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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계획 지향가치 : 합리적 가치 및 사생활 중시

3.2 생산과 공급의 영역 : 표준화된 대량생산 주거유형의 도입

3.2.3 주거계획 지향가치 : 합리적 가치 및 사생활 중시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핵가족과 개인주의 등의 생활양식이 자생적으로 생 겨난 것으로 보고 아파트가 이러한 시대적 요구사항을 시의 적절하게 수용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아파트라는 물리적 공간이 그보다 먼저 자리 잡음으로써 생겨난 결과적 현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서구의 근대적 가치와 관념을 포 함하는 공간모델을 수입함으로써, 그에 해당하는 이데올로기의 확산이 더욱 가속화되 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아파트의 도입은 단순히 아파트라는 물리적 주거 유형(building type)의 이식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병행해서 새로운 주거의식과 생활양식까지 통합적으로 유입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즉 재료와 구조기술, 공간구성방식 등의 물리적 측면 뿐만 아니라 가족구성, 프라이버시 개념 등 의식적 측면과 식침분리상태, 좌식·입식 생활여부, 실의 사용 등 행위적 측면이 복합적으로 도입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167 아파트의 대량생산은 아파트 이름에 있어서도 신반포 1차, 2차 등 건설공구 번호를 붙이거 나 또는 우성, 한신, 동아 등 건설회사 명칭을 그대로 아파트 이름으로 사용되는 기현상을 초래하 기도 하였다. 이는 우리의 주거의식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운데 물리적 측면은 비교적 쉽게 도입되는 반면, 의식적 측면과 행위적 측면은 더디 게 선택적으로 변해간다.168 따라서 물리적 공간특성뿐만 아니라 이러한 건물유형을 낳은 당시의 사회적 관념과 지향가치를 파악하는 것 역시 현재의 도시주거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근대적 아파트라는 건물유형이 탄생한 20세기 초 서구사회에서는 건강과 복리에 관한 프로파간다가 만연해 있었고, 가족이 국가의 근본이며 국가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임 무는 부모 특히 어머니에게 있다는 믿음이 깔려있었다. 청결의 미덕을 보여주는 위생 이미지들은 신체적 청결과 효율성이 가장 가치 있는 열망이라는 소비자들의 믿음을 보 여주는 동시에 그 믿음을 강화시켰다.169

위생과 청결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일반적인 사항들이 다. 또한 청결함과 건강의 직접적인 관련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하더라도, 청결 이 중요한 이유가 오로지 건강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질서를 부여하는 수단"170 으로서도 가치가 있었으며, 이 시기는 질서와 청결이 아름다움의 근원으로 인식되던 시대였다.

따라서 20세기에 들어서 취향이나 미에 대한 관념과 마찬가지로 청결에 대한 관념이 디자인에 큰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1920년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축물들 에서도 기계 이미지만큼이나 위생의 이미지가 중요하게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한 추상미술이나 기계를 기반으로 했던 당시 디자인 전문가들의 미학적 원리들은 대중 적이지 못했던 반면, 청결의 원리는 충분한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들도 호응 가능한 것이었고 다른 기준들보다 선호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의 근원으로 적극적으로 수용되 었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욕구보다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우선 하게 되었고, 인간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간 구성의 기술적 효율성이나 내적 조 168 즉 전통적 주거의식과 서구적인 주거의식 사이의 변증법적 작용에 의해 현재의 주거의식이 형성되고, 전통적인 주생활형식과 서구의 주생활형식 사이의 작용에 의해 현재의 주생활형식이 성 립되며 이에 따라 아파트의 공간 성격이 규정되어 진다는 것이다. 천현숙, 아파트 주거문화의 특 성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 : 아파트 주거의 확산 요인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박사논문, 2002, p.45.

169 Adrian Forty, Objects of Desire: Design and Society since 1750, London: Thames and Hudson 1986, 허보윤 옮김,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147.

170 Adrian Forty, Objects of Desire: Design and Society since 1750, London: Thames and Hudson 1986, 허보윤 옮김,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199.

화에만 중점을 두게 되면서 그 결과물인 주거건축은 기능적으로 진보되었음에도 불구 하고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양상을 갖게 되었다.

그 결과 근대 주거건축은 “사람들의 삶의 장소를 19세기 도시들의 불결함을 난해한 비인간적 상태로, 불결함과 혼동 대신 위생학의 권태로움으로, 물질적 빈곤대신 잘 정 비된 장소이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무관심으로 바꾼데 불과한 것”171 이라는 비 판을 받는다. 이처럼 아파트에서의 획일성이란 균등한 위생조건이 확보된 주택의 대량 생산을 통해 생활공간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했던 모더니즘 주거 건축이념의 한 단면으 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국가의 효율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근대적 흐름의 두 축 중에 하나가 가정 위생을 강조하는 것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가사노동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는 집안일을 덜 힘들게 만들면 육체적 노력의 낭비를 줄이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2.2.1.1절에서 다룬 효율성(efficiency)이라는 20세기 이 데올로기의 결과로, 미국의 효율성 이념은 비단 산업 현장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과 관 련된 모든 방면에서 엄청난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공장 의 어셈블리 라인과 공통점이 전혀 없는 듯이 보이는 가사 노동의 영역까지 침투하게 된다.

