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국내 도시주거 상품화와 아파트 브랜드화
4.1.1 상품화의 진전과 아파트 브랜드화
한국사회가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시점은 대략 1990년대 이후로 볼 수 있다.258 그러나 1991년에 들어서면서 주택가격 상승률은 전국적으로 2-5% 상승 에 그치는 정도로 둔화되었고, 이후 1997년까지 한자리 수의 상승률을 꾸준히 유지하 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 구제금융 지원에 따른 경제 위기를 거치며 급락하게 된다. 정부는 급격하게 둔화된 경제활동을 전환하기 위해 1991년부터 지속적인 경기 부양책을 마련하고 그 일환으로 주택공급 확대정책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신경제 5개 년 계획에 따라 매년 50-60만 호 수준에 해당하는 물량중심의 주택공급 정책기조를 유지한 바 있다. 이 때 주목해야 할 점은 민간부문의 역할이 한층 강조되었다는 점이 다.259
경제적인 상황변화와 정책기조의 변동에 따라 1988년부터 추진된 정부의 200만호 주 택공급계획도 주택공사 등 공공부문이 중심이 되었던 당시까지의 공동주택 공급주도권 이 민간업체들 위주로 전환되는 매우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 특히 정부의 200만호 건 설계획 추진을 위한 개발사업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도권에 대규모 신도시 개발을 추진한 것으로 5개 신도시 총 30만호 규모의 주거단지들이 개발되었다.260
수십 개 민간건설업체들의 참여 하에 1989년부터 진행된 수도권 5개 신도시개발은 이 258 1986년부터 성장세를 회복하여 가던 한국 경제는 1988년 말에 호황이 절정에 달하며 1988-1990년에는 무역수지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특히 1980년대 말 한국 경제는 사상 유례 없는 호황을 경험하면서 급성장하게 되고, 이후 사회 ․ 경제 ․ 문화 모든 측면과 함께 주택시장에도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는 전환점을 이루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259 연간 아파트 건설물량에서 대한주택공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5년까지 30% 수준을 유지 하였으나, 1989년 이후로는 15% 내외의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특히 민간업체 중 대형업체들인 지정업자들의 아파트 건설실적이 이제껏 주공의 절반에 그치던 수준에서 1989년 69,322로 주공 의 건설량(50,682)을 상회하기 시작, 1995년에는 213,990호로 주공(70,292호)의 3배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공동주택연구회, 한국 공동주택계획의 역사, 세진사, 1999, p.66.
260 1989년 4월 29일 분당, 일산 신도시 개별 발표로 시작된 수도권 신도시 개발사업에 의해 성남 분당(97,344호), 고양 일산(69,000호), 안양 평촌(42,164호), 부천 중동(42,500호), 군포 산본 (42,039호) 등 5개 신도시 총 30만호 규모의 주거단지들이 개발되었다. 공동주택연구회, 한국 공 동주택계획의 역사, 세진사, 1999, p.67.
제껏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민간주택업체들의 주택 사업을 동일 시기, 동일 지역에 집 중시킴으로써 업체들 간의 치열한 분양경쟁을 불러일으키며 아파트 상품화 경쟁을 본 격화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261 따라서 1990년대는 한국사회가 소비사회 국면에 접어들면서 도시주거 상품화가 본격화되고 그에 따라 “수요자 요구 대응이 보 편화되는 시기였으며, 그것이 주택(단지)의 차별화전략으로 발전”262 한 시기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박철수(2008)는 이 시기가 ‘브랜드화를 위한 사전 전략의 시기’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파악한다.
