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이주 후기 거주방식의 조정
4.2.6. 가족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기타 가족구성원의 후속이주
본 연구에서 관찰 된 사례를 살펴보면 이주가족들은 한명의 가족구성 원이나 하나의 핵가족이 먼저 이주를 한 다음에 먼저 이주를 한 사람을 중심으로 직계 가족들의 후속 이주가 이어져 점차 이주지에서 다세대 가 족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으로 관찰된다. 가족 구성원들은 날로 증가 하는 가족 네트워크의 역량을 통해 서로 지원하고 의지하면서 이주지에 서 안정된 삶의 터전을 마련해 간다. 어쩌면 새로운 도시에서 가족네트 워크가 형성되어야 정착이 공고화되어 진정 정착을 했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한경윤의 경우 목공인 둘째 아들이 우선 위해시로 이주하 였고 그 후 변호사인 큰 아들이 동생을 따라 위해시에 와서 정착하였다.
2002년에는 둘째 아들의 요청으로 한경윤 부부가 위해시로 이주했으며 그 다음해에 한경윤의 배우자(2014년 사망)를 돌보기 위해 호사출신인 큰 딸이 위해시로 이주하였다. 결국 한경윤의 가족은 위해시에서 4쌍의 부부로 구성된 대가족을 이루었다.
한경윤(남성, 89세)
우리 큰 딸이 간호사예요. 걔가 간호 대학을 졸업했어요. 걔 엄마가 몸이 안 좋아 내가 위해로 왔어요. 우리 큰 딸이 이듬해에 왔거든요.
돌보려고 자기 엄마가 몸이 안 좋은 것을 아니깐. 우리 큰 딸은 효녀 예요. 지금도 이쪽에서 살아요. 집도 옮겼어요. 큰 딸이 집을 이곳에 마련했지요.(그럼 지금 큰 따님도 위해에 계신 거네요?) 아직도 위 해에 있어요. 계속 위해에 있죠.(중략) 나는 지금 두 아들과 딸 하 나 세 아이가 이곳에 있어요.
이기애 사례의 경우 막내딸이 위해시로 먼저 이주하여 동네마켓을 꾸 렸다. 그 후 농촌에서 농사짓는 형제 네 명을 위해시로 데려나와 마켓을 경영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현재 다섯 형제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 고 중풍으로 투병 중인 이기애도 위해시로 모셔졌다. 든든한 가족 네트 워크 덕분에 이기애는 16년 동안 반신불수 상태로 있었지만 자녀들의 돌 봄을 받으며 건강이 호전되고 있다.
이기애(여성, 72세)의 둘째 딸:
(아주머니 형제들 중에 누가 먼저 위해에 왔나요?) 망도(望島, 지명) 에 사는 여동생이요. 여동생이 오고 나서 우리 형제자매 다 데려 나 왔어요. 우리 막내 동생이 처음에 문등(文登, 지명)에 왔어요. 문등에 먼 친척이 있어서 처음에는 문등에 방직 기업에 있었다가 위해 시내 로 왔어요. 우리 고향은 농촌이라서 일자리도 없어요. 우리 남동생이 랑 자매들이랑 네 명을 우리 동생이 데리고 나왔어요. 우리 집은 농 촌에 있었어요. 우리 그 쪽에는 출근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우리 는 다 농사꾼에요. 이제는 위해에 와서 생활이 참 좋아졌어요. 우리 몇 집 다 살만해요. (그럼 어머니는 누가 모셔왔어요?) 왕도에 있는 막내 여동생이 모셔왔어요. 우리 엄마 모셔올 때 우리는 아직 안 왔 어요. 우리 엄마가 병 든지 17년이 됐고 온지 17년 됐어요. 엄마가 이 병에 걸린지 알고 모셔왔어요. (중략) (아들도 있으시잖아요. 왜 딸이 모셔 오신거에요?) 아들도 모시죠. 우리 큰 오빠는 최근 몇 년 에는 안 모셨던 거 같아요. 가까이에 안사니까. 오빠는 대련에 있어 요. 대련에 있으니까. 이쪽에 형제자매가 많잖아요. 최근 몇 년에 남 동생 집에서 1, 2년 있었어요. 그리고는 우리 이 몇 집에서 교대로 돌봤어요.
김영훈의 사례(남성, 74세)에서는 김영훈과 아들 2명이 1990년대에 경 제적 원인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다시 위해시에서 3쌍의 부부가 이루어 진 가족네트워크를 구성하였다. 1996년에 흑룡강성 할빈시의 쌍태(雙太) 라는 전자기업에서 일하던 김영훈의 두 아들이 쌍태기업의 해체로 동시 에 실업하게 되었다. 실업 후 김영훈의 큰 아들이 먼저 위해시를 이주하 였고 작은 아들이 큰 아들을 따라 위해시로 이주하였다. 2009년에 김영 훈이 한국에 나간지 12년 되던 해에 아들들은 한국에서 일하면서 고생하 고 있는 부모님을 위해시로 모셨다. 그러나 위해시에서 아들들의 장사가 어려워지자 아들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한국에 나가게 된다. 그 후 작 은 아들이 한국에서 위해시로 돌아와 아버지 김영훈과 힘을 모아 정육점 을 경영하였다. 장사가 잘 되자 작은 아들은 또 큰 아들을 한국에서 불 러 들여 샤브샤브 음식점을 경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현재 김영훈 의 아들 두 명은 모두 자영업에 성공하여 위해시에서 잘 살고 있다.
