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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일상과 사회구조 : 국내 도시주거의 이념적 근거

2.2.2 소비 자본주의와 소비문화

2.2.2.2 미디어와 광고 이데올로기

소비는 자본주의의 가치증식 과정에 편입되면서 더 이상 주체의 자발적 활동이 아니 라, 그 선택이 이미 통제되고 조작된 행위로 전락하였다. 르페브르가 1960년대 이후 서구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소비조작의 관료사회’65 라고 명명하고, 이를 자본과 관료제에 의해 소비가 조작되는 사회라고 규정한 것도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드리야르 역시 현대사회는 생산과 노동에 의해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소비 에 의해 확장되며, 소비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66

따라서 소비사회에서는 금욕이나 검약과 같은 프로테스탄트적 가치 윤리에 따라 소비 가 절제되어서는 안 되므로, 향유가 새로운 윤리로 떠오른다. 오늘날 향유는 권리나 즐거움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의 의무로서 강요되고 제도화되어 있다. 현대의 소비인간 은 향유와 만족을 의무로 삼는 존재로, 자신의 모든 잠재력과 소비능력을 부단히 동원 하여 소비를 장려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비는 자기만의 사적 영역에서 자율적으 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이며, 강제이고 도덕이며 제도라 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분석이다. 즉 소비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가치체계이며, 체계라 고 하는 용어가 집단통합 및 사회통제의 기능으로서 포함하는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 기 때문이다.67

특히 보드리야르가 말하는 사물의 기호학적 가치는 소비사회에서 특히 광고언어가 사 물에 부가하는 기호학적 가치이며, 광고는 차이화의 논리와 의미작용의 질서를 만들어 65 르페브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소비조작의 관료사회’라고 명명한 것에 대해 1950년경 부터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르페브르에 의하면, 1940년대에서 1950년대로 넘어 오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모순과 위기 경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성장했고 생산력의 확대를 가져왔다. 반면 일상생활은 식민화가 가속화되었으며, 상품문화는 사회 의 상부와 하부구조에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Andy Merrifield, Metromarxism : A Marxist Tale of the City, Routledge, 2003. 남청수 외 옮김, 매혹의 도시, 마르크스주의를 만나다, 시울, 2005, p.182. 소비조작의 관료사회는 누적되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자본과 관료제의 합리성을 통 해 즉 자본과 관료기구가 의도적으로 수요를 일으키면서 해결하려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66 예를 들어, 근대 이전의 어린이들은 일터에서의 극심한 노동으로 소외를 당했다면, 현대의 어 린이들은 광고와 TV 프로그램 그리고 또래 친구들의 소비를 통하여 소외를 당한다.

67 Jean Baudrillard, La Societe de Consommation : ses mythes ses structures (Paris : Éditions Denoël, 1986), 이상률 옮김, 소비의 사회, 문예출판사, 1999, pp.104-106 참조.

내는 대표적인 매체이다. 르페브르 또한 소비생활 통제의 도구로서 광고가 중요한 의 미를 갖는다고 파악한다. 즉 소비사회를 주도하는 소비 이데올로기는 광고 미디어라는 장치를 통해 전파되는데, 소비가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에 개입하듯이 광고는 그 과정에 개입할 뿐만 아니라 그 개입의 과정을 구체화하고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광고인 캘킨스(Calkins)도 “우리는 광고를 통해서 사회학적 역사의 흔적을 추적하게 될지도 모른다. 유행과 열광의 일어남과 스러짐을, 음식과 의복 분야에서 관심과 기호 의 변화를, 오락과 악습을, 또한 당대 삶의 파노라마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 다”라고 했듯이,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와 풍속은 소비와 그 전령인 광고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따라서 소비와 광고는 현대사회의 주요 문화이자 정체성을 찾 는 기제가 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광고는 ‘현대 자본주의의 공식적 예술’(official art)로 정의되어지기도 한다.68

그리고 이러한 광고의 메커니즘 이면에는 ‘잉여쾌락’의 개념이 있다. 즉 욕망은 대 상의 고유 가치와 교환 가치의 차액인 ‘잉여쾌락’에 의해 지속되는데, 인간은 결코 닿지 않는 근원적 욕망을 향한 추구를 멈추지 못하지만 막상 대상을 손에 넣는 순간 그 실체는 텅 빈 껍데기로 남아 욕망과 미끄러지면서 결핍을 낳는다. 그리고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이 결핍이 곧 ‘잉여쾌락’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에너지라는 것이 다.69 따라서 광고는 실체를 선전하기 보다는 사회적 차이화의 이미지와 그로 인한 욕망과 감정을 판매한다.

"실체는 광고 뒤에 숨어있다. 하나의 건축 작품과는 반대로 끊임없이 재생되 는 광고의 일반적 기능은 그 페이지 뒤에 있는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촉발시 키는 것이다.”70

“느낌을 촉발시키는 것은 광고가 아니다. 광고는 느낌의 아이디어를 촉발시 킬 따름이다. 광고는 상품을 가리키는 기호로 느낌을 사용한다. 그러나 다음 68 마정미, ‘당신은 이미 상품의 공간에 들어와 있다’. in: 최예실 외 지음, 신지식의 최전선2 : 문화와 예술의 경계는 없다, 한길사, 2008, pp.149-150 참조. 위의 캘킨스의 언급에서는 르페 브르와 보드리야르가 주장하는 광고에 의한 소비의 조작 차원과 더불어, 4장에서 살펴볼 브랜드의 이중성에서 수요자의 요구사항에 대한 반영이라는 측면 역시 고려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69 최효찬, 일상의 억압기제 연구 : 자본주의 도시공간에 대한 문화정치학적 접근, 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6, p.91 참조.

