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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건축의 상품화와 이미지

2.3 일상과 이미지 : 이미지와 실체의 상호의존성

2.3.2 근대 이후 건축의 상품화와 이미지

근대건축이 일상을 배제하고자 하였던 이유에는 근대건축을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에 대 립되는 고상한 예술적 작업(high artistic practice)의 지위에 가둬두려는 의도에도 기 인한다. 하지만 실제로 근대 이후 엘리트 건축과 상품으로서의 건축의 관계는 그렇게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대 건축은 단지 대중문화를 언급하거나 이용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 건 축은 그 자체로 시작부터 하나의 상품(commodity)이다. 아마도 이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것은 MOMA의 1932년 ‘근대 건축’(Modern Architecture) 전시회 그리고 그와 함께 발행된 저서인 ‘국제양식 :1922년 이후의 건축’일 것이다.”116

근대건축과 대중문화의 지속적인 관련은 수많은 역사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무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지만, 꼴로미냐에 의하면 근대 건축이 진정 근대적이 될 수 있었던 것 은 미디어와의 관계를 통해서이며, 근대건축도 상품의 맥락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 다.

“예술 서적들로부터 발췌된 이미지들 옆에 선전 재료들과 신문 클리핑을 사 용하는 것은 ‘하위 문화’(low culture) 재료들이 ‘고급 예술’(high art) 의 영역으로 침투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침투는 비록 예술 제도에의 직접 적, 아방가르드적 공격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일상생활 영역으로부 터의 자율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손상시킨다. 일상적 사물보다는 예술작품, 공학과 건물보다는 건축, 포스터보다는 회화의 지위가 더 높다는 르 코르뷔 지에의 주장 - 가장 근대주의적인 양식으로 - 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업은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하위문화의 재료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오염 (contaminated)되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업은 이러한 오염의 구조적 역할 을 떠나서는 생각될 수 없다.”117

엘리트 건축과 일반 건축의 경계를 명확히 구획하고, 자신들의 작업을 고급 예술의 지

116 Beatriz Colomina, Privacy and Publicity : Modern Architecture as Mass Media, MIT Press, 1996, p.195.

117 Beatriz Colomina, Privacy and Publicity : Modern Architecture as Mass Media, MIT Press, 1996, p.220.

위에 머무르게 하고자 했던 근대 운동의 선구자들 역시 그들 작품의 이미지가 미디어 에 의해 소비되기를 열망했으며 하나의 상품이 되어 확산되기를 갈망했다. 이를 위해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는데, 특히 전술한 바와 같이 르 코르뷔지에는 누구보다도 광고의 기법을 구사하며 독자들을 중요한 사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시각을 통해 관심을 끌어야 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기계시대 문화와 관련하여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 을 뿐만 아니라, 르 코르뷔지에 자신도 대량생산이라는 생산 조건, 광고 매스미디어 등에는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소비사회의 문화와 건축의 관계에는 누구도 그다지 주목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건축에서와 마찬가지로 근대 이후 미디어와 광고의 역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적인 전제조건으로 작용하며, 기존처럼 전통적인 건물의 생산 이라는 개념에만 기초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미디어의 가치를 그것이 재생산해내는 건축과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가치, 기준, 한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모든 종류의 건축을 형성한다 - 그것이 어떻게 상상되고 디자인 되었는지부터, 어떻게 사진에 찍 히고 글로 쓰여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되거나 해석되고 정의되는지에 이 르기까지."118

그런데 미디어는 본질적으로 편향적이다. 건축을 다루는 잡지, 서적 등의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건축에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실체와 관련되어 객관적인 방 식만으로 건축물의 수준이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건축을 다루는 미디어에서 주 요 독자층으로 상정하는 대상에 따라 건축의 재현 방식이 상당히 다른 접근방식을 취 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문가들을 독자층으로 하는 경우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미디어의 경우 사용되는 사진 이미지는 전혀 다른 재현 방식을 추구한다. 즉 동일한 건물이더라도 묘 사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가 드러나는데, 건축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비 교적 기록적이고 기술적인 방식의 묘사에 치우치는 반면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경 우에는 라이프스타일과 점유가 강조된다.

