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식불교의 가장 일반적인 이름은 ‘유식(唯識)’이다.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 번째 ‘唯識’은 “오직 의식뿐”이라는 뜻이다. 이는 “오직 의식만 존재한다”는 주관적인 측면을 말한다. 나의 의식, 혹은 개인의 의식만 존재한다. 이는 의식만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보고 있는 객관 대상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다. 주관의 의 식만 존재하고, 객관은 존재하지 않음을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는 말로 표현한 다. 이는 모든 현상은 “오직 의식뿐(唯識)이며, 바깥 대상(境)은 존재하지 않는다”
는 뜻이다. 경(境)은 내 의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대상 사물을 뜻한다. 이 대상 사 물은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唯識’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의 ‘vijñapti-mātra’의 번역이다. vijña – 의식.
-apti ~일 뿐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vijñapti는 “오직 의식(識) 뿐”, 마음의 작용만 있다는 것을 말한다. mātra는 ‘something’, ‘어떤 것’을 말하며. vijñapti-mātra 는 “오직 의식인 어떤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은 무엇을 뜻하는가? 일반적으로 대승불교에서는 vijña는 일반 의식을 말하며 prajña는 반야 지혜를 나타내므로 서로 구별한다. 이 두 말은 jña 앞에 vi, 혹은 pra를 붙인 차이가 있다. jña는 그냥 의식이다. vi-jña는 감각 지각 해서 생긴 의식이다. pra-jña는 그 이후에 반성적 사유를 통해서 깨달음, 즉 지혜 를 얻음을 뜻한다. 따라서 vi-jña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prajña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혜이다.
‘오직 의식’만 있고, ‘실체가 없음’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대상 사물은 속성(현 상)과 실체로 이루어져 있다. 유식불교는 속성만 인정하고 ‘실체’를 부정한다. 그 자리에 알라야(창고)식의 ‘씨앗’을 넣는다. 유식에서는 이 속성(현상)이 8식 알라야 식의 씨앗이 펼쳐진 것으로 본다.118)
두 번째 유식은 ‘vijñapti’를 번역한 말로써 인식되어진 것, 인식의 내용 혹은 표 상을 말한다. 우리가 인식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마음에 118) 길희성, 인도철학사 , 민음사, 1984, 161쪽.
나타나는 표상일 뿐이라는 주관적 측면을 말한다. 유식에서 식이란 주로 의식 혹은 인식의 작용을 말하며 그것이 어느 감각기관에 의존해서 생기는가에 따라 안식 이 신 비식 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vijñaña란 말은 단지 식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어떤 대상을 내용으로 하는 의식(識)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식의 의식(識)을 vijñaña로 이해하면 유식(唯 識) 철학은 유심(唯心) 철학이라고 부른다.119)
실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에 의해 이루어졌다가 다시 소멸 하므로, 이렇다고 할 만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空’이라 고 한다. 불교에서는 ‘원인-결과’로써 사물이 존재하므로, 사물의 자성(自性), 실체 가 없다고 한다. 유식불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간다.
空이라는 뜻은 없다는 ‘없음’(無)이 아니라 ‘비어 있음’을 뜻한다. 무엇이 비어 있 는가? 대상 사물에서 ‘실체’가 비어 있고, 단지 사물의 ‘속성·현상’만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사물의 속성·현상은 8식 알라야(창고)에 있는 씨앗이 드러난 것이다. 실체 는 없고, 단지 ‘드러남’, 현상만 있다. 이것이 유식에서 말하는 공(空)이다.
그러므로 色卽是空, “색깔이 있는 것(色, 사물)은 곧 비어 있다.” 모든 사물(色) 은 현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체는 비어 있다. 알라야식의 씨앗이 드러남이기 때문이 다. 이는 꿈, 그리고 요가 체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유식불교가 생각하는 현상은 꿈속에서 본 모습들과 같다. 그 모습들은 내 마음이 만들고, 내 마음이 그것들을 지각한다. 요가 수행자들은 요가 체험 중, 명상 속에서 생생한 어떤 모습·현상들을 본다. 이 모습·현상들은 내 마음이 만들고 내 마음이 지각한다. 이런 점에서 ‘色卽 是空’이라 한다.
