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주 후의 상호 지원관계
5.2.3. 비상 상황에 처한 부모에 대한 일시적 돌봄
노-노 케어로 자녀에게 도구적 지을 요구하지 않을 경우에 자녀로부터 극진한 정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녀의 동거 돌봄을 받는 경우(한옥지, 이기매 사례)에는 가내 방치가 많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또 자녀의 경제적 지원으로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일 경우에도 자녀가 한국에 있거나(문금화 사례, 방정희 사례) 자녀(손자녀) 가 근처에 살고 있어도 일이 없으면 연락하거나 방문하지 않는다(최춘옥 사례, 방정희 사례). 따라서 현재 이주노인이 자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도움은 경제적 도움, 신체적 돌봄, 정서적 지원 중에 한가지로 제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 뭐. 달려오게 되면 또 병원에 데려가지 뭐. 요전 날에 셋째 딸이 와서 병원에 가자 그래서 검사를 하니까 자꾸 기침이 나서 병원에 데 려가니까 후두염이라나, 지금도 계속 약을 달고 있는데 다른 거는 아 무 일 없어요.
노인의 경우 급변하는 사회에서의 비상 대처능력이 매우 낮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에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가족은 필수이다. 평소에 노인에 대한 도구적 돌봄과 정서적 돌봄이 극히 적은 가족이거나 심지어 한국에 있는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노인이 비상상황에 처하면 달려온다. 한편 자 녀에 대한 돌봄 기대가 극히 낮아진 지금에도 노인들은 비상상황에 대한 돌봄은 자녀의 기본 도리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일상적인 돌봄을 제 공하지 못해도 매우 관용적이지만 비상상황을 외면한 자녀에 대해서는 크게 실망을 한다. 예컨대 한경윤의 경우 아내가 사망할 때 둘째 딸에게 알렸으나 둘째 딸이 입원한 손녀를 간호하기 위해 달려오지 못한 것에 대해 크게 상심하며 딸과 연락을 끊고 살고 있다.
한경윤(남성, 89세)
(어르신께서는 자녀에게 어떤 기대를 하나요? 자녀에게 요구하는 게 있으신가요?) 기대라…요구는 없어요. 음…아까 내가 둘째 딸이 죽었 다고 했는데 사실 죽은 게 아니에요. 근데 내가 왜 죽었다고 했냐면 애 엄마가 세상 뜰 때 둘째 딸한테 전화해서 오라고 했는데 안 왔어 요. 자기 딸 돌보느라고. 그 때 자기 딸이 병원에 입원했거든요. 그래 서 내가 둘째 딸이랑 연을 끊었어요. 엄마가 죽어 가는데도 안 와보 고 자기 딸 돌보겠다고. 아무리 그래도 자기 딸은 죽을 정도는 아니 잖아. 안 그래요? 지금도 속이 내려가지가 않아요. 영원히 내려가지 않을 거야. 내가 잘못 생각했나요? 나는 내가 맞다고 생각해요. 이런 딸은 없는 걸로 하는 게 맞아요. 아버지는 외면해도 될지 몰라도 엄 마는 똥, 오줌 받아주면서 고생스럽게 키워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이처럼 현재 경제적 돌봄, 정서적 돌봄, 신체적 돌봄은 자녀가 처한 상
황에 따라 도덕적으로 양해 받을 수 있지만 비상상황 시 돌봄은 자녀로 서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 최저 수준의 돌봄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족 간의 상호지원 상황을 종합해 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세대 간의 상호지원은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일반적 으로 노인이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악화로 의존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는 자녀에 대한 노인의 돌봄이 가족 간의 상호지원관계의 주요 내용이 된다. 그 후 노인이 의존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노인에 대한 자녀의 지원이 가족 간 상호지원 관계의 주요내용이 된다. 두 번째 특징 은 이주가족 내에서 세대는 세대 간 분업이라는 규칙을 가지고 상호지원 을 한다는 것이다. 자녀세대는 주로 경제적 지원과 정서적 지원을 맡아 소득이 없는 노인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분거하거나 입소한 노인에 게는 정서적 돌봄을 제공하고, 노인이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돌봐주고 있는 형태이다. 반면 노인은 가사, 돌봄과 경제적 보조를 맡는다. 주로 성인자녀의 가사와 육아 보조, 와상 배우자 돌봄을 전담하고, 자녀의 주 택구매, 결혼, 육아비용, 사업투자 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며, 자 영업 하는 자녀의 일손을 무급으로 도와주고 가계를 위한 노후 노동에 참여한다.
세대 간 분업의 특성을 보면 자녀가 제공하는 돌봄은 함께 동거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하는 소비, 그리고 거처를 제공하는 것, 일주일에 한번 정도 분거한 노인을 방문하는 것,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돌봐주는 것 등이다. 이러한 돌봄의 특징은 상시적이지 않으며, 부모의 수요에 따른 것으로 부모가 독립적이거나 부모가 요구하지 않을 경우 돌봄을 제공하 지 않을 여지가 매우 크다. 반면 노인이 제공하는 돌봄은 거의 모든 영 역이 포함되고 상시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것으로 많은 경제적, 신체적 소모가 따른다. 세대 간 분업을 비교했을 때 부모가 제공하는 지원이 ‘노 동적 성격’이 더욱 크며 노동 강도도 또한 훨씬 높다. 또한 이러한 분업 에 의하면 자녀들은 맞벌이를 이유로 신체적 돌봄 영역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사별 노인의 신체적 돌봄의 공백은 매우 클 것으로 보여 진 다. 이처럼 세대 간의 상호지원관계에 있어서 노인과 자녀세대는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자녀편향적인 불균형한 상호지원이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