이는 쾨니히(Pierre Koenig)가 설계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케이스 스터디 하 우스(Case Study House) 22번 주택을 건축 전문 사진작가인 슐만(Juilius

118 Kester Rattenbury(ed.), This is Not Architecture, Routledge, 2002, p.55.

Schulman)이 1960년에 찍은 사진들을 통해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야경의 거실을 담은 2개의 거의 동일한 각도의 사진 이미지들을 비교해보면 건축에 대한 상반된 사 진적 재현을 살펴볼 수 있다.

하나는 건축물 자체를 담기 위해 사람을 등장시키지 않으며 이는 건축 잡지 편집자들 이 선호하는 이미지이다. 반면 다른 사진에는 하얀 옷을 입은 2명의 여자가 의자에 앉 아 있는데 여기서는 건축과 라이프스타일을 모두 담아내려는 사진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119 그러나 라이프스타일을 언급한 이미지는 당시 주류 건축 미디어에서는 채택 되지 않는다.

[그림 2-5] 슐만(Shulman)의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 #22 사진 이미지 : ‘No girl'(좌)과 ‘Two girls'(우)

이와 같이 통상적으로 건축가들을 위한 묘사는 분석적이고 추상적이며 자기 참조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이는 구조의 기하학을 보여주기 위함이거나 일상적 사용의 흔적을 배제하고 영속적인 질서를 보여주기 위해 또는 공간적 재현의 규범을 확립하고 건축 디자이너라는 직능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목적을 갖는다. 마치 건축 도면의 재현적 원칙들과도 유사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사용과 점유, 거주자와 라이프 스타일이 배제됨으로써 건축에서 구체적 사용과 경험에 기반한 일상이 배제되는 결과

119 [그림 2-5]는 Pierluigi Serraino, 'Framing icons : Two Girls, two audiences. The Photographing of Case Study House #22', in: Kester Rattenbury(ed.), This is Not Architecture, Routledge, 2002, p.128과 p.130 참조.

를 가져오기도 하며, 간극이 커질수록 건축가와 대중의 소통이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반면 일반 독자층을 위한 재현 방식 역시 나름의 특징을 갖는데, 전문가에서 소비자로 대상이 바뀌면서 사진적 구성의 토대는 상당히 변화한다. 슐만의 경우 건축 사진가임 에도 불구하고 건축에서 배제되어 왔던 소품이나 사람들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그의 목적은 점유를 제안하는 것이었으며 독자의 마음 안에 모던 홈에서의 안락한 라이프스 타일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즉 ‘소비’를 전제하는 재현이 더욱 강 조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시 일반 대중의 감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철골의 모더니즘 건축을 가정의 분위기와 통합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중적 취향을 겨냥한 재현방식은 주류 건축문화에서 수용되기에는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린다.120 사실 이러한 이미지는 건축과 라이프스타일을 통합시킬 뿐 아니라 건물이 창조된 목적인 사용자와 그 행위에 주요 관심을 두는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건축은 삶을 담아내는 배경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건축가들에게는 스케일 감각과 더 불어 공간의 사용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비의 차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대중이 선호하지 않았던 철골 모더니즘 건 축물에 안락한 가정의 모습을 인위적으로 대입시키고자 하였던 것처럼 연출된 이미지 를 통해 의식의 전환을 달성하고자 한다. 따라서 단순히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점유 에 대한 재현보다는 사회 엘리트 계층에 대한 묘사와 그들 계층에 어울리며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욕망의 대상인 소품들을 등장시키며,121 일반 대중 즉 사용자에게 는 사회적 계급이라는 욕망을 자극하는 수단이 된다.

