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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소개한 국내 선행 연구는 모두 파라켈수스에 관한 특정한 주 제를 대상으로 삼았다(지식관, 프로테스탄트와의 관계, 질병관). 파라켈수 스에 관한 일반적인 소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와 같 은 연구 시도가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다만 연구의 시점이 이 미 오래되어 파라켈수스 연구의 최근 성과들을 반영하기 어려웠다는 한 계, 그리고 제1세대 연구로부터 축적된 파라켈수스라는 인물에 대한 선 입관과 오해가 아직까지도 연구자들에게 공유되고 있다는 아쉬움은 지적 되어야 할 것이다. 학위논문 이후 해당 연구자들의 후속 연구가 전혀 없 었다는 점은 더더욱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선행연구를 극복하는 차원에 서의 연구가 아닌, 새로운 경향이 반영된 연구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 어야 할 필요성이 요청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언어는 사물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근대식 기호 체계가 아니었다. 도대체 신이 서명을 남겨놓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근대인들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운 이 문장은, 푸코가 제시했듯이, 저자 당대의 담론(discours) 상황 을 읽어낸다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105) 푸코는 말한다. 르네상스인들 에게 “표징이 없는 닮음은 없다.”106) 대우주인 신이 소우주인 인간에게 서명을 남겼다는 것은, 곧 이 둘이 서로 닮아 있으며 서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담론을 의학의 발전 과정에서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어떠한 단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읽어선 안 된다.

르네상스기의 담론을 우리 시대의 담론과는 불연속적이라는 관점으로 접 근할 때,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다. 프랑스 역사학자 폴 벤느(Paul Veyne, 1930~)가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푸코의 역사 방법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박성’(rareté), 즉 “아직 발견하지 못한 빈 자 리”이다.107)

방대한 문헌에서 불과 몇 줄밖에 되지 않는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 레시피의 희박성을 탐색하기 위해, 본 논문은 역사학 연구의 기본 방법 인 문헌 연구를 수행할 것이다. 1차 텍스트인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를 읽고, 동일 저자의 다른 1차 텍스트와의 비교를 통해 해당 문헌의 저 작성, 사상적 계승 관계, 후대 영향에 관한 논의를 이끌어 낼 것이다. 해 당 문헌이 참고했거나 인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다른 텍스트들도 연구의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시간적 선후를 이루는 문헌적 계보를 살펴보는 것 이외에, 해당 문헌과 동시대에 작성된 문헌들을 충분히 일별하지 못 했다는 한계가 있음도 지적해둔다.108)

105) 이종흡, 『마술, 과학, 인문학』 (서울: 지영사, 1999), 29-39; 진태 원, “푸코에 대한 연구에서 푸코적인 연구로: 한국에서 푸코 저작의 번역과 연구 현황,” 「역사비평」 99 (2012): 420-423. 진태원은 우리나라 학계에서 푸코가 주로 포스트 담론의 상징, 권력의 계보학자, 주체화 이론가, 신자유주 의 통치성 분석가로 주목받았던 반면, 역사학자로서의 푸코에 대한 관심과 응용은 빈약했다고 지적한다.

106) 미셸 푸코, 『말과 사물』, 58.

107) 폴 벤느,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 in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이상길, 김현경 공역 (서울: 새물결, 2004), 454.

108) 최근 역사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성사 연구방법론에 따르면,

본 논문의 제2장에서는, 제3~4장을 위한 배경으로서, 파라켈수스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을 조명할 것이다. 그의 출생 배경과 생애, 계보를 다루 고,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그의 의학 사상을 요약할 것이다. 더불어 그의 의학 사상이 남겨놓은 문헌들에 관한 기초 적인 정보도 제공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본 논문의 주제인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역사 적 문헌에 집중할 것이다. 이 문헌은 파라켈수스 사후에 출판되었기 때 문에, 파라켈수스주의자들로 불리었던 집단에 관한 선이해 없이는 접근 하기가 어렵다. 이 문헌이 그들에 의해 출판 및 유통되었던 과정을 먼저 다룬 뒤, 그 과정에서 변화를 겪은 구조 및 배열을 살펴보고, 문헌의 저 자가 누구였는지를 질문할 것이다. 또한 이 문헌의 배치와 각 권의 내용, 저자가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은 다른 문헌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제시함으 로써, 번역 및 주해를 위한 준비를 마무리 할 것이다.

제4장에서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제1권을 번역 및 주해한다.

