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주 후의 상호 지원관계
5.1.1. 육아와 가사 보조
성인자녀가 맞벌이를 할 경우 일과 가사, 육아를 양립하기가 매우 어 려워진다. 이때 조부모는 성인자녀를 돕거나 대리부모역할을 맡아 아동 을 돌본다. 즉 핵가족의 지원체제로서 조부모가 제1양육자 역할을 맡아 아동 돌봄에 큰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성인자녀와 노인이 동거할 경 우 가족 내의 역할 분업으로 대부분 성인자녀가 맞벌이를 하고 노인부부 가 가사와 육아를 거의 전담한다.
최근 주택의 문제나 세대 간 독립으로 인해 노인이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는데 동거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자녀가 맞벌이 할 경우에 노인들은 자녀의 근처에 살면서 자녀에게 식사준비를 해주거 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거나 학교에서 데려오는 일을 도와준다. 이 러한 상호지원을 위해 자녀나 노인이 주택을 마련할 때 지리적 접근성은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예컨대 사희영의 경우 위해시로 이주하여 자녀와 동거했을 때 매일 6시간씩 음식점에서 일하면서도 가족의 식사준 비와 가사,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는 일을 담당하였다. 그 후 손자가 성 장하면서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여 아들이 분가 할 때도 손자의 돌봄을 고려하여 사희영의 거처와 매우 가까운 곳에 주택을 마련하였다. 현재
사희영은 동거할 때와 마찬가지로 3시쯤에 퇴근하여 아이를 학교에서 데 려오고 식사준비를 한다. 아들과 며느리는 약 6시쯤에 퇴근하여 사희영 의 집을 들러 저녁식사를 하고 아이를 데려간다.
사희영(여성, 61세)
애들은 둘 다 출근하잖아요. 그렇잖아요. 젊은이들도 생활해야 하잖아 요? 애가 학교 끝나면 데려올 사람이 없어요. 데려오지를 못해요. 퇴 근이 둘 다 늦어서. 꼭 누가 데려오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애는 3 시 30분에 수업이 끝나요. 지금은 4시 30분이고 겨울에는 3시 30분 에요. 아들 며느리 퇴근은 5시 30분에서 6시, 퇴근이 늦어요. 지금 손자가 8살인데 혼자 다닐 수는 없잖아요. (중략) 아들, 며느리는 매 번 퇴근하면 우리 집에 들러 저녁 먹은 다음에 운전해서 집에 가요.
아주 편리해요.(그리고 아이를 다시 데려가나요?) 저녁을 먹고는 함 께 집에 가죠. 아이를 데려가죠. (아침은요?)아침엔 아들이 직접 차 로 데려다 줘요. 지금은 제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요.
진항웅의 경우에는 위해시의 은탄(銀灘, 지명)에서 3세대가 함께 살다 가 동거의 불편함을 느끼고 진항웅 부부가 딸에게 위해시의 환취구(環翠 區, 지명)에 주택을 사줘서 분가시켰다. 그 후 환취구로 이사한 자녀의 육아를 도와주기 위하여 자녀의 집 근처에 다시 노부부가 살 주택을 구 매하여 이사하였다. 현재 진항웅 부부는 맞벌이를 하는 자녀를 도와 매 일 외손자를 학교에서 데려와서 식사를 챙겨주고 저녁에는 다시 딸 네 집에 데려다 준다.
진항웅(남성, 65세)
(집 살 때 일부러 아이들이랑 가까운데 샀나요?)네, 네, 네. (왜 꼭 가까운데 사려 하셨나요?)편리하잖아요, 애기 대려다 주기가.(손자 는 지금까지 두 분이 학교에 데려가고 하셨나요?)네.(그럼 점심 식 사는요?)그것도 해줘야죠.(그럼 밤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자 나요?)저녁에는 제 집에 데려다 줘야 해요.
진항웅처럼 근처에 거주하면서 성인자녀와 손자, 손녀에게 돌봄을 제 공하는 현상은 이주노인들 속에서 매우 보편적이다(<표 13> 참조). 대부 분의 이주 노인들은 자녀에 대한 애정으로 자발적으로 성인자녀의 돌봄 에 참여한다. 돈독한 조손관계는 가족의 결속력을 증가시키고 가족원의 정체감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인은 손자손녀를 통해 생의 연 속성을 느끼고 손자손녀를 가르치는 것을 통해 생의 성취감, 생산감, 의 미를 획득할 수도 있다(이미숙·조병은·강란혜, 2004; 조병은, 2007).
