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 독일 사회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특히 동독인들은 하루아침에 지금까지 살아오던 국가가 통째로 사라졌고, 화폐가 바뀌었으며, 달라진 사회 체제에 맞는 가치관의 변화 역시 요구받았다. 슐체의 작품에는 이 러한 혼돈의 상황 속에서 달라진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 적인 태도를 취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먼저 작품 별로 이에 해당하는 인물들을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표 4.2.1-1> 적극적으로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인물들
작품 인물 특징
심플 스토리즈
레나테 모이러
∙동독 시절 충실한 당원으로 살아감. 당에 대한 충성 이 자신의 삶을 지켜줄 거라 믿음.
∙통일 이후에는 자본, 물질에 가장 큰 가치를 둠.
노이게 바우어
∙동독 시절 고위 당 간부로 재직, 악행을 일삼음.
∙통일 이후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 사업가로 변모함.
새로운 인생들
엔리코 튀르머
∙동독 시절 극장에서 일하다가 통일 이후 신문사에 취직함.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 민첩하게 계산하는 태 도를 보임.
∙원래 서독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음.
슐체의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위의 인물들은 사회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독일 사회 내의 사회 구성원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이들은 동일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이 공통적인데, 자본주의 시 장 경제 속에서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자유롭고 능동적인 삶의 가치 를 추구하는 인물들로 분류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1)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 미하엘라
∙튀르머의 연인이자 연극배우로 일함.
∙극장을 떠난 것에 대해 튀르머에게 큰 배신감을 느 낌.
∙서독의 물질 문명에 관심을 보임.
∙튀르머를 떠나 서독 출신 자본가 바리스타를 선택 함.
요한
∙튀르머의 친구.
∙성직자가 되기 위해 준비함.
∙통일 이후 정치인이 되고자 함.
게오르크
∙튀르머와 함께 신문사를 창립함.
∙초기에는 신문사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에 거 부감을 느낌.
∙사회 변화에 적응하여 출판사를 운영함.
아담과 에블린
에블린
∙아담의 연인.
∙동독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함.
∙헝가리 여행을 떠나 서독으로의 완전한 이주를 꿈 꾸게 됨.
카탸
∙동독 출신 여성.
∙아담이 에블린을 찾아 헝가리로 가던 중 만나게 됨.
∙서독에 있는 가족들과 살기 위해 서독으로 가고자 함.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자 하는 인물들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잘 이해한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들은 사회 내에 통용되는 가 치와 규범을 이해하여 나의 관점과 비교하며 성찰하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슐체의 작품 속에서는 통일 이후 체제 변화 이후 바뀐 사회 규범에 대해서 낯선 것으로 배척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이해하 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심플 스토리즈』에 등장하는 레나테 Renate와 노이게바 우어 Neugebauer는 서독의 자본주의 체제와 가치를 빠르게 수용하는 태 도를 보이며,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물질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인다. 안 정적인 삶의 유지를 가장 중요시하던 가정주부 레나테는 장벽이 무너지 고 동독과 서독이 하나의 독일로 통일되자 사회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 하며 새로운 사회 속에서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자 한다. 그러나 충직한 당원이자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던 그녀의 남편 에른스트가 동독의 붕괴 와 함께 한 순간 일자리를 잃고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고, 과거의 영광 을 그리워할 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자 레나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그이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할 수가 없어요. 저는 여전히 최소한 7년, 어쩌면 12년쯤은 더 일해야만 해요. […] 에른스트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는 걸 깨달아야만 해요. 아무도 그이처럼 처신하는 사람은 없어요, 아무도 .”180)
레나테는 자신과 달리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환멸을 느끼며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다 며 에른스트의 어리석음을 비난한다. 레나테는 자신과 함께 살아온 동반 자이기 때문에 남편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야 만 한다”(SS: 240)라고 말하며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 회에 적응하려는 의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레나테는 자 180) SS: 240쪽. ☞
신의 태도 변화가 사회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선 택이라며 자기 방어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건, 돈과 일자리, 집과 현금카드, 그리고 법률과 서식을 잘 아 는 것이죠. 다른 것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아요.”181)
레나테는 자신만 변화한 것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 일자리, 법률 등 새로운 독일 사회에 맞춰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 역시 변 화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중이기 때문에 자신의 태도 변화 역시 자연스러 운 섭리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 변화와 적극적인 사회 적응 의 태도는 비단 하나가 된 독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자 하 려는 목적 외에도 서독의 자본과 물질에 대한 갈망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음의 예시가 물질주의에 빠진 그녀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이 귀걸이 그가 준 거야.”
“잘 어울리네요. 도대체 그 위대한 미지의 남자 이름은 뭐예요?”
“누구? 후베르투스.”
“정말로 이혼하실 거예요?”
