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일상과 사회구조 : 국내 도시주거의 이념적 근거
2.2.2 소비 자본주의와 소비문화
2.2.2.1 소비의 재생산과 차이의 욕구
"소비사회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란 옛날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대중과 대 중의 소비는 관료와 자본에 의해 합리적으로 조작될 따름이다. 상품과 광고 는 조작의 메커니즘일 따름이고, 대중들은 중력과 자력에 이끌리는 쇳가루와 도 같은 것들이다."50
48 김광수, 소비-건축/문화, 건축, 2002.12, p.42.
49 김광수, 소비-건축/문화, 건축, 2002.12, pp.41-42.
50 Jean Baudrillard, Simulacres et Simulation, Editions Galilee, 1981. 하태완 옮김, 시뮬라시 옹, 민음사, 1996, pp.265-266.
근대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시간 저임금의 착취 구조가 지배적이었다면, 자본은 이제 노동자를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소비자로 탈바꿈시키며 착취의 구조를 바 꾼다. 소비가 자본주의의 가치증식 과정에 편입되면서, 더 많은 월급과 더 짧은 노동 시간의 차이, 그 간극을 비집고 소비가 이데올로기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 다.51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기존의 수요-공급에 의한 경제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며, 소비의 조작에 주목한다.
“이제는 생산성의 향상뿐만 아니라, 그것과 연동되는 소비의 욕망을 발견하 고 부추기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중요한 문제가 된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 가 된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생산의 사회가 끝나고 소비의 사회가 시작되었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는 처음부터 자본주의적 경제를 구성 하는 중요한 행위의 일부였다. 단지 대공황의 경험 이후 대량생산된 상품의 원활한 소비, 각기 상이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소비재의 개발, 그 리고 끊임없이 소비의 욕망을 부추기는 소비에 관한 교육이 이전 시대보다 확연하게 중요해졌다는 점에서 소비 중심의 사회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52
소비사회에서 소비 이데올로기가 자극하는 욕망의 근저에는 일차적으로 계급적 지위가 자리한다. 근대 이전의 소비는 소수 특정한 신분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적 인 것이었는데,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지배층이 된 부르주아들에게 이러한 ‘낭비’
의 관념은 특정한 방식으로 전유되어 나타나며 베블런은 이를 ‘과시적 소 비’(conspicuous consumption)라고 명명한다. 이른바 ‘베블런 효과’로 일컬어지 는 욕망의 실천을 통해 부르주아 계급은 특별한 것을 소비할 권리가 있음을 과시함으 로써,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계급임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53
51 이득재, “광고, 욕망, 자본주의”, in: 목수현 외 지음, 광고와 신화, 욕망, 이미지, 현실문화 연구, 1993, p.12. 최효찬, 일상의 억압기제 연구 :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문화정치학적 접 근, 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6, p.85에서 재인용.
52 권용선, ‘생산의 사회에서 소비의 사회로?’, in: 이진경 편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그린 비, 2011, p.66.
53 ‘과시적 소비’는 특정한 계급이나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것으로서 상위 계급을 욕망하 는 하위 계급의 모방과 허위의식의 도전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불 능력을 초과하는 명품 브 랜드 속에 자신의 욕망을 투사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상위 계급 혹은 계층에 대한 욕망을 상상 속에서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명품을 구입하는 데 지불하는 금액은 상품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브랜드에 시선을 주는 익명의 타자들의 선망을 이끌어내 는 데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다. 권용선, ‘생산의 사회에서 소비의 사회로?’, in: 이진경 편저, 문화정치학의 영토들, 그린비, 2011, pp.69-71 참조.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의 계급적 지위는 근본적으로 화폐라는 자본의 상징성과 직결되며 소비를 부추긴다.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는 생산의 경제논리에 의해 효율성을 모토로 시간까지도 화폐가치로 환산됨으로써 ‘화폐로 계산되는’ 효율성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반면 1960년대 이후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산가능한 화 폐의 정량적 특성을 토대로, 생산이 아닌 소비의 영역에서 모든 사물 즉 상품의 이면 에서 화폐와 결부되는 상징적 영향력이 위력을 갖게 된다.
