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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이주 초기 거주방식의 선택

4.1.1. 상호 의존을 위한 동거

초기의 동거는 이주목적과 이주 초기의 의존 관계에 따라 노인이 자녀 를 의존하기 위한 동거, 자녀가 노인을 의존하기 위한 동거, 상호의존을 위한 동거 3가지로 나뉠 수가 있다.

1) 노인이 자녀를 의존하기 위한 동거

노인이 자녀를 의존하기 위해 동거하는 경우는 대부분 노인의 건강악 화나 사별로 인해 돌봄이 필요하여 자녀를 의탁하러 이주하면서 발생한 다. 본 연구에서 노인이 자녀를 의존하기 위해 이주초기에 동거를 선택 한 사례는 한옥지, 한경윤 등 20사례가 있다. 예컨대 농촌 출신인 손건무 의 가족의 경우에는 손건무 부부가 지병으로 앓고 있어 일상생활이 불편 한 농촌에서 생활할 수 없어서 2010년에 위해시에서 거주하는 딸의 집으 로 왔다.

손건무(남성, 69세)

(어르신께서 어느 해에 이주하셨나요?) 2010년에 마누라랑 같이 이주

했어요. 지금은  딸애랑  같이  살아요. 이제는  이주할  수밖에  없어요.

고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왜냐면, 2001년에 마누라는 대퇴골 수 괴사였고요. 저는 어느 해냐면 2010년에 제가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았어요.(중략) 2010년에 수술  한  뒤로는  집에 가지  않았어요. 집 으로 갈 수가 없어요. 시골의 생활은 여기와 다르지요, 제가 이런 말  하면 개의치 마세요. 우리 노인들로 말하자면 여기서 화장실 볼 경우  물만 내리면 끝이지만 시골집에 가면 이것부터 해결이 안 돼요.이게  가장 큰 문제점이지요. 도시에서는  살기가 편리하잖아요. 제  아내가 대퇴골수 괴사인데 시골에 있으면 땔나무로 밥을 지어야 되는데 앉아 서 쭈크리고 해야 되죠. 여기서는 전기밥솥을 쓰니 앉아서 해도 되고  서서 되고 하니 문제가 없죠. 물론 아이들의 부담은 더해지지요.

그러나 넉넉한 경제적 소득이 없이 자녀와 동거 할 경우, 노인은 의존 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되고 경제적인 의존 관계는 소비자유와 부모로서 의 권위를 상실케 한다. 손건무의 경우 평생 열심히 농사하고 음식점을 경영하여 저축도 하여 생활이 크게 개선되었으나 둘째 딸이 1997년에 폐 암에 걸려 사망한 후로 거액의 치료비로 인해 모든 경제적 자원이 소진 되었고 아직도 부채가 남아있다. 게다가 농촌 출신으로서 매월 신 농업 보험 수당으로 월 55위안, 한 자녀 보조금 월 80위안, 토지 임대비로 월 67위안, 월 소득이 200위안 미만이다. 따라서 손건무는 일상생활에서 돈 이 필요하면 일일이 자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고 용돈도 전혀 없는 처 지에 놓여 있다.

손건무(남성, 69세)

저와 아내는 수입이 없기에 모두 애한테 의지해야 되죠. 우리 고향에 서 60세 이상이 되면 주는 보조금이 월  55위안이 되고 아이가 외동  인 경우 한 사람당 월 80위안씩 주는 보조금이 있고요. 제 밭은 남동 생에게 농사를 짓게 내주어서 남동생이 저한테 일 년에 800위안을 주 지요. 딸 사위가 효도한다하지만 우리 노인은 분수를 알아야 되요. 왜 냐면 저희는 수입이 없고 병까지 있죠. 아내는 아내대로 아프고 저도 항상 진통제를 먹어야 되요. (중략) 돈이 필요할 때 자녀한테 달라고

해야 해요. 평소에는 손에 돈이 하나도 없고 용돈도 없어요. 제가 담 배를  피는데 해마다  시골에  한번씩  다녀  올  때  시골에서  담배  잎을  사와요. 고향에는 싸거든요 한 근에 십 몇 위안 하죠. 이곳에서는 한  근에 50위안이나 되요. 시골에서 2근이나 3근을 가져오죠. 이곳에  온지 여러 해 되지만 담배를 한 갑도 산 적이 없어요. 제가 돈을 벌 지  못하니깐 술도  마시지  않아요. 젊었을  때는 술을 꽤 좋아했는데 애들더러 술까지 사게 살 수는 없지요.

손건문 부부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자녀들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미안함으로 인해 신체적 상황이 매우 악화되었더라고 해도 할 수 있는 한 가사를 담당하고자 한다. 이는 자원이 부족한 가족의 젊은 층이 소득 창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노인 세대가 가사, 육아 등 돌봄 역할을 분담하는 생존전략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손건무(남성, 69세)

다른 가사는 할 수가 없어요. 바닥만  쓸어도 일 분이면 일어나지  못 해요. 전부 아내가 하지요. 저는 손녀의 치마나 양말을 씻는다거나 밥 을 한다거나 해요. 저는 허리만 굽히면 일어나지 못해요. 4층까지 오 르고 5층은 못 올라 가요. 잠시 쉬어야 되요.

