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감에 대한 이론적 검토
2.1 Empathie의 개념 정의
공감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 특성으로 정의된다.
43) 유은정: 『아이의 마음을 여는 공감 대화』. 일산 2010.
44) 신영란, 김석준: 『마음을 열어주는 공감 대화법』. 서울 2013.
첫째, 공감은 상대방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다. 공감을 정서적 차원에서 바라본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공감이란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 끼고 타인의 정서를 경험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정의 한다.45)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고 정서적 상태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상상 력’이 필요하다. 미국의 공감 연구가인 크르즈나릭에 따르면,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입장에 있다고 상상하여 그 사람의 관점과 느낌을 이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46) 로렌 위스페 Lauren Wispé 역시 공감에 있어서 상 상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공감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47) 다시 말해서 우리는 공감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끼지만 다른 사람과 완 전히 ‘동일시’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감은 자아와 타자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 중요하며, 자기 자신을 의도적으로 타인의 상황과 처지에 상상하여 위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레델라 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정서적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입 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의 것을 유지하는 것이 공 감이며, 다른 사람과 동일해지면 더 이상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없는 복 제물에 불과해진다고 강조한다.48)
45) 미국의 심리학자인 낸시 아이젠버그 Nancy Eisenberg와 자넷 슈트라이어 Janet Strayer는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감정적 상태와 상황에 대한 이해”라 고 정의하였다. 아이젠버그와 슈트라이어의 견해와 유사하게 독일의 역사학 자이자 심리학자인 빌헬름 딜타이 Wilhelm Dilthey 역시 “다른 사람과 함께 느끼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공감의 개념을 정의하였으며, 독일 의 역사학자인 우테 프레베르트 Ute Frevert와 심리학자인 타니아 징거 Tania Singer는 공감을 “정서적 관점의 수용”이라고 정의하였다. (Nancy Eisenberg und Janet Strayer: Empathy and its development. New York 1990, S.292.; Wilhelm Dilthey: Gesammelte Schriften: Abhandlungen zur Grundlegung der Geisteswissenschaften. Göttingen 1924, S.74.; Ute Frevert und Tania Singer: 6 Empathie und ihre Blockaden: Über soziale Emotionen. München 2011, S.135.)
46) Roman Krznarick: a.a.O., S.x.
47) Lauren Wispé: The Distinction Between Sympathy and Empathy: To Call Forth a Concept, A Word Is Needed. In: J 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0(2), 1986, S.318(314-321).
둘째,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타자의 사고 방식 및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상상 하고, 사고하는 것”49)으로써의 공감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감정적인 동일시나 연민을 느끼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관계’의 파악에 중점을 둔다. 공감이란 타인의 정서적 상태와 행동방식을 상황과 맥락 등을 고려해 다각도에서 살펴보는 인지적 활동을 거쳐 타인 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 것으로, 공감은 일종의 ‘역량’에 해당한다.
크리스토프 바르마이어 Christoph Barmeyer는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상대방의 태도와 행동 방식을 일관되게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50)
공감은 사람들이 상호작용 하는 동안 역할수용의 정신적 작용을 거쳐 이루어진다. 역할수용이란 ‘자신의 입장에서 벗어나 타인의 처지가 되어 보는 것’으로 나와 타인의 입장을 바꾸어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51) 미국의 사회 심리학자인 미드는 공감의 주요 요소로 역할수용 능력을 강조하였는데, 그는 특히 역할수용을 ‘모방’과 구분하여 설명한다. 역할수용과 모방 모두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상대방 의 행동이나 정서적 상태를 따라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개념으로 보이지만 모방은 개인의 특이성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할 수용과 구분된다.52) 모방은 상대방과의 상호작용과 이를 통한 성찰과정 48) Lothar Bredella: Das Verstehen des Anderen: Kulturwissenschaftliche
und literaturdidaktische Studien. Tübingen 2010, S.157.
49) 데이비드 호우 저, 이진경 역: 『공감의 힘』. 파주 2013, 30쪽.
50) Christoph Barmeyer: Taschenlexikon Interkulturalität. Göttingen 2012, S.50.
51) 이희경: 「역할수용이 타인지각에 미치는 영향」. 『교육심리연구』, 15(1), 2000, 212쪽(211-230).
52) George Herbert Mead: Gesammelte aufsätze. Frankfurt am Main 1987, S.219. (슈트라이어 역시 감정전염과 자동 반사/모방은 태어나면서부터 지니 고 있는 생물학적인 공감의 일종에 해당하며,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능력’,
‘역할수용 능력’과 같은 인지 능력이 공감의 주요 요소라고 강조한다. Vgl.
Janet Strayer: 10 Affective and cognitive perspectives on empathy. In:
Nancy Eisenberg und Janet Strayer(Hrsg.): Empathy and its development.
을 거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의 것을 받아들 여 동일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역할수용은 타자와 내가 각각 개별적인 존재들이며, 사회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타인의 행동을 관찰 하고 이것을 나의 행동에 반영시키는 일련의 성찰 과정이라는 점에서 다 르다.