“화폐는 일반적인 신화처럼 교환 속에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폐 가 교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모든 상품의 가치를 양적으로 비교하기 위해 서는 다양한 생산물의 다양한 가치(값어치)를 폭력적으로 수량화하는 일반적 등가물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사물의 객관적인 가치를 반영하는 거울도 아니다. (...) 일반적 가치형태에서는 모든 재화의 가치가 오직 화폐를 통해서만 표시된다. 화폐가 가치의 유일한 담지자가 된 것이다. 이는 어떤 재 화도 화폐로 표시되지 않는 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화폐가 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각 각의 재화가 화폐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역전이 발생한다.54
화폐라는 단일한 척도가 구축되고 재화의 가치를 획일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계산 공 간이 탄생하게 되면서, 수량화할 수 없던 다채로운 가치들은 사라지고 하나의 척도- 화폐로 비교되는 가치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화폐가 객관적 가치를 반영하는 거울 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근대 이후의 비합리적 합리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제 사물에 내재된 화폐의 상징적 가치는 소비사회에서 부와 신분을 함축하며 선택과 판단의 공고 한 기준이 된다.
“지위의 근원은 이제 물건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는 능 력”55 에 있게 되었으며, 그 결과 산업사회의 효율성 법칙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화폐의 상징성이 욕망화되며 현대인의 일상전반을 지배하기에 이른 다. 이처럼 화폐의 상징성을 통해 획득되는 사회적, 계급적 차별화라는 소비주의에는 54 ‘가치’는 화폐가 매개하는 교환 속에서만 상품 속에 내재하는 실체가 된다. 그리고 화폐만 이 이러한 가치를 부여한다. 화폐는 두 상품이 원래 갖고 있는 가치를 비교하고 교환을 매개하는 유통수단이 아니라,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서열을 정하는 초월자인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가 화폐를 동경하고 가치를 승인받고자 하는 욕망에 헐떡인다. 한경애, ‘화폐의 권력, 반화폐의 정치 학’, in: 이진경 편저, 모더니티의 지층들, 그린비, 2010, pp.116-117
55 Harry Braverman, Labour and Monopoly Capital (New York : Monthly Review Press, 1971), p.278.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소유의 종말, 민음사, 2008, pp.124-125에서 재인용.
소비 개념의 혁신이 자리하는데,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소비개념과는 달리 사물 즉 상 품의 소비란 사용가치의 소비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훨씬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게 된 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 따르면 소비사회에서 사물은 기호로 파악되고 사회는 의미작용의 체계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인간의 욕구는 특정한 사물에 대한 욕구라기보다는 ‘차이’에 대한 욕구, 즉 사회적 의미에 대한 욕 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차이에 대한 욕구는 일반적으로 계급적 지위를 상징하는 집단적 개념이며, 화폐에 의한 계량적이고 위계적인 평가가 가능한 ‘합리적’ 개념으로서 상품의 소유로 일시적이고 표면적으로나마 획득 가능하 다고 여겨지는 차이이다.
따라서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려는 사람들의 경향을 나타낸 보드리야르 의 '파노플리 효과’(effect de panoplie)56 는, 필요가 아닌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려 는 수단으로 전락한 소비를 나타내는 개념인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와 같은 맥락이라 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비 이데올로기는 사물의 기호학을 심화시킨다. 따라서 보드리야르는 사물을 물질적 실체로 보지 않고 기호로 파악한 바 있다. 사물은 기호이며 사물의 의 미와 기능을 기호체계 안에서 정합적으로 부여받는다면, 소비의 개념 역시 기호체계 안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사회에서 중요한 범주는 사물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보다도 기호학적 가치 이다.57 사물은 이제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상징하는 일련의 기호가 되었으며, 현대 인은 상품의 구입을 통해 '사물’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기호’라는 이미지를 소비한 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물의 기호는 일종의 체계 안에서만 의미를 지니며 소비 메 커니즘을 작동시킨다.
