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주 후의 상호 지원관계
5.1.3. 와상 배우자 수발 전담
면 다 자녀 것이 아닌가?’이라는 관점을 가진 노인들이 매우 보편적이었 다. 이는 중국 노인이 망설임 없이 자녀에게 거액을 지원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주택 구매 이외에 노인들은 상황에 따라 성인자녀에게 사업 투자금, 손자(녀) 양육비, 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활발한 경제적 지원은 가족 간의 친밀감을 설명하고 있는 한편 자원이 부족한 자녀들의 노동시장과 결혼 시장에서의 경쟁에 노부모가 말려들어 강요된 부분도 없지 않다. 또한 노인이 자녀에게 거액의 경제적 지원을 할 때 노후에 자녀를 의지하겠다는 암묵적인 돌봄 계약 하에 자신의 노후 준비를 희생 하는 측면도 있다. 실질적으로 자녀에게 거액을 지원한 8명의 노인 중에 단 2명이 경제적 수준이 높은 계층이라는 점을 유의해보면 중, 하층 경 제수준의 노인은 노후자원을 자신의 노후 삶의 질을 희생하여 자녀를 지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효 규범과 가족주의 등 전 통적인 규범들의 구속력이 약화되고 실질적으로 자녀의 돌봄 행위를 통 제할 수단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인들이 자신의 노후 준비 기회를 자녀의 생존과 발전 기회로 바꿨을 때 과연 자녀로부터 노후 돌봄을 보장 받 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된다.
같이 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부부간의 동반감이 더욱 증대한다고 한 다(홍숙자, 2010:140). 또한 건강을 상실할 때 배우자가 일차적 가족부양 자로서 역할을 한다. 본 연구에서 와상 노인이 발견된 사례는 진호창 사 례, 풍학귀 사례, 정춘자 사례로 총 세 개 사례가 있는데 세 사례 전부 와상 노인의 주요 돌봄자는 배우자였다. 그러나 연로한 장기적인 수발자 는 신체적, 경제적, 정서적인 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정춘자와 풍학귀는 와상 배우자와 둘이서 살면서 전일제로 와상 노인 의 돌봄을 수행하고 있다. 정춘자의 경우 아들이 불러 위해시로 이주한 후 배우자와 함께 공장을 경영하는 아들의 일손을 도우면서 살아왔다. 4 년 전에 배우자가 뇌경색으로 반신불수 상태가 되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7층에 사는 아들 집에서는 배우자 산책이 불편하여 정춘 자가 임대주택에서 따로 살면서 와상배우자를 돌보고 있다. 현재 73세인 정춘자는 건강상태가 날로 악화되고 있어서 와상배우자 돌봄에 많은 어 려움을 겪고 있다.
정춘자(여성, 73세)
(어르신 몸은 어떠세요?) 위하수(胃下垂)에 걸러서 위가 답답하단 말 이야, 머리도 아프고 정신이 휑~하지뭐.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 보 살필 수 있으신가요?) 안그러면 어쩌겠어? (할아버지 보살펴줄 사람 이 없나요? 아들 있지 않아요?) 아들도 다 지금 제 밥벌이하느라고.
아들 집이 7층이란 말이야. 그니까 이 영감이 그 올라 못 가고 우리 따로 이렇게 와 있지. (아들 집 엘리베이터 없어요?) 아들 집, 엘리베 이터 없어. 엘리베이터 있음 일 없지. 엘리베이터 없단 말이여. (엘리 베이터 있으면 아들 집에 가실건가요?) 그렇지 뭐. 아들이 자꾸 와 들여다 보지뭐. (중략) 그래도 요기는 이렇게 엘리베이트니까. 휠체어 해서 밀고 나갈 수도 있는데, 7층이니까 불편하다 말이야. 엘리베이 터면 일 없는데 엘리베이터가 아니니까.
정춘자는 농민 출신으로 노후 소득이 없고 배우자는 매월 3000위안의 양로수당이 있다. 생활비와 주택 임대비는 아들이 납부하고 있고 부족한 부분은 아들들이 ‘보태주고’ 아들과 며느리도 ‘자주 들여다본다’고 한다.
