 경험 중 일부를 떠 올리게 함으로써 새로운 의식을 일깨우게 되며 마지막 분리 단계에서는 주체로부터 빠져 나와 대상 분석을 위해 심리적 거리를 취하게 된다.81) 카츠가 말하는 공감의 과정은 전반적으로 상대방에게 관점이 가 있는 것 이 아니라 상대방의 느낌과 생각을 나 자신으로 끌고 와서 주체의 내면 에서 작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본 연구에서는 공감이란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며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 상호작용 함으로써 일어나는 복합적인 일 련의 과정이라고 본다. 복합적 차원에서의 공감은 어느 한 순간 동시다 발적으로 발생하여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와 상대방 사이의 관계 형 성과 상호 이해의 과정을 통해 공감의 강도가 높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때에 따라서는 공감이 단절되기도 한다. 때문에 문학을 통한 공감교육에 활용할 문학 작품 속 인물들 간의 공감 관계와 공감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공감이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서 공감을 강화하거나 혹은 단절 시키는 요소들을 확인하고 공감의 형성 과정을 단계화하여 정립할 필요 성이 있다고 보았다. 우선 각 단계별로 영향을 미치는 공감의 주요 요소 들은 다음과 같다.
<그림 2.3-1> 공감의 형성 단계와 단계별 요소
81) Robert L. Katz: Empathy: Its nature and uses. London 1964, S.42.
1단계:
감정이입
2단계:
차이 인식
3단계:
타자 이해
4단계:
상호 존중
5단계:
관점 전환
▪관심
▪관찰
▪감정이입
▪자기객관화
▪차이 인식
▪역할수용
▪관점수용
▪관용
▪상호존중
▪관계형성
▪공감적행동
▪자기성찰
▪관점전환
▪태도변화
1단계는 ‘감정이입의 단계’로 주체는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 상을 관찰하며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감정이입 상태에 놓인다. 이 단계에서는 나의 시각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며, 내가 가지 고 있던 배경지식, 문화적 관점, 정서적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것과 동일 한 감정이나 정서를 위주로 공감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상대방과 마주하 게 될 때 시각, 후각, 청각 등 원초적인 감각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관찰 하게 되며 이 감각의 반응으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형성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의 공감은 다른 사람의 사고 및 감정 세계에 대해 인지적으 로 느끼고,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심리적인 과정이라고 정의 한다.
2단계는 ‘차이 인식의 단계’로 나의 경험, 나의 배경지식이라는 경계 를 벗어나 상대방에게서 느껴지는 낯선 요소를 다름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때문에 나와 다른 것을 경계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로 인정하고 수용하고자 하는 열린 자세를 갖추고 있는 상태일 때 공감 이 더욱 활발하게 작용한다. 크르즈나릭과의 인터뷰에서 ‘공감적 디자인’
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 Patricia Moore는 “자신의 관심사 가 다른 모든 사람의 관심사는 아니며, 또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필수적으로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매 순간 상대방 과 ‘타협’을 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바로 공감이다.”라고 말한다.82) 다시 말해서 공감이란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차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차이의 이해는 다른 사람과 원만하고 풍요로운 관계를 맺으며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여기 서 중요한 점은 이 단계에서 말하는 공감이 주체가 상대방과의 차이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려는 희생적 자세가 아니라 차이를 다름 으로 인식함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더욱 풍요로운 인식 속에서 상호 관계 를 형성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82) Roman Krznarick: a.a.O., S.xx.
3단계는 ‘타자 이해의 단계’로 이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봄으로써 그 사람의 상황이나 처지를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이 활 발하게 나타난다.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편이 되어 보는 역할수용이 발생 하기도 하고, 상대방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되기도 하며, 나와의 차이를 그저 다름으로 인식한 상태에서 그 사람의 관점 자체를 받아들이는 관점 수용도 일어난다. 다른 사람의 관점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전 제 조건은 외적인 인식 또는 의사소통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행 동의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다.83) 따라서 타자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이해란 타인의 상황과 정서를 있는 그대 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능력이며 단일 요소이면서 동시에 복합요 소이다.84) 어떠한 사실 혹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 가능하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고 그것을 해석 해야만 한다. 그래야 적합하게 해석된 의미를 토대로 진정한 이해에 도 달할 수가 있다.85) 이 단계에서 공감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고 정관념이나 편견, 관용의 태도가 있다. 타자를 이해함에 있어서 주체가 독자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관찰한 내용을 해석하게 될 경우 자신이 기존 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의해 타인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빠질 위험이 있다. 따라서 주체는 최대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고 정관념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객관적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방에게 느껴지는 낯섦의 요소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관용의 태도가 있을수록 보다 적극적인 공감의 수준 으로 나아가게 된다.
83) Vgl. Verena Barthel: Empathie, Mitleid, Sympathie: Rezeptionslenkende Strukturen mittelalterlicher Texte in Bearbeitungen des Willehalm-Stoffs. Vol. 50, Berlin 2008, S.31.
84) 양정임: 「통일시대 준비교육을 위한 문학작품 도입과 활용방안-고등학교 문학교과서를 중심으로」. 『석당논총』, 70, 2018, 256쪽(249-286) 참조.
85) 데이비드 호우 저, 이진경 역: 앞의 책, 163쪽 참조.
4단계인 ‘상호 존중의 단계’에서는 상대방과 적극적인 교감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 단계는 상대방과의 다름을 인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차이를 존중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상호 이해의 과정 이 나타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간 의사소통이며, 대화를 통 해서 내가 일방적으로 상대방에 대해 인식하고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상 대방의 이야기를 직접 들음으로써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게 된 다. 더불어 상대방과의 보다 친밀한 관계 형성을 통해 갈등이 완화되며, 서로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는 능동적인 공감이 이루어지게 된다. 내가 타자에 대해 인식한 느낌과 그 느낌의 이유까지 인식하고 표현할 수 있 어야 고차원적인 공감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상대방과의 의사소통 을 통해 공감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공감능력이라고 정의된다.
언어는 의사소통과 상호 교환을 촉진하는 하나의 채널이자 공감 과정에 서의 중요 요소이다. 때문에 언어의 발달은 공감의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건은 아니지만 공감 작용을 더욱 원활하게 이끄는 윤활 제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단계에서는 일련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공감 과정을 거쳐 상대방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 실천적인 행동으로 표출되며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려는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5단계는 ‘관점 전환의 단계’로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의 관점을 나의 것과 비교하고 성찰함으로써 나의 관점에 변화가 일어나는 공감의 최종적인 모습을 말한다. 이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 었던 이전의 공감 단계에서와 달리 타자에 대한 이해를 나의 관점으로 다시 끌어와 나 자신에 대해 성찰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타자에 대한 정서적, 인지적 공감을 바탕으로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비 교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상호 간의 다름으로부터 배울 점은 배우고, 기 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선입견을 발견함으로써 나의 관점을 수 정하여 발전시키는 단계에 도달하기도 한다. 타자의 정서적인 상태를 느 끼고 나와의 다름을 인지하여 받아들이는 과정까지는 일정한 수준의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