손세관 외(2000)의 연구에서도 1990년대 이전의 아파트 문화가 수동적이고 표준적인 삶에 맞추어졌다고 본다면 1990년대의 신문광고의 내용들은 사용자의 요구를 비교적 민감하게 수용한 건설업체의 계획론이라고 평가한다.263 또한 손세관 외(2000)의 연 구는 분석대상으로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조선일보에 게재된 아파트 광고들을 다루 었는데, 논문이 정한 일정 규모와 내용을 가지는 신문광고의 수를 조사한 결과 모두 1,153개의 아파트 광고를 수집하였으며, 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아파트 신문광고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아파트 시장이 본격적인 소비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간접적 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264
국내 도시주거의 이와 같은 소비사회적 속성은 1998년 ‘분양가 자율화’를 기점으로 브랜드 시대가 개막되면서 정점에 달한다. 이전의 분양가 상한제는 1977년 정부가 집 값 폭등으로 무주택 서민층의 내 집 마련이 어렵게 되자 주택청약제도와 함께 시행한 바 있다. 분양가 상한제의 원래 취지는 저소득층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261 공동주택연구회, 한국 공동주택계획의 역사, 세진사, 1999, p.400.
262 박철수, 인쇄광고물 분석에 의한 서울 및 수도권의 1990년대 아파트 분양특성 연구, 서울학 연구, No.33, 2008, p.82.
263 이 연구에서는 신문광고에 나타난 아파트의 긍정적인 계획특성으로 거주자의 생활방식에 맞 춘 가변적인 평면계획, 입주자 취향을 고려한 선택사양의 도입, 수납공간기능의 강화, 다양한 테마 공원의 조성, 세대별 전용정원의 설치, 다양한 보행자 공간, 지하공간을 주민공동시설로 활용, 지 형 및 조망을 고려한 단지의 배치 등의 내용으로 파악하였고, 부정적인 계획특성으로는 업체지명 도나 주거단지의 위치만을 강조하는 경향 그리고 전용면적 확보, 내부마감재의 고급화, 획일적인 단지내 상가계획, 일률적인 남향배치의 선호 등의 내용들로 파악하였다. 손세관 ․ 김승언, 1990년 대 신문광고에 나타난 우리나라 아파트의 계획적 특성에 관한 내용분석, 대한건축학회논문집, Vol.16 No.11, 2000.
264 특히 1998년 분양가 자율화 이후 아파트 광고 수가 다시 한 번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 는데, 이는 브랜드 아파트 시대의 징후를 예견함과 동시에 부동산 시장에서 건설업체의 경쟁이 치 열해지며 소비사회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리고 이는 필연적으로 아파트에 대한 수요자의 요구사항을 더욱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예고한다.
그러나 분양가 상한제는 1978년 실시된 선분양제도 도입과 더불어 가격 거품인 ‘프 리미엄’을 형성하며, 분양 가격과 실제 거래 가격 사이의 차액으로 인한 투기를 조장 하며 전국민으로 하여금 주거유형 자체에 대한 고민보다 아파트 그 자체의 자산가치를 열망하게 하였다. 따라서 아파트를 분양 받는 데 있어서도 마치 복권과도 같이 ‘당 첨’이란 용어가 사용되었으며, 그 현실적인 의미 역시 복권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통 용되었다.
그러나 IMF 이후에 나타난 경제적 불황으로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심화되자, 이를 타 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분양가 자율화정책이 시행되었으며 아파트에 적용된 각종 규 제가 풀리면서 건설사들은 단순히 기업의 타이틀을 선전하는 전략에서 벗어나 다양한 마케팅 활동과 시장예측을 통하여 저마다의 브랜드 가치를 내세워 주택시장을 점령하 고자 하였다. 사실 기존의 분양가 규제265 는 투기 조장 외에도 주택의 질을 하향 평 준화시키며 여러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었다.
