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연구사
1.2.4. 우리나라에 소개된 파라켈수스
최근 국내 도서 시장에서 의학사에 관한 대중 서적들이 여럿 출판되 Theophrast von Hohenheim’s Namen 1523~1893 erschienenen Druckschriften (Berlin: Druck und Verlag von Georg Reimer, 1894).
85) Karl Sudhoff, Acta Paracelsica (München: Paracelsus- Gesellschaft, 1930-1932).
86) Schweizerischen Paracelsus-Gsellschaft, Nova Acta Paracelsica, I-V (Basel: Birkhäuser, 1944-1948); VI (Einsideln: 1952). 1952년 이후로는 비정기적으로 간행되었다.
87) Joachim Telle ed., Parerga Paracelsica: Paracelsus in Pergangenheit und Gegenwart (Stuttgart: Steiner, 1991).
88) Joachim Telle ed., Analecta Paracelsica (Stuttgart: Franz Steiner, 1994).
89) St. Luis Medical Society, “Paracelsus Collection,” Bulletin of the History of Medicine 9 (1941): 545-579.
90) Wilhelm Kühlmann & Joachim Telle, Corpus Paracelsisticum:
Dokumente frühneuzeitlicher Naturphilosophie in Deutschland, Band 1-3 (Berlin: de Gruyter, 2013).
91) 본 논문의 2.4.3.을 보라.
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대개 인물 중심으로 소개되는 의학사 서적 가운데 파라켈수스에게 독립적인 챕터 내지는 충분한 분량 을 할애한 경우는 모두 네 권에 불과하며, 그나마도 국내 연구자가 저술 한 경우는 단 한 권뿐이다.92) 이러한 대중 서적들이 소개하는 파라켈수 스는, 서술된 내용의 출처가 분명하지 않거나, 흥미 위주의 소재가 강조 되거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정보의 범위가 대부분 제1세대 연구에 국한 되어 있다. 근거가 없는 오류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93) 따라서 파라켈수 스에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목적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반면에, 의학사가 아닌 화학사 분야 서적들은, 오히려 훨씬 더 충실한 내용 및 충분한 분량을 연금술의 역사 및 파라켈수스의 의화학 사상에 할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94) 파라켈수스는 의학사와 화학사에서 동시 92) 로버트 E. 애들러, 『의학사의 터닝 포인트 24: 히포크라테스에서 인간유전체까지』, 조윤정 역 (서울: 아침이슬, 2007); 크리스티안 베이마이 어, 『의학사를 이끈 20인의 실험과 도전』, 송소민 역 (파주: 김영사, 2010);
헨리 지거리스트, 『위대한 의사들: 전기로 보는 의학의 역사』, 김진언 역 (서울: 현인, 2011); 곽경훈, 『반항하는 의사들』 (서울: 원더박스, 2021); 이 외에도 파라켈수스를 작은 분량이나마 소개하는 의학사 및 과학사 대중 서적 들은 다음과 같다. 쿤트 헤거, 『수술의 역사』, 김정미 역 (서울: 이룸, 2005); 송성수, 『한 권으로 보는 인물 과학사』 (서울: 북스힐, 2012); 강건 일, 『현대약 발견사: 1800~1980』 (서울: 참과학, 2014); 정해상, 『과학사의 사건파일』 (서울: 일진사, 2015); 오카다 하루에, 『세상을 뒤흔든 질병과 치 유의 역사』, 황명섭 역 (서울: 상상채널, 2017); 리하르트 프리베, 『호르메 시스, 때로는 약이 되는 독의 비밀』, 유영미 역 (고양: 갈매나무, 2018); 찰 스 맥케이 『대중의 미망과 광기』, 이윤섭 역 (서울: 필맥, 2018). 이 가운데 지거리스트와 정해상(제2세대 연구가 반영된)은 비교적 읽을 만하다.
93) 가령, 파라켈수스의 모친이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거나, 그가 이집트 에서 마법의 기술을 배웠다거나, 독일에서 대여섯 곳의 대학을 다녔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잘못된 정보이다. 번역서의 경우에는, 용어의 오류도 자 주 발견된다.
94) 휴 W. 샐츠버그, 『화학의 발자취: 원시인에서 화학자로』, 고문주 역 (서울: 범양사, 1993); 헨리 레이시스터, 『화학의 역사적 배경』, 이길상, 양정성 공역 (재판; 서울: 학문사, 1995); 존 허드슨, 『화학의 역사』, 고문주 역 (서울: 북스힐, 2005); 아서 그린버그, 『화학사: 연금술에서부터 현대 분 자과학까지』, 김유항, 강성주, 이상권, 이종백 공역 (파주: 자유아카데미, 2011); 옌스 죈트겐, 『교양인을 위한 화학사 강의: 연금술부터 독가스, DNA 복제까지 세상을 바꾼 화학의 역사』, 송소민, 강영옥 공역 (서울: 반니, 2018).
