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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의 상징으로 장식된 민화 책거리

Dalam dokumen 속표지 (Halaman 140-144)

궁중이나 상류계층으로 그 수요가 한정되었던 책거리가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민화 책거리가 발달 하게 되었다. 궁중 책거리의 잔영이 남아있는 작품도 있지만, 우선 대형 병풍으로 제작되던 궁중 및 상류계층의 책거리는 민간의 주거공간에 맞게 키가 작은 병풍그림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책가가 있는 책거리보다 책가가 없는 책거리를 선호하게 되었고, 그것도 위아래로 펼쳐놓는 책거리보다는 콤팩트하게 밀착된 책거리가 유행하게 되었다. 그림의 소재도 서민의 취향에 따라 변했다. 중국의 도자기와 청동기가 조선의 도자기와 가구로 바뀐 경우가 많고, 학문보다는 출세를 비롯한 기복적인 상징으로 가득 차게 된다.

책가가 있는 책가도는 민화에서도 여전히 제작되었다. 하지만 궁중 책가도처럼 책가와 책을 비롯 한 기물들의 관계가 합리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지 않고 책가의 시렁과 기물의 관계가 새롭게 규

책거리로 본 조선민화의 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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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궁중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민화작가 다운 자존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삼성미술관 소장 <책거리>는 언뜻 책가 안에 기물들이 합리적으로 배치된 듯하나, 자세히 살펴보 면 각 칸에는 병풍을 배경으로 책, 청동기, 문방구, 과일과 채소 등이 배치되어 있다. 작은 공간 안 에 어떻게 병풍이 설치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병풍과 기물은 미니어처(miniature)처럼 축소 되었다. 궁중 책가도를 본떴으나 민화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민화 책가도로서, 적색의 색조가 독특 하게 느껴진다.

뉴욕 브루클린박물관(Brooklyn Museum) 소장 <책거리>는 책가와 기물의 관계가 비교적 합리적 인 편에 속한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조차 의외의 곳에서 변화를 주었다. 책가의 시렁을 굵은 나무판 이 아니라 유리판처럼 얇게 그린 것이다. 역시 민화가다운 발상이다. 그 덕분에 이 작품에서는 시렁 보다는 그 안의 기물들이 부각될 수 있었다.

또 다른 책가의 짜임을 볼 수 있는 민화 책가도가 있다. <책가도병풍>(미국 뉴욕 강컬렉션 Kang Collection 소장)은 균등하게 배정된 24칸의 책가 속에 책과 장식들이 한 곳도 똑같은 것이 없이 다 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궁중 책가도와 달리 책가의 칸막이벽을 한결같이 왼쪽에 배치하고 음영 을 넣어 표현했지만, 책과 장식들은 그 틀에 구애되지 않고 각기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궁중 책가도의 중후한 색조가 파스텔 톤의 밝은 빛깔로 바뀌었다. 언뜻 규격화되고 형식화된 책가도로 보 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민화만의 자유로움이 가득한 작품인 것이다

그런데 민화에서는 책가가 있는 책거리보다 책가가 없는 책거리가 다 많이 제작되었다. 그것은 민 화는 궁정회화처럼 키가 크지 않고 폭도 작기 때문이다. 주거공간이 작으니 그곳에 설치되거나 붙이 는 그림들이 작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작은 화면에 걸맞은 구성으로는 책가가 없는 책거리가 좋고 그것조처 널찍하게 펼쳐놓기 보다는 한 덩어리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것이 선호될 수밖에 없었 다. 또한 민화에서 책가는 궁중회화에서만큼 크게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자유로움을 선호하는 민 화에서 책가는 거추장스러운 굴레가 되기 때문이다. 책가가 있는 책거리 민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 만, 궁중회화에서만큼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기물간의 압축이 심하다 보니, 그림 속의 물상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한참 들여다보아 야 할 만큼 알쏭달쏭하게 표현된 작품도 있다. 바로 일본민예관(日本民藝館) 소장 <책거리>다. 이 작품에서는 항아리와 접시들이 맞물려 있는 공간처리가 절묘하고, 책갑 위에 책갑이 놓여 있는 모습 은 동전 쌓기 놀이처럼 아슬아슬하다. 왼쪽의 그림도 공간의 맞물림이 비슷하다. 왼쪽 항아리 뒤에 책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안경이 붙여있듯이 놓여 있다. 이 책 뒤에는 오른쪽 항아리가 있다. 그 런데 책 위에 있는 소반의 왼쪽은 아래와 반대로 접시 앞에 위치해 있다. 왼쪽 항아리의 아랫부분은 책 앞에 있지만 윗부분은 책 뒤에 있는 소반 뒤에 있어, 마치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케 한다. 책거리 의 기기묘묘한 공간 속을 빠져 나오면, 그 다음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책가와 그릇의 표면에 베풀어진 치밀한 무늬다. 현실성을 떠난 공간은 유난히 세밀하게 그려진 장식적인 무늬들에 의해 독

제12기 박물관대학 - 한국의 옛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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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한 환상으로 피어난다. 민화 책거리에서는 절묘한 공간과 섬세한 장식성의 조화를 맛볼 수 있다.

콤팩트하게 응축된 공간, 이것이 민화 책거리의 중요한 특색인 것이다.

1957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염직공예가인 세리자와케이스케(芹澤銈介, 1895~1984)의 제자 로부터 이 작품을 기증받았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깊은 충격에 빠져 당시 아픈 몸임에도 불구하 고 하룻밤 만에 글 한 편을 토해낸다. 그것이 바로 「불사의한 조선민화」다. 이 글은 일본 문화계에 영향을 미쳐 조선민화를 수집하는 붐이 이는 계기가 되었다.