번호 이름 출신 거주형태 돌봄 지원
1 엽지영 도시 동거→입소 동거 시 가사지원
4 한옥지 도시 동거→입소 동거 시 가사 지원, 육아지원
5 한경윤 도시 동거→분거→입소 와상 배우자 돌봄 전담
7 항현귀 도시 동거→자녀 재이주 동거 시 가사 지원, 육아지원
8 추형지 도시 동거→자녀 재이주 동거 시 가사 지원, 육아지원
9 가추분 도시 분거 손자 양육 전담
10 진항웅 도시 동거→분거 육아 지원
11 정옥희 도시 분거 손자 양육 전담
12 사희영 도시 동거→분거 가사, 육아 지원
14 노자향 도시 동거→분거 가사, 육아 지원
15 오충진 도시 분거 가사, 육아 지원
16 풍학귀 도시 분거 와상 배우자 돌봄 전담
17 장만항 도시 분거 손녀 양육 전담(큰 딸의 아이),
작은 딸에게 식사 제공
18 장홍인 도시 동거→분거 가사, 육아 지원
19 왕학택 농촌 동거 가사, 육아 지원
20 손건무 농촌 동거 가사, 육아 지원
22 한동창 농촌 동거 가사, 육아 지원
23 강부귀 농촌 분거 가사, 육아지원
24 이기애 농촌 동거 가사 지원
25 김영훈 농촌 분거 자녀 장사 도와줌
26 정춘자 농촌 동거→분거 와상 배우자 돌봄 전담
<표 13> 노부모가 자녀에게 제공한 돌봄
그러나 일부 사례들에서는 성인자녀를 돌보고 육아를 돕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강제된 노동으로 노인에게 많은 양육부담과 고통을 준다는 것이 발견된다. 고향에 있을 때 작은 아들의 아이를 돌보주고 18세까지 교육 비를 대주다가 현재 큰 아들의 아이를 키워주고 있는 가추분은 아이를 보는 것이 ‘질리고 질린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추분은 매 일 며느리에게 저녁식사 준비를 해줄 뿐만 아니라 회사의 기숙사에서 살 고 있는 아들, 며느리 대신 손자가 다니는 학교 옆의 지하방을 임대하여 손자를 돌봐주고 있다. 가추분은 작은 아들이 이혼한 경험에 비추어 ‘애 보는 것도 진짜 질리고 질려도 방법이 없어요. 힘들어 늘어지죠’, 그래도
‘지금 젊은 사람들 좀 봐요. 아들 며느리 이혼 하는 것도 그렇게 많고 이 런 일 저런 일 만들어 내는데, 우리가 양보 안하면 어쩌겠어요?’라고 하 면서 어쩔 수 없이 손자를 키워주면서 버티고 있다.
가추분(여성, 67세)
힘들어도 어쩔 수 없지뭐. 둘 다 몸도 건강한데 애들을 안도와주면 어떡해. 지금 젊은 사람들 좀 봐요. 아들 며느리 이혼 하는 것도 그렇 게 많고 이런 일 저런 일 만들어 내는데 우리가 양보안하면 어쩌겠어 요. 그때 가서 이혼해서 애를 우리한테 던져놓으면 어떡해요. 애가 엄 마 아빠도 없고 안 그래요? 내가 힘들어도, 만날 힘들어도 그래도 봐 줘야 돼요. 억지로 버티고 봐줘야 돼요. 왜 안 힘들겠어요. 애들은 이 것 해 달라 저것 해 달라. 아이구 말도 마세요. 얼마나 분주한지, 애 보는 것도 진짜 질리고 질려도 방법이 없어요. 힘들어 늘어지죠.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와 아들, 며느리와 함께 다세대주택을 구매하여 살고 있는 한동창의 경우에도 한동창과 배우자는 동거의 화목을 위해 항 상 더 많이 양보한다. 한동창은 배우자가 ‘손자와 며느리를 중심’으로 생 활한다고 말한다. 한동창의 배우자는 매일 12시간 음식점에서 일할 때도 매일 4, 5시에 일어나 맞벌이하는 아들, 며느리에게 아침식사를 준비해주 었다. 식사 준비할 때도 아들과 며느리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만들고
가사도 전담한다.
한동창(남성, 61세)
제 마누라는 밥상을 차릴 때 항상 물어요. 너희들 뭘 먹고 싶냐? 특 히는 손자에게물어보죠. 그리고는 따로 애한테 만들어 먹이지요. 감자 전을 부친다거나 지지거나 하지요. (손자가 중심이네요.) 당연하죠.
손자와 며느리가 중심이죠. 흐흐. 안 그러면 누구를 중심으로 하나 요?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는 다들 이러하지 않나요? 아닌가요? 며 느리와 딸은 다르니까요. (그렇다면 어르신이랑 배우자님은 가족의 화 목을 위해 희생해도 괜찮다는 건가요?) 네. 네. 네. 특히 우리 마누라 는 한 치의 원망도 없어요. 흐흐. 애들만 좋아하면 돼요. 아무리 힘들 어도 괜찮데요. 우리 마누라가 음식점에서 서빙 할 때 오전 9시에서 밤 9시까지 일해도 아침 4시, 5시에 일어나서 아들, 며느리한테 밥 해줬어요. 6시에 깨워서 밥 먹이고, 만날 그랬어요. 아무리 힘들도 그 래도 빠짐없이 해줬어요.
한동창은 자기의 가족은 동거하고 있지만 매우 화목하다고 한다. 가족 이 동거하면서도 화목할 수 있는 비법은 ‘서로 양보하는 것’, ‘며느리를 받들어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가사도 며느리한테 시키는 것보다 ‘늙은이 가 더 많이 하면 모순이 없다’고 한다.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기 위한 가 족 전략으로서 노인이 더 많이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한동창(남성, 61세)
(어르신의 이 화목의 비법은 무엇인가요?)비법은 뭐가 있겠어요.
서로 양보하는 것이지요. 늙은이로서 자녀들한테 늘 이 트집 저 트집 을 잡으면 안 되죠. 며느리는 필경 며느리이니까. 우리가 받들어 주고 달래면서 일을 하게 해야 되죠. 그래야 가정이 유지가 되지요. 노인이 늘 트집을 잡아 봐요. 며느리도 답답할 것이고 아들과도 자주 다투겠 죠. 아닌가요? 인과관계가 다 보이잖아요. 우리가 묵묵히 가사를 더 많이 하고 며느리더러 적게 하게 하면 나이가 많은데도 이렇게 가사 를 하는 것을 보면 며느리도 마음에 미안함을 느끼게 되고 늙은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지 못하게 되지요. 여하튼 우리 부부는 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