“난 항상 뭔가 잘못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네가 날 그렇게 쳐다보면 불안해지거든. 너는 내가 우스워 보이니?”182)
레나테는 지갑에서 “빨간 귀걸이”(SS: 242)를 꺼내 착용하며 아들 마 르틴에게 다른 남자에게 받은 것임을 자랑하듯이 밝힌다. 마치 자신이 선택한 새로운 삶의 화려함을 뽐내는 듯해 보이지만 그녀의 귀는 처음 착용한 금속의 부작용으로 염증이 생긴 상태이다. 부작용을 감수하고서 라도 물질의 취득에 만족감을 표현하는 레나테의 모습은 통일 이후 물질 에 현혹된 동독 사회 전체의 모습을 대변하며, 통일 이후의 사회를 바라 181) SS: 235쪽. ☞
182) SS: 242-243쪽. ☞
보는 작가의 시각이 담겨있다. 슐체는 통일 이후 사회주의가 있던 자리 를 자본주의가 빠른 속도로 채워나갔다고 진단하면서 이로 인해 사람들 은 물질 만능주의에 침식당하게 되었다며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183) 물질적 가치에 현혹된 동독인에게 온정주의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구시대의 유물과도 같다. 레나테가 선물 받은 귀걸이를 자랑하고 있는 순간은 비극적이게도 그녀의 남편 에른스트가 가스총을 난사하는 정신 이상행동을 벌여 정신병원 병동에 수감된 사건으로 인해 레나테와 마르 틴이 담당 의사를 만나고 병원을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녀에게 에른스트 는 새로운 인생을 위해 청산해야 할 과거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레나테 는 아들 마르틴이 자신의 선택을 비난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면서 사랑 보다 더 좋은 건 없다며 자기변명의 태도를 보인다.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건 없어, 절대 없다니까!”
“저도 알아요.” 마르틴이 말했다.
“넌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니? 나는 이 귀걸이의 금속을 참는 게 아냐.
사랑은 하늘의 힘이라고, 그는 항상 말하지. 그가 딱 너의 생각과 맞지 않 니, 응?”
“누구….. 아 네…..”
“에른스트를 그가 있는 곳에 놔둬, 마르틴. 너는 네가 무엇을 떠맡으려는지 알지 못해. 그렇게 되면 누가 널 원하겠니? 자진해서 다리에 족쇄를 차려 고 하다니! 그렇게 웃고 있지만 말고! [...] 그가 티노의 방에 있겠니, 아니 면 어디에 있어? 우린 이제 하나의 가문이 아니야, 석기 시대의 대가족이 아니란 말이다.”184)
레나테가 말하는 사랑은 곧 물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으나 정작 레 나테 본인은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하늘에서 맺어준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자신의 현재를 포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그녀는 183) 배경헌: 베를린장벽 붕괴 후 이념 해체… 달라지는 사람들 면밀히 탐색, 서울신문, 2013.08.09.
184) SS: 243쪽. ☞
에른스트를 정신병원에 그대로 두고 마르틴 본인의 인생에 집중하기를 권한다. 더 이상 석기 시대의 ‘대 가족’이 아니라는 레나테의 말 속에서 가족에 대한 의미도 변질되고 있음이 드러난다. 동독에서 가장 우선시되 는 가치가 바로 가족주의이며 사람들 간 ‘정’을 주고받는 것이었으나 이 러한 가치 역시 흔들리고 있으며 그 자리를 서독의 개인주의 문화가 대 체하기 시작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레나테는 각자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사회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레나테가 강조하는 바대로 사회 변화에 맞춰 적극적으로 변모하는 인 물로 『심플 스토리즈』에 등장하는 노이게바우어를 살펴보도록 한다.
노이게바우어는 에른스트와 마찬가지로 구 동독시절 당원이었으나 과거 의 행적을 숨기고 곧바로 바로 돈을 좇아 사업을 벌이는 기회주의적 태 도를 보인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매우 잘 알고 있는 에른스트를 입막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레나테를 자신의 비서로 채용할 뿐만 아니라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별장을 무상으로 선물하기까지 한다.
물론 모이러가 노이게바우어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모두 침묵을 지켜왔고,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을 위한 “작은 집”을 제안받자 모이러는 노이게바우어가 여전히 불안 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혹은 그는 무급 집사가 필요했 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만약 사람들이 그의 옛 직책에 대한 소문을 들었 다면, 간단히 말해서 모이러를 앞에 내세운 건지도 모른다.185)
에른스트 역시 노이게바우어가 자신에게 별장을 제공한 것이 자신이 그의 과거를 폭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입막음 차원의 대가임을 간파한 다. 별장 선물은 노이게바우어의 과거를 덮고자 했던 본래의 의도와 달 리 과거 누설이 그에게 얼마나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지를 드러내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그래서 에른스트는 노이게바우어 뿐만 아 185) SS: 8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