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동래지역 도화서 파견화원과 재지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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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동래지역 도화서 파견화원과 재지화사
이 현 주
제12기 박물관대학 - 한국의 옛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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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종23년 [대전속록]의 [예전] 勵條- 매월말 궁궐과 도화서 소장명화들을 묘사케하여 그 중 특이자에게는 冬, 夏에 취품론상하고 1년 12번 중에 8차에 걸쳐 일등을 한 자에게는 서반7 품 이상의 직에 서용함.
3) 圖畵署 畵員의 시대별 양상 (1) 조선초기 (1392~약 1550)
○ 양인이나 직책 때문에 천민과 유사한 계층으로 간주
○ 도화서의 제도나 화원에 관한 제반사의 토대가 확고하게 성립된 시기.
○ 특히 15세기경. 화원의 신분에 대한 기본 틀이 잡힌 것도 세종조(1418~1450)부터 성종조 (1469~1494)에 이르는 시기
○ 공장(工匠)과 동일시 -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도화서는 禮曹 가 아니라 工曹 에 소속 시켜야 함을 주장
○ 安堅 - 뛰어난 재주와 세종 및 안평대군의 비호에 힘입어 정4품인 호군(護軍)이 됨. 실권은 없으나 화원이 오를 수 있는 종6품의 한계를 벗어난 최초의 예
○ 崔涇- 세조원년 12월에 安貴生과 함께 副司直(正五品)오르지만 세조9년 신하들의 잡직의 신 분상승반대로 도화서 제수에서 파직
(2) 조선중기 (약 1550~약 1700)
○ 16세기 후반-仁祖(인조1623~1649)년간 이후 중인으로써의 화원집안들의 실질적인 형성과 계승
○ 慶州李氏 ( 李正根, 李起龍 등) 仁同張氏 (張得萬, 張漢宗 등) 全州李氏 (李崇孝, 李興孝, 李禎 등) 高靈申氏 (申漢枰, 申潤福 등) 金海金氏 (金弘道, 金良驥 등)
(3) 조선후기 (약1700~ 약1850)
○ 도화서 화원의 전성시대 - 김홍도, 신윤복, 정선 등 개성적 화풍 형성 ○ 도화서 화원과 규장각 자비대령화원의 분화
(4) 조선말기 (약 1850~ ) ○ 남종문인화풍의 포괄적 영향
○ 중인화가 - 조희룡, 허유, 전기, 김수철, 유재소, 오경석 ○ 도화서화원 - 유운홍, 백은배, 박기준, 이한철, 유숙, 장승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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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규장각 차비대령화원 1) 奎章閣 差備待令畵員의 분화
○ 정조대부터 고종때까지 조선 후기의 권력과 문화의 중심부였던 昌德宮의 규장각에서 국왕과 국왕 측근의 閣臣들이 당대 최고급의 화원화가 10여 명을 선발한 뒤 宮中畵員으로 운영했던 특별한 화원
○ 정조7년(1783)부터 고종18년(1881)까지 약 100년 동안 100여 명의 궁중화원들이 치렀던 총 800여 회의 자비대령화원 祿取才 시험 문제와 시험 성적이 규장각의 근무 일지인 1,200여 책의 『內閣日曆』에 기록, 보존
○ 내각일력 의 녹취재 자료 : 규장각에서는 자비대령화원들에게 국왕과 각신들이 직접 ‘녹취 재’(祿取才 : 추가 지급된 녹봉을 받기 위해 치르는 취재 시험)라는 별도의 시험을 실시하면 서 특별 관리, 후원, 재교육함으로써 화원의 운영 체제에 획기적인 변화
2) 差備待令畵員의 祿取才
○ 도화서 화원의 취재- 1년에 4번, 죽·산수·인물·영모·화초 등 5개 화문으로 예조판서가 실시하고 채점한 뒤 녹과를 주는 제도.
○ 규장각에서 실시된 자비대령화원 녹취재 - 속화(俗畵)와 문방(文房), 누각(樓閣) 화문(畵門) 을 새로 만들고, 기존의 인물(人物), 산수(山水), 영모(翎毛), 초충(草蟲), 매죽(梅竹)과 함께 8개 화문으로 확장
○ 녹취재는 도화서 취재에서 있었던 畵門 사이의 차등적인 점수제를 없애고, 1년에 12번 시행.
그 성적에 따라 녹봉을 차등 지급
○ 자비대령화원으로 발탁되면 특별한 견책 사유가 없는 한 거의 終身까지 그 자리가 보장, 국 가에서는 가장 우수한 화원을 장기간 계속 활용할 수 있는 이점 확보
○ 특히 속화와 문방은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도시화되고 문명화되어 갔던 당대의 현실 모습과 그에 따라 대두된 회화계의 새로운 과제와 흥미를 가장 특징적으로 반영
3) 정조시대 회화 이념의 구현 - ‘자비대령화원 직제’
○ 강력한 왕권 정치와 개혁 정치를 주도하면서 규장각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 ○ 18세기의 정치적 안정에 따른 사회경제적 발전과 탕평정치 출현으로 중인사회 성장
○ 18세기의 문예 중흥과 중인 계층의 성장이라는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김홍도, 이인문, 김득 신 등의 화원화가들이 당대의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어 회화사적으로 훌륭한 작품 제작 ○ 영·정조대의 강력한 왕권 정치와 함께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이 크게 변화와 더불어 도화서
운영의 제도적 변화
○ 신한평, 김홍도, 이인문, 김득신, 이한철 등 국왕을 위한 도화 활동을 담당하며 특별 대우 御眞과 儀軌圖, 珍饌․ 進宴圖등 궁중관련행사도 제작참여(<華城陵幸圖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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