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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콕에 따르면, 아테네와 로마의 고전적 공화주의는 15, 16세기 마키아벨리 시대의 시민적 인본주의자들에 의해 재생․변형되고, 이는 다시 18세기 잉글 랜드와 아메리카의 새로운 공화주의 사상으로 발전한다(Pocock, 2011: Ⅰ-11).

이러한 관점에서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사상은 고대의 공화주의 사상과 현대 의 공화주의 사상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키아벨리 (1469〜1527)가 살던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였으며, 그의 활동 무대였던 이탈리 아의 피렌체는 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당시 인문학적 부흥의 이 면에는 민족 중심의 근대국가 형성을 위한 국가 간 침략이 난무하는 투쟁의 참혹함도 숨겨져 있다. 국가들 사이의 침략과 방어의 과정에서 군주들의 힘은

막강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로 인해 중앙집권적인 군주정이 등장하게 되었 다.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를 유지해 온 도시 국가의 전통과 외부의 위협에 효율적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군주정에 대한 현실적 요구 사이에서 갈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군주정을 옹호하는 학자로 평가받을 수 있는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 한 정치철학계의 해석은 공화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철학의 오묘함은 그의 공화주의를 어떠한 입장으로 평가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가 고대 로마정치의 복고를 주 창하는 전통적 공화주의자에 가깝다는 견해,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 인본주의 를 토대로 한 근대적 공화주의자라는 견해, 또는 이들 공화주의와는 별개의 내용을 구성하는 제 3의 공화주의자였다는 견해 등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에 따 라 상이함을 나타낸다(장의관, 2014 : 88).”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사상에 대한 해석상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 화주의가 현대의 로마 전통 공화주의에 끼친 영향은 비교적 명확하다. 마키아 벨리는 공동선이라는 것은 남에게 예속되는 것도 원치 않고 또한 남들을 예속 시켜 사적으로 지배하려는 야심도 없는 그런 시민들에게 이로운 것을 의미한 다고 주장한다. 또한, 『로마사 논고』와 『군주론』에서 법과 제도의 중요성 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는 시민적 덕성만으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와 현대 로마 전통의 공화주의 두 사상 모두 사익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상정하기 때문에 외적 규제, 즉 법과 제도가 필 요함을 주장하는 부분은 두 사상 사이의 이론적 연결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 거이다.17)

17) 현대의 로마 전통 공화주의자인 스키너는 마키아벨리에서부터 해링턴에 이르기까지의 로 마 전통 사상가들의 주장을 통해 비지배 자유에 대한 강조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Laborde and Maynor, 2009 : 22). 스키너는 로마 전통 공화주의자들은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변덕이나 이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res publica)을 지키도록 강제될 때에만 시민 들이 리베르타스를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Laborde and Maynor,

2009 : 22-23). 스키너의 비지배 자유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페팃 역시 공화주의는 키케로,

마키아벨리는 민중들이 지니고 있는 욕구에 대해 주목한다. 그는 로마를 모델로 한 민 주주의 공화국을 옹호하고 있으며 이들에게도 중요한 자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정치 참여가 개인의 자아실현에 유용하다거나 민중들의 주장이 늘 공정하다거나 혹은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 존재가 평등하다는 생각에 기인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민중들의 참여가 필요하지만 이는 단지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 로서만 의의를 지닌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Sullivan, 2004 : 32).

설리반(Sullivan)에 따르면, 마키아벨리가 로마의 공화주의를 모델로 삼은 진정한 이유는 시민들을 이용하여 국가의 안위를 지켜내는 것에 있었지, 시민 들의 자아를 개발하도록 도와거나 그들의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로마의 키케로는 자연법을 통해 인간이 지니는 평등한 이성적 능력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이성으로 만들어진 법을 준수하는 것은 신성한 영역의 것이었고, 이러한 준법정신은 도시의 각 계급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주 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이기적 속성을 강조함으로써 도시 국가내의 화합을 강조한 키케로의 자연법적 사상에서 멀어졌으며, 오히려 도 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좋은 방편으로 도시의 계급 간 소란을 강조하였 다. 마키아벨리 입장에서 계급 간의 적절한 갈등은 서로가 갈등하지 않았을 경우에 비해서, 서로의 방어 능력을 키움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다른 공화국과 의 경쟁에서 보다 높은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한 것이다.

