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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델의 ‘형성적 기획(formative politics)’

(1) 형성적 기획의 발단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샌델은 ‘자치 상실의 두려움’과 ‘공동체 약화에 대 한 두려움’이 민주주의 위기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Sandel, 1996: 3). 구체적 으로, ‘자치 상실의 두려움’은 ‘우리가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힘’들에 대 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며, ‘공동체 약화에 대한 두려 움’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적 기초가 무너져가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 움이다. 그러나 샌델은 이러한 두려움을 해소할 만한 정치적 의제나 해법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Sandel, 1996: 3-4). 그러면서 샌델은 현 시대의 공공철학이 자유주의에 맹목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생활 에 이미 존재하는 자치와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공공철학을 우리가 미처 발견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그는 현대의 중립적이고 절차적 자유주 의가 자치와 공동체 약화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 해서는 우리의 ‘자치(自治)’와 ‘도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화주의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본다.

샌델은 로크, 밀, 칸트, 롤스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의 전통이 현재 미국 사회 의 공공철학을 지배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뒤에 처져있는 공화주의의 전통 을 공공철학의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핵심은 자유의 개념 정립에 있으며, 그것은 ‘자유주의적 자유’의 회복을 통해서가 아닌, ‘공화주의적 자유’

의 부활을 통해 가능하다. 자유주의가 자유를 ‘자아가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하지만, 공화주의는 자유를 ‘자치’로서 이해한다. 자유주의 역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능력으로 보기 때문에, 공화주의 와 모순관계를 형성하지는 않지만,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정치 참여’는 단순히 정치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 ‘공적인 일에 대한 지식’, ‘소속감’, ‘전체에 대한 관심’, ‘도덕적 유대’ 등을 추가로 요구하기 때문에 자유주의가 요구하는 것 이 상을 요구한다(Sandel, 1996: 5).

정치 참여는 ‘사적 문제’라기보다는 자기가 속한 ‘공동체 대한 관심과 유대 감’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공적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치’는 시민 들이 ‘특정한 인격적 성질’이나 ‘시민적 덕성’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특정한 입 장이나 덕성을 갖추지 못한 시민은 공적인 일에 대한 ‘입장(position)’을 가지 지 못하게 되며, 그렇다면 공적 사안에 대한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공화주의는 ‘자치의 특징’을 가진 이상, ‘시민들의 가치와 목적’에 대해 중립적일 수 없다(Sandel, 1996: 6). 자유주의와 달리, 공화주의는 시민들 의 인격과 가치의 고양을 위한 ‘형성적 기획(formative politics)’에 많은 노력 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Sandel, 1996: 6). 샌델은 현재의 자유주의 철학이 공공 생활의 두려움과 무력감을 해소할 만한 여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보면서, 자유주의는 자유를 약속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자유를 보장할 능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본다(Sandel, 1996: 6). 자유주의는 중립성을 강조하는 만큼 공 동체 참여의 동기를 고취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샌델은 시 민들의 자치 참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화주의 프로젝트의 필요성을 제 기한다.

샌델이 ‘형성적 정치학’을 기획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현대 정치철학의 중심에 있는 롤스가 전제로 하는 인간의 2가지 의무 개념 때문이다. 롤스는 인간은 오로지 2가지 의무만을 가지는데, 그것은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게 갖는 기 본적인 의무인 ‘자연적 의무(natural duties)’와 계약과 같이 오로지 동의를 바 탕으로 하는 ‘자발적 의무(voluntary obligations)’라고 말한다(Sandel, 1996:

14). 자연적 의무는 정의를 행하거나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 즉 인간

이라면 본성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의무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자발적 의무는 계약과 같은 인위적인 합의의 과정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하는 의무이다. 이 2가지 의무만을 의무로 인정하는 자유주의 입장에서는 만일 ‘공동체 구성원의 유대감’이나 ‘충성’과 같은 의무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러한 ‘충직이나 연대’와 같은 가치에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충직이나 연대’가 그들에게

‘자연적 의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샌델에 따르면, 자유주의자들에게 공동체는 자발적 합의의 결사체에 불과하므로 자신이 속한 국가를 향한 충(忠)의 마음 이나 조상 혹은 동료 시민에 대한 배려심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위 안부 할머니를 위해 기금을 마련한다고 할 때, ‘자발적 의무’만을 의무로 간주 하는 자유주의자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기부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샌델은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미국 사회에서 벌어 졌던 종교인 과세, 낙태, 동성애 등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제시한다. 이 중 에서 1970년 캘리포니아의 ‘무책주의 이혼법’에 대해 샌델의 비판을 구체적으 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 새로운 캘리포니아의 이혼법은 전통적인 이혼법이 고 려해왔던 도덕적 요소들에 괄호를 쳐버렸다(Sandel, 1996: 109).34) 기존에 이 혼의 요소들로 중요하게 고려되었던 도덕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단순히 배우자 한 사람의 주장만으로도 이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불륜이나 도박과 같은, 배우자가 저지른 비도덕적 이유들이 없더라도, 심지어 상대방의 이혼 동의가 없더라도 배우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 의 이혼법이 한 사람이 결혼 계약을 고수하는 한 여전히 ‘결혼 상태에 있을 권리’를 함축하고 있었던 반면, 새로운 이혼법은 어느 한쪽의 요청만으로 이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혼할 권리’를 증진시킨 것이다(Sandel, 1996: 109). 새 로운 이혼법은 남편이 더 이상 전처와 아이들에 대해 금전적으로 부양할 책임 이 없으며, 이혼 수당을 ‘평생의 의무’가 아닌 ‘일시적 의무’로 규정하였다 (Sandel, 1996: 109). 이러한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가족법은 계속해서 미국 전

