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문제에 이러한 ‘한계 비지배 자유 체감의 법칙’을 적용해 보자. 물론, ‘자 율형 사립고 폐지’ 문제에 ‘한계 비지배 자유 체감의 법칙’을 적용한다고 하더 라도 완벽한 해결책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자율형 사립고를 폐지함으로 인 해 더 높은 비지배 자유를 누리는 계층이 ‘자율형 사립고 폐지 반대측’인지
‘자율형 사립고 폐지 찬성측’인지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어느 측이 자율형 사립고 폐지로 인해 더 많은 비지배 자유를 누 릴 수 있는지”에 관한 객관적인 근거가 확보된다면, ‘한계 비지배 자유 체감의 법칙’을 통해 이 사안을 결정하는 것은 공정한 절차로 평가받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 시 자율형 사립고 폐지와 관련된 시민들 사이에 ‘비지배 자유에 보장에 관한 인식적 연대’의 필요성을 시민들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만일 ‘자율형 사립고 폐지’ 문제에 비지배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적 공유를 실현할 수 있다 면, ‘자율형 사립고 폐지 반대측’과 ‘자율형 사립고 폐지 찬성측’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공통적 지식을 통한 인식적 공유는 시민적 우정이라는 소중한 공동체적 가치 를 실천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시민들, 고용주의 은혜와 자비에 의존해야만 하는 노동자들, 해당 국가의 주류 민족에게 소외를 겪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의 영역에서도 자의적인 지배가 존재함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데 있어 ‘비지배 공화주의’가 많은 역 할을 할 수 있다. 사실상 가정 폭력, 미세 먼지의 문제, 노사관계, 주류 민족과 비주류 민족의 갈등 관계와 같은 문제들에 있어 적극적 우정의 역할은 문제 해 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문제의 갈등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 성이 크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이 남편에게 “우정을 발휘하라”고 한다 면 남편의 더 가혹한 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세 먼지를 많이 유발 시키는 만큼 노후화가 진행된 경유 차량에 대해 ‘우정의 차원에서’ 운행을 멈추 어 달라고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며, 도리어 경유 차량의 소유자들의 분노 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노사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근로자 측에서 회사 측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우정을 거론한다면’ 회사 측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까. 중국이나 스페인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수 민족의 독립에 관한 문제 해결과정에 엄청난 유혈 사태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단순히 ‘우정 의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따라서 로마 전통의 공화주의에서 우정은 ‘적극적 해법’보다는 ‘소극적 해법’, 즉 ‘서로가 각자의 비지배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우정을 지켜가는 방법 을 선호한다. 로마 전통의 공화주의 입장에서는, 나의 부적절한 요구, 또는 자의 적 간섭이 다른 동료 시민의 비지배 자유를 침범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지속적으 로 점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시민들 간의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따 라서 로마 전통 공화주의 관점에서 시민들 간의 우정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은 타인의 비지배 자유 침해가 나의 비지배 자유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민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점에 있다. 만일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할 경우, 가정 파탄으로 인해 돌아오는 피해는 고스란히 자기의 몫이라는 것을 알 아야 하고, 미세 먼지를 유발하는 경유차를 몰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도 노후가 진행된 경유차로 인한 미세먼지 피해가 자기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 다. 로마 전통의 공화주의는 이러한 “비지배 자유 침해 여부에 대한 민감한 인 식”이 결국에는 시민 서로 간의 진정한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
한다.
페팃은 이러한 도미니움의 해결을 통해 우정을 나누는 과정에서 중요한 덕목 을 하나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공화주의적 언어’의 사용이다(Pettit, 1997:
130-147). 환경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다문화주의의 사상들은 공화주의와 결 합해 우리의 일상적인 세계에서 발생하는 지배의 모습들을 제거하거나 감소시 켜줄 수 있는 중요한 사상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들이 기존에 왜 ‘정치적 토 론과 심의의 장(場)’에 들어오지 못했는가. 또한, 이들이 왜 시민적 우정의 영역 에 들어오지 못했는가. 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상들이 가진 특수한 언어들 때 문이라는 것이다. 환경주의에서 말하는 녹색정치, 다문화주의에서 말하는 주류 적 언어들과 같이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에서 쉽게 수용되지 못했던 다 소 폭력적이고 거친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상이든 공적 영역의 토론과 대화에서 적절한 언어적 요소를 사용한 다면 비지배 공화주의와 양립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환경주의에서 말하 는 녹색 정치라는 말을 ‘공화주의적 언어’로 쉽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환경이 악화된다면 당장 공기가 나빠져 미세먼지가 발생하고 그러면 우리는 비 염에 시달려 시도 때도 없이 콧물을 흘려야 하니 우리의 일상적 삶은 분명 자의 적으로 지배되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 여러 노후 경 유차를 비롯한 국내적 요인과 중국 발 스모그와 같은 국외적 요인에 대한 정책 을 새롭게 제고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차원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서 보면, 노동자 문제, 남녀 불평등 문제, 이주 노동자 문제 등의 논의들이 정치적 영역에 서 활발히 토론될 수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시민 적 우정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페팃은 공화주의자라고 해서 반드시 환경주의, 사회주의, 다문화주의, 페미니즘과 같은 운동들에 대해서 찬성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Pettit, 1997:
134). 다시 말해 페팃의 공화주의는 이러한 사회운동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공적 영역의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지, 그들이 요구하는 것 을 무조건 들어준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페팃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위 에 열거된 사회 운동들이 모두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운동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본인의 이론이 좌파에 치우친 것을 경계하는 차원이다. 실제로 페팃은 자신의 비지배 자유론이 사회의 주류적 계층을 옹호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Pettit, 1997: 134). 즉 주류에 속하고 부유한 사람들 역시도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 해서는 비지배의 이상을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페팃은 이러한 논리를 통해서, 비 지배 자유론이 사회의 급진적인 부류와 보수적인 부류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폭넓고, 포용적인 자유론임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