며느리(53세)는 현재 자기 집에 와 있는 외손자를 봐주느라고 ‘꼼짝 못하 고 묶여있다’고 한다. 결국 배우자 돌봄은 정춘자가 거의 전담하고 있다.
산서성 대동시(山西省大同市)에서 공기오염을 피해 위해시로 이주한 풍학귀의 경우에는 본인과 배우자가 모두 양로수당(합계 약 8000위안)이 있기에 경제적으로 자녀로부터 독립하여 생활한다. 현재 반신불수로 와 상상태인 배우자를 풍학귀는 집에서 홀로 돌본다. 세수, 목욕, 화장실 가 기, 식사 등 배우자의 모든 돌봄을 풍학귀가 해야 하기 때문에 풍학귀의 삶은 완전 배우자 돌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풍학귀(남성, 68세)
(어르신께서 매일 부인을 돌보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떠한 돌봄 방식 이신가요?) 돌봄 방식이요. 아침에 일어나서 마누라한테 옷을 입히고 세수 시키고 화장실 가는 거 도와주지요. 식사를 마치고 TV를 좀 보 다 그다음에 장 보러 가요. 마누라가 만약 아침 6시에 화장실을 갔 으면 아침에 아침시장에 가서 장을 봐요. 마누라가 자고 있으면 그럼 방법이 없죠. 마누라를 기다려야 해요. 감히 나가지 못해요. 나간 후 에 소변을 이불에 해버리면 어떡해요. 자기가 침대에 하고 있다는 것 을 모르니까요. 이때는 이제 작은 마트에서 장을 봐요. 매일 이러하지 요. 지금 마누라가 자고 있잖아요. 2시반, 3시에 일어나서 3시가 조 금 넘으면 일어나 TV를 봐요. 과일을 좀 먹여주고, 저녁에 또 수박을 좀 먹이죠. 저녁은 보통 적게 먹어요. 많이 먹으면 안 되요. 오후에는 과일 위주로 먹어요. 매일 한 그릇 수박, 무화과, 여하튼 과일마다 철 이면 어김없이 먹을 수 있도록 해야지요. 냉장고 안에 복숭아, 배 뭐 든 다 있어요. 1주일에 2번 목욕을 하죠. 반드시 깨끗하도록 하여야 욕창이 쉽게 생기지 않지요. 마누리가 뒤척이질 못하니, 뒤척이지 못 하고 늘 침대에 몸을 붙이고 있어요. 제가 기저귀형 매트를 구매했어 요. 큰 매트를 구매했어요. 이불에 소변을 볼까봐. 지금 그 침대매트 가 2000위안 정도 해요. 태국의 매트인데 마누리가 매트에서 아주 편안히 잠을 자요. 근데 너무 더워서 반드시 옷을 자주 갈아입히고 목욕을 자주 시켜 땀이 나지 않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되요.
욕창은 생기기만 하면 잘 낫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장남으로서 아버지, 어머니를 직접 수발한 경험이 있고 6년간 군인 생활로 평생 규칙적인 삶을 살아오던 풍학귀는 아직 비교적 건강한 편이기에 배우자를 수발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풍학귀는 두 사람의 양로수당으로 2, 3개월에 한 번씩 반신불수 된 배우자를 휠체어에 앉혀서 여행도 다닌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풍학귀도 점점 연로해지면서 배우자 돌봄이 날로 힘겨워지고 있지만 ‘지금은 계속 이렇게 견지, 견지, 견지해서 10년, 20년 견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때 풍학귀 혼자서 아버지, 어머니와 배우자 세 명의 와상 상태인 가족을 돌볼 때 아들을 불러 오기도 했지만 고부갈등도 나타나고 아들 부부가 수발에 묶여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결국 배우자의 돌봄은 아직도 전적으로 풍학귀가 전담하고 있다.