34) 샌델은 자유주의가 도덕적․철학적․종교적 현안에 대해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 수함으로써, 결국 공동체의 중요 현안에 대해 ‘괄호’로 남겨두게 되어 공동체의 자치가 상실 되는 위기 상황을 맞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역으로 확산되었고, 1985년에는 미국의 ‘모든 주’가 ‘무책주의 이혼법’을 적용 하였다(Sandel, 1996: 110).

‘무책주의 이혼법’이 지닌 정치철학적 함의는 무엇일까? 물론, 자유주의 이 혼법은 결혼 생활에서 피해를 받아왔던 배우자에게 속박적 굴레를 벗어나 새 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열어주고, 약자의 위치에 있었던 여성의 지위를 향 상시키는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이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도덕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괄호를 침으로써 오히려 ‘가족의 전통적 의미’를 퇴색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배우자 한쪽만의 결정만으로도 이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결혼의 의무감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거부한 것이며, 전처와 아이들 로부터 자립을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부모의 의무를 회피한 것이다. 새로운

‘자유주의 결혼법’은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선(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더 이상 ‘의미 없는 행위’로 격하시킨 것이다.

(2) 형성적 기획의 전개

샌델은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미국의 건국 초기부터 현재까지의 시민적 덕성에 대한 정치적 관점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상세히 기술한다. 그는 미국 초기의 국부(國父)들이 헌법을 제정할 때, ‘시민적 덕성’을 형성하려는 목 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미 국부들은 부패나 사치, 황금만능주의가 어떻게

‘시민적 덕성’을 해칠 수 있는지를 공화주의 전통을 통해 알고 있었고, 그들은 이를 방지하는 내용을 헌법에 포함시키고자 했다. 국부들은 ‘시민들의 덕’이 타락할 가능성에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었으며, 공화국을 유지하기 위한 도덕 적이고 공공적인 정신이 지속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178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덕적 혁신은 그 성과를 보이지 못하였으 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대응책이 등장하였다. 하나는 ‘형성적인 (formative)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절차적인(procedural) 것’이다(Sandel, 1996:

129). ‘형성적인 방식’은 교육과 그 밖의 다른 수단을 통해 덕을 함양하려고 하 였으며, ‘절차적인 방식’은 ‘헌법의 수정을 통한 방식’이다(Sandel, 1996: 129).

‘형성적인 방식’은 공립학교를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덕성을 기르고자 하였으 며, 그들에게 공동선에 대한 헌신을 할 수 있는 희생정신을 함양하도록 하였 다. 절차적 방식은 1787년 헌법을 통해 공동선의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하였는 데, 이 방식은 절대로 인민의 도덕적 인격을 성장시키는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으며, 1787년 헌법은 ‘인민의 덕성’보다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공동선을 달성하고자 하였다(Sandel, 1996: 129).

샌델은 1787년 헌법을 입안하기 위해 모인 사람 중 해밀턴(A. Hamiton)과 매디슨(J. Madison)을 주목한다. 이 두 명의 국부는 근본적으로 ‘시민의 덕성’

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는 편이 아니었다. 해밀턴은 일반 시민들이 덕성을 자 기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화주의자들의 희망 을 비웃었으며,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정 모델도 미국의 환경적 조건에는 적합 하지 않다고 보았다(Sandel, 1996: 129-130). 매디슨 역시 자유는 ‘시민의 덕’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 이익들이 서로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적 체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여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삼권분립을 주장하였 다(Sandel, 1996: 130).

하지만 이 두 명의 헌법 입안자들이 ‘덕성보다 제도에 관심’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덕성’을 길러내는 ‘형성적 기획’에 관심을 아예 가지지 않 은 것은 아니다(Sandel, 1996: 130-131). 매디슨은 ‘자치’를 위해서는 ‘시민의 덕성’이 필수적이라고 보았으며, 해밀턴 역시도 국가의 ‘형성적 역할’이 필요하 다고 보았다. 특히, 해밀턴은 연방 정부가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줄 때, 시민들은 연방정부를 사랑하고 존중하게 될 것이라 고 주장하였다. 그는 연방 정부가 인민들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그들의 인격 적 습관을 잘 형성하려고 노력할 때 연방정부는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주장 한다(Sandel, 1996: 133). 샌델은 매디슨과 해밀턴에게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미국 공화주의의 형성적 기획의 시원(始原)을 찾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말을 지나, 이제 잭슨(A. Jackson) 대통령 시대인 1830년대 초반에 도 미국의 ‘형성적 기획’은 이어진다. 잭슨파와 휘그당은 나란히 연방정부에 맞선 주권주의자들로서, 엘리트 중심의 공화주의보다는 민중 중심의 공화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