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공화주의를 도덕 교육에 적용하는 연구가 보다 유의미한 성공을 거두 고, 앞으로 교육 과정에서 계속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 엇인가? 현대 공화주의를 도덕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2가지 측면에서의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현대 공화주의가 자 유주의와의 차별성을 보다 분명히 확보하거나, 자유주의의 비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로마 전통의 공화주의자인 페팃의 공화주의가 지닌 도덕 교육적 함의를 쉽 게 표현하면, “우리는 타인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지배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 해 우리 모두가 합의한 법을 잘 지키고, 정부의 법 집행이 공정하게 이루어지 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견제하는 시민적 덕성과 교양을 지녀야 한다.”로 정 리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했을 때, 페팃의 공화주의가 자유주의 주장과 큰 차 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유주의 역시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준 법정신과 시민의식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물론, 페팃의 공화주의가 말하는 비 지배 자유 개념이 자유주의의 소극적 자유보다 더욱 엄격한 조건을 요구한다 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덕 교육적 관점에서 그것만으로는 자 유주의와 큰 차이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페팃의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보다 더욱 강점을 보이는 부분은 따로 있다. 그 것은 바로 그의 공화주의가 시민들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비판적 감시의 덕성 을 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깊은 내면화 및 일 체화의 덕성”도 함께 요구한다는 점에 있다. 자유주의 이론의 입장에서는 시 민들로 하여금 국가에 대한 신뢰와 함께 국가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 감을 요구하지 못한다. 만일 이를 강요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팃의 공화주의는 비지배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 시민 모두가 합심하여 협력하는 자세를 요구하며, 국가를 비판적으로만 바라보기 보다는 국가를 신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도 요구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페팃은 비지배 자유를 성취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공동선을 달성하려는
‘공화(共和)의 정신’을 실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페팃의 공화주 의는 억압과 압제, 폭력과 협박과 같은 비(非)공화주의 언어들을 사용하는 ‘전 (前)정치적 방식’보다, 이성과 지혜, 공감과 협력이라는 공화주의 언어들을 사 용하는 ‘정치적 방식’을 통해 개인선과 공동선의 조화를 모색하려고 한다는 것 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페팃의 공화주의는 소극적 덕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 니라, 적극적 덕성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자유주의와 차별화되는 교육적 함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샌델의 공화주의를 쉽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발 전으로 인해 점점 우리는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무관심해져가고 있다. 간섭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는 삶을 보장받아 좋은 점도 있지만, 동시에 심한 경쟁과 함께, 점점 우리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낙태와 동성애,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도덕적, 종 교적 관점이 필요한 논쟁들이 많이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위한 적극적인 심의 와 토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시민들과 함께 도덕적 논쟁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나와 그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샌델의 시민적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한다.
도덕적 토론이 극단적으로 활성화될 경우, 국가나 다수파가 시민들에게 도덕 적 제약을 가하거나 압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낙태의 경우, 시민들의 도덕적․종교적 입장이 모두 다를 수 있는데, 국가가 특정 도덕과 종교에 입 각하여 낙태 관련 입법을 강압적으로 추진하거나, 다수파가 특정 종교적 교리 에 입각하여 낙태 관련 입법을 맹목적으로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샌델이 주장하는 정치적 논쟁에 특정 도덕적․종교적 논변을 허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오히려 특정 도덕적․종교적 논변에 의해 시민들이 자의적 지배를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샌델은 이러한 강압적인 방식으로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대 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샌델의 입장은 토론에서 도덕과 종교가 허용될 수 있 다는 입장이지, 특정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 도덕이나 종교를 강요할 수 있다 는 입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샌델은 자신의 공화주의가 시민 교육
을 통해 공동선에 대해 충분히 숙고할 수 있는 독립성과 판단력을 육성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공화주의에서 ‘억압의 위험 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시민 교육은 강압적인 방식으 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조용한 방식으로 진행되며, 설득과 습 관화의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샌델의 공화주 의는 만장일치를 전제로 하는 루소의 일반의지와 같은 종류의 공화주의가 아 닌, 토크빌이 말하는 보다 점진적 방식의 공화주의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샌델의 공화주의가 지닌 도덕 교육적 함의는 개인의 자 유를 보장하는 가운데서도, 공동선을 모색하는 시민성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방안을 마련해 준다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샌델은 자유주 의의 ‘억압의 위험성 논제’에 대응한다.
두 전통의 공화주의가 자유주의와의 차별성을 확보하고, 자유주의 비판에 대응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면, 이제 두 전통의 공화주의를 도덕 교육에 적 용할 때 유의해야 할 두 번째 전제 조건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페팃과 샌델의 현대 공화주의가 현실에서 실현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시 2가지 정도의 조건이 확보될 필요가 있다. 첫째, 페팃의 ‘비지배 자유론’이든, 샌델의 ‘자치로 서의 자유론’이든 두 공화주의 모두 시민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심의의 장(場)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군대 내 성추행 문제로 인한 비지배의 침 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공화주의 입장이라면, 전문가 집단 및 일반 시민이 공 론장에서 토론과 숙고를 하여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페팃이든, 샌델이든 현대 공화주의 입장에서 개인선과 공동선을 해결 하는 과정 자체는 동료 시민에 대한 배려와 우정의 정신이 발휘될 때 가능하 다는 점과 관련된다. 우정은 현대 공화주의 자체가 강조하는 덕목이기는 하지 만, 현대 공화주의가 실현되기 위한 가장 필수적 덕목이라는 점에서 우정의 덕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와 여건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판 노예제로 불리는 갑을 관계의 문제”와 “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 여 있는 사람이 자살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관련 예산 편성을 높이는 일”과 같이 동료 시민들의 아픔에 공감하여 배려하는 우정의 정신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편견을 갖지 않는 풍토가 형성될 때, 진정한 공화 주의의 정신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 공화주의를 학교 현장의 도덕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구체화할 수 있다. 첫째, 도덕 교육에서 공화주의 관련 단 원을 위해서는 토론 수업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각 종 보조 장비들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우리나라가 처한 사회적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은 물론이고, 이러한 사회 문제를 공화주의적 해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학생들이 자유 롭게 토론할 수 있는 전용 교실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동료 학생이나 친구에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에 대해 부 정적인 시선이 아닌,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줄 아는 학생 본인의 도덕적 성향이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도덕적 성향의 요구는 무조건 타 인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타 인을 도와줄 수 있는 상황 자체에 접근하는 데 있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 도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사회적으로 논의할 만한가? 만일 논의할 정도의 문제라는 것이 확인될 수 있 다면, 객관적 근거를 통해 이에 대한 대안을 토론할 수 있다.”는 수준의 도덕 적 성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상으로 현대 공화주의를 도덕 교육에 실현할 때 보다 유의미한 성과를 거 두기 위한 선결 조건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는 본 연구의 한계점을 언급하 고자 한다. 본 연구의 한계점은 현대 공화주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고전적 공화주의의 매력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플라 톤, 아리스토텔레스의 법치 사상과 로마 전통의 기원인 키케로 공화주의의 이 론적 풍부함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 것은 “공화주의의 온전한 매력을 도덕 교 육에 모두 적용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본 연구를 발판으로 삼아, 공화주의의 풍부하고 심오한 사상을 도덕 교육에 적용하는 후 속 연구가 학계에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대 공화주의를 도덕 교육에 적용하는 것에 많은 우려의 목소리와 격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