풍학귀(남성, 68세)
(어르신의 자녀분들은 병수발을 도와주러 오지 않으세요?)아이고, 그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 자기를 먹여 살리면 괜찮은 거예요. 그게 안되면 제가 그들까지 부담 해야지요. 예전에 와서 여기서 1년 조금 넘게 있었어요. 안돼요. 중국은 고부갈등이 심해요. 입으론 말하지 않 지만 여전히 갈등이 있어요. (아드님은 이곳에서 직장을 다시셨던 건 가요?)아니요. 걔가 휴가를 내고 무급휴직 했어요. 여기서1년 넘게 있었어요. 그 당시 제가 금방 여기로 이사했잖아요. 어머님을 홀로 두 면 안 되니까 어머님도 모시고 있었어요. 아들이 와서 1년은 안 되 고 아마10개월 정도 있다가 갔어요. 와서 안 되니까 아들이 ‘너무 힘들어 안 되겠어요.’ 하니까, 그래서 제가 그랬죠. ‘안 되면 집으로 가거라.’ 아들이 그 당시 아직 서른이 조금 넘은 나이니까 나가 놀고 구경 다닐 생각만 해요. 어린 손녀도 놀고 싶어 하죠. 일요일만 되 면 놀러 나갈 생각을 해요. 제가 어떤 때는 나가지 못하게 집에서 저 를 돕도록 했어요. 정말 안되니까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젊은이더러 늙은이 수발을 들게 하면 못해요. 힘들어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는 것 같이 보여요. 사실은 너무 힘든 것도 아닌데 너무 시간이 드니까 견디지를 못하죠.
이처럼 성인자녀들이 도움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제한적인 도움을 제공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인들이 배우자 수발을 전담하고 있다. 그러 나 이러한 노-노 케어는 수발자인 노인이 매우 건강해야만 가능하다. 따 라서 일부 경제조건이 좋은 노인들은 와상 배우자와 함께 시설에 입소하 여 시설의 도움을 받으면서 배우자를 돌보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진호창 부부는 위해시에 이주한 후에 자녀와 동거할 경우 ‘서로 불편 하다’고 주택을 구매하여 배우자와 따로 살았다. 후에 배우자의 건강이 악화되자 아들이 위해시에서 가장 좋은 양로원에 입소할 것을 제안하였 다. 진호창은 매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이고 배우자를 데리고 스위트룸 으로 입주했다. 진호창은 매일 신체 단련하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을 배 우자 옆에 있어주면서 식사와 약을 챙겨 준다. 83세인 진호창이 감당하 기 어려운 청소, 배우자의 위생관리 등은 요양사가 맡는다. 진호창은 요 양원을 ‘집’처럼 생각하고 배우자 돌봄에 요양사와 자기로 충분하다고 생 각한다. 진호창은 ‘애들 도움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요. 이곳에 지내 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라고 하면서 자녀가 돌봤더라면 배우자 가 ‘진작 세상을 떴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진호창은 자녀가 출근하기 때 문에 객관적으로 돌보기도 어렵다기도 하지만 자녀가 돌볼 수 있다고 해 도 자녀의 돌봄이 기술적으로 전문 지식을 가진 요양사보다 못할뿐더러 요양사처럼 ‘꼼꼼하게’ 정성들여 돌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진호창(남성, 83세)
집처럼 생각하지요. 나랑 배우자는 죽어도 여기서 죽기로 했어요. 어 떻게 집으로 돌아가요? 집에 가도 대책이 없어요. 여기는 2시간 마 다 요양사가 와서 들여다 보고 대변이랑 소변이랑 씻어주고 말려주고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대단히 규범적으로 다 돌봐주죠. 아 무튼 저는 애들의 돌봄이 필요 없어요. 애들 도움은 아무것도 필요하 지 않아요. 이곳에 지내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청소든 뭐든 할 필요가 없어요. 빨래도 할 필요가 없어요. 빨래도 때가 되면 씻어 줘요. 이곳에서 지내는 것이 집과 같아요. 집보다도 편해요. 만약 집 이면 제 마누라는 진작 세상을 떴을 거예요. 애들이 수발을 한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