“공간은 사회 엘리트 계층의 취향에 적합하게 연출되며, 그들에게 디자인은 사회적 구별짓기의 수단이 된다. 대중지(紙) 건축 사진의 역사는 중산층과 상

120 케이스 스터디 프로그램(Case Study Program)을 지휘했던 '아츠 앤 아키텍처’(Arts &

Architecture) 잡지의 발행인이자 편집자인 존 엔텐자(John Entenza)는 두 여인을 등장시킨 사진 대신 구조물의 단순한 기하학과 건설 과정의 구축적 특성 그리고 주변 랜드스케이프를 향해 투명 하게 열린 내부 등을 강조하는 장식이 배제된 흑백의 사진 이미지들을 선택한다. 거주자나 그들의 생활방식, 건축과 결부된 거주자의 경험 등을 유추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이미지들이다. 그러나 이 후 포스트 모던의 시대적 흐름은 건축에 대한 대안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면서 경직된 기존 흐름 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121 Pierluigi Serraino, 'Framing icons : Two Girls, two audiences. The Photographing of Case Study House #22', in: Kester Rattenbury(ed.), This is Not Architecture, Routledge, 2002, pp.127-128 참조.

류층의 취향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122

그 결과 등장하는 소품들은 단순히 공간의 구체적 점유 그 이상을 상징하는 기호가 되 며, 사진의 어휘는 건설 산업과 관련된 다양한 상품들을 광고하는데 활용된다. 슐만의 두 사진도 모두 실제 거주자가 입주하기 전의 시점에서 임시 가구와 가상의 거주자들 을 대상으로 한 연출인 것과 같이, 소비를 전제한 사진적 구성은 어떤 식으로든 실체 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황을 가공하게 된다. 다만 그것이 실체와 어느 정도의 연관 성을 갖는가에 대한 차이의 진폭이 있을 뿐이다.

특히 서구사회의 경우 우리나라에서와 달리 교외 단독주택이 중산층의 이상적인 스위 트 홈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주택부족과 전후 호황 과 맞물려 미국의 경우 레빗타운(Levittown)과 같은 대량주택 공급업자들이 등장하며 교외주택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다. 레빗타운에서는 효율적인 생산을 위해 실질 적으로 평면의 다양성은 기존보다 축소되었지만, 하나의 평면에 대응하는 여러 외부 디자인을 제시하며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다양성을 강조한다.

이는 대량생산의 이점과 소비사회에서의 다양성에 대한 요구를 나름의 방식대로 접목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브로셔에는 가전 기기와 첨단의 편의 시설 리스트와 수영장이나 상점과 같은 커뮤니티 시설에 대한 정보를 언급한다. 또한 대량공급 주택 이면서 동시에 건축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대중에게 모더니즘 디자인을 소개하고자 했 던 아이클러 홈(Eichler home)은 주택에서 일어나는 생활 모습을 이미지를 통해 적극 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취한다.123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와 마찬가지로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공급된 아이클러 홈 도 역시 새로운 주택의 생산 기술 도입이라는 목적 아래 철골 주택 디자인을 대중을 위한 대량공급주택으로 도입하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대중의 선호와의 차이에서 오 는 갈등을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주택 이미지를 배경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사람들의 행위와 분위기를 부각시키면서 가족과 가정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브 로셔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다. 이 같은 방식은 당시 잡지와 대중매체에서 활용 되는 방식이기도 하였는데, 가상의 거주자 이미지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안락함과

122 Pierluigi Serraino, 'Framing icons : Two Girls, two audiences. The Photographing of Case Study House #22', in: Kester Rattenbury(ed.), This is Not Architecture, Routledge, 2002, p.128.

123 신은기·홍지학, 미국 근대 교외주택에서 인쇄매체에 나타난 이상적인 주택의 표현, 대한건 축학회논문집, 28권 1호, 2012.1, p.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