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이론이 좌파에 치우친 것을 경계하는 차원이다. 실제로 페팃은 자신의 비지배 자유론이 사회의 주류적 계층을 옹호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Pettit, 1997: 134). 즉 주류에 속하고 부유한 사람들 역시도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 해서는 비지배의 이상을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페팃은 이러한 논리를 통해서, 비 지배 자유론이 사회의 급진적인 부류와 보수적인 부류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폭넓고, 포용적인 자유론임을 밝히고 있다.
둘째, 학생들로 하여금 덕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도덕 교육은 공동체주의에서 강조하는 덕성 개념을 차용한다. 그러나 페팃은 공동체주의적 덕성이 극단적으로 실천될 경우, 자칫 민중주의를 유발할 수 있 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페팃은, 공화주의 시민은 “A 정책이 시민의 자유 를 자의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시민들의 의견들이 다수 있어. 그러니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이에 대한 민원을 제기해야겠군.” 혹은 “B 정책이 공정하지 않 은 여러 근거들이 있는데, 이 정책 관련 공청회에 참가하여 건의사항을 제안 해야겠군.”과 같은 견제력 수준의 덕성을 갖추는데 만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그 이상의 여론을 선동하는 것과 같은 초과 행동은, 국가의 포퓰리즘 정 책을 초래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정책으로 인해 다른 시민의 자유를 자의적으로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 교육적 관점에서 페팃의 덕성 개 념은 학생들로 하여금 사회․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요구하며, 정부 정 책을 감시하기 위한 자세와 태도를 갖출 것을 기대한다. 페팃의 덕성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통해 평소 토론 중심의 심의의 과정 을 경험할 필요가 있으며, 모의 선거, 모의 행정 감찰, 모의 공청회 등의 모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셋째, 페팃의 준법관은 자유주의 준법관과는 달리, 법과 도덕의 관계가 서로 밀접하다고 본다. 페팃은 비지배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헌정 질서가 중요하 다고 보는데, 이러한 법의 통치가 효율적으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도 덕적 교양 수준이 높아야 한다고 본다. 페팃은 시민들이 법을 잘 준수하기 위 한 교양을 ‘시민적 교양’이라고 부른다. 페팃에 따르면, 이러한 시민적 교양은 공정한 법치라는 환경적 조건과 공동체의 역사를 내면화하고 일체화하는 개인 적 조건이 어우러질 때 가능하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페팃에게 준법을 위한 기본 조건은 국가가 공정한 법치를 행하는 과정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속 한 국가를 비판적 눈초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역사와 정책을 이 해하고 신뢰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페팃의 공화주의 준법관은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처한 현 상황과 과 거의 역사를 잘 이해해야만 법을 잘 지킬 수 있는 자세를 갖출 수 있음을 일
깨워준다.
넷째, 페팃은 기존의 자유주의가 강조하지 못했던 우정의 개념이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다. 페팃은 비지배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공동체의 모든 시민들이 ‘공통 적 지식’을 통해 비지배 증진을 위한 ‘인식의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상호 인식 연대는 지배자가 자의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주고(임 페리움의 방지), 동료 시민이 다른 시민을 지배하는 것을 차단한다(도미니움의 방지). 특히, 노사문제, 환경문제, 남녀차별 문제, 다문화 가정 차별 문제 등에 서 공통적 지식을 통한 상호 인식의 공유와 연대는 사회적 차별을 없애는 빠 른 해법을 제공한다. 이러한 연대가 바로 우정 그 자체이다. 페팃의 공통적 지 식을 통한 우정론을 따를 경우, 학생들로 하여금 우정을 억지로 행하기보다, 자연스럽게 행하는 방법을 쉽게 깨우칠 수 있다.
이와 같은 페팃 공화주의가 지닌 도덕 교육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로마 전 통 공화주의 기본 철학을 충실히 계승하는 그의 공화주의는 ‘소극적 형태의 공화주의’라는 한계점을 노출한다. 로마 전통의 공화주의는 시민들 각자가 ‘지 배(domination)의 삶’보다는, ‘비지배(non-domination)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도 ‘비지배 자유’이며, 덕성도 적극적 정치 참여 가 아닌, 단지 ‘견제력 수준의 덕성’을 강조한다. 비지배의 삶을 확보하기 위한
‘투철한 준법정신’을 강조하고, 시민들 간의 연대의 수준도 ‘비지배 인식의 공 유 차원’으로 한정시킨다.
따라서 페팃의 공화주의는 다음 장에서 살펴볼 아테네 전통의 샌델 공화주 의와 같은 ‘적극적 형태’의 공화주의와 비교하면, ‘정치 참여의 적극성’이 결여 된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심지어 페팃과 같은 소극적 형태의 공화주의를 고수 한다면, 기존의 자유주의가 지닌 정치 참여의 소극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에 본 연구는 다음 Ⅳ장에서 페팃의 공 화주의를 살펴본 방식과 마찬가지로, 샌델의 아테네 전통의 공화주의를 자유, 덕성, 준법, 우정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페팃 공화주의가 선보이지 못했던 다른 모습의 공화주의를 소개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이러
한 과정을 통해, 페팃과 샌델로 대표되는 현대 공화주의를 도덕 교육에 적용 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모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