셋째, 공감은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과 상호 존중하 는 관계를 형성하게 하고, 나의 감정과 사고방식의 변화에 영향을 끼 치는 것을 말한다. 공감은 상상을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에 참여하는 것 으로 이 때 우리가 참여하는 타인의 경험은 그 자체로 매우 낯선 것일 수 있다.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 없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경험하기 위 해 밀튼 J. 베넷 Milton J. Bennett은 다른 사람의 감정 및 정신 상태에 들어가는 ‘관점수용’을 강조한다.53)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여 나와의 차이를 ‘다름’으로 용인할 수 있는 열린 태도가 요구되며, 이를 바탕으로 한 공감은 상호간 긴밀한 관계 형성을 촉진시킨다. 나와 상대방이 친밀한 관계를 맺을수록 더욱 활발하게 공감 이 이루어지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최종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공감은 나 자신을 성찰하도록 하여 나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공감과 구분되는 유사 개념으로 ‘동감 Sympathie’과 ‘동정 Mitleid’이 있다. ‘동감’은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느끼는 것으로, 타인과 같은 견해 혹은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 며 다른 사람의 관점과 느낌을 이해하는 공감과 달리 동감은 다른 사람 에 대해 불쌍하다고 느끼거나 연민의 감정을 갖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시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수반되지 않는다.54) 동감은 다른 사
New York 1990. S.218-244.) 53) Milton J. Bennett: a.a.O., S.207.
54) Vgl. Roman Krznarick: a.a.O., S.x.
람의 안위에 관심을 갖는 것이 목적이며, 다른 사람이 처한 곤경에 대해 내적으로 반응하는 태도를 말한다.
베넷은 황금률과 백금률에 비유하여 동감과 공감을 구분한다. 황금률 은 나 자신이 어떻게 대우받기를 바라는 지 상상하여 행동의 규칙으로 삼는 것으로, 동감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이 상대방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황금률의 태도를 보인다.55) 동감은 모든 사람이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유사한 감정을 통해 상대방의 경험을 연상하고 상상 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모든 사람을 일반화하기 때문에 동감은 발생하 기 쉬우나 ‘차이’를 중요시 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을 일반화시키는 동 감은 문화, 민족, 사회 경제적 지위, 연령, 성별, 정치적 성향, 교육 수준, 직업 등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나와 다른 사람과의 상 호 작용에 적용되지 못한다. 동감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틀에서 일반화시킬 뿐만 아니라 민족중심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 에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직면하게 되면 자신의 견해가 다른 사람에 의 해 무시되거나 평가절하 된다고 느끼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56) 이는 현대 사회에서 동감보다 공감이 더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차 이를 인식하고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공감은 다른 사람 을 위해 좋고 옳은 것이 그들에게 좋은 것이며, 다른 사람이 대우받길 원하는 방식대로 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는 점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각각의 객체로 두고 출발하기 때문에 상호 존중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 다른 개념으로 ‘동정’은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정 신적 혹은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행동하는 태도를 일컬으며 ‘연민’으 로 번역되기도 한다. 동정은 일반적으로 ‘친사회적 행동’을 수행하거나 도움을 주는 행위를 유발하는 지배적 정서로 간주된다. 그러나 동정이 반드시 친사회적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비쇼프-쾰러에 따르면 친사 55) Milton J. Bennett: a.a.O., S.197-198.
56) Ebenda, S.201-202.
회적 의도에서 비롯되는 개입은 나 자신으로 하여금 비용을 소비하게 만 들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의 상황에 대한 느낌을 인식하는 것에서 그치 기도 한다. 또한 나의 기분도 동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나의 기분이 좋을 경우 다른 사람과 함께 느끼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지는 반면, 우울한 사 람들은 상대적으로 동정의 작용이 덜 나타난다.57) 프리츠 브라이트하우 프트 Fritz Breithaupt는 동정의 요소로 ‘유사성 Ähnlichkeit’을 제시한다.
유사성은 동정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며, 상대방과 나 사이에 충분한 유사점이 존재해야 동정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58) 동정은 모든 사 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으며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다. 상상력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나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게 만드 는 것이 동정의 기초 과정에 속한다.59) 프리들마이어와 트롬스도르프는 공감과 동정이 동일하지 않으며,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로 동정은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감 정 상태’와 관련되는 반면, 공감은 누군가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감정 상태’와 관련된다. 두 번째로 연민은 슬픔과 걱정의 형태로 표현되는 반 면,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여 함께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는 점에서 다르다.60) 다시 말해서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고, 동정은 다른 사람의 감정 중에서도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걱정하거나 염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공감이란 상상을 통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고, 감정뿐만 아니라 타자의 사고방식 및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며, 이 이해를 바탕으로 타인과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하며, 나의 감정과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정의된다.
57) Doris Bischof-Köhler: Empathie-Mitgefühl-Grausamkeit. Und wie sie zusammenhängen. In: Berliner Debatte Initial, 17(1/2), 55, 2009, S.56(52-57).
58) Fritz Breithaupt: Kulturen der Empathie. Berlin 2013, S.57-58.
59) Lothar Bredella: a.a.O., 2010, S.171.
60) Wolfgang Friedlmeier und Gisela Trommsdorff: a.a.O., S.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