김영훈(남성, 74세)
(어르신은 어떻게 위해 오게 되셨어요?) 아버지, 엄마 고생하지 말라 고, 한국에서 고생하지 말구, 자식들 하고 같이 살자고, 그래 큰 아 들, 작은 아들 이래 말을 해가지고, 우리 큰 며느리하고 큰 아들이 엄 마, 아버지한테 데리러 왔소, 그러는 거야. 그래서 할 수 없이 왔지.
우리 큰 아들도 여기 와서 고생했소. 그때만 해도 우리 들어오니까 무슨 뭐 그저 엄마, 아버지 벌어서 집 사준 것 뿐 이고, 그다음에 아 무것도 없소.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소. 그래 뭐 와서 뭐 정말 집은 있어도… 혼자서 그저 애비, 어미 그 집을 사준 거 있으니까 할 수 없 이 살았지. 돈도 저금 한 것도 없고 가난하게 살았지. 그러다 우리 큰 아들, 큰 며느리 데려온 다음에 그다음에 큰 아들이 여기서 아무 직 업도 없고 하니까, 저기 채소 장사 하다가 채소 장사도 못 하구 안 되니까, 큰 며느리하고 큰 아들 하고 또 한국에 또 나갔단 말이. 부모 들 여기다 데려다 놓고는 자기네 또 살겠다고 한국에 나갔지. 그래 한국에 나가서 한 3,4년 있다가 또 동생도 그때 한국에 나갔단 말이.
우리 작은 아들도 한국에 나가가지고, 한국 가서 동생 거기 정육점 그런데 출근해서 고기 파는 걸 배워가지고 와가지고, 한국에서 3년
배우고 그다음에 여기 와서 3년 제절로 해봤지. 해보니까 그때 사람 들이 한국 사람도 많고 조선족도 많으니까 그때 잘 됐소. 그러니까 한국 가서 제 형 고생하지 말라고, 그래가지고 제 형수 하고 제 형을 오래가지고 지금 정육점하구, 샤브샤브 가게를 꾸려가지고, 우리 아들 잘 나가요, 큰 아들하고 작은 아들 정말 잘 나가요. (작은 아들 잘 나 가니까 형님을 부른 거네요.) 네. (그럼 이제 큰 아들이 샤브샤브 가 게를 차렸을 때 작은 아들이 돈도 보태주고 도와주셨나요?) 한국에서 제 번 돈이 있단말이. 또 몇 년 번 돈 번걸 가지고 아주 작게 꾸렸지 그저 작은 거 해가지고. 그 다음 작은 아들이 샤브샤브 가게에 쓰는 기계 같은 거는 그거는 도와 줬지. 기계 같은 거 좀 준비해주고.
이 사례들처럼 한 쌍의 부부가 위해시로 먼저 이주하여 현재 세 쌍이 상의 부부(세 쌍 포함)로 구성된 가족 네트워크를 형성한 사례가 매우 보편적이다(10사례). 가족네트워크는 규모가 클수록 정착이 확고할뿐더 러 그 힘도 크고 노인돌봄이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발전 하는데 더욱 도움이 된다. 한명의 가족 구성원이 증가할 때마다 그의 또 다른 가족과 지인들이 가족네트워크의 조력이 됨으로써 가족 네트워크의 역량은 빠르게 증가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외동자녀를 가진 노 인과 자녀가 조기 사망한 경우 가족네트워크를 형성 하는데 어려움이 있 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을 많이 가지고 있는 가족이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위해시에서 세 쌍의 부부로 구성된 가족 네트워크를 구성한 사례 는 총 다섯 개로 김영훈(김영훈 부부-아들 부부-아들 부부)(<그림 9>
참조), 필종구(필종구-딸 부부-딸 부부), 엽지영(영자영-딸 부부-사위의 부모부부), 강부귀(강부귀 부부-딸 부부-아들 부부), 한동창(한동창 부부 -아들부부-딸 부부) 등 사례가 있다. 세 쌍의 부부로 구성된 가족 네트 워크 중 네 사례가 노인과 노인들의 자녀들로 이루어지고 엽지영의 경우 에는 엽지영-딸 부부-사위의 부모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 9> 김영훈의 가족 네트워크
네 쌍 이상의 부부로 구성된 가족 네트워크는 세 개 사례로 진호창(진 호창 부부-아들 부부-딸 부부-아들 부부, <그림 10> 참조), 한경윤(한 경윤-딸 부부-아들 부부-아들 부부), 유수지(유수지-유수지의 언니부부- 딸 부부-아들부부) 등이 있다.
<그림 10> 진호창의 가족네트워크
다섯 쌍의 부부와 여섯 쌍의 부부로 구성된 가족 네트워크는 각각 하 나로 사희영(사희영 부모-사희영-남동생 부부-여동생 부부-아들부부,
<그림 11> 참조)과 이기애(이기애-딸 부부-딸 부부-아들 부부-딸 부부 -딸 부부)가 있다(<그림 12> 참조).
<그림 11> 사회영의 가족 네트워크
<그림 12> 이기애의 가족네트워크
이러한 가족 네트워크의 형성은 이주가족의 정착 정도를 말해주는 지 표이기도 하면서 이주가족이 새로운 지역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중국 사람들의 가족 유대의 강력함 을 대표하기도 한다. 정보 교환, 물질적 지원, 정서적 지지, 노인의 돌봄 등을 공유하는 가족네트워크는 전통적인 확대가족의 특성을 가지고 있 다.
종합해 보면 이주가족이 가족 재결합 이후 구성하는 거주방식의 특징 을 관찰 해본 결과 이주 가족의 거주방식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시간에 지남에 따라 변화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주 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