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식 가운데 맨 앞에 있는 다섯 개의 의식이다. 그래서 ‘前五識’이라 한다.
5식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의 다섯 가지 의식 (識)을 말한다. 이는 사람이 외부 대상들을 지각 인식하는 감각기관이다. 감각기관 을 붇다는 뿌리(根)라고 한다. 눈(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이 바로 그 다섯 감각기관이다. 전5식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 으로 만져서 아는 것이다. 지각 경험이다.
붇다는 사람이 오온(五蘊 다섯덩어리)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자아를 구성하는 다 섯 가지 요소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이다. 색(色)은 색깔이다. 모든 물 질적인 것은 색깔을 가진다. 사람의 몸이 바로 색(色)이다. 몸은 땅 물 불 바람(地 水火風)의 네 요소(四大)로 이루어졌다. 수(受)는 ‘받아들임’이다. 눈 코 입 귀 몸의 195) 곽철환, 불교 길라잡이 , 74쪽.
196) 곽철환, 불교 길라잡이 , 72쪽.
다섯 감각기관이 외부 사물을 지각해서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5식이 바 로 이것이다. 상(想)은 생각함이다.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사유하고 추론함이 다. 행(行)은 행위이다. 감각 지각과 사유를 바탕으로 행위를 한다. 식(識)은 의식 이다. 색(色) 수(受) 상(想) 행(行)을 이루는 마음의 요소를 ‘의식’이라 한다. 유식불 교는 바로 이 ‘식(識)’을 근본으로 한다. 전5식은 감각 지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자체로써 판단·유추·비판하는 능력이 없다. 그것은 다만 ‘나’라는 주관이 외부의 객 관과 교통하는 통로일 따름이다. 전5식은 제6 의식에 의하여 통괄되며, 자신이 수 집한 갖가지의 정보를 이 제6 의식에 보고하는 기능을 가졌다.
다르게 보자면, 전오식은 현재의 사물을 인식하는 현량(現量)197)이다.
또한 4분설로 볼 때, 상분(相分)과 견분(見分)에 해당된다. 견분은 인식 작용이 고, 상분은 인식 내용이다. 8식에 대한 4개의 지혜라는 점에서 볼 때, 전5식은 성 소작지(成所作智)를 이루어야 한다.198)
2) 6식(六識) 의식(意識)
6식 의식(意識)은 전오식(前五識) 다음에 있는 것이다. 전5식이 대상 사물의 정보 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6식은 그 정보를 처리하는 작용이다. 전5식이 지각한 내용 을 6식이 종합하고 비교하며 사유한다. 전5식이 감각 지각이라면, 6식은 이성적 사유 능력이다.
전5식은 감각 기관별로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다르다.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코 는 냄새를 맡는다. 봄, 들음, 맡음은 서로 다른 정보이다. 이 정보들을 종합해야 대 상을 구성할 수 있다. 6식이 바로 종합 구성하는 작용이다. 대상을 구성했다 하더 라도, 대상이 어떤 것인지, 그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기억했던 내용과 지 금 종합한 대상을 비교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 역시 6식의 작용이다.
이런 점에서 6식은 이미 아는 사실에 근거하여 추론하는 비량(比量 비교하는 능 력)이다. 4분설로 볼 때, 6식은 자증분(自證分)이다. 전5식으로 지각한 내용을 스스 로 깨닫는 자기반성의 측면이다. 이런 자기반성을 통해서 이론을 구성한다.
8식의 지혜라는 점에서 6식은 묘관밀지(妙觀密智),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이루어 야 한다. “비밀을 묘하게 보는 지혜, 묘하게 보고 살피는 지혜”이다. 전5식은 대상 의 속성을 감각으로 지각한다. 이는 직관에 해당된다. 그러나 대상 전체의 모습은 6식으로 구성해야 한다. 전체 모습은 ‘비밀’에 해당하므로 묘하게 관찰해야 그 비 밀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묘관밀지’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첫째 6식 의식, 둘째 7식 마나식(Manas), 셋째 8식 알라야식이다. 마음은 객관 세계를 인식하고, 선과 악을 판단하고, 정신 작용을 일으키는 중심이 된다.199)
197) 인식의 근원인 삼량(三量)의 하나. 현량(現量)은 감각 지각하는 것이다. 비량(比量)은 사유 추론하는 것이다. 성교량(聲敎量)은 가르침의 소리를 들어서 아는 것이다.
198) 오형근, 신편 유식학입문 , 109쪽.
3) 7식(七識) 마나식(manas)
⑴ 7식은 ‘manas’인데, 한자로는 ‘마나식(末那識)’이라 한다. ‘manas’는 한자로
‘意’를 뜻한다. 意는 두 가지 뜻이 있다. ① 의미 뜻, ② 의지(志)이다.
