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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우스( Archeus )와 아르카눔( Arcanum )

2.3. 의학 사상

2.3.2. 아르케우스( Archeus )와 아르카눔( Arcanum )

파라켈수스 의화학의 논리를 요약하자면, ‘인체관→병리학→약리학’의 순서를 따른다. 인체는 화학 공정이 진행되는 일종의 공장과도 같고, 공

244) Sud. 8:181.

245) 옌스 죈트겐, 『교양인을 위한 화학사 강의』, 10, 13. 죈트겐은 현 대 화학의 주된 목적이 원소와 그 변화를 이해하고 원소를 변형시켜 쓰임새 있게 개선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화학은 연금술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일반 화시켰다고 지적한다. 가치가 작은 물질로 가치가 큰 물질을 만들어내겠다는 아이디어는 오히려 현대 사회에서 더 활발하지 않던가.

246) Andrew Weeks, Essential Theoretical Writings, 14-19; Walter Pagel, Paracelsus, 100-104. 본 논문의 각주 437을 보라.

247) 파울 U. 운슐트, 『의학이란 무엇인가: 동서양 치유의 역사』, 홍 세영 역 (서울: 궁리, 2010), 306-307;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반론으로는 본 논 문의 각주 454를 보라.

정에 문제가 생기는 현상이 곧 질병이다. 해당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는 신체 전체가 아닌 국지적인 부위에 접근해야 하며, 해당 부위에 들어 맞는 특정한 의약 물질을 생약으로부터 분리해야 한다.

앞서 자연 그 자체가 연금술사라고 언급했듯이, 파라켈수스는 인체도 그 내부에 하나의 유능한 연금술사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인 체 내부에 존재하여 인체 각 기관의 체계를 관장하는 연금술사를 ‘아르 케우스’라고 불렀다. 아르케우스의 역할은, 위장을 실험실로 삼아 음식에 서 독을 분리하여 제거하는 일이다.248)

독은 파라켈수스의 의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파라켈수스의 저 작 『파라미룸 서(Volumen Paraminum)』에 따르면, “만물은 독이다.

독성이 없는 것은 없다. 독이 되느냐 약이 되느냐는 그것의 복용량에 달 려 있다. 독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독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249) 독은 인체에 유익한 의약, 즉 ‘아르카눔’이라는 숨겨진 활성 성분을 지니고 있으며, 음식이나 금속의 독으로부터 아르카눔을 추출해 내는 것이야말로 연금술사 아르케우스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다. 만약 아르케우스가 위장이라는 실험실에서 연금술사 노릇에 실패한 다면, 질병이 생겨난다.250)

[표 1] 다섯 실체와 다섯 존재 방식의 질병

248) Sud. 11:188; Urs L. Gantenbein, “Poison and Its Dose:

Paracelsus on Toxicology”, 4-5; 아서 그린버그, 『화학사』, 96. 파라켈수스 에게는 음식이 병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249) Sud. 1:163ff.

250) Urs L. Gantenbein, “Poison and Its Dose”, 6-9

실체 질병

별의 실체 자연적인 질병

독의 실체 중독에 의한 질병과 전염병

자연의 실체 기후의 영향에 의한 질병

혼의 실체 정신적인 질병

신의 실체 신의 섭리에 의한 질병

파라켈수스는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다섯 가지의 실체(ens)에 대응 하여 다섯 가지 방식으로 질병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를 표로 나타내 면 다음과 같다. 파라켈수스는 [표 1]에서와 같은 다섯 존재 방식의 질병 을 모두 다루었지만, 그중에서도 독의 실체로 인한 질병 개념은 의학사 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는 인체 바깥의 원인이 인체 안으로 들어 와 특정한 자리를 잡는,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질병 개념을 도입했다. 파 라켈수스 식으로 표현하자면, 외부의 사악한 아르케우스가 인체 속으로 침입해 선한 아르케우스를 공격하여 기관을 손상시킴으로써 질병이 발생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질병에는 특정한 치료약이 필요하며, 치료 약에는 광물에서 추출될 수 있는 특정한 반(anti)-아르케우스가 포함되 어야 한다. 결국 질병의 원인을 극복하는 것은, 연금술사 아르케우스가 성공적으로 아르카눔을 추출해낼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린 셈이다.251)

이와 같은 파라켈수스의 질병 이해는, 흑사병의 대유행 이후 서유럽 에서 그 권위에 의문부호가 달린 스콜라주의 의학과 대척점에 서 있었 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흑사병, 매독, 천연두의 창궐은 단지 인 체 내부의 조건만으로는 질병이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체액과 체질이 새로운 시대의 질병을 해명하지 못한다면, 파라켈수스는 인체 내 부로 들어온 질병의 원인을 제거할 특정한 화학 성분을 찾는 것이야말로 의학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확신했다.252) 따라서 식물성 약재의 복합 처방을 추구했던 갈레노스주의 의사들과는 달리, 파라켈수스는 특정한 효과를 지닌 금속 성분의 추출과 분리를 지향했다. 갈레노스가 질병에 반대되는 성질의 약을 처방했다면, 파라켈수스는 유사성에 의한 치료를 주장했다. 즉, 독은 독으로 다스린다.253)

251) Walter Pagel, Paracelsus, 137-141.

252) 휴 W. 샐츠버그. 『화학의 발자취』, 156-157. 의학에서 ‘특정 한’(specific)이란 표현은 파라켈수스에게서 비롯되었다. 한 가지 성분만을 포 함하는 약은 효과를 측정하기 쉬웠고, 갈레노스주의 의사들의 처방보다 치료 속도가 빨랐다. 이렇듯 파라켈수스의 의화학 이론은 당대의 의학적 권위에 대한 감정적인 배척이라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 로이 포터, 『의학, 놀라운 치유의 역사』, 170. 파라켈수스주의자들은 갈레노스주의자들이 여러 약재를 한꺼번에 결합하여 처방하는 것을 비판했다.

253) Andrew Weeks, Essential Theoretical Writings, 247; 아서 그린

파라켈수스는 질병을 씨앗에 비유함으로써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식물의 종이 자신의 씨앗으로부터만 오듯이, 특정 한 질병도 특정한 씨앗으로부터만 온다. 질병이 특정한 씨를 가진다면 그 치료법이나 약도 특정할 것이다.254) 파라켈수스는 요한네스 데 루페 시사의 제5원소 개념을 계승했지만,255) 파라켈수스의 제5원소는 만병통 치약으로서의 엘릭시르와는 확연히 다른 개념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각 질병이 자신만의 치료제를 갖는다는 것이었고, 이는 보편적 치료제를 바랐던 과거의 의학적 연금술사들과는 명백히 다른 점이었다.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