모든 존재자(法)는 의식(識)에 의해 펼쳐져 존재하게 된다. 우선 唯識은 말 그대 로 ‘의식’으로 설명한다. 의식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⑴ 첫째, 불교는 무아설(無我說)이다. 이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뜻으로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불멸의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것이다. ‘고정불변 하는 나’는 없고, ‘매순간 변화하는 나’만 있다. 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자아’(나)의 핵심은 ‘마음’ 개념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마음을 자아라고 인정 한다. 그런데 붇다는 인간 존재를 오온(五蘊 다섯 덩어리)이라 한다. 즉 “色 受 想 行 識”이다.
色 - 색깔(이 있는 것). 물질적 사물, 대상(法).
受 - (대상을) 받아들임. 감각, 지각. (전5식) 想 - (감각 지각에 근거해서) 생각함. (6식)
行 - 행위와 결과. 감각과 생각에 근거해서 행위한다. (諸行無常) 識 - 의식. ‘마음’이라 하지 않고, ‘의식’이라 한다. (諸法無我) 119) 길희성, 인도철학사 , 161-162쪽.
識은 의식이다. 붇다의 이런 ‘識’ 개념에서 발전한 것이 유식불교이다. 유식에서 는 ‘의식(識)’ 개념을 가지고 ‘마음’을 분석한다. 그러면서 ‘마음’을 용어에서 뺀다.
붇다가 제창한 무아설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붇다의 5온에서 마음에 해당되는 것은 ‘色’을 뺀 나머지 ‘受 想 行 識’, 즉 “감 각, 생각(이성), 행위, 의식”이다. 이는 마음의 네 부분이다. 그런데 붇다는 5온에
‘마음’을 넣지 않고, 이렇게 네 부분만 지적한다. ‘마음’은 따로 없고, 그 네 부분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 네 부분과 연기하여 존재한다. 그래서 단독으 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이런 발상 때문에 3法印 (사물에 찍힌 세 가지 도장, 속성, 특징)은 제법무아(諸 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 일체개고(一切皆苦)가 된다.
제법무아(諸法無我) - 모든 사물에는 ‘나’(자아)가 없다.
제행무상(諸行無常) - 모든 행위 결과에는 ‘일정함’이 없다. 따라서 일체개고(一切皆苦) - 모든 것이 다 고통이다.
제법무아의 제법은 모든 현상을 뜻한다. 무아는 ‘나’라는 행위 주체가 없다는 것 이 아니라 어떤 현상도 다른 현상과 연기적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지 독립된 실체 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신체나 감각 의식을 나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따로 “나의 본질‘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둘의 통일된 형태를 ’나‘라고 하는 것이다.120)
⑵ 둘째, ‘一切唯心造’에서 ‘造’라는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오직 마 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唯心造는 유식불교를 오해하게 만든다. 8식 알라야 (창고)식에 있는 씨앗은 드러나는 것이지, 현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체의 모 든 것을 마음이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현상을 지각한다”는 것이기 때문 이다. ‘만든다’고 하면, 만드는 주체와 만들어진 대상이 있다. 대상은 현상 세계이 다. 모든 법은 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한다.121)
마음은 8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 격이나 품성이다. 그리고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 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를 말한다. 또한 마음은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를 말한다. 마음과 몸, 정신 과 육체의 관계에서 유식학파는 ‘마음’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의식’으로만 설명한다. 그들은 몸 혹은 육체를 객관적 대상의 하나로 본다. 몸의 존재에 대해서 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냥 대상이 무엇인가를 말할 뿐이다.
객관적 대상 사물은 8식 알라야(창고)식에 있는 씨앗이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존재자는 오직 의식(識)일 뿐이다. ‘萬法唯識’이다. 실체가 만든 것이 아니라,
120) 곽철환, 불교 길라잡이 , 시공사, 2003, 30-31쪽.
121) 목경찬,『유식불교의 이해 , 불광출판사, 2017, 9쪽.
8식의 씨앗이 드러난 속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집착하거나 번뇌할 이유가 없다.
유식은 마음의 본모습을 깨닫고, 이 깨달음을 통해 만법의 이치를 이해하고, 고 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열반에 이르는 길을 알려준다. 프랑클은 고통 속에서 그 고 통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났다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집착과 번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식 이론은 심리학이나 인식론 보다는 형이상학에 가깝다. 형이상학은 세계관을 뜻한다.