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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1.3. 연구방법

1.3.4. 면접 사례 소개

(연령,이름 성별)

이주연도 호구 주요

소득원 주거

방식 동거가족 상시적 돌봄 관계

위해시거주 자녀

외지거주 자녀 1.엽지영

(65세,

여성) 2012 도시

고향 양로수당 시설 딸

2.진호창 (83세,

남성) 2003 도시

고향 양로수당 시설 배우자

(와상) 노인→배우 자

아들2명, 딸 3.필종구

(77세,

남성) 2011 도시

고향 양로수당 시설 딸 2명

4.한옥지 (82세,

여성) 1998 도시

고향 양로수당 시설 아들

5.한경윤 (89세,

남성) 2002 도시

고향 양로수당 시설 아들

2명, 딸 딸 2명 6.유수지

(75세,

여성) 2001 도시

고향 양로수당 자택 아들,

딸 아들

7.항현귀 (77세,

남성) 2003 도시

고향 양로수당 자택

(딸) 배우자 아들,

딸 2명 8.추형지

(76세,

남성) 2008 도시

위해 양로수당 자택

(아들) 배우자 아들,

딸 딸

9.가추분 (67세,

여성) 2015 도시

고향 양로수당 노동소득 임대

주택 배우자,

손자 노인→자녀,

손자 아들 아들

10.진항웅 2006 도시 양로수당 자택 배우자 노인→외손 딸

<표 7> 연구 참여자들의 기본 정보

정에서 가장 큰 윤리적 고민이었다.

(65세,

남성) 고향 녀

11.정옥희 (61세,

여성) 2010 도시

위해 양로수당 자택 배우자,

손자 노인→손자 아들

12.사희영 (61세,

여성) 2013 도시

고향 양로수당

노동소득 자택 노인→자녀,

손자 아들

13.두건국 (68세,

남성) 2007 도시

고향 양로수당 자택 배우자,

딸(미성년) 노인→딸 딸 아들

2명 14.노자향

(70세,

남성) 2002 도시

위해 양로수당 자택 배우자 딸 아들

15.오충진 (62세,

남성) 2008 도시

위해 양로수당 노동소득 자택

(딸)

배우자, 딸, 외손자사위,

노인→외손

자 딸

16.풍학귀 (68세,

남성) 2010 도시

고향 양로수당 자택 배우자

(와상) 노인→배우

자 아들

17.장만항 (67세,

남성) 2005 도시

위해 양로수당 자택

(딸) 배우자,

외손녀 노인→외손

녀 딸 딸

18.장홍인 (63세,

남성) 2014 도시

고향 양로수당 임대

주택 배우자 노인→손녀 아들 아들

19.왕학택 (64세,

남성) 2011 농촌

고향 자녀 자택

(딸)

배우자, 딸, 외손자사위,

자녀→노인 노인→외손

자 딸 아들

2명 20.손건무

(69세,

남성) 2010 농촌

고향 자녀 자택

(딸)

배우자, 딸, 외손녀사위,

자녀→노인 노인→외손

녀 딸

21.왕다력 (63세,

남성) 2013 농촌

고향 노동소득 기숙사 배우자 아들

3명 22.한동창

(61세,

남성) 2013 농촌

고향 노동소득 자택

배우자,아들, 며느리,손자

노인→자녀,

손자 아들

23.강부귀 (66세,

남성) 1997 농촌

고향 노동소득 임대

주택 배우자 노인→외손

자 아들,

딸 24.이기애

(72세,

여성) 2002 농촌

고향 자녀 자택

(딸) 딸, 사위 자녀→노인 딸

아들4명, 아들 25.김영훈

(74세,

남성) 2007 농촌

고향 자녀 자택 배우자 노인→자녀 아들

2명 26.정춘자

(73세,

여성) 2002 농촌

고향 자녀 임대

주택 배우자

(와상)