번역의 방법과 원칙을 제시한 뒤, 본문을 5편으로 나누어 각각에 대한 역, 주, 해를 제시할 것이다. 이를 통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저 자가 호문쿨루스 레시피를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언급하고 있는 지, 저자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제5장에서는, 번역 및 주해의 결과로서, 호문쿨루스 제작에 관한 아이 디어가 어떠한 전승을 이어받았는지 검토할 것이다. 더불어 파라켈수스 의 다른 문헌들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호문쿨루스들의 의미를 서로 비교 함으로써,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호문쿨루스만이 가지는 독특한 호문쿨루스에 대한 파라켈수스의 발화행위가 동시대인들에게 실제로 어떠한 행동이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동시대의 용례를 최대한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 다. 이는 호문쿨루스가 가지는 잠재적 의미가 오늘날의 해석자에 의해 확대 해석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함이다. 정직하게 말해서, 본 연구자는 파라켈수스 당대의 다른 저자에 의한 호문쿨루스 용례를 모두 확인했다고 자신할 수 없 다. 다만 확보한 자료의 범위 내에서, 파라켈수스의 호문쿨루스가 동시대인들 에게 하팍스 레고메나(hapax legomena: 다른 용례가 없는 희귀한 개념)와 유사했다고 생각한다. 지성사 방법론에 관하여는 다음의 책을 참조하라. 리처 드 왓모어, 『지성사란 무엇인가?: 역사가가 텍스트를 읽는 방법』, 이우창 역 (파주: 오월의봄, 2020).

위상을 확인할 것이다.

제6장에서는, 파라켈수스 이후 호문쿨루스가 남긴 유산 및 후대에 끼 친 영향을 검토할 것이다. 먼저 문학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 호문쿨루스 의 흔적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또한 16세기 이후 파라켈수스의 추종자들이 가졌던 사회적 목표와 비전의 정 체가 무엇이었으며, 호문쿨루스가 어떻게 그들의 개혁에 중요한 상징이 되었는지도 살펴보려 한다. 끝으로, 호문쿨루스로부터 오늘날 인간복제로 이어지는 인간의 창조 능력에 관한 물음이 단지 의학적 담론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함의를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음을 제안함으로써 본 논문의 결론을 갈음할 것이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 논문에 적용된 몇 가지 원칙을 일러두고 자 한다.

첫째, 파라켈수스라는 인물과 그의 저작에 관한 연구는 이제 출발 단 계에 있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방대하다. 본 논문에서는 『사물 의 본성에 관하여』의 호문쿨루스 레시피에 집중함으로써, 그 외의 많은 주제들을 생략하였다. 본 논문이 다루지 못한 많은 주제들이 향후에 정 리 및 소개되기를 기대하며, 본 연구자도 이에 일조할 계획이다.

둘째, 본 논문이 다루는 1차 자료는 파라켈수스의 저작들이다. 본 연 구자는 파라켈수스의 독일어 및 라틴어 원전을 모두 확보한 상태에서 연 구를 진행하였다. 다만 파라켈수스가 아닌 저자의 1차 자료는, 해당 자료 의 비평적인 한국어 번역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번역본을 활용하였다. 번 역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해당 자료를 번역한 연구자의 의도와 노력에 보답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셋째, 본 논문에 등장하는 인명 및 지명의 표기에 대해서, 대략 중세 기의 인물은 라틴어식 이름으로, 르네상스기 및 그 이후의 인물은 각자 의 출신 지역 언어로 호칭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아랍 철학자의 이름은 서유럽 세계에 알려진 라틴식으로 표기했다. 지명의 경우에는, 해당 시기 의 소속 지역(혹은 국가)의 표기법을 따랐다.

넷째, 본 논문의 주인공인 파라켈수스의 이름 표기도 국내 자료들에 서 아직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파라켈수스, 파라셀수스, 파 라첼수스 등의 표기가 있으나, 그 이름의 의미가 겨냥하는 대상이 로마 제정시대의 의사 켈수스이므로,109) 본 연구자는 ‘ce’를 /ʧe/로 읽는 중세 교회 라틴어 발음이 아닌, /ke/로 읽는 고전 라틴어 발음을 선택했다.110)

109) 본 논문의 2.1.3을 보라.

110) 성염, 『고전 라틴어』 (3판; 서울: 바오로딸, 2005), 15, 20.

제2장 파라켈수스라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