70 Bernard Tschumi, Architecture and Disjunction, MIT Press, 1996, 류호창·서정연 공역, 건축과 해체, 이집, 2002, pp.93-94.

엔 당신이 상품을 구입하게 될 때 그 느낌(감정)이 약속되는 것이다. 따라서 느낌과 상품은 기호표현-기호내용으로서 서로 교환 가능하게 된다.”71

따라서 시각적 미디어, 특히 TV를 비롯한 기술영상매체의 발달은 소비사회와 불가분 의 관계를 지닌다. 소비사회에서는 미디어에 의해 소비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현 대인들은 미디어가 소비하는 것에 의해 끊임없이 억압당하게 된다.72 이러한 맥락에 서 미디어는 단순히 현실의 매개도구가 아니라 형성도구가 되며, 텔레비전 광고는 삶 의 방식까지 지배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광고는 소비자에게 단순히 회사를 홍보하는 의도 외에도 기존 사회에 적합해지도록 살아가는 방식까지 조정하는 지배자 의 이데올로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편안하게 당신 집에 있는데 그 집에는 작은 화면(화면에 의해 전달 되는 메시지들보다는 화면이 중요하다고 맥루한은 주장한 바 있다)이 있고 누군가가 당신을 사로잡고 있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항상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며, 무슨 옷을 입고 무슨 가구를 들 여놓으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해준다. 그런 식으로 당신은 프로그래밍이 되는 것이다. (...) 저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것이다.”73

르페브르는 상품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광고가 심지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지시 하고 프로그래밍 해주고 있다고 말한다. 광고를 보면서 소비자는 광고에서 주어진 삶 의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바로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미디어는 소비 사회에서 개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형성 도구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74 , 실제 현실과 각종 미디어에서 재생산된 모사현실 간의 구분이 모호해진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원 본 아닌 원본이, 미디어가 만들어낸 시뮬라크르의 이미지가 더 위력을 발휘한다.

71 Judith Williamson, Decoding Advertisements, 박정순 옮김, 광고의 기호학, 커뮤니케이션 북 스, 2007, p.41.

72 최근에는 광고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예능과 같은 TV 프로그램에서도 간접광고가 심해지면서 노출되는 모든 것이 광고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가장 두려운 일은 미디어에 노출되지 못하여 관심과 호기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도 부정적인 이미지 를 감수하고라도 홍보를 하고자하는 미디어 광고 전략이라 볼 수 있다.

73 Henry Lefebvre, La Vie Quotidienne dans le Monde Moderne, Gallimard, 1968. 박정자 옮김, 현대세계의 일상성, 기파랑, 2005, pp.211-213.

74 사실 책을 포함하여 모든 미디어는 의식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소비사회에서 비난하는 TV로 대변되는 기술매체의 문제는 그 정보 제공자와 수용자의 관계가 성찰적 거리감 없이 일방적이며 전체주의적이라는 데에 있다. 따라서 매체의 권력화, 자본화 그리고 단일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인 것이다.

미디어를 통해 보급되는 광고에 의해 개인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것은, 주디스 윌리 엄슨에 의하면 ‘호명’(interpellation)이라는 기제 때문이다. 호명은 광고가 여러 형 태로 소비자를 부름으로써, 소비자가 적극적인 소비주체로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즉 광고는 우선 ‘당신’이라는 호명으로 욕망의 공간, 주체가 비어 있는 ‘광고’의 공 간으로 소비자를 초대하며, 광고에서 호명이 이루어지면 소비자는 그 초대에 응함으로 써 주체로서 광고 안의 스타나 상품과 결합된다는 것이다.75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 ‘우리는 서로 독립된 개인이며,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라는 확신을 제공한다. 여기서 그 선택은 개인적 선택 이며,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는 신화를 지속시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 광고에서 우리는 우리가 상품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개별적 취향과 스타일, 독특함을 갖고 이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 해진다. (...) 그 이유는 광고가 무엇보다 정확히 암시하듯, 우리가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따라 행동할 것이며, 더 나아가 이 신념이 구체화된 상품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광고에서 우리에게, 우리는 평 범하지 않고 특별하다고 말한다. - 그리고 우리는 이에 따라 행동해야 되기 에,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차를 사야만 한다.”76

이처럼 호명은 개인주의와 관련되어 욕망의 공간으로 끌어들이고, 사람들은 일상에서 매개가 아니라 형성의 도구가 된 미디어가 지시하는 것만을 소비하며 미디어에 의해 노출되지 않는 소비는 소비의 욕망조차 일지 않는다. 따라서 소비사회에서 일상은 미 디어의 지시어로 얼룩지고 비지시어는 설 자리가 없다. 미디어에 의해 소비되지 않는 상품 역시 상품으로서의 가치조차 제대로 획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77

따라서 참과 거짓 같은 규범적인 기준보다는 눈길을 끌 수 있는 미학적 영향력이 결정 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드보르(Guy Debord) 등이 지적하는 스펙터클화 경향 역시 현대 소비사회의 산물이다. 그리고 기술매체시대에는 이러한 ‘가시성의 문화’

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사실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대중 매체가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빈약한 세계의 파편들일 뿐이며, 더구나 가시성 문화, 즉 시각문화가 비가시성 문화에 대한 억압으로 작용할 경우 그 위험성이 매우 크 75 마정미, 당신은 이미 상품의 공간에 들어와 있다. in: 최예실 외 지음, 신지식의 최전선2 : 문화와 예술의 경계는 없다, 한길사, 2008, p.154.

76 Judith Williamson, Decoding Advertisements, 박정순 옮김, 광고의 기호학, 커뮤니케이션 북 스, 2007, pp.85-86.

77 이영빈, 앙리 르페브르의 일상생활 비판론 연구, 서양사론, 제54권 제1호, 1997,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