노인→배우 자자녀→배우 자

아들 27.최춘옥

(81세,

여성) 2011 농촌

고향 자녀 시설 딸 딸 3명

28.문금화 (77세,

여성) 1998 농촌

고향 자녀 시설 아들

2명, 딸 29.방정희

(74세, 2011 농촌

고향 자녀 시설 손자 아들,

여성) 30.오영순

(81세,

여성) 2016 농촌

고향 자녀 시설 아들

3명, 딸 주: 1) 본 연구에서 나오는 이름은 가명이다. 2) 호구 항목이 도시 고향으로 표기된 것은 현재 보 유한 호구가 도시호구이며 아직 위해시로 호구를 이전하지 않아 호구가 고향에 있음을 뜻한다. 도 시 위해라고 표기된 것은 현재 보유한 호구가 도시호구이며 위해시로 이미 호구를 이전했음을 뜻한 다. 농촌 고향으로 표기된 것은 현재 보유한 호구가 농촌호구이며 아직 위해시로 호구를 이전하지 않아 호구가 고향에 있음을 뜻한다. 3) 상시적 돌봄관계는 주로 매일 일어나는 신체적 돌봄 관계를 뜻한다. 4)굵은 글씨는 주 돌봄자나 예비 주 돌봄자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돌봄에 있어서 자녀의 출 생순위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출생순위에 대한 표기는 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상호지원 상황은 아래의 사례 소개와 본문의 제5장을 참고할 수 있다.

사례 1. 엽지영(여, 65세, 한족)

엽지영은 1952년에 절강성(浙江省) 호주시(湖州市)에서 태어났다. 유년 기에 기아를 겪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어 상해에서 양약방을 경영했던 아버지가 당시 “주자파(走資派)”로 정치적 탄압을 받 으면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엽지영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지식청년들을 농촌으로 파견하는 상산하향 (上山下鄉)정책에 의해 19세 부터 27세까지 농촌에서 살았다. 그 후 1973년에 다시 도시로 돌아와 농 산품 가공 기업에서 출납, 창고 관리, 식당관리를 하다가 1978년에 신용 사(信用社, 은행)로 전직하여 일하다가 50세에 은퇴하였다. 2004년에 엽 지영은 남편을 잃고 근처에 사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2008년과 2011 년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독거하게 되었다. 심한 우울증과 신경질환 을 가지고 있으며 딸은 고향에 홀로 남겨진 엽지영이 걱정되어 엽지영을 위해시로 모셨다. 딸은 위해시 출신 남편을 만나서 위해시에 살고 있었 는데 2012년에 엽지영이 이주한 초기에는 딸, 사위와 동거하였다. 동거 중 젊은 세대와 생활 습관이 달라 갈등이 생기고 생활이 불편해지자 엽 지영의 신경질환은 더욱 심해졌다. 동거가 힘들어졌으나 고향으로 돌아 가기 보다는 근처의 양로원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딸의 제안에 따라 엽지영은 위해시의 동발양로원에 입주하였다. 현재 엽지영은 양로원의 1 인실에서 사는 삶이 편하고 좋다고 한다. 신경 쓰이는 일들이 없어서 건 강도 많이 회복되었다. 엽지영은 양로원 출입도 자유롭고 매일 취사하지

않아도 되는 양로원에서 사는 것이 자택에 사는 것보다 편리하다고 생각 한다. 엽지영은 비교적 넉넉한 양로수당과 저축이 있고 고향에 주택이 있기에 입소비와 용돈을 독립적으로 마련한다. 엽지영은 2, 3일에 한 번 씩 딸과 통화하고 매달 한 두 번씩 딸이 양로원을 찾아온다. 엽지영은 딸과의 관계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지만 “딸의 성격이 남자 같아서 사람을 돌볼 줄 모른다”고 하면서 향후 건강이 악화되어도 계속 입소 돌봄을 받 을 계획을 하고 있다.