56 파노플리는 집합이라는 뜻이 있으며,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상품을 통해 특정 집단에 속하는 현상을 일컬어 파노플리 효과라고 한다. 즉 어떤 상품을 소비하면 그것을 소비할 것이라고 여겨지 는 집단에 속한다는 환상을 주는 것으로, 신분적 지위가 사라진 소비사회에서는 상품을 통해 사람 을 평가하는 성향이 있으며 따라서 상품의 구매는 그러한 사회적 의미 효과를 구매하는 것이기도 하다.
57 배영달,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살림, 2005, p.39.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이러한 기호학적 가치는 소비사회에서 특히 광고언어가 사물에 부가하는 기호학적 가치이다.
따라서 보드리야르에 의하면 소비의 체계는 최종적으로는 욕구와 향유에 근거하는 것 이 아니라 ‘기호(기호로서의 사물) 및 차이의 코드’에 근거하고 있으며,58 코드는 현대의 소비사회가 낳은 신화이다. 차이화된 기호로서의 사물의 유통, 구입, 판매는 오늘날 우리의 언어활동이며 ‘코드’인데, 그것에 의해서 사회 전체가 의사소통하고 서로에 대해 말한다. 즉 마치 언어가 의사소통을 규제하는 코드를 내포하고 있듯이, 사회도 우리의 일상생활을 조직하고 구조화하는 코드를 가지며 이는 오늘날 소비사회 전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59
그 결과 가치가 화폐에 의해 그리고 사회적 의미작용의 질서, 즉 기호체계의 코드 안 에서 기호화되지 않은 상품의 소비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소비사회에서 “소비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기호의 질서”60 라고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상품 의 기호는 그에 결부된 이미지를 낳으며, 기호와 이미지에 의해 상품은 가치가 결정되 고 욕망을 부추기는 소비의 대상이 된다.
"거리의 수많은 광고에 새겨진 기호, 사회적 신분과 위세 또는 차별적 개성을 나타내는 상품에 담겨진 기호, 사람들의 욕망을 유혹하는 패션과 화장에 배 어 있는 기호, 문화적 공간이나 실내장식의 분위기가 바깥으로 표출하는 기 호, 이러한 것들이 사회현실 전체에 파고들어 현실 자체를 움직인다. 그러므 로 사회현실의 논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호로서의 사물을 따라 움직이게 하 는데, 이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기 호를 소비할 수밖에 없게 되며, 소비는 당연히 기호의 소비를 포함하는 과정 으로 설명된다. 즉 사물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기호가 소비된다는 것이 다.”61
소비하는 모든 상품들 속에는 화폐의 상징성에 의한 계급적 위계 외에도 취향과 개성 에 대한 문제 혹은 젊음과 같은 인간 본연의 열망 등도 내포되어 나타난다.62 차이화
58 Jean Baudrillard, La Societe de Consommation : ses mythes ses structures, Paris : Éditions Denoël, 1986, 이상률 옮김,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9, p.102.
59 배영달,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살림, 2005, p.42.
60 Jean Baudrillard, La Societe de Consommation : ses mythes ses structures, Paris : Éditions Denoël, 1986. 소비의 사회,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1999, p.298.
61 배영달,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살림, 2005, p.40.
62 고급 승용차는 부의 상징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성공과 여유로움 등으로 읽혀진다. 명품 가 방과 의류 역시 고가의 가격에 걸맞게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결부된다. 이 외에도 모든 상품들은 젊음, 아름다움, 유혹 등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광고를 통하여 덧입히며 상품과 이미지 사이의 기 호학적 관계를 시도한다. 소비사회에서 소비자는 상품을 소비함과 동시에 기호의 이미지와 상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