6식 의식(意識)의 ‘意’는 ①의 ‘의미, 뜻’에 가깝다. 전5식으로 지각한 내용의 ‘의 미, 뜻’을 구성하는 기능이 바로 6식 의식(意識)의 역할이다. 반면에 7식 마나 (manas)식의 ‘意’는 ②의 ‘의지’에 가깝다. ‘의지’는 ‘나’ 개념의 핵심이다. ‘나’의 본질은 나의 ‘의지’이다. 6식이나 7식이나 ‘의(意)’의 뜻을 가지기 때문에, 구별하기 위해서 6식은 ‘의식(意識)’이라 하고, 7식은 ‘마나식’이라 한다.
⑵ 7식의 또 다른 기능은 사량(思量)이다. ‘思量’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 역시 6식과 겹친다. 6식 역시 사량하는 것이다. 차이점은 무엇인가?
6식 의식(意識)은 전5식이 지각한 것만 가지고 그 의미를 재구성한다. 그 과정이 사유이다. 따라서 사유의 근원은 외부에 있다. 외부에서 감각 지각이 들어오지 않 으면 6식의 작용은 그칠 수 있다. 반면 7식은 전5식이 가져다주지 않아도, 스스로 계속 생각한다. 계속 생각하기 때문에, 그 생각은 내 안에 어떤 근원이 있다고 생 각한다. 그 근원을 ‘자아’(나)라고 생각한다. 사유의 근원이 내부에 있기 때문에 ‘자 아’를 상정하게 된다. 나아가 7식은 그 뒤에 있는 8식 알라야식을 ‘자아’라고 추측 한다. 그 결과 ‘나’(자아)와 관련된 집착을 일으킨다. ‘아집(我執)’과 ‘법집(法執)’은 7식에서 생겨난다.
⑶ 7식은 끊임없이 나의 생각과 의식에 ‘나’(자아)라는 것을 불어넣는다. 그 결과 네 가지 집착을 불러일으킨다.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의 네 가지 집착이 함께 일어난다.
아치(我癡)는 “‘나’라는 어리석음”이다. 나에 대한 무지(無明)를 말한다. 치(癡)는 무지를 뜻한다. 존재하지 않는 ‘나’를 있다고 하기 때문에, 갖가지 어리석음을 일으 킨다. 붇다 이래 불교는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주장한다. ‘나’가 있다고 여기기 때 문에, 모든 뒤집힌 견해(顚倒見)가 여기에서 생겨난다.
아만(我慢)은 “내가 오만하다”는 말이다. 스스로를 높여서 잘난 체하며, 남을 업 신여기는 마음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진리를 망각한데서 발생한다. 아치(我痴)와 아만(我慢)은 나에 대한 집착인 ‘아집(我執)’이다.
아견(我見)은 “내가 본다”는 뜻이다. 자신이 지각 인식하는 모든 것을 ‘나’라는 가상의 존재가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모든 인식에 ‘나’라는 것을 넣는 것이 다. 인식의 주체를 ‘나’로 잡는다.
아애(我愛)는 “내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라는 관점에서 만나는 대상들을 사 랑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 대상에 대한 집착을 일으킨다. 아견(我見)과 아애(我愛)
199) 오형근, 신편 유식학입문 , 110쪽.
는 ‘법집(法執)’의 근원이다.
⑷ 7식 마나식은 4분설에서는 증자증분(證自證分)이다. 전5식이 지각한 내용을 6 식이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는 것이 ‘자증분(自證分)’이다. 이렇게 스스로 깨달은 자 증분을 다시 깨다는 것이 증자증분이다. 이는 자신의 인식과 의식의 흐름에 ‘나’라 는 것을 넣는 과정이다. 자의식이다.
8식의 지혜라는 입장에서는 7식 마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를 이루어야 한다.
‘나’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피차(彼此)의 차별이 없이, 모두 평등하다고 깨닫는 지혜이다.
대상을 인식할 때, 항상 그릇되게 인식하여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 비량(非量)이 다. 새끼줄을 뱀으로 착각하는 변계소집성성, 혹은 자아를 있다고 아는 7식 마나식 이 대표적인 비량(非量)이다.200)
4) 8식(八識) 알라야(ālaya)식
8식은 산스크리트어로는 ‘알라야 비즈냐나 ālaya vijñāna’이다. 중국에서 이를 음역하여서 일반적으로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한다. 다른 번역으로 ‘아리야식 (阿梨耶識)’, ‘아라야식(阿羅耶識)’ 등이 있다. 줄여서 ‘뢰야(賴耶)’ 또는 ‘리야(梨 耶)’라고도 한다.