사례 2. 진호창(남, 83세, 한족)

진호창은 1933년에 길림성(吉林省) 구대현(九台县)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위만주국(僞滿洲國)의 통치아래 5년간 초등학교를 다니고 신 중국 이 건립된 후 3년간 중학교를 다닌 후 다시 3년간 중등 사범학교에서 교 육을 받았다. 20세에 동북사범대학에 입학하여 졸업 후 길림성 대안현 (大安縣) 제1중학교에서 교사직을 맡았다. 정풍운동(整風運動) 당시 잠시 우파(右派)로 몰렸지만 업무에 뛰어나 무난하게 교사로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특급교사로 평가 받아 명예로운 교직생활을 했다. 60세에 대 안 제1중학교에서 은퇴하고 청도(靑島)에 있는 해산대학교(海山大學)에 특별 임용되어 70세까지 교사로 활동하다가 은퇴하였다. 진호창은 아들 2명, 딸 1명이 있는데, 자녀들이 고향인 동북지역이 겨울에 춥고 경제 조 건이 낙후된 반면 위해시는 일자리 선택의 폭이 넓고 기후가 좋으므로 위해시로 이주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는 은퇴 후 위해시에 주택을 구매 하여 배우자와 함께 살다가 배우자의 건강이 악화되자 동반 입소하였다.

현재 진호창은 양로원의 조무사와 함께 와상 상태인 아내를 돌본다. 양 로원은 청소와 식사 제공, 목욕 등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고, 빨랫감은 자녀들이 집으로 가져가서 세탁한다. 진호창은 주로 아내의 식사와 투약 을 관리한다. 진호창과 그의 아내 모두 양로수당이 있고 주택도 보유하 고 있기에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다. 지출관리는 딸이 대신해주고 있고, 자녀들은 매주 노부모를 방문한다. 진호창은 아내가 와상상태에 있지만 양로원에서 제공하는 신체적 돌봄 서비스, 넉넉한 양로수당과 자녀가 제

공하는 정서적 돌봄으로 만족스럽게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례 3. 필종구(남, 77세, 한족)

필종구는 1939년 길림성 통화시(通化市)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니 고 현지의 공사(公社), 원림관리소, 식당, 농기계 공장 등에서 노동자, 회 계, 사무직 등에 다양하게 종사하다가 60세에 농기국(農機局)에서 은퇴하 였다. 필종구는 딸이 2명 있는데 십여 년 전에 위해시로 이주하였고, 필 종구는 아내와 함께 고향에서 살았다. 2009년에 배우자가 사망하자 필종 구는 1년 동안 고향에서 독거하고 있었는데 딸들이 고향에 돌아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무슨 일이 생겨도 돌봐드릴 수도 없고, 달려가더라도 너 무 멀어서 제때에 손쓸 수가 없다”고 하면서 필종구를 위해시로 모셔왔 다. 딸들은 시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아버지를 모시고 살 수 없어 필 종구를 위해시의 고급 양로원으로 모셨다. 필종구는 입소하게 된 것에 대해 “자식이 아들이었으면 동거했을 텐데 딸이니까 동거할 수는 없다”

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입소비는 필종구의 양로수당에서 지출하고 있고 지출관리는 딸이 해준다. 근처에 사는 딸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놓 고 필종구를 부르면 필종구는 버스를 타고 딸들 집으로 가서 식사한다.

딸들은 매주 한 번씩 양로원을 방문하여 간식과 생활필수품들을 사온다.

필종구는 양로원에서 주로 TV시청, 음악 감상, 산책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필종구는 현지 말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양로원에서 5년 정도 살았지만 사람들과 거의 교류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낸다. 필종 구는 “마음을 넓게 먹고 만족해하면 외롭지 않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삶 에 순응하고자 하지만 심리적 고독감이 큰 듯하다.

사례 4. 한옥지(여, 82세, 한족)

한옥지는 1935년 북경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공부하고 하북성에 있는 중등 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국립 상업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55세에 은퇴하였다. 항일전쟁시기 북경은 일제로부터 평화롭게 해방되었기 때문에 한옥지는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 문화대혁명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