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클은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환원주의적 심리학을 넘어서고자 했다. 환원주의 극복을 위한 핵심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인간은 운명 지 어지고 결정된 존재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를 지닌 존재인가? 프랑클의 로고테라피가 이전 심리학, 즉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아들 러의 개인심리학과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자유문제, 자 유의지에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했다. 인간의 운명은 이미 결정지어진 존재로 서 자유의지로 벗어날 수 없다는 환원결정론자였다. 정신분석을 통해 신경증 환자 39) 빅터 프랭클,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 10-21쪽.
40) 빅토르 E. 프랑클, 책에 쓰지 않은 이야기 , 33-34쪽.
를 꿈의 해석이나 최면 등을 통해 가면 벗기기를 감행했다. 환자의 행위 이면에 무의식적 동기를 드러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마음의 심층을 발굴하여 더 이상 감 춰진 것이 없는 마지막 진실성에 도달했을 때는 가면 벗기기를 중단해야 하는데도 계속할 것을 가르쳤다. 프랑클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인간의 진실함과 책임존 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환원주의이기 때문에 무의식을 드러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행위를 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대 한 부정으로 보았다. 프랑클은 이전의 심리학으로는 현대인이 겪는 실존 공허와 인 간성 상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기존 심리요법만으로는 시대적인 질병과 증상에 대처할 수 없다. 현대인들의 의 미상실, 몰개성화, 비인간화가 그런 것들이다. 의식 수준이건 무의식 수준이건 간 에, 모든 심리치료 방법이 추론되는 절대 불가결한 요소는 인간에 대한 개념이다.
그 개념에는 인간의 차원, 인간적 현상이라는 차원을 포함시켜 고려해야 한다.
행동요법은 신경증을 특정한 학습, 조건화, 또는 과정의 탓으로 돌린다. 이에 따 라 신경증에 재학습, 조건 변화로 대응한다. 하지만 페트릴로비치가 적절하게 언급 했듯이, 두 학파 모두 신경증의 수준에서만 치료법을 골몰하고 있다. 로고테라피는 그런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인간성의 차원을 추구해 인간에게만 유일하게 존재할 수 있는 자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자아 초월(self-transcendence)과 자아 이탈 (self-detachment)이라는 인간 특유의 능력들을 말한다.41)
프랑클은 환원론의 문제는 책임을 회피하게 하고, 쾌락주의나 권력주의로 빠져들 게 한다고 파악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은 인간을 기 계적 존재로 대하고 대응하는 것으로 결국 인간을 물화(物化)시키는 것으로 이끌 것이며, 이것은 결정된 운명에 자신을 맡김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이 라고 보았다.
인간에 대한 모든 이론과 논의들은 결국 삶에 대한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의식 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정신치료법들 역시도 철학적 인간론에 기반하고 있다.42) 프랑클이 칸트와 셸러, 하르트만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클은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로고테라피의 세 기둥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로고테라피의 인간에 대한 개념은 다음 세 개의 기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자유의지(freedom of will),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will to meaning), 그리고 삶의 의미(meaning of life)이다.”43)
프랑클은 인간이 신체적이고 심리적 운명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강조하고자 했던 바는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운명 속에서도 인간 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며, 어떤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 유와 책임이 있음을 설명한다. 신과 같은 전능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신체와 심
41) 빅터 프랭클, 의미를 향한 소리 없는 절규 , 10-11쪽.
42) 빅터 프랭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 33쪽.
43) 빅터 프랭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 34쪽.
리적 기질의 제한을 받는 유한한 자유이다.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 고 그것을 자신과 분리시켜서 볼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 력이다”라고 하였다.44)
프랑클은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객관화하는 능력을 지녔기에 초연 해질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것을 ‘초월’이라고 표현했다.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것 에 매이지 않는 전능함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조건 속에서도 태도를 선택할 수 있 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설명이다. 프랑클은 인간의 초월에 대해 사랑과 지각력이라 는 두 가지를 예로 설명하고 있다.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현상인 사랑과 지각력 두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이 두 가지는 인간에게 고유한 또 다른 능력, 즉 자기 초월 능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존재를 위해서, 혹은 어떤 의미를 위해서 자신을 초 월한다. 나는 사랑이란 그 사람만의 유일무이함 속에 다른 사람을 잡아두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각력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상황이 가지고 있는 유 일무이한 의미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을 말하며, 결국 의미란 유일무이한 어 떤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궁극적으로 각각의 인간은 그 어느 것 으로도 대체할 수 없으며, 다른 어떤 사람이 사랑받고 있는 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다.45)
프랑클은 무엇보다 인간은 자신에게 갇히지 않는 존재라고 보았다. 식물과 동물 이 자기가 처한 환경 속에 갇혀 있는 것과 달리 인간은 자신을 넘어 다른 대상과 관계하는 개방적 존재로 보았다. 자기초월의 핵심은 자신을 넘어 다른 대상을 지향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존재는 계획된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초월 은 존재의 핵심이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그것과 다른 어떤 것을 지향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대상의 타자성, 즉 객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객관과 주관 사이 에 조성된 긴장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긴장은 ‘나’와 ‘내가 해야 하는 것’
즉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조성된 긴장과 같은 것이다. 만약 이런 긴장을 보전하려면 의미가 존재와 일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존재와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는 것이 의 미가 지닌 의미라는 점을 말해야겠다. 그것은 현실과 실현시켜야 할 이상 사이에 조 성된 긴장 안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상과 가치로 세상을 살아간다.
인간 존재가 자기 초월의 견지에서 영위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존재라고 할 수 없 다.46)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로고테라피와 자유의지에 있어서 인간의 운명은 결
44) 빅터 프랭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 36쪽.
45) 빅터 프랭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 38-39쪽.
46) 빅터 프랭클, 삶의 의미를 찾아서 , 83-85쪽.
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인해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운명을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다. 자유의지는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운명적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태도적 자유의지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과거의 업으로 인해 현재가 결정되어지는 것은 연기의 법칙으로써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현재가 원인이 되어 미래를 바꾸는 일은 얼마든 지 가능하며 인간의 자유의지 즉 마음먹기에 따라 바꿀 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존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에 있다. 자유의지가 없이 책임과 의무를 논할 수는 없다. 선택과 결단에 대한 책임을 동물에게 요구하지 않는 이유는 동물 에게는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은 유일무이한 삶을 오롯하게 자신 의 것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