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발달해온 한국의 초상화는 근대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겪으면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서양문명의 충격에 저항보다는 타협으로 근대화를 먼저 이루어낸 일본이 그 영향력을 동아시아로 확장하게 되자 문화교류의 판도 역시 종전과는 다른 양상 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를 거처 일본열도로 전해지던 문화전파 흐름의 오랜 대세가 최초로 열도에서 반도와 대륙으로 180도 방향이 전환되었다. 인쇄술과 사진술의 도입에 힘입 어 기계화된 대량복제의 방식으로 등장한 초상사진이 이전 초상화를 대체하는 시각문화의 재편이 이 루어지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군주의 초상은 강력한 정치 선동의 무기가 되어 근대국민국가의 주요 한 구성부분이 되었다. 메이지시대 이후 일본의 천황,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 중국의 마지막 황제 인 부의(溥儀), 그리고 이후의 각국의 최고 통치자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고종은 여러 종류의 초상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도 6). 그러나 보다 커다란 변화는 이전에는 초상화로 묘사되기 어 려웠던 일반 대중 개인들이 초상사진의 주된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이다.
채용신(蔡龍臣 1848-1941)은 서양으로부터 소개된 초상사진을 이용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초상화 를 제작하였다. 애초에 고종의 어진을 그릴 정도로 전통적인 초상화법에 능숙했던 그가 조선 왕조의 종말과 더불어 사진을 이용하여 주문생산 방식으로 초상화를 그린 것은 흥미롭다. <이종림 초상>은 정면상으로 얼굴의 명암처리와 의복의 입체감, 그리고 신체비례 등에서 당시의 초상사진과 유사한 형식을 보여준다(도 7).
한국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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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1> 작자미상, 이성계 초상, 1872년, 비단에 채색, 220x151cm
<도 3> 이명기, 오재순 초상, 1791년, 비단에 채색, 151.7×89cm
<도 2> 변상벽, 김치인 초상, 1760년, 비단에 채색, 152.8x81.6cm
<도 4> 이한철, 유숙,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 1869, 비단에 채색, 131x66cm
제12기 박물관대학 - 한국의 옛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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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5> 창덕궁 선원전 감실 <도 6> 로웰 촬영, 고종 초상사진, 1884
<도 7> 채용신, 이종림 초상, 20세기, 비단에 채색, 19×53cm
한국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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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기록화의 세계
박정혜 (한국학중앙연구원)
Ⅰ. 궁중기록화(宮中記錄畵)의 개념
Ⅱ. 궁중행사도의 제작 연원
Ⅲ. 16-18세기 궁중연향도
Ⅳ. <화성능행도병>과 원행을묘정리의궤
Ⅴ. 19-20세기의 宮中宴享圖
Ⅵ. 조선시대 궁중행사도의 특징과 의의
조선시대 궁중기록화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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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기록화의 세계
박 정 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