⑴ 무몰식과 장식
8식은 매우 많은 이름이 있다. 그 가운데 ‘ālaya’를 번역한 것으로, 구역(舊譯)의 대표자인 진제(眞諦)는 ‘무몰식(無沒識)’이라 번역하고, 신역(新譯)을 한 현장은 ‘장 식(藏識)’이라 했다. 이 두 번역은 진제의 구유식인 섭론과 현장의 신유식인 법상 종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다.
① 무몰식(無沒識)은 “소멸되어 없어짐(沒失)이 없는 의식”이라는 뜻이다. 8식은 모든 존재의 씨앗(種子)을 굳게 보존하여 잃지 않는다. 8식은 생멸을 하지 않는다.
② 장식(藏識)은 “창고인 의식”이라는 말이다. ‘ālaya’는 ‘창고, 곳간, 집’, ‘저장 함’을 뜻한다. 모든 사물을 만들어 내는 씨앗(種子)을 보관하는 창고이다.
알라야식은 잠재하면서 신체를 유지하고, 과거의 행위에 의해 새겨진 인상을 종 자(種子)로 저장하며, 미래의 심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모든 현상을 알라야식 의 발현이라고 한다. 종자가 현상으로 드러나며, 반대로 현상이 다시 종자에 훈습 (薰習)을 한다. 이를 습기(習氣)라고 한다.
200) 오형근, 신편 유식학입문 , 112-126쪽.
⑵ 알라야식
알라야식의 이름은 매우 많다. 그 가운데 몇을 들자면,
① 알라야식은 모든 식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근본식(根本識)이라고 한다.
② 종자식(種子識 bīja-vijñāna) “씨앗인 의식”, 모든 사물을 만들어내는 씨앗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종자식이라 한다. 씨앗은 현상 사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상의 사물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8식 알라야식의 창고에 있는 씨앗이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객관 사물은 ‘공(空)’하다. 실체가 비어 있다. 다만 씨앗이 나타난 상태일 뿐이다. 이렇게 씨앗이 드러난 모습을 ‘법상(法相)’이라 한 다. 이것은 꿈과 같은 구조이다. 꿈에서 우리는 내 마음이 만들어낸 현상을 내 마 음이 지각한다. 마찬가지로 유식은 8식의 씨앗이 드러난 현상을 내가 지각한다고 한다. 이는 법공(法空)의 이론이다.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고 한다. “오직 의식 뿐, 대상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알라야(창고) 식과 씨앗은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불일불이(不一不異) 의 관계에 있다. 씨앗은 사물 혹은 사태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사물과 사물 사이 의 원인-결과의 관계와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원인-결과, 즉 연기를 설명하기 위 해서 ‘이숙식’을 말한다. 이래서 유식 이론을 ‘알라야 연기설’이라 한다.
③ 이숙식(異熟識 vipāka vijñāna) - “다르게 익은 의식”, 과보식(果報識)이라고 도 한다. 씨앗으로 드러난 현상은 행위의 일종이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과를 만들어낸다. 원인이 익어서 다르게 되면, 결과이다. 8식은 원인-결과의 관계를 담 고 있다. 이를 “다르게 익은 의식”(異熟識)이라 한다.
⑶ 능장 소장 집장
알라야식은 일반적으로 ‘창고’와 ‘씨앗’이라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성유식론 은 8식을 자상(自相, 자체 모습)과 과상(果相, 결과의 모습) 인상(因相, 원인의 모습)으 로 정리한다. 그 중 ‘자체 모습’(自相)을 “능장(能藏) 소장(所藏) 집장(執藏)”으로 설 명한다.
① 능장(能藏)은 “저장할 수 있음”을 뜻한다. 8식이 만유의 종자를 능히 보관하 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종자는 현상 사물로 드러난다. 이렇게 드러난 현상이 서로 원인-결과의 관계를 맺는 것 역시 8식의 작용이다. 종자에는 현상의 모습뿐만 아니라, 업력(業力)과 과보(果報)도 들어 있다.
8식은 종자를 보관하는 것이지, 종자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8식의 씨앗이 현 상으로 드러남이 능장(能藏)이라면, 현상이 다시 씨앗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소장 (所藏)이라 한다. 서로 반대의 방향이다.
② 소장(所藏)은 “저장되는 것”이다. 8식이 저장한 씨앗이 훈습(熏習)되는 것을 말한다. 훈습이 저장되는 것이다. 8식의 씨앗이 현상 사물로 드러난다. 반대로 현 상 사물을 인식한 것이 씨앗을 훈습한다. 훈습되는 것을 ‘소장(所藏)’이라 한다.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