‘노동 절약형 주택’(labour-saving house)이라는 용어는 1920년대에 흔히 사용되 던 어구였는데, 모든 실내의 냉온수 가동, 식기운반용 소형 엘리베이터 설치, 먼지가 쌓이지 않는 몰딩의 사용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노동 절약형 집의 대표적인 특 징들은 모두 가사 노동을 줄이는 방법, 그럼으로써 신체적 복리라는 더 중요한 문제에 인력자원을 사용하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172

이러한 정책의 한 노선은 가사노동을 시스템화 즉 체계화시키는 일이었다. 이는 가정 관리 학교들 그리고 ‘좋은 살림살이 협회’(Good Housekeeping Institute)나 미국 의 ‘더 나은 가정’(Better Homes)과 같은 모임들이 장려하던 바였으며, 가사노동 에 ‘가정 과학’이라는 명칭을 붙여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173 이 시기에 대부

171 임서환, 한국집합주택의 모더니즘 극복과제, 건축세계, 1996.2.

172 1950년대에 이르면 이러한 특징들 대부분과 그 내재된 의미는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 되고 주택을 디자인하는데 의당 지켜야할 규범이 된다. Adrian Forty, Objects of Desire: Design and Society since 1750, London: Thames and Hudson 1986, 허보윤 옮김, ‘욕망의 사물, 디자인 의 사회사’, 일빛, 2004, p.149.

173 Adrian Forty, Objects of Desire: Design and Society since 1750, London: Thames

분의 서구 사회에서 부엌과 전문가적인 가정주부(professional housewife)의 이미지 는 동일시되었으며, 건축가와 여성단체들은 앞 다투어 가장 효율적인 부엌의 배치를 위한 설계에 고심하였다.

가정에서 이와 같이 효율성을 도입하게 된 진정한 자극제가 된 것은 소위 ‘하인 문 제’(servant problem)라고 불리던 당시의 하인 부족 현상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였 다. 가사일을 돕는 하인들은 점점 더 구하기 어려운 반면 그 충성도는 의문스러웠는 데, 그들은 더 좋은 보수와 작업 조건을 제안 받으면 쉽게 고용주를 바꾸곤 하였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는 노동자 계급 여성의 직업 선택의 폭도 넓어져, 이전까지 훌 륭한 직업이었던 집안일을 돕는 하인은 가장 탐탁지 않은 직업으로 전락하게 되고 대 신 작업시간이 정해진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직업이 더욱 선호되기 시작하였던 것이 다. 이러한 하인 부족 현상은 처음에는 미국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으나, 10년 후에는 거의 전 유럽에서 동일한 현상을 겪게 된다.174 그리고 이러한 사회현상은 건 축가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 같이 국내 아파트 공간계획에 있어서도 지배적인 공간구성 원리로 작용하는 주거 에서의 효율성과 경제성의 실질적 기원은 서구의 20세기 전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국내 아파트의 선택 동기를 편리함에 두고 있는 것은 가장 일반적으로 인지되는 사실이다. 사실 프라이버시와 더불어 아파트가 제공하는 근대적 편의는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나아가 주부를 중심으로 하는 가사노동의 편리함뿐만 아니라, 단지 차원의 전반적인 관리와 운영에 있어서도 거주자 스스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전문 직능을 가진 전문가 집단에 의해 유지되어진다는 점 또한 아파트의 매우 큰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 다. 우리나라에서 유달리 아파트가 단일 주거동이 아닌 단지형식으로 반복되는 것도 편리하고 기능적인 “인프라의 확보에 유리”175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and Hudson 1986, 허보윤 옮김, ‘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일빛, 2004, pp.147-148 174 19세기에도 효율성이 가정에 적용된 사례가 2가지 있는데, 하나는 전화의 전신인 전성관 (speaking tube)와 전기 벨(electric bell)이다. 가족과 하인들의 영역과 동선이 분리되어 빈번한 접촉을 차단했던 상류계층의 도시 주택에서 이러한 설비들은 빈번한 이동의 수고를 덜어주었음에 는 틀림이 없다. 반면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접촉으로 인해 하인은 더욱 미묘한 방식으로 종속관 계에서의 복종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주목할 점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효율성의 원칙도 임금노 동(wage-labour)과 자본(capital)이라는 사회적 불평등을 전제하며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Irene Cieraad, 'Out of my kitchen!' Architecture, gender and domestic efficiency, The Journal of Architecture, Volume 7 Autumn 2002, pp.264-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