에 다뤄지는 흔치 않은 인물 중 하나인데, 서술의 질과 양에서 국내 의 학사 서적과 화학사 서적이 보여주는 두드러진 차이는 의학사 전공자들 에게 유의미한 고민을 제시해준다 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철학사 분야의 서적들에서도 파라켈수스를 비중 있게 다룬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 (Ernst Bloch, 1885~1977)의 철학 강의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르네상 스를 그저 중세와 근대의 가교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혁명적 변화를 위한 사상이 분출되었던 독창적 시대로 바라본다. 혁명적 성격이 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블로흐는 파라켈수스를 야콥 뵈메(Jakob Bohme, 1575~1624)와 함께 “독일의 철학자”(philosophus teutonicus)로 묶는다.95) 철학자 비토리오 회슬레(Vittorio Hösle)도 블로흐와 마찬가지 로 파라켈수스를 독일적인 철학자로 이해하며, 그의 철학 안에서 사회개 혁적 성격을 발견한다.96) 또한 지성사의 맥락에서 파라켈수스는 과거의 권위에 저항하는 인간으로 묘사된다.97)
우리나라 학계에서의 파라켈수스 연구는 도서 시장의 상황만큼이나 빈곤한 형국이다. 지금까지 파라켈수스를 주제로 번역서 한 권, 석사학위 논문과 학술논문이 각각 두 편씩 나와 있을 뿐이다. 오스트리아의 저술 가 에른스트 카이저의 『파라켈수스』는 국내에 출판된 유일한 파라켈수 스 전기이다. 카이저는 방대한 자료들을 동원하여, 파라켈수스가 편력하 는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환경을 극복하여 하나의 근대적 개인으로 성장해 나갔던 과정을 그려냈다.98) 그러나 이 책의 저 술 시점이 1960년대였고 제1세대 연구에 기초한 자료들만 활용할 수밖에 없었기에,99) 제3세대 연구가 시작된 지금의 시점에서는 파라켈수스 입문
95) 에른스트 블로흐, 『서양 중세 르네상스 철학사 강의』, 박설호 역 (파주: 열린책들, 2008), 330-344.
96) 비토리오 회슬레, 『독일철학사: 독일 정신은 존재하는가?』, 이신 철 역 (서울: 에코리브르, 2015). 65-68.
97) 유대칠, 『신성한 모독자: 시대가 거부한 지성사의 지명수배자 1 3』 (서울: 추수밭, 2018), 159-180.
98) 에른스트 카이저, 『파라켈수스』, 182-187.
99) 본 논문의 1.2.1.2)를 보라.
을 위한 자료로서 낡은 측면이 없지 않다.
파라켈수스의 신비주의적 지식관 연구로 학위논문을 쓴 이범은,100) 기 존의 연구자들이 파라켈수스에 관하여 갖고 있던 이미지, 즉 전근대적 마술과 근대적 과학 사이의 과도기에 위치한 신비주의적 인물이라는 이 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식에 관한 파라켈수스의 이해를 살펴보면, 그 는 오히려 문자 언어와 책을 통한 지식의 교류에 적극적이었으며 그가 남긴 저술 또한 비밀스럽기보다는 이해 가능했고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 는 매우 정교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지식관은 경험에 기 반을 두었고 민중 친화적이었기 때문에, 16세기 이후 대학 및 과학자 사 회에서 그의 의화학 이론은 수용되었던 반면 그의 지식관은 수용되지 못 했다는 것이 이범의 결론이다.
파라켈수스주의와 신교의 관계 연구로 학위논문을 쓴 방재원은,101) 파 라켈수스의 의학개혁이 기존의 권위에 저항하는 특징을 가졌으며 파라켈 수스라는 인물 자체도 종교개혁의 선구자 마르틴 루터와 유사점이 많은 저항적 캐릭터였다는 점을 강조했다. 파라켈수스의 사상이 유럽에 확산 되는 과정에서도 주로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지식인들로부터 환영받는 경 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이 유럽의 종교분쟁 지형 내에서 프로 테스탄트로 간주되었다는 것이 방재원의 결론이다.
비교적 최근에 근대 초 독일인의 공포 감정 연구로 학술논문을 쓴 김 학이는,102) 파라켈수스의 두 저작 『페스트에 관하여』와 『인간에게서 이성을 빼앗는 병들』을 중심으로 근대 초 사람들이 페스트와 멜랑콜리 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고찰했다. 인간관, 시간관, 공포의 존재론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근대 초 사람들이 공포를 향해 가졌던 태도는 이후 근대 인들의 태도와 근원적으로 달랐다는 것이 김학이의 결론이다.
100) 이범, “파라켈수스의 신비주의적 지식관: 경험적 자연 연구와의 관 계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학위 논문, 1995).
101) 방재원, “16세기 파라켈수스주의와 신교,”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6).
102) 김학이, “근대 초 독일인들의 공포 감정: 파라켈수스의 경우,”
「역사교육논집」 72 (2019): 291-321.
위에서 소개한 국내 선행 연구는 모두 파라켈수스에 관한 특정한 주 제를 대상으로 삼았다(지식관, 프로테스탄트와의 관계, 질병관). 파라켈수 스에 관한 일반적인 소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 은 연구 시도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다만 연구의 시점이 이 미 오래되어 파라켈수스 연구의 최근 성과들을 반영하기 어려웠다는 한 계, 그리고 제1세대 연구로부터 축적된 파라켈수스라는 인물에 대한 선 입관과 오해가 아직까지도 연구자들에게 공유되고 있다는 아쉬움은 지적 되어야 할 것이다. 학위논문 이후 해당 연구자들의 후속 연구가 전혀 없 었다는 점은 더더욱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선행연구를 극복하는 차원에 서의 연구가 아닌, 새로운 경향이 반영된 연구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 어야 할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