손건무의 사례에서는 자녀와의 동거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소득 이 없기 때문에 동거 중에 의존감이 매우 크고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다세대 동거는 자녀 세대뿐만 아니라 노 인세대의 삶의 질과 만족도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의를 입증해 주 는 사례이다(김혜숙·김은희·김항원·유철인, 2005). 또한 노부모가 자녀양 육을 통해 노후에 부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공로(social credit)를 이 미 갖춘 상태이고, 효라는 규범에 의해 자녀로부터의 일방적인 부양이 규범화되어 있다 할지라도 노부모 입장에서 자신들이 받는 지원에 대해 되돌려 줄 수 없는 상황은 죄의식과 창피 감정 등으로 심리적 저하를 낳 으므로 상호호혜적인 교환관계성의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김 정석·김익기, 2000).

자녀가 단 1명인 손건무와 달리 자녀가 많을 경우 노인이 장기적 의존 상황에 처했을 때 여러 자녀들이 교대로 노인과 동거하며 돌보는 경우도 있다. 교대 동거 돌봄은 돌봄 인력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가족에서 노인 돌봄 부담을 균등하게 나누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노인을 돌보면서 형 제자매간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기애의 경우 평 생 농민으로 살다가 56세에 중풍에 걸려 현재 17년 동안 투병 중이다.

처음에는 막내딸이 이기애를 위해시에 모셔와 돌봤는데 현재는 위해시로 모인 자녀 5명이 2-3년씩 교대로 이기애와 동거하면서 모시고 있다.

이기애(여성, 72세)의 둘째 딸25)

(그럼 어머니는 누가 모셔왔어요?) 왕도에 있는 막내 여동생이 모셔 왔어요. 우리 엄마 모셔올 때 우리는 아직 안 왔어요. 우리 엄마가 아 픈지 17년이 됐고 여기 온지 17년 됐어요. 엄마가 이 병 걸린걸 알고 모셔왔어요. 우리 엄마가 금방 왔을 때는 좀 심각했어요. 금방 병 걸 렸을 때라서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그냥 매일 누워있고 앉는 것도 겨 우 앉고 그랬어요. 후에 치료 받고 앉을 수 있게 되고 처음에는 누워 서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후에 침구도 하고 약 쓰고 해서 좋아졌어요.

그 다음에 조금씩 단련해서 걸을 수 있게 되고 당시에는 지팡이를 썼 는데 후에 천천히 지팡이도 버리고 이제는 몇 년 동안 지팡이도 안 쓰고 살았어요. (중략) (아주머니 댁에 오기 전에 어르신은 어디에 계 셨나요?) 우리 집에는 형제자매가 6명이에요. 큰 오빠 남동생 자매 네 명이에요. 우리 집에는 자녀가 많잖아요. 울 큰 오빠는 대련에 사 는데 우리 엄마는 오빠한테서는 안 살았어요. 어떤 때는 여동생이 모 셔가고 어떤 때는 또 남동생이 모셔가고 그래요. 나는 작년에 모셔왔 어요. 이 몇 집에 다 있어봤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돌보나요?

엄마는 중풍에 걸려서 아무 일도 못하는데… 일상생활 자립은 할 수 있어요. 의료보험, 양로수당 같은 거 하나도 없어요. 어느 집에 가서 있으면 어느 집에서 돌봐요.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의료비는 많지 않 아요. 그냥 봄에 침 10번 맞고 가을에 침 10번 맞고 이 몇 년에는 병

25) 이기애가 중풍환자로 언어 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이기애에 대한 인터뷰를 끝내고 잠 깐 이기애와 동거 중인 이기애의 둘째 딸과 인터뷰를 가졌다.

이 안 도졌어요. 어떤 사람들은 중풍 걸리면 자주 도지고 하잖아요.

우리 엄마는 안 도졌어요. 잘 유지됐어요.

2) 자녀가 노인을 의존하기 위한 동거

대부분 경우 노인이 경제적 자원의 결핍으로 의존적 동거를 선택하지 만 부득이 하게 자녀가 노인을 의존하여 사는 경우도 존재한다. 최근 젊 은 세대의 독립난, 특히 대도시로 진출한 젊은 층이 대도시의 높은 소비 와 주택가격, 생활스트레스 때문에 대도시에서 정착을 하지 못하고 부모 가 있는 곳으로 와서 부모에게 의탁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본 연구 에서는 진항웅의 사례가 이런 경우이다. 진항웅은 2004년에 국유기업 민 영화로 근무하던 광산기계공장이 해체되어 52세의 나이로 구조적 은퇴를 당하고 위해시로 이주하였다. 그 후 북경으로 진출했던 딸과 사위가 높 은 소비수준과 육아난에 못 이겨 북경을 떠나 진항웅을 의탁하러 위해시 로 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위해시에서 3세대가 진항웅의 집에서 동거하 였는데 주택이 협소하여 3세대 동거가 불편하게 느껴지자 진항웅은 딸에 게 집을 사줘서 분가를 시켰고 의존적인 다세대 동거 관계는 길게 지속 되지 않았다.

진항웅(65세, 남성)

(당시 딸은 혼자 어르신을 찾아 온 건가요?) 딸이 결혼했어요. 같이 왔어요. 식구 셋이서 같이. 북경에 있으면요, 주택 임대료도 너무 비 싸고 봉급도 높지 않죠. 그래서 북경에서 여기로 왔죠. 애들이 북경에 있을 때 우리가 위해로 왔으니까 애들은 다시 동북으로 못 돌아가죠.

우리한테 올 수밖에 없죠.

3) 상호의존을 위한 다세대 동거

자녀가 육아도움을 요청하여 이주한 노인의 경우 노인은 자녀의 가사 와 육아를 돕는 동시에 자녀가 노인을 동거하면서 부양하는 다세대 동거 관계를 맺는 경우가 있다. 돌봄 자원이나 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가족은 동거를 통한 자원집중과 세대 간 협력을 통해 정착과 발전을 도모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