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호문쿨루스‘들’
5.2.3. 완벽한 인간
앞서 두 가지 유형의 호문쿨루스를 살펴보면, 호문쿨루스가 파라켈수 스의 진서와 위서 모두에 흩어져 등장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의화학적 유형의 호문쿨루스는 오 로지 이 저작에서만 등장한다는 점에서 후대에 지속적인 논쟁을 일으켰 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저자인 위-파라켈수스는 호문쿨루스가 자연에 거스르지 않는 연금술 기예를 통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고 주장한다. 그렇게 제작된 호문쿨루스는 크기만 작을 뿐 모든 종류의 기예를 구현하고 있는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이라는 아이디어가 전적으로 위-파라켈수스의 것 이고, 실제 파라켈수스의 몫은 없다고 봐야 할까? 앤드류 윅스는 파라켈 수스가 원소적 영혼(Elementargeister)이라는 존재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지적한다. 원소적 영혼이란 인간보다 우월한 외계적 존재로서 독일 지역 르네상스에서 특징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502) 흥미롭게도 파라켈수스 의 진서인 『오랜 삶에 관하여(De vita longa)』에서, 그의 저작 전체에 서 매우 희귀한 단어인 ‘에녹디아니’(Enochdiani)를 발견할 수 있다.503) 이 명칭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창작된 합성 단어로서, 불멸의 삶을 사는 원소적 존재를 가리킨다.504)
이러한 아이디어에는 독일 르네상스를 출발시켰던 니콜라우스 쿠자누 스와 이탈리아 철학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영향이 엿보인다. 우주는
502) Andrew Weeks, “Cosmic and Terrestrial Aliens in the German Renaissance,” Daphnis 33 (2004): 255.
503) Hus. 6:188. “Quae quidem dispositio ex eo contingit, quo sese homo gradatur in animo, vt aequalis reddatur Enochdianis.”
504) 에녹디아니는 구약성서의 인물인 에녹(Enoch)과 ‘하늘’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 ‘디아나’(diana)의 합성어이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뒤에,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아들딸을 낳았다. 에녹은 모두 삼백육십 오 년을 살았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사라졌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신 것이다”(창세기 5:22-24, 표준새번역); Thomas Willard, “Alchemy and the Bible,” in Center and Labyrinth, eds. Eleanor Cook et al. (Toronto:
Toronto University Press, 1985), 117. 그리스도교 성서의 에녹 전통과 연금 술은 깊은 관련을 맺어왔다.
창조된 것이 아니라 단 하나에 불과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적인 가르침에 대항하여, 쿠자누스는 『가르친 무지에 관하여(De docta Ignorantia)』에서 우주가 창조되었고 여러 개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 했다. 우주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시키려는 쿠자누스의 의도는 인간의 영 역도 확장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505) 그의 주장은 북부 이탈리아 에서도 적극 수용되었고, 인간 존재의 독특한 위치를 강조했던 피코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506)
이 지점에서 파라켈수스가 영향을 받았을 또 하나의 인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파도바, 페라라, 볼로냐에서 가르쳤 던 피에트로 폼포나치(1462~1525)였다. 인간 존재에 관한 사유의 도약 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폼포나치는 1516년 『영혼불멸에 관한 연구 (Tractatus de immortalitate animae)』를 발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불멸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가 취했던 전략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도 영혼의 필멸을 지지했 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507) 폼포나치의 주장은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 켰는데, 그의 책이 출판된 1516년은 파라켈수스가 페라라에서 학위논문 을 쓰던 시기였으므로, 파라켈수스는 폼포나치로부터 야기된 논쟁 상황 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앞서도 강조했듯이, 위-파라켈수스의 의화학적 호문쿨루스는 인간보 다는 괴물의 범주로 이해되었다. 실제 파라켈수스도 괴물과 인간을 구별 하는 문제에 몰두했으며, 인간보다 우월한 원소적 영혼이라는 존재를 분 명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처럼 인간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닌 인간보 다 우월한 존재로서의 괴물을 상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리스토텔레스 의 세계관에 반하는 태도였다.508) 요컨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의화학적 호문쿨루스 레시피를 편집한 위-파라켈수스는 스승 파라켈수 505) Andrew Weeks, “Cosmic and Terrestrial Aliens in the German Renaissance”, 257-258.
506) 본 논문의 2.2.3.을 보라.
507)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 강의』, 280-281.
508) Gunhild Pörksen, “Die Bewohner der Elemente nach Paracelsus’
Liber de Nymphis,” Nova Acta Paracelsica 10 (1996): 77-78.
스의 선구적인 언급들을 인식함으로써 완벽한 인간이라는 아이디어를 전 개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