“가장 큰 부작용은 도시가 획일화된 아파트 숲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주 택 가격은 규제되어 있는데 설계를 다양화하고 고급 자재를 사용하면서 보다 다양한 시설과 설비를 도입하는 것은, 건설업체에게 비용 증가에 따른 부담 만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의성과 품질, 가격 경쟁을 통해 양질의 주택 을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획일화된 설계와 시공으로 성냥갑 같은 주택을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많은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결국 정부가 획일화와 저비용 시공을 부추긴 형 국이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주택건설의 기준은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일정 수준만 지키면 되는 것으로 변질되었 다.”266
265 우리나라 주택 가격에 규제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73년 주택건설촉진법 시행령이 개정되면 서부터이다. 이 때 공동주택의 사업승인 단계에서 사업 후 공급되는 공동주택 가격을 사업 승인권 자가 승인하는 사항이 포함되었다. 신규 주택의 분양가 규제는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제도로서, 주 요 목적은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자가 소유를 확대하는 것이다. 또 이와 연계하여 부동산 투기를 막고 거래 질서를 확립하며 일부 기업의 독과점을 예방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분양가 상한제는 당시의 아파트 투기 및 주택 가격의 급등 사태를 저지하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한편으 로는 주택건설을 위축시키는 결과도 가져왔다. 이후 정부는 부분 해제나 강화 등을 통해 지속적으 로 신규 아파트 공급 시장을 조정해 왔으며, 1998년 12월에서야 전용면적 59.7㎡(18.1평) 이하의 국민주택 기금의 지원을 받는 주택을 제외한 모든 아파트의 분양가가 자율화되었다. 전남일 · 손세관 · 양세화 · 홍형옥, 한국 주거의 사회사, 돌베게, 2009, p.389.
266 전남일·손세관·양세화·홍형옥, 한국 주거의 사회사, 돌베게, 2009, p.261.
1950-70년대 1970-80년대 중반 1980년대 후반
- 90년대 중반 2000년대 이후 (브랜드화) 지역명 + 아파트 기업명 + 아파트 지역명 + 기업명 + 아파트
지역명 + 브랜드, 지역명 + 브랜드 + 서브네임,
지역명 + 서브네임 + 브랜드 종암아파트,
마포아파트, 와우아파트 등
현대아파트, 대우아파트, 우성아파트 등
한강 현대 아파트, 보라매 삼성 아파트 등
역삼 e편한세상, 강동 롯데캐슬 퍼스트,
서초 아트 자이 [표 4-1] 아파트 단지 명칭 변천 과정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와 같은 정부 정책들을 통해 주택시장의 환경이 변화하고 건설업체들은 소비자를 향한 적극적인 마케팅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 면서 도시주거 상품화는 브랜드화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복지 정책이 열악한 국내의 경우, 소비사회 상품화 경향이 건설업체의 아파트에까지 미치며 이를 더욱 가속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도시주거 상품화의 진전과 아파트의 브랜드화는 그 명칭의 변천을 통해서도 파 악할 수 있다. 아파트 도입 초기인 1960년대의 아파트들은 마포아파트, 와우 아파트 등과 같이 통상 ‘지역명+아파트’로 불렸다. 그 이유는 정부의 경제개발 및 주거환 경 개선 정책에 따라 민간 기업보다는 주택공사에서 보급하는 아파트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이 행과 중동특수에 따라 대형 건설업체가 생겨나고 이들이 아파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 여함에 따라 점차 대우아파트, 현대아파트, 우성아파트, 동아아파트와 같이 ‘기업명+
아파트’혹은 1980년대 후반 이후로는 아파트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지역명+기업 명+아파트’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나타났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 아 파트 브랜드 시대가 도래하면서 점차 기업명을 언급하는 경우는 사라지고 반포 자이와 같이 ‘지역명+브랜드’로 일반화된다. 또한 아파트 브랜드가 확산되면서 ‘아파트’
라는 단어 자체도 브랜드 네임 안에 그 의미가 포함되면서 생략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대신 아파트단지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동일 브랜드 내에서도 각 단지의 특색을 살 리기 위해 서브네임이 활용되는데, ‘지역명+브랜드+서브네임’ 혹은 ‘지역명+서브 네임+브랜드’ 등으로 나타난다. 동천 래미안 이스트팰리스, 강동 롯데캐슬 퍼스트, 서초 아트 자이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아파트 브랜드화는 ‘e-편한세상’, ‘래미안’ 등의 브랜드 광고를 시작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