“나의 직관은 이 그림이 대단히 매혹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뭔가 신비로운 아름다움마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혜를 짜서 다시 바라보면 이 그림만큼 모든 지혜를 무력하게 만드는 그림은 좀처 럼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실은 이 그림이 근대인인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불합리성에서 이 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된다.”

서양의 근대미술 교육을 받은 야나기 무네요시는 공간이 깊어질수록 점으로 모아지는 선투시법이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과학적인 그림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공간으로 표현 된 조선의 민화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책가 속에 정연하게 나열되어 있는 책과 기물들이 같은 평면 위에 겹쳐져 묘사되어 있다. 뒤의 책과 앞의 기물 사이에는 한 뼘의 여유조차 찾을 길이 없을 만큼 밀착되어 있다. 그런데 원래 깊이 있는 공간을 압축하다 보니 책들의 공간은 평면도 아니고 입체도 아닌, 좀처럼 어떤 형상인지 감지하기 힘들 정도로 미묘한 공간을 창 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 것이다. 매우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한 표현으로 점철된 민화 책거리에서 오히려 그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이다. 때문 에 그는 이 그림을 ‘불가사의’하다고 토로한 것이다.

일본에 소장된 조선의 책거리 가운데 명품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교토 고려미술관(高麗美術館)에 소장된 <책거리병풍>이다. 이 병풍은 구성과 장식이 조화로운 작품이다. 책들은 약간 경사진 각도로 자유롭게 쌓여 있다. 이러한 자유로움 속에서 생기와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처럼 동적인 형 상의 책들과 달리 책갑의 문양들은 묵묵하게 정면을 향한다. 전혀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는 정적인 패턴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책은 책대로 문양은 문양대로. 이것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개념으로 보인다. 책의 자유로운 짜임에서는 구성의 묘미를 맛보고, 정면을 향한 문양에서는 장식성을 향유하 기를 바라는 것이 화가의 의도일 것이다. 동적인 구성과 정적인 패턴은 둘이면서도 하나같이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것은 일즉다(一則多)요 다즉일(多則一)의 경지이다. 자유로운 짜임새 속에서 문양은 장식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책과 다른 정면성을 견지한 것이다. 또한 점차 조선의 생활용품이 증가하 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도자기는 청대의 것 대신 조선의 것이 많아지고, 가구 또한 장, 경대, 소반, 찬합 등 대부분 조선의 기물들이 등장한다. 때문에 민화 책거리에 와서 비로소 조선의 정취가 물씬 풍기게 된다.

책거리로 본 조선민화의 특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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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민화에서는 물상 간의 공간을 조밀하게 응축한 것일까? 우선 민화에서는 병풍의 키 가 작아지니 그에 맞춘 구성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당시 최신 화풍인 선투시 도법과 음영법으로 멋지게 그리면 더 좋은 텐데, 서민의 취향은 의외로 보수적이다. 깊이 있게 전개 되는 공간 대신 평면적으로 납작한 공간, 입체적인 조형대신 장식적인 조형으로 다시 복귀했다. 그 것은 그릴 실력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취향이 맞지 않아 이루어진 선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민화 의 매력은 사실 그대로 묘사한 것보다 대상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짜임새에 있다. 그림 속의 대상들 을 하나하나 분해한 뒤 이들을 새로운 구조 속에 재편성한 것이다. 민화가들은 대상을 똑같이 그리 기보다는 생각하고 느끼고 아는 대로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현대화가 이우환이 민화를 ‘구조적인 회화’라고 평한 것은 이러한 특징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민화는 시각의 세계가 아니라 개념의 세계이고, 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상상의 세계다.

긴밀하게 응축된 공간과 더불어 민화 책거리에서 나타난 중요한 특색은 행복, 장수, 다남자(多男 子), 출세 등을 염원하는 길상의 상징들이 부각된 점이다. 궁정화풍의 책거리가 청대의 도자기나 청 동기와 같은 골동품으로 장식된 반면, 민화풍의 책거리에서는 삶에 필요한 소박한 염원이 담긴 물품 들이 등장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소장 <책거리>는 책을 중심으로 과일과 식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책거 리는 원래 공부에 대한 소망을 담은 그림인데, 그 주변에 오이, 고추, 불수감, 딸기 등 온통 득남 을 염원하는 상징으로 가득하다. 왼쪽 상단의 오이는 생긴 모양이 남근을 닮아 다산을 소망하고, 그 아래 불수감과 딸기 역시 씨가 많아 다산을 상징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른쪽 위 주전자 에 심겨져 있는 고추다. 고추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아는 가장 한국적 인 다산의 상징이다. 오른쪽 아래 포개어 엎어져있는 사발들에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이란 글자가 쓰여 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아들을 많이 낳고 공부를 많이 시켜 출세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표현 한 것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책거리>는 책, 과일과 꽃, 그리고 가구의 조합을 보여주고 있다. 이 그림 의 중심은 책이지만, 수박이나 복숭아 등 과일의 상징도 그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복숭아 는 장수, 수박은 다산, 그리고 연밥을 새가 쪼는 것은 합격을 상징한다. 이 책거리는 학문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복을 비는 여러 소망이 간절하게 배어 있다.

역시 서민들의 바람은 보다 현실적이다. 중국의 도자기와 청동기와 같이 비싼 수입품들은 조선에 서 제작된 청화백자와 가구처럼 국산품으로 바뀌었고, 행복을 기원하는 상징인 꽃과 과일로 화사하 게 꾸며졌다. 보다 친근하고 기복적이며 화려한 도상들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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