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호문쿨루스의 계보
5.1.3. 인공 인간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생명을 발생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중세 및 르 네상스기 사람들에게 기이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신학자들도 신의 피조 물 안에 스스로 무언가를 발생시킬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 하지 않았다.482) 다만 윤리적 및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게 만드는 지점은 발생의 대상이 인간인 경우였다.483)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당대에 이슈가 되었던 것도, 인공 인간의 제작법을 의화학적 연금술 이론에 기 478) 카트린 M. 콜 & 미셸 콜, 『키의 신화』, 108, 141, 147. 백설공주 이야기에 등장하는 일곱 난쟁이들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479) 카트린 M. 콜 & 미셸 콜, 『키의 신화』, 57, 80, 83, 85-86. 난쟁 이가 종족이 아닌 우연적인 인간 개인이라는 과학적 합의는 19세기에 이르러 서야 이루어졌다.
480) 제임스 M. 배리, 『피터 팬』 이은경 역 (서울: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70. 흥미롭게도 피터 팬이 교수형 나무에 서식하고 엄마 없이 태어났 다는 점은 맨드레이크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보라.
481) 앨리슨 쿠더트, 『연금술 이야기』, 99; 칼 융, 『연금술에서 본 구원의 관념』, 29, 107의 삽화를 참조하라.
482)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집짐승 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창세기 1:24, 표준새번역).
483) Lawrence M. Principe, The Secrets of Alchemy, 132.
초하여 처음으로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인공 인간의 제작이라는 아이디어 그 자체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유대교 학자 숄렘 게르숌 (Sholem Gershom)은 호문쿨루스 아이디어의 뿌리 중 하나가 유대 민간 전승에서 등장하는 골렘(Golem)이라고 주장했는데, 카를 주드호프는 이 에 동의했던 반면, 윌리엄 뉴먼은 골렘의 재료와 불완전한 능력이 호문 쿨루스의 특징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숄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 다.484) 가장 전형적인 골렘 전승의 주인공이자 파라켈수스와 동시대 인 물이었던 프라하(Praha)의 랍비 뢰브 벤 베찰렐(Löw ben Bezaleel, 151 3~1609)의 전승이 성립되기 전까지, 12~15세기에 걸쳐 묘사된 골렘은 비록 힘은 세지만 말을 할 수 없고 저능하며 생식 능력도 없이 오로지 주인에게만 복종하는 불완전한 존재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호문쿨루스 의 이상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485)
진정한 호문쿨루스 전승의 문헌 계보를 추적하기 위해, 뉴먼은 고대 후기 및 중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후 4세기에 활동했던, 역사적으로 실 존 여부가 확실한 가장 오래된 연금술사 파노폴리스(Panopolis)의 조시 모스(Zosimos)는 『덕에 관하여(On Virtue)』라는 난해한 문헌에서 자 신의 꾸었던 꿈을 서술했다. 꿈속에서 그는 증류 유리병 안에서 들려오 는 인간의 음성을 들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유리병 속 인간은 변성된 금 속을 의인화한 문학적 장치로서, 실제 인간의 제작을 의도하지는 않은 위-호문쿨루스라고 볼 수 있다.486)
다른 한편으로, 조시모스와 동시대의 이집트에서 성립된 것으로 보이 484) William R. Newman, Promethean Ambitions, 186.
485) Klaus Völker, Künstliche Menschen Dichtungen und Dokumente über Golems, Homunculi, Androiden und liebende Statuen, 5-30. 진흙으로 만들어진 인공 괴물 골렘은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의 배 경을 가지고 있다(시편 139:16). 골렘은 그의 이마에 ‘ ’(진리)라는 글자를 붙이면 생명을 얻었다가 ‘ ’을 제거하여 ‘ ’(죽음)만 남기면 진흙으로 다시 금 해체된다. 골렘 전승은 다양한 버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데, 랍비 뢰브 벤 베잘렐의 버전을 다음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데이비드 비스니에프스키,
『진흙 거인 골렘』, 김석희 역 (서울: 비룡소, 2005).