한편, 국가 내의 귀족과 평민간의 갈등에서 공화국이 귀족의 편을 들어주었 을 때 귀족들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야망으로 인해 공화국에 치명적인 위험으 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공동선을 수단적으로 강조한 점도 로마의 공화국이 지닌 공동선의 추구와는 다른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즉, 로마의 키케로처럼 자아실현의 기반으로서의 공동선의 추구가 아닌, 귀족 의 정치적 야망을 제압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동선 추구라는 점에 주목할

정교화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로마적 전통의 공화주의는 정부가 공동선(res publica)에 초점 을 맞춤으로써 법적 제도들을 잘 만들 경우에 한해서 시민들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음을 강 조하였다(Pettit, 2012: 498).

키케로의 공화주의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인간관 스토아학파의 영향으로 이성적

능력을 지닌 인간을 상정

이기적인 속성을 지닌 인간으로 상정

국가 통합의

방법 화합을 강조 소란을 강조

법 자연적 본성에 따라 준수해야 하 는 신성한 것으로 인식

공화국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시 민들의 배은망덕을 처벌하기 위 한 수단으로 인식

공동선을 강조하는

이유

공동선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실 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공동선을 강조함으로써 귀족들의 정 치적 야망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필요가 있다.

표1. 키케로와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 비교

구체적으로 마키아벨리는 지적이고 도덕적인 선을 실천하고 습관화했던 공 화국의 시민을 구상한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전쟁을 이길 수 있는 도구 로서의 공화국의 시민을 기획하였던 것이다(Sullivan, 2004 : 33). 실제 그가 중요시한 비르투(virtù)라는 개념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정치적․군사적 측면의 역량과 능력을 가리킨다(Pocock, 2011: 367). 그것은 로마인들이 강조 하는, 공적 규율을 지키고, 그 자체로 선(善)인 규율에 대한 종교적 존경심을 내재한 시민의 특성으로서의 비르투스(virtus)와는 다른 것이었다(Pocock, 2011: 367-368).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마키아벨리가 목표로 했던 공화국은 인간이 지닌 영혼의 탁월성이나 윤리적 삶의 고양을 강조하는 시민적 공화국 이라기보다는, 자국의 강력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타국으로부터의 군사적 방어 와 침략을 목표로 하는 전쟁 공화국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마키아벨 리가 민주주의 공화국으로서 로마를 지지한 이유는 타국에서 온 많은 피난민

그들을 하급 병사로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Sullivan, 2004 : 38). 국민 들을 이용하여 국가적 목적을 추구하는 로마를 위대하게 본 마키아벨리는 로 마가 국민을 포용했다고 간주하면서 그것을 포용적인 사랑이라고 명명한다 (Sullivan, 2004 : 38-39).

더 나아가 마키아벨리는 평민들이 명예와 영광의 욕구가 있음을 간파하고, 이러한 욕구를 배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으며, 국가가 이러한 욕구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Sullivan, 2004 : 43). 이러한 그의 주장을 살펴볼 때, 시민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고안 된 여러 공화주의 장치와 제도들이 마키아벨리에게는 더 나은 전사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도구로 여겨졌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 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자유의 보장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이러한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 공화 국의 발전과 안위에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로마 공화정의 제도 와 법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이를 사용하고자 했던 목적은 로마인들이 공화 정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세속적이고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이상의 마키아벨리의 홉스적 요소18)를 통해, 그가 추구한 공화주의는 로마 의 공화주의보다 현실적인 관점에 근접했음을 알 수 있다. “시민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국가의 안전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가?”라 는 물음에 마키아벨리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덕성을 항상 최상의 전력으로 유 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쟁의 필요성, 시민들이 지닌 명예와 소유욕을 보 장해줄 수 있는 혼합정의 실현, 역설적이게도 시민들의 통합을 위한 소란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등의 대답을 제시한다. 또한, 국가 내의 귀족과 평민의 분 쟁을 줄이기 위해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공화국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배은망덕함을 악덕으로 규정하고, 이를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시민들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안전을 더 우선순위에 두었

18) 물론 마키아벨리와 홉스가 사상적으로 모든 관점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홉스는 전쟁을 혐오하였고, 마키아벨리는 필수적이고 장려할 만한 것으로 보았으며, 홉스는 공화국을 명예 를 탐하는 사람들의 정치체제로 비판한 반면,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을 도구적 관점에서 옹호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