486) William R. Newman, Promethean Ambitions, 171-173..
는 살라만(Salāmān)과 압살(Absal)의 기이한 설화에서, 뉴먼은 외부의 조작에 의한 최초의 호문쿨루스의 흔적을 찾았다. 설화 속 주인공인 하 르마누스 왕은 금욕의 실천가였는데, 고행자 칼리쿨라스의 조언에 따라 인공적인 방법으로 상속자를 낳을 수 있었다. 약간의 정액을 재료로 삼 아 만들어진 이 아이가 훗날 왕위에 오르는 살라만이다. 결국 이 기이한 탄생 이야기에는 정자의 형성적 능력과 우발적 발생이라는 두 가지의 아 리스토텔레스적 요소가 반영되어 있던 셈이다.487)
살라만과 압살의 설화에서 호문쿨루스의 한 가지 뿌리를 발견했다 하 더라도, 여기에 구체적인 레시피가 제시된 것은 아니었다. 뉴먼은 인공 인간 제조를 위한 레시피의 뿌리를 위-플라톤(pseudo-Platon)의 저작인
『암소의 서(Liber vaccae)』에서 찾았는데, 이 저작의 저자는 암소의 시 체에서 벌을 만들어내는 부고니아(Bougonia) 의례를 참고하여 새로운 인 공 인간의 레시피를 제시했다.488) 『암소의 서』와 『사물의 본성에 관 하여』의 레시피를 서로 비교해보면, 다섯 가지의 공통점이 확인된다: 1) 정액을 재료로 씀, 2) 피를 공급함, 3) 처음 40일 동안 플라스크 속에서 양육함, 4) 이어서 더 긴 시간 동안 성숙시킴, 5) 특별한 재능을 가진 존 재로 자라남. 반면에 재료에 광물이 혼합된다거나 암소의 내장을 적출하 는 과정은 『암소의 서』에서만 등장한다. 남성의 정액을 적절히 유지시 키는 것만으로도 지성적 존재를 낳을 수 있다는 공통된 가정에도 불구하 고, 단지 후계자 아들을 낳고자 했던 살라만 설화와는 달리, 『암소의 서』는 경이롭고 뛰어난 존재를 낳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사물의 본 성에 관하여』의 호문쿨루스에 더 가깝다.
14세기 토마스 아퀴나스를 필명으로 사용한 어느 저자의 『본질들의 본질들에 관하여(De essentiis essentiarum)』도 인공 인간의 제작에 관 한 중요한 단서를 남겼다. 위-토마스(pseudo-Thomas)는 아랍 의사 알-
487) William R. Newman, Promethean Ambitions, 174-177.
488) Willam R. Newman, “The Homunculus and His Forebears”, 330-331. 이 저작의 원제는 『율법의 서(Kitab al-nawamis)』였는데, 13세기 에 이 책을 번역했던 퀼리엘무스 알베르누스(Guilielmus Alvernus)는 여기에 등장하는 첫 희생물인 암소를 기리기 위해 『암소의 서(Liber vaccae)』라는 라틴어 제목을 붙였다.
라지의 저작에 근거하여, 여성의 기여 없이도 “남성의 정액을 가져다 깨 끗한 용기 안에 넣고 30일 동안 똥의 열로 데우면 사람의 모든 신체 부 위들을 갖춘 인간이 거기서 발생된다”고 기록했다. 이렇게 발생된 인간 은 이성적 영혼을 갖고 있지 않은 대신에, 치료의 효과가 탁월한 피를 지니고 있어서 그 피를 병자에게 사용할 수 있다.489) 이러한 위-토마스 의 파격적인 주장은, 의료 목적으로 복제된 신체 장기의 사용에 관한 오 늘날의 윤리적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